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그러니까 너를 처음 만난 날 너는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나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너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었다.
"딸기 바나나 주스 한 잔이요."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되게 생긴거랑 안어울리는 입맛이라고.
반존대 연하남이 설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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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갈색머리 아가씨
"선배."
"왜."
"알바 언제 끝나시냐?"
"..."
어디서 이상한 말투를 배워온걸까.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너는 그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턱을 괸 채로 한숨을 푹푹 내쉬며 빨대를 입에 물었다.
딸기바나나주스. 네가 카페에 올 때마다 주문하는 음료였다.
생긴 거는 아메리카노만 마시게 생겼는데 말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린넨으로 포크를 닦아냈다.
점장님 없이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어 누가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성격상 너저분한 것은 별로였다.
내 주변환경에서도 그렇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
"야가 아니고 민현이."
"..."
"황민현."
"황민현."
"네?"
"뒤에 손님 계셔."
"아..."
그제야 너는 뒤에 있는 손님을 향해 작게 인사를 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키는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 웃을 때는 말갛게 개죽이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원래 천성이 잘 웃는 건가. 어떻게 저렇게 매일 개죽이처럼 웃을 수가 있지. 그리고 웃지 않을 때랑 어떻게 저렇게 다를 수가 있지.
"...한 잔."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아... 영수증 필요하세요?"
"영수증 보다는..."
"..?"
"우리 애기 번호가 필요한데."
이런 손님은 정말인지 질색이었다.
초면에 대놓고 반말에다가 다짜고짜 번호부터 달라 들이미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언제 봤다고 우리 애기라고 부르는 걸까. 딱 봐도 나보다 어리게 생긴 놈이 지랄은 지랄이야.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 담겨있는 저 자만심이 꼴보기 싫었다.
...
이 정도로 나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죄송합니다."
"왜. 남친 있어?"
"아니요."
"근데 번호 하나 못줘?"
"남친이 없기는 왜 없어요?"
"..."
잊고 있었다.
아직 가게에 네가 있다는 것을.
"남친 후보가 여기 떡하니 있는데?"
"뭐... 에요?"
늘 이런식이었다.
나에게 무례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한 사람을 보면 바로 수그러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보다 키가 크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인 네가 말을 걸자 남자는 바로 수그러들었다.
방금 전 내게 반말을 했던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는지 존댓말까지 덧붙이며.
한숨을 내쉬며 에스프레소 샷을 뽑았다.
우선 주문한 거 빨리 내놓기는 해야겠지. 뒤에서 작게 실랑이가 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나랑 완전히 관련이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상관할 일도 아니었으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은 빨리 음료를 만들어서 저 남자를 내보내는 일이었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어?"
"갔어요."
"..."
"선배."
"왜."
"저런 새끼들 얼마나 있어요?"
"몰라."
"어떻게 그걸 모르실 수가 있어?"
"..."
"안되겠다. 알바 끝나고 나랑 영화보러 가요. 뭐 볼지는 네가 정해."
"..."
남자가 사라졌다는 건 매우 반가운 일이긴 한데...
얘를 어찌하면 좋을까... 한숨을 내쉬며 아메리카노 빨대를 입에 물었다.
씁쓸하면서도 차가운 커피가 입 안에 맴돌았다.
그래도 뭐...
"영화 싫으면 밥 먹을래요? 선배 떡볶이 좋아한다 했었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커피가 마냥 쓰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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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반존대는 글로 배운 연하남 황민현의 들이대는 스토리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