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블루 B
(부제 : 폭풍전야)
오늘도 응급실은 바빴고 또 바쁠 예정이다. 아직은 응급환자가 없어서 스트레칭도 하고 물도 마시며 각자만의 방법으로 피로를 풀고는 있지만 왠지 조용해진 응급실은 낯선 것 같기도 하고 꼭 폭풍전야 같기도 하다.
"여주야. 밖에 좀 나가봐. 동생 왔어."
"형섭이?"
"응. 불러달라는데."
"어, 고마워."
밖으로 나가보니 여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형섭의 모습이 보인다. 형섭이는 고등학교 3학년. 여주와 나이차이가 적지 않다보니 애기 때는 여주가 거의 키우다시피 했었고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시간도 없어서 항상 애틋한 사이였다. 여주가 병원생활을 시작하면서 얼굴 볼 날이 더 적어지니 그만큼 애틋함도 더 커졌고.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누나처럼 멋진 사람이 될 거야.'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던 형섭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여주는 늘 뭐든지 못하는 게 없어야 했고, 또 뭐든지 잘해내야 했다.
"누나!!"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 오늘 야자 없어?"
"응. 누나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거 있어서 왔어."
"뭔데?"
"짜잔."
형섭이가 내민 건 제 성적표였다. 워낙 공부를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전 과목 1등급에 전교 1등까지 해낸 성적표를 직접 보니 여주는 새삼 내 동생 너무 자랑스럽다는 생각에 입 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우와. 왜 이렇게 잘했어? 어구, 예쁜 내 새끼."
엉덩이를 토닥여주자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히히 소리를 내며 웃어 보인다.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했는데 나 한성대 의대도 원서 넣을 수 있을 것 같대."
"무슨 의대야. 너 하고 싶은 거 하라니까."
"난 누나처럼 되는 게 제일 하고 싶은 건데..."
"너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잖아. 우리 집에 의사는 나 하나로도 족해. 넌 너 하고 싶은 거 해도 괜찮아."
"그래도 우리 세 식구 먹고 살려면 나도 의사ㅎ,"
"우리가족 먹고사는 건 누나가 책임질 일이야. 너한테까지 짐 지우고 싶지 않아."
"누나..."
"분명히 말하는데 너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누나 도와주는 거야. 너 후회하는 거 싫어. 누나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응...."
"엄마는.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고?"
"응. 가끔 누나 보고 싶다고 하시는 거 빼고는 잘 지내셔."
"응급실이 워낙 바빠서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도 어렵다.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시간나면 꼭 전화 드린다고."
"응, 그럴게. 나 이제 가봐야겠다. 아무리 바빠도 건강은 챙기면서 일해, 알았지?"
"걱정 마. 누나 튼튼하잖아. 너도 밥 잘 챙겨먹고."
"응. 나 한 번 안아주고 들어가."
"이리와."
이제는 자신보다 한 뼘도 더 큰 형섭이를 꼭 안아주기가 무섭게 PDA가 울렸다. 형섭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어주고 돌아섰고 여주 역시 그 뒷모습을 오래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
"지금 TA환자 3명 들어오는데 6세 여자아이 응급이랍니다."
"가요."
"환자입니다!!!!"
"바이탈ㅇ....."
"야, 너 뭐ㅎ...... "
"어....ㅂ,바이탈은요?"
"............현재 의식 없어요. 머슬가딩(muscle guarding:배 근육이 단단해지는 현상) 있고 캐필라리 리필(capillary refill:모세혈관 재충만)도 떨어져요. 씻벨트 인저리(seatbelt injury:안전벨트손상) 같으니까 빨리 소아수술 가능한 GS 콜하고 수술실 어레인지도 하세요. 아이 CT부터 찍구요."
"....네. 진영아, GS 콜 하고 수술실 잡아. 유쌤, CT실로 이동할게요."
"네."
"우리 재아 좀 살려주세요.... 제발....."
"걱정 마세요. 저희가 최선을 다할 거니까 어머니도 저희 믿어주세요."
"네....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도 다치셨으니까 일단 엑스레이 좀 찍을게요. 강쌤, 시스파인 엑스레이(cervical spine x-ray:경추 엑스레이) 좀 부탁해요."
"네. 이쪽으로 오실게요."
"환자입니다!! 팔에 유리가 박혔습니다!!"
"환자분 좀 볼게요. 팔 말고 또 아픈데 없으세요?"
"머리가 좀 어지러워요..."
"심하게 어지러우신 건지 알려주셔야 해요."
"심한 건 아니고 조금요."
"그럼 일단 엑스레이부터 좀 찍을게요. 유리조각이 안에 박혀있을 수도 있어서요."
"네.. 빨리 좀 빼주세요.."
"최쌤, 환자 엑스레이 좀 부탁할게요."
"네."
"여주야, 환자 CT... 뭐야."
".............."
"....박우진?"
"오랜만이에요, 선배."
"새로 온다던 OS 펠로우가 너야?"
"네, 그렇게 됐네요. 일단 수술 끝나고 얘기하시죠."
"어, 그래. 수술 끝나고 보자."
"네."
"선생님. CT 여기요."
"수술 빨리해야겠다. 과다출혈 날 수도 있겠어. 안 그래도 위험한데... 수술 방은?"
"4번방입니다."
"올라간다고 콜 해. 환자도 바로 올리고."
"네, 선생님. 유쌤, 베드 옮겨요."
"네."
소아수술은 어른들 수술과는 다르게 전신마취만으로도 이미 많은 위험성을 가진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여주를 비롯한 응급실의 의사와 간호사들 모두 부디 아이가 힘든 수술을 잘 버텨내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 여주는 애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야만 했으니 더 아이의 수술만 생각했을지도.
"한 5년만인가?"
".......네."
"너 이 병원에 있다고 해서 여기로 왔어."
"왜요...."
"내내 보고 싶었으니까."
"......그런 말은 5년 전에 했었어야 맞는 거예요. 전 바쁘니까 그쪽도 일 보세요."
우진은 돌아서는 여주의 팔을 잡아챘고 머리로는 빨리 뿌리쳐야한다 생각하면서도 차마 뿌리칠 수 없는 우진의 팔을 내려다보며 여주는 한숨을 내쉬고 잡히지 않은 팔로 우진의 팔을 밀어내며 잡힌 팔을 빼냈다. 우진은 잠시 표정이 굳어졌지만 금방 풀어내곤 '곧 또 보자.' 하면서 여주의 머리를 흐트러트리곤 응급실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갑작스런 우진의 등장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응급실로 뛰어 들어오는 한 남학생의 얼굴은 눈물범벅에 달려온 건지 땀까지 범벅이었고 두리번거리다 가까이에 있던 여주의 팔을 붙잡았다.
"김재아... 교통사고 난 6살, 6살 여자애 어디 있어요???"
"재아... 아, 지금 수술실 들어갔어요. 재아 오빠세요?"
"네... 많...많이 위험한가요....?"
"사고가 날 때 안전벨트에 눌리면서 비장이라고 하는 장기가 많이 손상돼서 일부분 절제하는 수술 들어갔어요. 소아수술은 원래 성인수술보다 훨씬 위험해요. 전신마취 하는 것만으로도 안 좋은 편이구요."
"엄마.... 엄마는요?"
"어머니는 많이 다치시진 않으셔서 지금 엑스레이 찍으러 가셨어요. 잠깐 앉아계시면 어머니 곧 오실 거예요. 수쌤, 여기 물 좀 주세요."
"네."
수간호사가 가져다 준 물을 벌벌 떨며 마신 재환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애꿎은 입술만 깨물며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기...."
"네, 말씀하세요."
"제 동생 수술하면 정상적으로 살 수는 있는 건가요...?
"전혀 아무 문제없이 살 수 있다고 장담은 해드릴 수 없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의 문제도 없을거예요. 당연히 신경써줘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긴 하겠지만요."
"아..."
"저희가 알려드릴 수 있는 건 딱 이정도예요. 더 자세한 건 수술하신 선생님하고 얘기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 선생님이 우리 병원에서 외과수술은 최고시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자꾸 그렇게 울면 동생 깨어나서 오빠 얼굴 보고 놀라겠네."
"아... 그러겠다...."
"재아는 좋겠네, 이렇게 든든한 오빠도 있고. 동생 엄청 예뻐하나 봐요. 많이 우네."
"평소에 잘 못해줬어서 그래요... 자주 놀아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이제 더 잘해주면 되겠네. 그쵸?"
"네..."
"어머니 오신다. 모시고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뭘요, 별로 해드린 것도 없는데... 어머니가 지금 많이 힘드실테니까 잘 챙겨 드리시구요."
"네. 감사합니다."
재환은 인사를 꾸벅하곤 어머니를 부축하며 수술실로 향했다. 여주는 잠시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괜히 코끝이 찡해지는 것 같아서 정신 차릴 겸 볼을 톡톡 두드리고 다시 혼란의 응급실로 뛰어들었다.
"선생님. 숄더 페인(shoulder pain:어깨 통증) 환자랑 2도 화상 환자 있습니다."
"너 어떡할래. 환자 볼 수 있겠어?"
"괜찮아. 박선생 누구 볼래."
"숄더 페인 내가 볼게."
"응..."
"환자분 잠시만 볼게요."
"아!!!!"
"디스로케이션(dislocation:탈구)이네. 엑스레이 먼저 찍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환자분, 어깨가 빠진 거 같으니까 엑스레이 좀 찍겠습니다."
-
"환자 의식은요?"
"없습니다. 끓는 물이 얼굴로 쏟아졌대요. 어머니가 급한 대로 찬물을 끼얹으신 거 같아요."
"인투베이션(intubation:기도 삽관) 먼저 할게요. 최쌤은 양라인 잡고 웜셀라인(warm saline:따뜻한 생리식염수) 하이드레이션(hydration:수액투여) 2리터 해주시구요."
"네."
"아.... 기도가 많이 부었는데.... 어.... 어, 튜브 좀 주세요."
"여기요."
"후.... 일단 안티(antibiotics:항생제)부터 주세요. 대휘야, 드레싱 좀 부탁할게."
"네, 쌤."
-
"선생님!! 자살기도 환자 바로 도착한답니다!!"
"뭐? 약? 어떤 거?"
"손목 그었답니다."
"아, 맙소사... GS 콜 하세요!!!"
"네!!!"
"응급환자입니다!!!"
"환자 의식 있어요?"
"없습니다. 조각용 칼로 그었습니다. BP(blood pressure:혈압) 가 계속 떨어지는 상탭니다."
"유쌤. 안티 아이브이(intravenous:정맥주사)로 하이드레이션 해주고 마취과 연락해서 수술 방 잡아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운드(wound:상처)가 깊은데... 일단 BP가 계속 떨어지니까 출혈부터 막죠. 이비(EB:붕대) 주세요."
"인투베이션 해야될 거 같지."
"어. BP 너무 떨어진다."
"GS 선생님 아직 안 오셨어요?"
"여기 왔다."
"아, 선생님. 조각용 칼로 그었답니다. 운드가 깊어요."
"수술 방은."
"1번방입니다."
"환자 올려. 나 올라간다고 콜 해주고."
"네."
"하... 어떻게 된 게 이렇게까지 응급이 몰려서 난리냐."
"선생님. 화상 환자 드레싱 다 됐습니다."
"의식은 돌아왔어?"
"아직이요.."
"아마 단순 신콥(syncope:실신)일 확률이 크니까 우선 의식 돌아올 때까지 케어 좀 하고."
"넵."
"난 디스로케이션 환자 마저 봐야 되니까 김여주 넌 스테이션 가서 좀 쉬어라. 그러다가 저번처럼 또 쓰러지면 진짜 가만 안 둬."
"네...."
"그리고."
"응?"
"아까 그 새끼 진짜 한 대 치려다 응급이라 참았다."
"신경 쓰지 마. 나도 신경 안 쓸 거야."
"안쓰긴 개뿔. 뻥을 칠라면 좀 그럴듯하게 치던가."
".......그냥 그런가보다 좀 해."
"아무튼 OS 펠로우로 온 거면 최소 하루에 2번이상은 봐야한다는 소린데. 너 당분간 OS 환자 오면 다 나한테 넘겨."
"아, 오바야. 사적으로 안 만나면 돼."
"그러다 또 술 처먹고 죽이네, 살리네 하면서 나 힘들게 하지 말고. 말 들어."
"......언제적 얘기를 하고있어...."
"박우진이 나쁜 놈이고 쓰레기인거야. 네가 울고불고할 일 아니라고."
"...알았어. 환자분 오셨다, 얼른가서 봐."
"너도 얼른 스테이션가서 눈 좀 붙여. 벌써 며칠째 뜬 눈이냐."
"알았다구-"
겨우 지훈을 환자에게 보내고 스테이션으로 향하던 발이 멈칫한 건 응급실 입구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박우진 때문이었다.
-
여러분 약간의 수정이 들어갔어요!
투표를 보니 아무래도 내일까지 종현이가 뒤집진 못할듯하여 미리 GG치고
우진이로 서브를 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정해져있던 스토리와 에피소드들, 여주의 감정의 흐름 등등 이것저것 손대야 할 부분이 많더라구요ㅠㅠ
그래서 일단 우진이와 처음 만난 장면부터 손을 좀 봤답니다!
둘이 어떤 사이였을 지 대충 감이 오시죠~?
이제 다음 주부터 다시 열일해볼게요'-'
아참참, 원래는 응급실에서 콜을하면 1년차나 2년차가 내려오고 그 다음에 담당과에서 펠로우, 스탭 이런순으로 인계되는걸로 알고있어요!
이건 그저 픽션이라서 막 종현이가 직접 내려오고 여주가 다니엘한테 직접 연락하고 그럽니다....ㅋㅋㅋㅋㅋ 최소 현실파괴자
혹시 의대생이시거나 의사이신분들껜 심심한 사과의 말씀 함께 전합니다ㅠ_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남은 내일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하트)
굳밤'-'
(병명, 의학용어, 진찰내용 등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닥터스' 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