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주머니속에 상자를 넣고 꼭 쥐고 있는 모양새가 아니꼬왔지만 지훈은 내색하지않고 허공에 입김만 훅훅 불어댔다. 둥실 떠올랐다가 스르르 사라지는 하얀연기를 보고있자니 오랜만에 담배가 땡기는 순간이였다.
" 담배 좀 필게. "
" ... ... ... "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는 지호. 바지 뒷주머니를 뒤적이던 지훈이 왠지 옆자리가 횡하니 빈듯한 느낌에 옆으로 고갤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없다, 우지호가. 지훈은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몸을 뒤로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니
바닷물처럼 밀려드는 인파속에서 분홍색 쇼핑백을 덜렁거리며 사람들안에 낑겨있는 지호를 발견했다. 자신을 찾고 있는 건지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데 화가 나기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지훈이 삐죽이 나와있는 지호의 손목을 잡아챘다. 아아아..아파-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것 인지 지호가 작게 신음을 흘리며 지훈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올렸다.
차가운 살갗의 느낌에 화들짝 놀라 급히 손을 땠고, 따라서 놀란 지호가 눈을 동그랗게 말아올리고 지훈과 눈을 마주했다. 입술만 달싹달싹. 뭐라고 하는데 잘 안들려서 가까이 다가갔는데 하는소리가.
" 미안해..지훈아. "
감기가 살짝 들었는지 코를 훌쩍이면서 띄엄띄엄 말하는게 어쩜 그렇게 사랑스러울수가. 이런 우지호를 최진리한테 넘겨주라니, 그건 존나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날아갈것같은 기분을 못참고 지호를 꼭 안아버린 지훈이었다. 과연 이게 꿈일까, 하는 생각에 볼을 꼬집는 순간. 물감을 섞어 놓은 것처럼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갔다.
마이러버 지호는 사라진지 오래였고 지훈이 감은 눈을 떴을땐 새벽의 중간, 하늘이 약간 어스름해 졌을 때 였다. 오늘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꾼 꿈이었다. 마지막은 좀 달랐지만. 약하게 눈발이날리는 창밖에 주황색 가로등을 멍하니 쳐다보던 지훈이 아랫도리가 뻐근한 느낌에 이불을 걷었다.
당당하게도 불퉁히 솓아있는 아들래미에 지훈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최악이야,이건.
" 알몸도 아니었는데 왜? "
진심으로 울고 싶었지만 이로서 지호를 가져야하는 이유가 확실해졌다.
*
햇살은 반짝 반짝 빛이 나고, 내 마음은 풍요롭기 그지 없구나. 시끌 벅적한 점심시간, 경은 자신의 옆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꿈나라에서 헤매이고 있는 권이를 한번 보고 씩 웃었다.
오랜만에 용돈도 받았겠다, 분명 저 새끼앞에서 이 초록색지폐를 꺼냈으면 또 뭘사달라고 졸랐겠지. 들뜬 마음으로 신나게 계단을 세칸씩 내려가고 있던 경이의 패딩모자를 잡아챈 누군가.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혀서 사망에 이를 줄만 알았다. 시발 어떤 놈이야.
경이 콧잔등을 씰룩였다. 안그래도 커다란눈을 부릅뜨고서 뒤를 돌아보니 짗은 눈썹을 움찔거리며 무섭게 자신을 내려보는 지훈이 서있었다. 아..악마다. 지훈은 겁에 질려 잔뜩 움츠려든 경이의 어깨를 턱하고 잡았다.
가만히 있던 턱이 절로 벌어졌고, 사시나무 떨듯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 미..미안한데, 오늘은 초코우유가 없어.
" 여기 받아, 저번일은 아주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
피크닉이네. 초코우유보다 삼백원 더 싼거. 아니 이게 아니고. 사과맛 음료와 지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경이 위험한 야생동물에게 다가가는것 마냥 아주 천천히 피크닉에게 손을 뻗었다. 방심한 순간 피크닉을 뒤로 휙 숨겨버리는 지훈의 뜬금없는 행동에 경은 미간을 좁혔다.
뭐여, 지금 놀리는거?
" 너, 우지호 친구 맞지? "
" 응. "
" 그럼 최진리도 잘 알겠네. "
" 그, 그렇다고 할수 있겠지."
나한테 정보좀줘, 그럼 내가 너한테 이거 줄게.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조련하는 사육사처럼. 경이의 달팽이관에서 낮게 울려퍼지는 지훈의 목소리는 최면 같았다.
시선은 여전히 지훈의 뒤에 꼭꼭 숨겨져있는 피크닉에게 가있는 경이 홀린듯 응응만 연달아 대답했다. 피크닉,피크닉,피크닉님.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못하리.
*
' 최진리 여우로 유명하잖아. 거의 좀 생겼다 싶으면 가서 꼬리치는거, 그거에 지호가 넘어간거야. 처음엔 말렸지, 사귀지말라고. 근데 이미 푹 빠진걸 어떻게해. '
" 어제 내가 카톡했는데, 봤어? "
' 그래도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소개시켜달라고 했는데 그때마다 진리가 피곤하다나 뭐라나. 그 병신같은..아니, 여튼 걔가 최진리한테 쏟아부은 돈이 30은 넘을 꺼야, 아마도. "
" 니가 답이 없길래 관심 없는 줄 알았지. "
'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좋다그러는걸 내가 뭘 어쩌겠어. 정신차릴때 까지 냅둬야지. "
" 지훈아, 지훈아? 듣고 있어? "
어,어? 어. 듣고 있어. 지호와의 하굣길을 포기하고 진리를 카페로 불러들인 지훈이었다. 그녀를 앞에 두고 다시한번 한참동안 경이 해준말들을 곱씹어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되는데 입이 안떨어져서 예의상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주니 누가봐도 반할것 같은 미소를 한껏머금고 있는 진리였다.
발랄하기 그지없는 말투에 지훈의 눈앞에서 보이냐며 귀엽게 손을 휙휙 저어 보이는 행동까지. 다른 남자들이었으면 한방에 뻑 갈것같은 완벽한 작업의 요소중 하나였겠지만, 지금 지훈에게는 그런게 먹힐리가 없었다. 쪽 찢어진 눈매로 휘어지게 웃는건 누군갈 연상시키게 했지만 지호는 양손을 턱에괴고 예쁜척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인위적이게 쥐어짜려 애쓰는 행동에 지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 있잖아 지훈아, 너 정말 멋있는것같아. 눈썹 찡그리는 거랑. 막, 그런거."
" 고맙다, 근데 "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지훈의 눈빛에선 귀찮음이 묻어나왔다. 연신 종알거리는 입술, 진리가 양손으로 쥐고있는 머그컵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응,그래? 어. 성의 없는 대답만 툭툭 내던졌다.
" 사실 나도 너 좀 맘에 들었어. 얼굴도 예쁘고, 착한것도 같고. "
" ... ... ... "
" 설마,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있어? "
" 아니? 있을리가 없잖아. "
내가 관심 있는 남자는 너밖에 없어,지훈아.
지훈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가는 진리를 힐끔 보며 픽 웃었다. 아이- 거짓말하면 못쓰지. 얼음과 함께 잔잔히 물결치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는 뻑뻑하게 감긴 눈두덩이 위를 중지와 검지로 꾹꾹 눌렀다.
" 나말고 다른 누구랑 만나는거 존나 싫거든, 니 물주하고 헤어져. "
" 물주? "
" 우지호 말하는거야. 지금 내눈앞에서 카톡 보내. 헤어지자고. "
아..우지호- 작게 벌린 진리의 입술사이로 탄식이 터져나왔다. 단지 걸렸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식의 표정일뿐, 여유있는 페이스는 절대 잃지 않았다.
알겠어, 어차피 이제 필요 없었거든. 라며 핸드백에서 폰을 꺼내는 진리의 덤덤한 반응에 지훈의 이가 악물렸다.
그동안 정말 최진리를 좋아하고 설렜을 지호를 생각하면 당장 여기서 남녀구분 안하고 개패듯이 때리고싶었다. 그렇지만 계획이 어긋날까 쇼파 시트를 꽉 움켜쥐며 끊어질듯 말듯 위태롭게 일렁이는 이성을 간간히 붙잡았다.
진리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릴동안 지훈은 끓는 속을 잠재우려 차가운 커피만 연신 들이켰다. 마지막 한모금이 남았을때쯤 진리가 핸드폰 액정을 지훈의 얼굴에 들이댔다.
됬지? 걔랑은 끝났어,이제. 후련하다는듯 싱글싱글 웃는 진리의 낯에 지훈은 보이지 않게 인상을 구겼다. 휙 핸드폰을 낚아채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글자 하나하나 읽어가기 시작했다.
- 헤어지자
- .. 왜?
- 그냥 질렸어 이제 나한테 연락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라는 두글자에 심장이 덜컥했다. 지호의 음성이 머릿속에 웅웅거리며 맴돌았고, 왠지모를 죄책감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진리의 카톡명에 지호는 스타덤고우지호. 남자친구가 맞았는지 의문이 들정도로 딱딱하게 저장되있었고, 마지막까지도 진리의 어투는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위에 나눴던 카톡들을 넘겨보니 소수의 몇개 빼고는 다 핸드폰고리, 목걸이, 가방 같은것들을 사달라는 부탁의 말들 뿐이었다.
나머지는 더이상 봐봤자 같은 말들 뿐이란걸 잘알고 있었다. 어오, 씨발. 지훈은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핸드폰을 탁자위에 올려놨다. 힘조절을 잘못해서 쿵소리가 났긴 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않았다.
이렇게 한게 과연 잘한 짓일까, 분명히 지호가 상처 받았겠지. 죽고싶다 진짜.
지훈아! 뒷통수를 헝클이며 작게 욕을 읖조리던 지훈이 상큼한 진리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럼 우리 오늘부터 1일이지?"
"... 어, 아마도. "
*
" 내가 얼마나 흑.. 좋아했는데 흐으.. "
나쁜 최진리. 너한테 내가..내가...흐엉엉.. 한쪽손엔 핸드폰을 꼭쥐고, 고개는 폭신한 배게 속에 파뭍어 들리지도 않을 하소연을 밷고있는 지호였다. 멈출만도 한데 이게 벌써 15분째 대성통곡이었다.
바람 핀적은 셀수도 없이 많았던 진리 였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헤어지자 통보한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러웠고, 서러웠고 또 서러웠다. 놀고있는 반대손을 말아쥐고 침대를 몇번 내리치다가드러누웠던 몸을 바로하고 양반다리로 고쳐앉았다.
눈물은 쉴세 없이 줄줄 흘렀지만 아까보다 소리는 좀 누그러들었다. 양손으로 눈을 박박 비비던 지호는 눈물이 어느정도 멈춰지자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몇번했다.
멈췄어, 괜찮아 이제.. 아냐 사실은 ..사실은. 코를 훌쩍이며 끅끅거리는게 또 안에 가득 담긴 눈물이 삐져나올 것만같았다. 아플정도로 아랫입술을 짓이기던 지호가 띠리링 울리는 카톡음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켰다. 짜증나는데 또 씨..뭐야.
오이놈
- 야 지금 장난아님
- 카스 들어가봐
유권놈
- 대박사건! 야 너 최진리랑 헤어짐? ㅋㅋㅋ?
헤어진지 20분도채 되지 않았는데, 게다가 자신은 절대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두친구의 정신없는 카톡 세례에 잠시 멍해진 지호가 경이 시킨대로 카카오스토리에 들어갔다.
새로운 소식이 뜨고 맨위에 올려진 진리의 카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 즐거웠쪙>< 지훈아 우리 앞으로 이뿌게 사귀자♥ 라며 오글거리는 메세지와 함께 둘의 커플사진이 떡하니 프로필사진으로 되어있었다.
" 말도 안되. "
지금 지훈에게서 느끼는 배신감은 진리가 헤어지자고 한 충격보다 몇십배는 더 컸다. 뒤통수도 아닌 앞통수에 핵폭탄을 투척 받은 기분. 무슨 말이라도 표현이 되지않았다. 간신히 멈췄던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졌다.
늦게 찾아와서 죄송해요ㅜ ㅜ |
사정이 있어서 늦게 찾아뵙네요 ㅜ 기다려주신 여러분들 죄송해요ㅜㅠ |
완결나면 쓸 픽 예고 |
안녕 병신아 완결 된다음 차기작 입니다 ㅎ 남녀가 뜨겁게 사랑했을 적에 낳을 수 있는 결과물. 그 결과물이 세상에 머리를 들이밀고 빛을 보았을때,사회에서 떳떳하게 인정을 받을수 있다면. 그것은 마땅히 축하 받을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구조가 시계태엽이 맞물리듯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일은 그다지 쉬운일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거기서 완벽히 제외된 불쌍한 아이였다. 재벌가의 첩으로 들어온 어머니. 두여자를 동시에 사랑한 아버지. 그렇기에 마음속을 가득히 메운 외로움과 어두움은 태어날때부터 타고난 것 일지도 몰랐다. * 어서오세요, ??? 베이커리(빵집)에 제목이구요 ㅋㅋㅋㅋ ???은 독자여러분들이 정해주시면 제가 그중에 골라서 제목으로 넣겠습니다. 차기작 표지 만들어주실 금손분들 안계신가요? 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