고양이 죽이기 ㄱ
w.그물
몸을 감싸는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도 거센 빗줄기에 쓸려 사라지고, 남은 것은 코 끝에 맺히는 물기를 머금은 음습한 냄새뿐이다. 비 내리는 새벽의 한강은 차갑다. 고요하고 정체되어 있다. 비와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귓가를 웅웅 울려대다가 무뎌져버리고 말았다. 아주 가끔씩 밤길을 매섭게 질주하는 차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옆을 스칠 때가 돼서야 나는 시간은 여전히 잘만 흐르고 있다는 걸 상기할 수 있었다.
'…경찰서입니다.'
비가 거세게 내리는 탓에 군데군데 고인 물웅덩이 아래로 도시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나는 빛 무더기가 세찬 빗줄기에 맞아 흔들리다 제자리를 되찾고, 또다시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달라진 발 밑의 풍경에 나는 이 공간에 나 혼자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낯선 존재. 그 또한 작은 물웅덩이 속에서 흐려지고 선명해지는 것을 반복했다. 나는 연신 바닥을 향하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난간을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그곳에 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한강에서 사람이 자살한다.
단순히 스릴을 즐기는 철없는 젊은이라기엔 그 뒷모습에서 쓸쓸하고 처연한 것이 느껴졌기에 나는 그리 확신했다. 흔한 일이었다. 한강은 아무런 연고도 없고 심지어 이름조차 모르는, 이전에 여기서 죽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별거 아니야, 할 수 있어. 혼들은 그렇게 나약한 이의 귓가에 속삭인다. 대게는 겁에 사로잡혀 그것들을 뿌리치지만 누군가는 그 얄팍한 유혹에 제 몸을 맡긴다. 그런 식으로 악습은 그 크기를 불려간다.
그럼 저 사람은 어떨까.
나는 그 메마른 등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그 하염없이 가벼운 문구 너머로 거대한 물결이 아가리를 쳐들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날뛰고 있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탁하고 검은 물. 순간 손끝이 저릿하고 몸에 오한이 들었다. 저기에 빠지면 숨이 달려 명이 끊어지기 전에 몸이 먼저 갈갈이 찢길 것 같았다. 역시나 신고를 해야 할까. 그리고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이내 핸드폰은 내 손에 붙들려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멍청하게. 하도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새하얗게 질려있다. 저린 손을 간신히 움직여 전원 버튼을 눌렀으나 핸드폰은 반쯤 켜지다가 픽, 꺼져버렸다. 툭, 툭. 그 뒤에는 눌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배터리가 없거나 물을 먹고 망가진 것 같았다. 나는 텅 빈 공간을 두리번거리다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 가녀린 뒷모습에서 음습한 냄새가 코 끝을 스치는 것 같았다. 죽음은 늘 곁에 있다.
"……"
상당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남자가 난간에서 손을 때려던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우산을 그쪽으로 들이밀었다. 곧바로 차라리 옷을 잡아 뒤로 끌어당기는 게 훨씬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임을 깨달았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멍청한 행동은 되돌릴 수가 없었다. 나는 실눈을 뜨고 코앞을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흰 무지 티 소매 사이로 곧게 뻗은 팔뚝은 여전히 단단하게 난간을 잡고 있었다.
"아.."
그는 갑자기 끊긴 빗줄기에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동시에 저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린다. 그가 완전히 내 쪽을 쳐다보았을 때,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 라이터가 그림처럼 그 모습을 비춘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뇌리에 새겨진 충격적인 광경에 조용히 탄식을 내뱉는다.
끈이 풀려 엉망이 된 운동화.
흙탕물로 얼룩진 바짓단, 잔뜩 구겨진 바지.
배 부근이 피로 얼룩진 티셔츠.
예쁘게 곧은 목선.
익숙한 이목구비.
비 냄새.
"김..용국."
아버지가 칼에 맞아 숨이 끊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에서 돌아오는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