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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카디] 풀꽃

 

 

 

 

 

 

 

 

 

 

 


드륵. 수업 중 교실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고3인데도 이렇게 수업 중에 당당히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은, 뻔했지만 김종인 밖에 없었다. 그 주인공이 김종인임을 안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칠판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선생님마저도 녀석을 신경 쓰지 않았다.

흘긋 김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움찔했지만 나도 곧 아무렇지 않은 척 칠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반에서 김종인은 그런 존재였다.

 

 

 

 

 

 

 

 

 

 

"아싸 맨 뒷자리다!"
"뭐야, 왜 난 맨 앞자린데!"

 


고3이란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도 담임의 유난에 따라 학기 초 번호 순에 따라 대강 앉았던 자리를 제비뽑기로  바꾸게 되었다. 하나씩 제비를 뽑아든 아이들 중 몇명은 자리표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고 망했다며 머리를 감싸쥐기도 했다.

 

17번...17번. 자리표에서 내 자리를 찾자 복도쪽 분단의 중간쯤 되는 자리였다. 딱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시선이 오지도 않는 자리였으나 그만큼 존재감이 없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긴 어느 자리에 앉든 나에게 관심이 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나는 반에서 그리 존재감이 있는 녀석은 아니었다.

 

 

 

"아 망했다."

 


내 옆에 서 자리표를 확인하던 진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왜그러냐는 친구들의 말에 '김종인이랑 짝이야.' 라며 진호는 잔뜩 울상을 지었다. 아직까지 학교에 등교하지 않은 김종인의 자리는 남는 제비로 정해졌다. 그러다 졸지에 김종인과 짝이 되어버린 진호가 '왜 하필 이 자식이랑 짝이야.' 라며 한탄을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김종인을 더 싫어하는구나 싶었다. 아니, 무서워하는 건가.

 

김종인은 명실공히 우리 학교 내 최고의 문제아로 점찍혀 있는 녀석이었다. 이미 여러번 패싸움에도 휘말린 전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위말하는 일진, 그런 녀석들과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 소문으로 듣기로는 김종인네 집안이 무척 잘 살아서 학교에서도 김종인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그들은 김종인을 건드릴 순 없으니 그저 있는듯 없는듯 무시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김종인의 존재감이란 충분히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경수야, 넌 몇 번이야?"
"...나?"

 


옆에서 내 제비를 힐끔이던 진호가 물어왔다. '17번.' 이라고 대답하자 진호가 덥석 손을 잡아오며 자신과 제비를 바꿔달라 부탁하기 시작했다.

 


"제발 경수야. 너는 김종인 있으나 마나 공부 잘 할 수 있잖아. 나는 진짜 안 될 것 같단 말야. 응? 아 제발 바꿔주라 응? 응?"

 


정말 김종인과는 짝이 되기 싫은 듯 진호는 간절하게 부탁했다. 나는 어떻게해야 할지 난감해져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김종인과 짝이 되기는 싫었다. 나도 김종인의 존재를 그리 달가워 하지는 않는 부류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내 손을 붙잡고 흔들어 대며 부탁을 해오는 모습에 나는 차마 안 된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럼."
"왁 진짜?! 아 진짜 고마워 도경수. 내가 이 은혜는 지인짜 잊지 않을게!"

 


나는 거절하는 데에 약했다. 이번에도 멍청하게 싫다고 말하질 못하고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2교시가 시작되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야 등교한 김종인은 눈을 찡그리며 바뀐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나는 그 모습을 초조하게 힐끔이다 또 아무렇지 않은 척 교과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곧 내 옆으로 다가온 김종인의 가방이 책상 위로 턱 올라왔다. 맨 끝 창가자리 맨 뒤. 김종인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 옆이 바로 내 자리가 되었다. 괜히 이 쪽을 곁눈질로 힐끔이던 진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작게 입모양으로 말한다. '미안.'

 

곧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고 늘 그러하듯 교과서를 펴라고 말했다. 왠일인지 수업만 시작되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전부였던 김종인이 오늘따라 교과서까지 꺼내놓고 멀쩡히 앉아 있었다. 사실 신경이 안쓰인다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교과서에 집중하려 애썼다. 여튼 나는 고3이었으니까.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김종인은 용케도 지루한 수업을 듣고 앉아 있었다. 비록 껄렁하게 앉아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창 밖을 바라보는게 다였지만, 남들이 하면 허세떠는 것 같아 보일 자세가 김종인이 하니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원래부터가 김종인은 그렇게 태가 나는 놈이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그래 7번, 7번이 일어나서 38쪽 시 읽어 봐."

 


지루한 수업에 잠시 멍을 때리다 내 번호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얼떨떨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륵 의자 끌리는 소리에 김종인이 내 쪽을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뭐라고 나도 모르게 얼굴로 열이 올라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풀꽃. 꽤나 유명한 시였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였지만 그걸 내 입 밖으로 내니 조금 민망했다. '잘 읽었어. 자리에 앉아.' 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곧바로 '이 시는...' 하며 주저리주저리 이어지는 설명에, 필기를 하기 위해 다시 팬을 집어 드는데 순간 무의식적으로 김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동안 아무말도 없이 시선이 오고갔다. 그러나 곧 김종인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고 나 역시도 다시 교과서로 시선을 내렸다. 그래도 이상하게도 그것이 꽤 나쁜 느낌은 아니라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경수야 너한테 좀 부탁하자."

 


왜 꼭 나여야만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써 용길내어 '그건 좀...' 이라며 말해봤지만 담임은 그럴수록 더욱더 잡은 내 손을 꼭 쥐어오며 거듭해서 말했다.

 


"그래도 너랑 짝된 후에는 종인이 학교 잘 나왔었잖아. 지각도 안하고. 그나마 우리반에서 종인이랑 제일 친한게 짝인 경수 너라고 생각돼서 그래."

 


나보고 김종인의 집을 찾아가 보란다. 그리 별로 친한사이도 아닌데, 아니 솔직히 말해 불편한 사이나 다름없는 김종인을 찾아가 다시 학교에 나오게 설득해 보라며 내게 부탁했다.

 


그간 김종인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꼬박꼬박 지각까지 하지 않으며 학교를 나왔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업 시간에 엎드리지도 않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래봤자 멍하니 창 밖을 본다던가 따분한 듯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게 다였지만.

 

그렇게 학교 안에선 얌전하게 굴던 녀석이 크게 사고를 쳤다. 다른 학교 녀석들과 패싸움에 휘말렸다고 한다. 그 정도로 끝났으면 다행이였겠지만 김종인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칼부림까지 일어나 다른 학교 녀석 하나가 크게 다쳤다고 들었다. 그 일로 정학을 먹은 김종인은 일주일 정학 기간이 지나서도 며칠째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지각은 하더라도 학교는 꼭꼭 나왔던 김종인이었다. 그런 김종인을 학교에서도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얼핏 듣기로는 위에서도 김종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라 담임에게 주의를 준 듯했다. 그걸 보면 김종인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왜 하필 내가 김종인을 찾아가야 하지.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싫어요.' 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원채 내 성격을 버릴 수가 없는 내가 한심했다.

 

 

 

"...알겠어요."

 


결국엔 이렇게 돼버렸다. 맘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나는 항상 귀찮은 일을 혼자 떠맡아 하려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나의 문제이겠지.

나는 쉽게 단념해버렸다.

 

 

 

 

 

 

 

 

 


담임이 적어 준 메모를 한 번, 내 앞에 있는 호수가 적힌 문패를 한 번 바라보았다. 307호. 담임이 적어 준 것과 맞았다. 후우. 깊게 숨을 한번 내쉬고 눈을 질끈 감으며 초인종을 눌렀다. 디잉-동. 하는 소리가 오늘따라 왜이렇게 크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문은 열리질 않았다. 집에 없나. 초인종을 한 번 더 누르려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그렇게 뒤를 돌아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뭐야."

 


문이 벌컥 열리며 약간은 피곤해 보이는 모습을 한 김종인이 서 있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길이 그리 달갑게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니가 왜 여기있어.' 라는 눈빛이었다.

 


"어...안녕."

 


어떡할까 잠시 당황했던 나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그리곤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는 내 모습이, 내가 봐도 어색해 죽을 것 같았다. 그런 나를 김종인은 어느새 미묘해진 눈빛으로 바라보고 서있었다.

 

 

 

 

 

김종인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 혼자 사는 것치고는 꽤나 큰 집 안에 살짝 놀랐다. 게다가 예상 외로 깨끗하고 심플한 내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진짜 돈이 많긴 많나 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 소파에 가 앉았다.

김종인은 곧 내 맞은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팔걸이에 턱을 괴곤 나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분위기에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 나는 담임이 내게 전해주라 건내준 프린트물들이 떠올라 가방 안에서 그것들을 꺼냈다.

 


"...이거 담임이 주래."

 


프린트물을 건내자 김종인은 무성의한 손길로 받아가 옆 협탁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그러곤 또 어디 할말이 있냐는 듯 부담스럽게 쳐다본다.

 


"그리고 학교 나오래."

 


할 말은 이게 다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몰랐다. 내가 그러고 한참이나 말없이 눈만 굴리고 있자 김종인이 순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너 바보냐."

 


그러곤 한다는 소리가 '너 바보냐.' 였다. 나는 내가 잘못 들은건가 싶어 벙찐 표정으로 김종인을 바라보았다.

 


"뭐?"
"순진한 건지, 아니면 그런 척 하는 건지."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나는 잔뜩 당황한 채로 김종인이 하는 말을 들었다.

 

 

"왜 항상 남이 하기 싫은 잃은 다 도맡아 하냐 바보같이. 싫다고 말 한마디면 될 게 그렇게 어려워?"

 


김종인은 알고 있었던 걸까. 내가 김종인과 짝이 된 것도, 이렇게 집에 찾아오게 된 것도 모두 다 누군가의 부탁에 못이겨 했었다는 것을.

 

 

 

 

 

"착한 아이인 척 고분고분 구는거, 짜증나지 않나?"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는 김종인을 쳐다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가 볼게."

 


가방을 매고 아무렇지 않은 척 뒤돌아 현관으로 향했다. 뒤로 따라붙는 김종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관에서 신발을 꿰어신고 숙였던 허리를 다시 편 나는 잠시 멈칫했다. 아까 들어올 때는 보지 못했던 선반 위에 액자에 담겨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처럼 보이는 남자의 품에 안겨 해맑게 웃고 있는 꼬맹이의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었다. 지금과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그 꼬맹이는 김종인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김종인이 다시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곤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김종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도경수."

 


내 이름, 알고 있었나. 알고 있는게 당연하긴 했지만 왠지 내 이름을 부르는 김종인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가져가. 밖에 비 와."

 


뒤를 돌자 김종인이 내게 작은 우산을 건내왔다. 오는 내내 날씨가 꿀꿀하더라니 결국엔 비가 오기 시작했나 보다. 베란다 발코니를 넘어보자 창 밖으로 어느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다시 김종인에게로 시선을 옮긴 나는 말없이 우산을 받아들었다. 그리곤 그대로 다시 뒤를 돌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떤 정신으로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완전히 건물 안을 빠져나와 김종인이 준 우산을 쓰고 길을 걸어가는 내내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김종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고 물으면 그것은 간단했다.

 


모두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 멈춰 서 쓰고 있던 우산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어깨가 떨려왔다. 5월에 내리는 봄 비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다음 날, 온종일 밤을 새운 채로 일찍 등교를 했다. 아직 7시 20분이었다. 등교 시간까지는 30분 정도가 남은 시간이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무도 없을거라 생각했던 교실 안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창가 맨 뒷자리. 김종인이었다. 내 쪽을 돌아본 김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무말 없이 자리로 가 앉았다. 그리고 나와 김종인 사이에 한참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그 무거운 정적을 먼저 깬 것은 나였다.

 


"어제 하루 종일 집에 돌아가서 생각했어. 근데 인정하기 싫어도 결국 네 말 하나도 틀린 거 없더라."

 


피식 웃음이 났다. 결국 인정해 버리고 나니 허탈했다.

 


"맞아. 나 착한 척,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척 하는거."

 


나는 남에게 나를 실망시키길 두려워 하는, 사실은 조금도 착하지 않은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그리고 김종인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넌 생각보다 나쁜 녀석 아니란 거 알아."

 


책상 위로 어제 김종인이 빌려주었던 우산을 내밀었다.

 

김종인이 나에 대해 알고 있었듯이, 나 역시도 김종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미움을 받는 녀석이 사실은 그리 나쁜 녀석은 아니란 것을.
선반 위 소중해 보였던 사진. 무심한 듯 내게 내밀어지던 우산. 그것들은 모두 김종인의 진짜 모습이었다.

 


"너도 네 모습대로 살아가는 건 아니잖아."

 


김종인의 시선이 아프게 내 얼굴 위로 닿아왔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흘렀다. 그 날 이후 나와 김종인의 사이는 조금 미묘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다만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창 밖만 향하던 시선이 이제는 내게로 향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었다. 김종인은 그저 내가 필기하는 것을 바라보거나 가만히 수업을 듣는 내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김종인이 무척이나 신경 쓰여 나는 좀처럼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김종인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기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 학교에 잘 나온다 했더니, 오늘은 왠일인지 김종인이 2교시가 되어도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다 녀석이 교실에 들어선 것은 한창 2교시 수업이 중반 쯤에 다다라 있을 때였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김종인에게로 향했다. 조금은 초조하게 녀석을 기다리던 나 역시도.

반이 조금 술렁였다. 나는 놀란 얼굴로 김종인을 바라보았다. 곧 내 옆으로 와 앉는 김종인의 얼굴엔 멍과 생채기가 가득했다. 또 싸움이라도 한 것일까. 그래도 이렇게 다친 김종인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나와 얼핏 눈이 마주친 김종인이 책상 위로 엎드렸다. 나는 더욱더 당황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쉬는 시간, 보건실에서 타 온 반창고와 연고를 녀석이 엎드려 있는 책상 위로 올려 놓았다.

 


"이거 발라."

 


김종인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사실 내 말을 듣고 있을지, 안 듣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김종인이 걱정 되었다. 힘겨워보이는 어깨를 쓸어내리며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위로 잔뜩 가시가 덮힌 담장을 세워놓은 듯한 모습에 차마 나는 다가갈 수가 없었다.

 

 

 

 

 

결국 김종인은 4교시가 되기 전 학교를 나가 버렸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김종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누구와 또 싸우다 그랬겠거니 하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오직 김종인을 걱정하고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학교가 끝나고, 나는 어둑해진 밤길을 멍하니 걸었다. 그런데 그때 주머니 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내보니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왠지 나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 너머에선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김종인...?"

 

-지금 우리 집으로 와.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 곧 대답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망설임 없이 발을 돌렸다.

 


'지금 갈게.'

 

 

 

 

 

 

 

 

 


뛰어 와 거친 숨을 내쉬며 한 번 와봐 익숙해진 곳이 보이자 나는 떨리는 걸음으로 오피스텔 입구로 향했다.

 

 


"...나와 있었어?"

 


집으로 오라더니. 현관 입구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는 김종인의 모습이 보였다. 한 번도 김종인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모습에 나는 말 없이 녀석의 옆으로 가 앉았다. 그러자 담배를 한 번 깊게 빨아들인 김종인이 바닥에 담배를 버리고 발로 지져껐다. 그러더니 잠시 내 쪽을 보다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거, 너가 발라줘."

 


반창고와 연고였다. 나는 멍하니 그것들을 내려다 보다 김종인의 손에서 가져와 연고 뚜껑을 열었다.

김종인의 얼굴 위 상처로 손을 가져다 대자 김종인이 따가운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마치 내게 상처가 생긴 것 처럼 아팠다.

 


"왜 그랬어."

 


연고를 바르고 그 위에 반창고를 붙이며 물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잠시 나는 반창고를 붙이던 손길을 내려놓았다.

 


"아빠한테 맞았어."

 


엄청난 일을 김종인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마치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그래도 나는 알았다. 잔뜩 상처가 나 피가 흘러 새는 녀석의 마음을, 나는 볼 수 있었다. 문득 김종인의 집에 갔던 날 보았던, 아빠의 품에 안겨 환하게 웃고 있던 꼬맹이 김종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김종인을 와락 끌어 안아 버렸다. 녀석의 등을 천천히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두려워 하지마. 김종인이 내 허리를 거세게 끌어 안았다.

 


김종인이,
울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너가 좋은 애 인거 알아."

 


나는 한참동안 소리 없이 우는 김종인을 끌어 안아 주었다.

 

 

 

 

 

 

 

 

 

 

다음 날, 김종인은 내가 붙여 준 반창고를 얼굴에 그대로 붙인 채로 등교했다. 나는 내 옆자리로 와 앉는 녀석을 보며 슬핏 웃었다.

 

문학 시간. 나는 따뜻한 봄날씨에 살짝 졸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곧 잠에서 깨어날 수 밖에 없었다. 김종인이 내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왔다.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은 내 손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턱을 괴곤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린 창 밖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와 녀석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스륵. 책장이 넘어갔다.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더보기

 

릴레이픽에 참여하게 되어서 굉장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ㅠㅠ

쓰다보니 분량이 많이 늘어났네요...ㅎㅎ

 

나태주님의 풀꽃 시로 예전부터 조금씩 구상해오던 내용이라 굉장히 이번 기회에 올리게 되어 뿌듯하네요.

내용에 대한 설명은 저녁에 조금씩 추가하도록 할게요 :)

 

 

릴레이픽에 참여하시는 많은 작가분들 저를 포함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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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너무 좋아요ㅠ 릴레이픽은 꾸준히 보고있는데 작가님도 너무 잘쓰세요! 카디라니...헝헝 저 울어요ㅠㅠㅠㅠ흑흑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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