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어서 재미있는 거라고.
나는 오늘 또 생각한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어서 이상하다고.
그리고 분명 이건 내 맘인데, 언제부턴가 자꾸 내 맘 같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남사친과 이상형의 경계_05
“어, 이영채 너 뭐야. 다쳤어? 이마가 빨개.”
그렇게 종현 오빠와 헤어져서 교실로 향했는데, 황민현이 우리 반 뒷문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뭐야, 우리 반 왜 왔어?”
“야, 너 뭐냐고. 다쳤어? 왜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해.”
“얘 체육시간에 이마에 축구공 맞음. 아니 얘가 굳이 뒤를 돌아서 축구공을 맞이했다니까.”
뒷문 쪽에서 다른 아이들과 얘기 하고 있던 정수정이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는 친구가 공에 맞았는데 아주 즐거워 보인...”
갑자기 내 얼굴이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 돌려졌다. 황민현이었다.
황민현은 내 두 볼을 잡은 채로 아예 나를 제 쪽으로 돌려 바쁘게 눈으로 내 상태를 살폈다.
“이마만 빨간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야... 왜 이렇게 오바야. 이마에 맞아서 넘어지느라 팔 좀 까졌어.”
“팔? 어디, 어디. 봐봐.”
아니 얘는 왜 이렇게 오바야. 황민현이 너무 보채서 다친 팔꿈치를 보여줬다. 별로 안 아픈데, 왜 이렇게 주변인들이 난리람.
황민현도 그렇고 김종현도 그렇고.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주는데 이게 그렇게 난리칠만한 일인가?
그 때 한자 선생님이 앞문으로 들어오셔서 나는 황민현이 잡고 있던 팔을 뿌리쳤다.
“야, 나 쌤 오셨어. 이따 집 갈 때 봐.”
“아니 이영채. 야, 그렇게 들어 가냐. 너는...”
뒷말은 분명 조심 좀 했어야 된다는 잔소리일 게 뻔해서 녀석을 밖으로 밀고 황급히 문을 닫았다.
한자 시간은 늘 평화롭다. 선생님의 말씀도, 아이들의 반응도 너무 평화롭다. 조용히 판서하시는 선생님은 분필 소리에 맞춰 잠을 청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피곤하니 자나보지, 하며 허허 웃으시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한자 시간이 좋았다. 잘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평소답지 않게 옆에서 깨어있던 수정이가 조용히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넌 여사친이 아님.”
“또 뭔 소리야 그게.”
“아니 이상하단 말이지-. 내가 저번 네 이상형 얘기 듣고 나서 너네 둘을 열심히 관찰했거든? 근데 너는 여사친이 아니야.”
이건 또 뭔 뚱딴지 같은 소리람.
“그래서요 수정님,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쉽게 말해봐 좀.”
“쟤는 너를 친구로 안 보는 거 같다니까? 방금도 그래. 어? 친구가 다친 걸 살피는 눈이냐 그게?”
“걔 눈이 뭐. 어때서. 그냥 걔가 원래 성격이 그래. 남을 잘 챙긴다니까? 그리고 나랑은 몇 년 친구냐, 그래서 날 좀 많이 챙기는 거뿐이고.”
“그렇게 따지면 옹성우랑 나는 뭐가 되냐. 너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걔랑 나랑도 6년 친구임. 근데 옹성우가 나 다쳤다고 해서 그렇게 막 볼 잡고, 어? 나 봐, 이러면서 나 살피겠냐고. 황민현은 아무래도 너 친구 아니라니까.”
“하, 수정아. 내가 말했지. 걔는 진짜 아니라고.”
“그건, 네가 쟤가 니 이상형이 아니라는 거고. 황민현은 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니까? 야, 나 촉 좋은 거 알지. 언니 말 믿으라니까? 내 말 틀린 거 봤냐?”
“황민현 맘은 내 맘이랑 같다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쟤 이상형이 뭔지 아냐고. 절대 나는 아님.”
뭔데, 뭔데. 야 말해봐. 재촉하는 수정이에게 존나 예쁜 여자. 라고 말해줬더니, “뭐?!” 하고 크게 소리를 내버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눈들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연신 고개를 수그렸다. 그렇게 쪽팔림을 당하고 나서 우리는 조금 작은 소리로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다.
“존나 예쁜 여자아? 황민현 뭐냐. 그렇게 안 봤는데 외모지상주의에 찌들어 있었네. 걔한테 근데 저번에 고백한 애도 예쁘지 않았냐?”
“그니까. 걔가 누구라했지. 무튼 막 혜리, 고아라처럼 연예인급으로 예쁜 여자 좋아하나봐. 낸들 그런 줄 알았겠냐. 그니까 걔는 나한테 관심 없다니까. 이제 끝. 말 걸지 마. 나 수업 들을 거임.”
“헐... 황민현 그렇게 안 봤는데...”
워낙 매너 좋고 생글거리는 애라 정수정이 충격 좀 먹었나보다. 그치, 나도 그랬으니까.
뭔가 이상형 물어보면, 음 성격 좋은 여자? 라고 말할 거 같았는데. 역시 아직 철이 덜 든 그냥 애새끼였나 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원래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터진다더니 진짜였나 보다. 계속 이상한 일만 연달아서 일어나는 기분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상한 건 나였다. 방금도 황민현이 내 볼을 막 꽉 잡아서 막 자기 쪽으로 막막. 하, 그렇게 돌리는데 진짜 티는 안 냈지만 깜짝 놀랐다. 설렜다는 건 진짜 아니고,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 걔가 내 볼을 그렇게 잡아서 돌렸다는 거에 너무 놀라서. 찌릿, 하고 뭔가 지나간 것 같았다.
아니 근데 사람 볼을 막 허락도 없이 막 그렇게 만져도 되는건가?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내 볼인데, 어? 왜 지가 막 만지고 그래. 내 얼굴인데 왜 지가 막 돌리고 그러냐고 너는. 괜히 생각하니까 화가 나네. 그래서 볼이 조금 뜨거워진 것 같았다.
아 오늘 더위 먹은건가? 아까부터 자꾸 열이 오르네, 기분 나쁘게.
아니, 사실 나쁘기보다는 음 좀 이상해. 사실 요즘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이거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당황스러워. 나도, 그리고 너도 황민현. 안 그래도 복잡한데 아까 갑자기 나타난 그 오빠도.
4.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오늘도 역시 황민현은 우리 반 종례를 기다렸다. 창문에 얼굴을 덩그러니 얼굴을 내비치고서는 아예 나랑 정수정을 쳐다봤다.
종례 내도록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하지 않나, 카톡으로 재촉을 하지 않나. 아니 저 새끼 또 왜 이런담.
“이영채 빨리 좀 나와라. 아침에 네가 나 기다리니까 집 갈 때는 나보고 기다리라는 거지, 너? 그치-?”
“하, 참나. 내가 애냐, 너처럼 괜히 그런 복.수.심. 같은 걸로 천천히 나가게. 우리 반 종례 늦게 끝나는 게 하루 이틀이냐고, 새삼스럽게 왜 그래.”
“나 너랑 가보고 싶은 데 생겨서 그래. 가자.”
“엥, 어디? 뭔데-.”
“아니 옹성우가 지 여친이랑 새로 생긴 카페 갔다는 데 거기 초코빙수가 완전 맛있었대. 너 초코도 좋아하고 빙수도 좋아하잖아. 그거 먹고 가자. 후문 바로 앞 사거리 뒤쪽이래. 나 어딘지도 봐둠.”
“뭐야 좋지! 그래 가자. 아싸 빙수다아-!”
아무래도 아까 우리 반에 들린 게 이거 때문이었나 보다. 빙수 먹자고 말할려고. 으이구, 황민현 기특한 것. 가끔 이렇게 예쁜 짓을 하니까 내가 얘랑 친구하는 거다.
“그렇게 좋냐? 애는 너지. 으이구 우리 영채 친구 좋았어여-?”
황민현은 나를 놀리면서 내 머리를 또 눌러댔다. 그래도 나 좋아하는 거 알고 챙겨주는 건 진짜 얘가 최고다. 기분은 좋네.
아이씨 진짜. 야 너 키 크다고 자랑하는 거지? 헤헤 커서 부럽지? 그만 눌러 나 작아진단 말이야. 더 작아지라고 내가 누르는거야, 몰랐냐? 아오씨 진짜 너 짜증나.
그렇게 우리는 시답지 않은 말을 주고받으며 학교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후문을 나가서 사거리를 향하고 있는데, 별안간 황민현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는 아주 가끔 나오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야, 너 근데 아까 다친 거 다시 봐봐.”
“아까 봤잖아. 빨리 먹으러나 가자.”
내 팔을 직접 가져가더니 팔꿈치에 붙은 밴드를 다시 살폈다. 야, 괜찮다니까. 뭘 그래. 진짜 안 아파 이제는.
그러다가는 내 손바닥을 보고 갑자기 녀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너 손도 다쳤어? 아까 왜 말 안했어.”
“말 안 했었나? 아 까먹었나봐. 그만큼 별로 안 아프다니까.”
“많이 까졌네. 너는 진짜 애가 왜 그러냐. 좀, 어? 조심 좀 하고 다니라고. 왜 자꾸 사서 다쳐.”
“야, 뭐야. 내가 뭘 또 사서 다쳐. 너는 지금 내가 잘못해서 다친 거라고 하는 거 같다? 그리고 이게 뭐라고 이렇게 난리야.”
“이게 뭐기는. 팔도 다치고 손도 다쳤잖아. 손은 얼마나 불편해. 그리고 씻을 때 완전 아플 거 같은데. 이게 별거냐고. 그리고 너 너무 자주 다치잖아. 조심 좀 하라고 그러니까.”
“내가 그러면 무슨 나 좀 다치게 해주세요-, 이러면서 다닌다는 거냐? 아니 내가 다치고 싶어서 다쳤냐고. 축구공이 와서 나를 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 영채야 화내지 말고. 그냥 나는 네가 좀 더 조심을 했으면 좋겠다 이거지.”
“그니까! 내가 조심을 하고 다녀도 이런 걸 어떡하라고 나보고. 그리고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왜 자꾸 시비를 걸어. 하, 짜증나. 야 됐어. 나 먼저 집 갈게.”
빙수 먹으러 가자더니 이게 뭐야. 가기 전에 화나서 이제는 쟤 얼굴도 보기 싫어진다. 더워 죽겠는데, 그리고 나도 지금 다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왜 저래 진짜.
역시 황민현은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어폰을 낀 채 앞서 걸었다.
“이영채! 야 같이 가. 내 말 뭔지 알잖아. 야! 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서 나를 지나쳐 가려는 버스를 잡아서 탔다.
황민현은 내가 타는 걸 보고 뛰어오는 거 같았는데, 알게 뭐람. 그저 집에 빨리 가서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에 가는 동안 황민현에게서 계속 카톡이 왔다. 미안해. 야, 내가 너 걱정이 돼서 그런 거지 등등.
민현아, 이미 나는 화가 났어요. 이제 와서 네가 이렇게 카톡을 보내 봤자지.
집에 들어가면서 황민현에게 전화 올까봐 번호는 차단을 하고, 카톡방 알람은 아예 꺼버렸다.
오늘도 공부하기는 틀렸다. 그냥 자야지.
아 누구야. 진동 계속 울려. 짜증나게 아 누구길래 이러냐.
“하아. 여보세여어-. 대체 누구세여ㅓㅓ. 누군데 나 깨우냐고요오..”
“하핳.. 영채 자고 있었어? 나 종현이 오빤데. 미안해애, 깨웠나부다. 에쿠.”
“종현이 오빠여-..? 으음...”
종현이 오빠? 종현이 오빠가 누구지?
아 미친. 김종현이구나. 비타 오백. 아 뭐야 나 목소리 개 이상했을 텐데. 하 망했다.
큼큼 핸드폰에서 얼굴을 멀리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아하, 오빠셨구나. 하하.. 안녕하세요? 제가 좀 오늘 피곤해서 잠시 자고 있었네요.. 하하. 무튼! 제 번호는 어떻게 아시고 전화를 하셨어요?”
“그래그래 피곤했을 쑤 있찌. 미안하네 여러모로. 아니, 그냥 너 괜찮아졌나 해서 전화했어. 아 번호는 수정이한테 물어봤구! 괜히 물어봤나..?”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 그러니까 번호 받은 것도 괜찮고, 그리고 몸도 괜찮아요! 진짜로. 저 거짓말 치는 거 아니라 진짜로요.”
“그럼 진짜 다행이다. 하핳. 그냥 걱정 돼서 전화했어."
"그럼 이제 다시 자자 영채야. 이거 내 번호야, 저장할꺼지? 안하면 조금 섭섭할 거 같기두 한뎅.”
“당연히 하죠! 이렇게 전화도 하시고. 괜찮아요, 저 진짜. 저장할게요.”
“고마워. 그럼 끊을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안뇽.”
네, 저도 끊을게요. 자다가 받은 전화가 김종현이라니.
오늘 처음 안 사람이 분명한데도 전화를 받는 내내 어떤 표정으로 나랑 통화를 하고 있을지가 다 상상이 갔다. 거 참 신기하네. 무튼 오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한테 전화할 사람이야 뭐 정수정이랑 엄마랑 아빠. 그리고 황민현 정도?
아 맞다, 황민현. 내가 얘 번호 차단해 놓았는데.
시계는 9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오래도 잤네.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황민현이 보내놓았을 카톡을 확인하려고 들어갔다.
-미안해.
-야, 내가 너 걱정 돼서 그런 거지.
이건 아까 읽었던 거고.
-영채야, 응? 미안해.
-야 내가 미안.
-말을 이상하게 했다.
-너 전화도 안 봤네.
-너 또 나 차단했지.
-아 이영채~~~
-내 사과를 받아줫!!
-흑 영채야
-일어나면 카톡해라.
겁나 많이도 보내 놨네. 그래도 생각지도 않게 너무 오래 자느라 시간을 너무 끈 것 같아 괜히 미안해졌다. 내가 아까 예민했던 것도 있고.
-야 황민현 나 일어났어.
순식간에 1이 사라졌다. 뭐야, 계속 기다리고 있었나? 아 그럼 좀 미안한데.
-일어났어? 그럼 10분만 있다가 집 앞에 나와봐.
-왜?
-아니다 20분.
-그니까 왜.
-내가 너네 집 벨 누르면 나와, 알았지?
-뭔데ㅔㅔㅔㅔㅔㅔ
-나오면 알아. 내가 미안해서 그래.
뭐길래 이러지 진짜? 아무것도 안 먹고 쭉 자서 그런지 너무 배가 고팠다.
배고플 때는 치킨이지! 뭔지 모르겠지만 치킨을 시키고서는 얌전히 기다렸다.
벨을 누르다던 황민현이랑 내 사랑 치킨을.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오보이입니다! 먼저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요ㅜㅜㅜ 초록글이라녀!! 깜짝 놀랐어요 진짜,,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쓸게요ㅎㅎ 너무너무 감사드려용♥ 오늘은 대화랑 카톡 내용 위주라서 움짤을 좀 많이 넣어보았어요.. 괜찮나요? 별 내용이 없고 뭔가 주저리만 많은 거 같네요ㅜ.ㅜ 대화분량이 너무 넘쳐서 본래보다 좀 더 일찍 끊어버렸네요..! 최대한 빨리 다음 편도 가지고 올게요! 그럼 다음 편에서 봐요 독자님들!! |
암호닉 |
오레오 뿜뿜이 짱요 돼지바 센터 황제펭귄 시릿 포카리 다녜리 아몬드 마이쮸 0713 뿍뿍 1004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