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아빠 박지훈
엥?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정수정도 나한테 아무 말 없었는데? 혼자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없었다. 박지훈에게, 수정이는 아무 말 없었는데? 라고 말하니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남자랑 여자랑 달라. 여자만의 비밀이 있듯이, 남자만의 비밀도 있어. 그러니까 지금 그 비밀이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거야? 아니, 대체 왜? 정말 이해가 가지않았다. 원래 보통 경영학과는 사람도 많고 남자, 여자 비중도 비슷하니까 과 안에서 많이 사귀지 않나… 나는 아직도 못 믿겠다는 눈치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튼, 난 다른 남자가 너한테 말 거는 것도 싫어. 박지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참나, 나도 다른 여자가 너한테 말 거는 거 싫거든? 이라고 말했더니 박지훈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질투하는 거지? 어, 그래. 질투다, 질투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에 정훈이를 데리고 오는 것은 아닌 거 같아서 계속 안 된다고 하고있는데, 박지훈은 계속 옆에서 찡찡거리고 있다. 이러다 학교 늦겠어. 라고 아무리 말해도 허락해주면 보내준다나 뭐라나. 어차피 곧 알게될거 조금 빨리아는거라고 생각하라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나 아직 수정이한테도 말 못했단말이야. 우리 집 합쳤다는거. 진짜 지금 출발하지않으면, 학교에 늦을 거 같아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정훈이 옷을 입히고, 엘리베이터를 잡아 탔다.─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우리층과 가까이 있었다─ 1층을 누르려고 하자, 박지훈이 지하 1층이라며 지하 1층 버튼을 눌렀다. 차 가지고 가려고? 어. 우리 여보 편하게 해줘야지.
새로다니는 정훈이 유치원보다 우리 학교가 가까워 내가 먼저 내리고, 박지훈이 정훈이를 데려다준다고 했다. 정훈이가 아닌 박지훈이 사고를 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여태껏 잘 해오던 박지훈이라서 걱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 내 강의 시간이 걱정이었다. 달려야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왜 난 항상 달려야하는걸까─
──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강의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오늘도 교수님은 출석체크를 하지 않으신거 같았다. 수업을 하는 중간에 들어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사뿐사뿐 걸으며 남아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번에도 남아있는 자리가 맨 앞자리와, 맨 뒷자리에 있어 당연히 맨 뒷자리에 앉았다. 꼭 학점을 따야하는 과목이라 최대한 열심히 들으려고 했지만, 정말 앞자리는 아니었다. 저번에 한 번 앉아본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의 시선을 많이 받기만하지, 뒷자리나 앞자리나 졸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오늘도 열심히 들어보자 다짐하고 책을 피고 몇 분 후에, 옆자리에서 뭐라고 쓰인 포스트잇을 건넸다.
' 박우진 '
어…? 갑자기 박우진이라니. 너무 뜬금없는 이름에 뒤로 자빠질뻔했다. 박우진이라니.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박우진? 설마, 진짜 그 박우진? 아니, 박우진이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흔한 이름이다. 그럴리가 없다. 정말, 그럴리가 없어. 고개를 들어 옆을 확인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않았다. 근데, 나 왜이리 떠는거지? 박우진은 내 사정도 모르고 내가 자기를 좋아했다는걸 알리도 없을텐데, 난 왜 떠는거지? 근데 생각해보니, 박우진이라는 이름 석자만 적어 내기에는 뭔가 나와 안면이 있어야 가능했다. 모르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이름을 알려줄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똑같이 내이름을 써서 보내기로 했다.
' 성이름 '
분명 나와 안면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 답에 당황을 할 것이다. 그리고, 정말 내가 아는 박우진이라면… 괜히 쓴 거 일수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에 포스트잇을 옆사람에게 건넸다. 근데, 왜 답이 오지 않는 것일까. 강의가 막바지를 달릴때까지, 답이 오지 않았다. 정말 그냥 떠본건가. 아니면 혹시 또라이..? 심심해서 자기 이름 알려준건가?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 책을 정리하시며,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말씀하시자,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이 하나 둘 나갔다. 늘 그랬듯 마지막에 나가려고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옆사람도 나가지 않았다. 가방도 다 정리했겠다, 나가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름아. 화들짝 놀라서 바로 뒤를 돌아봤더니, 정말 내가 생각하던 그 박우진이 맞았다.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박우진…
박우진과 나는 나름 같은 반이었는데, 내가 원래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 못다가가는 성격이라, 박우진한테도 그랬다. 그럴때마다, 박우진은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내게 잘해주었다. 그러니 내가 김유정이랑 사귄다는 소문이 났을 때 그렇게 심장이 찢기는 기분이었지. 그런데 그런 박우진이 나랑 같은 학교라니. 박지훈과 같은 학교인것도 놀라워 죽겠는데, 박우진까지… 다시 한 번 느꼈다. 역시 대한민국 좁구나.
박우진은 이렇게 만났는데 내게 할 말이 많다며 다시 의자에 앉아보라고 했다. 아, 끝나고 박지훈이 기다린다고 했는데. 약속이 있어서 얼른 가봐야한다고 말하자, 정말 잠깐이면 된다고 몇 마디만 하고 가자고 했다. 몇 마디면, 괜찮겠지라는 마음과, 그냥은 안 보내줄것 같아서 얼른 끝내자는 마음에 의자에 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라고 묻는 박우진에, 힘들게 지냈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행복하게 지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잘 지냈다고만 대답했다. 내 말을 듣고 박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라고 대답했다. 응, 그러니까 나 좀 빨리 가봐야돼.
" 누구랑 약속 있는데? "
" 어? "
" 박지훈? "
" … … "
" 이상하게, 지훈이도 같은 학교더라. 대한민국 참 좁아. 그치? "
저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박지훈을 만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온몸에 돋히는 소름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박우진은 내 손목을 휘어잡고는, 표정을 굳혔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너 나 좋아했잖아. 그렇게 소름이 끼칠 수가 없었다. 박우진이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았다고? 그런데도 그렇게 잘해주고, 그걸 알고도 김유정이랑 사귀었던거야? 얼른 이 상황을 벗어나고싶어 박우진이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는, 누가 누굴 좋아해. 라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박지훈이 다른 사람들은 다 나왔는데, 내가 계속 안 나와서 들어오려고 하던 찰나에, 내가 나왔다. 정말, 몇 초라도 늦게 나왔다면, 박지훈이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다. 박지훈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러자, 박지훈과 정훈이가 내게 달려왔다. 왜그래. 무슨 일 있었어? 라고 묻는 박지훈. 정말, 정훈이를 데려왔구나. 박우진이 강의실에서 나와 정훈이를 본다면 상호아이 더 심각해질거같아서, 풀린 다리를 붙잡고 애써 걸었다. 아니, 괜찮아. 강의 시간 내 잤더니 다리가 다 풀리네. 라고 상황을 무마하고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 진짜 정훈이 데리고 왔네. "
" 정훈이가 너랑 내가 다니는 학교와서 좋대. "
" 그래도 … 조금은 위험해. "
" 뭐가? "
건물에서 나오자, 오늘따라 여기저기 학생들이 많아 보였다. 하필 박지훈이 정훈이를 데려온 날에. 박지훈과 나 사이에 다여섯살로 보이는 아이가 있는데, 이상하게 쳐다보는게 당연한것이었다. 내가 이래서 데리고 오지 말자고 했던 건데… 박지훈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혼자 룰루랄라 신난 것 같았다. 조금은 위험하다던 내 말에 박지훈이 갑자기 멈춰서 뭐가?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난, 뒤에 우리를 흘깃흘깃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안 쳐다보는 척 쳐다봤다. 그러자, 박지훈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걱정마, 내가 있잖아.
──
박지훈은 원래 사람 자체가 당당해서 남들 시선은 아랑곳하지않고, 차에 올라탔다. 어물쩍거리는 나를 보고는 차에서 다시 내려 손수 차 문을 열어주고─절대 차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타지 않은게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생각을 할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지금 이 차를 타면 더 소문이 안 좋게 돌거같아서였다─ 나를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정훈이를 혼자 뒷자석에 둘 수는 없으니, 나도 정훈이와 같이 뒷자석에 탔고, 박지훈은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았다. 평소보다 속도가 빠름이 느껴졌다.
구청을 들어갔을때,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박지훈이 먼저 앞에 있는 직원에게 혼인신고 접수를 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고, 직원이 안내해주는 쪽으로 갔다.
드라마나, 인터넷에서 보기만 봤지 직접 본 혼인신고서에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박지훈이 먼저 작성한다길래 나는 박지훈의 옆에서 정훈이와 놀고있었다.─말만 놀고있는다지, 사실 떨려 죽는줄알았다.─ 난생처음 혼인신고이고, 또 마지막이 될거라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박지훈의 사진이라도 찍어두고 싶었지만 뭔가 민폐인거같아서 정말 생각만하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박지훈은 쓰는 내내 혼자 뭐가 그렇게 좋은지 막 웃었다. 아니, 그렇다고 빵터진건 아니고. 그냥 살풋 웃는 웃음? 그리고 다 썼는지 나한테 넘겼다. 글씨도 잘 쓰구나.
막힘없이 술술 써내려가서 이제 내려고 하는데, 증인이 있어야한단다. 증인이라니. 도대체 누굴 불러야하나 싶어서 박지훈에게 근처에 친한 사람 사냐고 물어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짓는다. 나도 수정이밖에 없는데. 수정이한테 집을 합쳤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혼인신고서 증인 좀 서달라고 하면 얼마나… 하,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수정이에게 연락을 해야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로비에서부터 씩씩대고 걸어오는 수정이가 보였다. 우리가 어디있는지 찾다가, 수정이와 눈이 마주쳐, 수정이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야, 넌 어떻게 나한테 이걸 전화로 말 할 수가 있냐? 내가 진짜 안 올려다가… 그래, 그 맘 다 이해한다. 나같아도 충분히 서운할만 했으니까. 근데, 진짜 오늘만 지나면 말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아무튼 말은 이렇게 하면서 해줄건 다 해주는 수정이 덕에 증인도 큰 문제없이 마무리되고, 서류를 냈더니, 최대 일주일 걸린다고 했다. 그렇지만, 거의 2,3일 안에 끝난다고 하니, 일주일까지는 가지 않을거라고 하셨다.
뭔가 되게 거창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아쉽긴 아쉬웠다. 하지만, 박지훈은 그러지 않은 것인지 입이 귀에걸려 헤벌쭉 웃으며 정훈이의 손을 잡은 채로, 내게 팔짱을 꼈다. 내 옆에서는 수정이가 투덜투덜 한숨을 쉬며 나오는데, 수정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 수정아, 맛있는 거 사줄까? "
" 됐어. "
" 진짜. 나 진짜 너한테 내일 말하려고 했어. 진짜야. "
" 됐어. 나 괜찮아. 너 이런게 한 두 번도 아니고. "
" … …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
수정이는 정말 내게 둘도 없는 친구라 수정이가 그렇게 말하는데 진짜 너무 미안해서 옆에 있는 수정이를 꼭 안으며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라고 말했더니, 이번에는 옆에서 내 팔짱을 끼고있던 박지훈이 노발대발했다. 자기한테는 왜 그런 말 안 해주냐며, 혼인신고서까지 쓰고 왔는데 왜 자기는 안아주지 않냐며… 내가 애를 두 명 키우지. 수정이는 그런 박지훈을 보고 정색한 표정을 짓더니, 나한테 정말 괜찮다고, 박지훈이나 챙기라며 안고있던 내 팔을 풀어 박지훈에게 밀었다.─말로 표현해서 이렇지만, 수정이의 행동은 화난 것이 아니라 정말 장난이었다─
──
수정이는 자기도 선약이 있다며 가봐야된다고 먼저 가본다고 해서, 박지훈과 나와 정훈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청소기를 돌릴까싶어 박지훈에게 환기를 시키고 방에 들어가 정훈이랑 놀아달라고 하고, 청소함에서 청소기를 꺼내 줄을 모조리 뺀 다음, 코드를 꼽음과 동시에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항상 진동 아니면 무음으로 해놓기 때문에 내 것은 아니구나 싶어 박지훈에게 '전화 와!'라고 크게 소리쳤더니, 박지훈이 방에서 나와 핸드폰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박지훈과 나는 핸드폰이 똑같아─기종도 똑같고, 색도 똑같다 일부러 커플폰으로 맞춘게 아니라, 우연히 만나기 전부터 같은 폰이었다─ 박지훈은 의심없이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댔다. 그 순간, 나는 박지훈의 얼굴이 한없이 구겨지는 것을 보았다.
" 개새끼야. "
… 내가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정말, 단연코, 박지훈은 내 앞에서 욕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박지훈이 전화를 받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 톤으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욕을 하다니. 심각한 일인가 싶어 몸을 가만히 두었다. 이내, 박지훈은 전화를 끊고, 무거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 너 오늘 누구 만났어. "
+ 네 여러분 드디어 다른 인물이 등장했어요 원래 안 넣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독자님들이
오래보시길 원하시는거같아서 의외의 인물 넣었습니다 후후 마음에 드실랑가,,?
아 그리고 혼인신고에 대해 길게 쓰고 싶었지만, 제가 해보지를 않았잖아요?!
전 구청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고 저거 양식도 오늘 처음 구체적으로 봤어요
그러니 그 면에서는 이해를 좀,, 하 내일은 또 월요일이네요
월요병 물리치시라고 이렇게 월요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1시 40분쯤에 왔습니다!
헤헤,, 아 그리고 말할거 또 있었는데 까먹었다 헤헤 제가 원래 이래요 헤헤
아무튼 여러분 사랑하고 댓글도 사랑합니다 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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