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마주보며 따스하게 웃고 있는 두 남녀가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는 가득찬 행복이 보였다. 앞에 서 있던 작은 아이가 두 남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엄마, 아빠는 왜 서로 쳐다보고 웃어?”
“음... 왜냐면, 엄마 아빠는...”
아이를 안아들며 아이에 귓가에 속삭여주고서는 환한 웃음을 보였다.
*
“다녀왔습니다.”
온통 어질러진 집안이 보였다. 한바탕 폭풍이라도 휩쓸고 간 것처럼. 죄다 헤집어진 옷가지, 부서져 있는 전등. 장식품... 엄마, 엄마! 어디있어. 온 집안을 소리치며 엄마를 찾아다녔다. 주방에도, 안방에도, 서재에도. 어디있는거야. 하...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쓸어 넘기다가 문득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 문을 열었다.
“엄마...”
“...어? 우리 딸~ 일찍 왔네.”
부서진 물건에 손을 베인 건지 피가 흐르는 손을 치료조차 하지 않은 채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엄마가 보였다. 눈물자국도. 주저앉아 있는 엄마를 일으켜 부축해서 소파에 앉혔다.
상처가 난 손을 치료하고, 어질러진 집안을 대강 정리한 뒤 엄마의 옆에 앉았다.
“오늘은 또 왜, 왜 이런 건데...”
“너희 아빠를 너무, 너무, ... 해서”
“아빠가 뭐 했어? 아니잖아. 엄마 대체 왜 이래.”
언젠가부터 아빠를 의심하고, 집착하고, 엄마는. 망가져버렸다.
“...여주야. 이건 다 엄마가 아빠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이 말이 나오기 전에 방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궜다. 다리에 힘이 풀려 문 앞에 주저앉았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느껴졌다. 사랑... 엄마는 항상 사랑을 말했다.
‘엄마, 아빠는 너무 사랑해서 그런거야.’
‘너희 아빠를 너무, 너무, 사랑해서’
‘이건 다 엄마가 아빠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사랑은 엄마를 집어삼켰다. 커다란 괴물에게 잡아먹힌 엄마는 미쳐버렸다. 누가 말했던가. 사랑은 미친 짓 이라는 말은 미쳤다는 말을 두 번한 거라고. 사랑은 그 자체로도 미친 짓이라는. 정말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빠를 지나치게 사랑한 엄마는 끝내 사랑에 잡아먹혀서 미쳐버렸으니까. 난 미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집어삼키고,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끝내 미치게 하는 게 사랑이라면, 난 사랑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영원히...
이별을 도와드립니다
W.체리빛
chapter 3.
“그 남자는 너랑 무슨 관계인걸까?”
“글쎄... 무슨 사이였을까.”
“역시...심장이 뛰었다면”
계속해서 궁금해하며 진지하게 추측을 하던 정호석. 옆에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박지민이 입을 였었다.
“한여주의...분노유발자?”/ “원수!”
전자는 박지민. 후자는 정호석. 니네가 그럼 그렇지 모처럼 좀 진지해지나 했네. 너희들이 내 분노 유발자고 원수다. 이놈들아! 별로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는 말이라 무시하려는데. 자기들끼리 하이파이브하고 추측이 정확한 것 같다며 신나하는 게 보였다. 신났네. 신났어. 역시 한여주의 심장을 뛰게 한 거라면, 화가 나서 부글부글. 그런 감정 아니었다니까... 너네 때문에 내 속에 부글부글 끓는다. 끓어. 녀석들의 장난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 정말 속이 타서 탁자에 놓인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조용히 우리의 말을 듣고 있던 전정국이 말했다. 장난치시는 거죠? 다들. 그거 누가 들어도 사랑하는 사이. 뭐, 그렇게 조언하지 않나? 여기는 역시 특이하네. 전정국은 어깨를 으쓱-해보이더니. 제 앞에 놓인 당근 주스를 마셨다.
“여기서 전정국씨가 가장 어린데요.”
“나이가 많다고 잘 아는 건 아니잖아요.”
“...”
“예를 들어 그 쪽처럼.”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근데, 그거 알아요?”
“...”
“저는 사랑을 안 믿어서. 아마 사랑하는 사람. 뭐 그런 건 아니었을 거예요.”
놀란 듯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전정국에. 역시 아직 어린 건 어린 거네요. 전정국씨. 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경험이 적어서. 내 사정을 잘 모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죠. 어느새 조용해진 정호석과 박지민이 보였다. 이런 얘기만 나오면 괜히 숙연해지지 괜히. 침울해지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미소지으며, 전정국에게 고딩은 뭘 모를 수도 있으니 괜찮다고 말을 건네려했다.
“고딩은 뭘 모르ㄹ...”
“어떻게 확신해요? 기억도 없다면서.”
“...”
“머리보다 마음이 더 잘 기억하고 있을 수 있잖아요.”
“...”
“저는 솔직히 그렇게 확신하느ㄴ...”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내 말허리를 끊어내는 전정국에 놀라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그는 천천히 제가 하고픈 얘기를 쏟아냈다. 어쩐지 울컥-.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정호석이 아, 아, 정국아. 너무 그렇게 몰아붙이고 그러면 안 돼. 하하 라며 그의 말을 끊어내고는. 박지민에게 눈짓을 하자.
“아! 맞아. 정국아 너 그 좋아하시는 분 만나야 되지 않아?”
“아직 시간 안 돼ㅅ...”
“뭐? 빨리 가야한다고? 그럼 어서 가자.”
시간을 확인하더니 아니라고 부정하는 전정국을 데리고, 사실은 끌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름까지 부르고, 언제 저렇게 친해졌데. 평소였다면 웃음이 나왔을 상황에. 이상하게 자꾸 눈이 뜨거워지고 다른 게 흘렀다. 어쩐지 비참했다. 내가. 이 상황이.
**
고개만 까딱. 인사를 건네는 전정국이 보였다. 뭐야, 쟤 왜 또 왔어.
“저기요. 전정국씨. 의뢰인인건 알겠는데. 여긴 저희 일터예요. 일터.”
“그래서요?”
그래서요는 뭐가 그래서요야...하... 고딩아. 이 고딩아.
“그러니까. 왜 자.꾸. 오시냐구요”
이를 악 물고 어설프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어, 지금 표정 웃기다. 그러자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던 박지민이 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그러게. 라며 웃었다. 몸속에 혈관들이 외치고 있었다. 혈압이 상승됩니다. 어어. 위험수치. 위험수치. 당겨오는 뒷목을 잡고 자리에 털썩 앉자. 박지민과 장난을 치며 놀던 전정국이 투덜거렸다.
“아, 근데 언제 해결되는 거예요. 진짜 귀찮다고요 걔”
“정국아, 너 계속 그렇게 여주한테 까불다가 나중에 맞을지도 몰라.”
그래, 말 한 번 잘했네. 박지민 너부터 맞을까? 찡찡대는 전정국 옆에서 박지민이 다 들리도록 전정국에게 소곤거렸다. 다 들립니다. 다 들려요. 근데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거야. 저번부터 이름도 부르고. 의구심이 들어서. 근데 언제부터 그렇게 친해진거야. 둘이? 내 말에 박지민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 정국이가 좋아하는 사람있다고 했잖아- 그 얘기하다가. 친해졌지. 그리고 애가 생각보다 재밌어. 너도 그냥 얘랑 말 놔. 그러더니 전정국 보고 괜찮지? 라더니 대답도 안 듣고서는 괜찮데. 전정국 대답 안 했어. 지민아. 전정국은 그저 하- 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표시를 했다.
“그럼. 말 놓는다?”
좋은 기회인데 뭐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으니까. 한 번에 놓을 줄은 몰랐는지. 허- 하고 기가 차다는 듯 웃는 전정국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해주었다. 너가 허락하셨는데요. 말 놓는거. 재밌겠네 앞으로.
“말 놨으니까. 너도 말 놔. 그 대신 호칭은 꼬박꼬박 높여부르고?”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저번에 내게 제 말을 쏟아내던 전정국도 어쩐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딩아, 그러니까 까불지 말아야지.
**
“야, 한여주.”
“왜?”
“일 들어왔어.”
“지금 하고 있잖아 일. 그 전정국꺼”
“아니, A일 들어왔다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긴 그 일이라도 해야지. 고딩 일에 돈 받을 수도 없고. 솔직히 고딩이라고 설렁설렁 일한 감도 있어서. 전정국 일은 돈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의뢰하러 왔다가 우리 사무실 찐득이가 하나 늘어난 느낌이랄까.
우습게도 우리는 이별을 도와주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커플들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는 했다. 모순적인 사업이지. 물론 나는 그 일을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위해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다. 내게는 사랑에 지나치게 목메는 사람들은 전부 어리석게 보일 뿐이었다. 실은 전정국도 그랬다. 그는 이별을 의뢰하러 온 사람이었지만. 그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 때문이었으니까. 사랑에 빠지면 다들 어리석어졌다. 예전에 정호석, 박지민만 보더라도... 뭐 지난 일이니까.
“그래서 언제 오신데? 손님.”
“아, 한 30분 후에 오신데. 여자 분이셔.”
의뢰인을 맞이하기 전에 사무실을 간단히 정리하고, 다과를 준비하고 기다리자. 귀엽고 밝은 인상을 한 여자 분이 문을 빼꼼히 열고는. 여기가 ‘PLAN A’ 맞나요? 라고 물어왔다. 정호석이 맞다며. 여자 분을 자리로 안내했다. 여자는 신기한 듯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혹시 사장님...? 와- 이런 젊은 분이 멋진 사업을 하고 계시네요. 여자는 신이 난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연신 웃으며 칭찬을 건넸다. 형식적인 칭찬 외에 진심이 느껴지는 칭찬이 오랜만인지라 약간은 당황해버렸다. 아... 감사합니다.
“저는 크게는 말고 작게. 남자친구랑 둘이서 행복한 하루 보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해나갔다. 여자는 연인과의 기념일을 위해 파티를 기획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연애 얘기도 의도하지 않게 듣게 되었는데.
남자친구와 본인은 본래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아서.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3주년이 되니까. 뭔가 챙겨주고 싶어서. 몰래 기획하는 거라고 했다. 남자친구가 기뻐했으면 좋겠다고. 원래 성격이 좀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좋아해도 티 안 내겠지만 자기는 어느새 티를 안 내도 남자친구의 기분이 어떤지. 좋아하고 있는지 그런 건 식은 죽 먹기라며 웃었다. 자신의 말을 다 마친 여자는 잘 부탁한다며 밝게 웃고는 돌아갔다.
여자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여자의 설명에 따르면 남자가 제법 무뚝뚝한 편에 속하는 것 같았는데. 신기한 커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런 얘기 들으면 연애하고 싶지 않냐? 호비는 외로워요!”
갑자기 제 애칭을 부르며 애교를 부리는 녀석을 힐끗 쳐다보며 눈으로 욕하자. 다시금 바른 자세로 앉더니. 사과를 해왔다. 또 그러기만 해라... 그러고 나서도 정호석은 계속해서 그 커플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자기도 커플이 되고 싶다면서. 멍청아- 그렇게 데이고도 또 연애가 하고 싶냐. 사랑에 빠진 여자는 행복해보였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얼마나 갈까? 과연 얼마나 오래 사랑할까. 문득 예전에 연인 중 한 사람이 기념파티를 준비하러 의뢰했다가 한 3개월 뒤 이별 의뢰를 해왔던 것이 기억났다. 사랑이란 그런 거였다. 유통기한이 있는. 그리고 끝이던, 중간이던 사람을 어리석게, 제정신이 아니게 만드는. 나는 병자도, 어리석은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야 한여주. 너는 진짜 안 외롭냐 맨날?”
“어. 나는 아마 영원히 안 외로울 거 같아.”
정호석이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너 언젠가는 그 말 취소하거나 후회한다 내가 장담하는데. 웃기시네. 뭐래 정호석. 나도 지지않고 답했다. 야, 아마 나 후회하거나 취소하는 일 평-생 없을거다.
자신이 있었다. 사랑에 빠지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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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Q. 의뢰를 해온 여자분의 남자친구는 누구일까요?
오늘도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어요.
글이 막 쓰고 싶어가지고, 근데 글은 좀... 별루에요.
무겁게 가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가볍게 써보려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것도 같고.
머리 속에서는 이미 완결도 났는데 ㅋㅋㅋ 현실은 이제 3화네요.
원래 그닥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 어쩐지 쓰다보니 점점 회차가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생깁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은 항상 감사하고 고맙고 제가 말했나요 사랑한다고 !!!! ♥
짧게 나마 남겨주시는 댓글이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글 읽어주는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다음화에서 봐요!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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