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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현과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학생회에서 같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 눈이 맞았다. 민현이와 서로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예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한순간에 민현과의 관계가 극으로 악화될거라고는 도무지 생각도 못했다.

너는 늘 내게 결혼하자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기대하지 않는 척. 하면서 기대해버렸었다.


네가 나를 계속해서 사랑할거라는 기대.

네가 나를 끝없이 사랑할거라는 믿음. 



우리 집은 지나치게 평범한 반면에 민현의 집은 대대로 교육자가 많은 집안이라 민현의 부모님 역시 민현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걸 모르는 건 결코 아니었다. 민현은 제 꿈과는 다른 진로를 바라시는 부모님때문에 힘이 들때면 늘 너를 찾았으니까.


'여주야, 나 너무 힘들어.'


그건 민현이 제게 곁을 내준 사람에게 보이는 속내였다. 그래서 나는 너를 너무 믿어버렸나.


민현은 결국은 부모님의 뜻대로 서울의 B대학에 입학하여, 경영학도가 되었다. 여주야, 너만 있으면 나 다 할 수 있어. 

민현이 꿈처럼 달콤하게 제게 속삭이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철부지처럼 민현을 따라 B대학에 무리없이 진학했다. 


나도 너만 있으면, 괜찮아. 민현아. 


곧 깨질 꿈인 줄 모르고. 혼자 먼 미래를 꿈꿨다. 민현은 자랑스러운 아들, 멋진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 무리했다. 민현아, 나는 네가 그렇게 무리하는 게 싫어.

민현은 그 말에 안쓰럽게 웃어보이며 괜찮다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네가 기특하고 대단하다 생각했다.


저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는 민현을 보며 멋 모르고 안심을 했다. 민현이 변함없이 여전하다 착각하며.


나는 그때, 우리가 대단한 사랑을 하는 줄 착각을 했어. 

네가 바빠지고, 우리 사이에 틈이 생겨도. 나는 우리가 다시 맺어질 거라고 생각했지.

이런 식으로, 어이 없을만큼. 

말도 안 나올 만큼. 

이런 식으로, 이별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민현이 바빠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바빠진 사이 소원한 우리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민현의 동기가 우리 사이를 확실하게 틀어놓은 열쇠인건 분명했다. 

민현은 너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예경에게 푹 빠진 상태였고, 사실 말로 다하지 않아 그렇지. 

그때부터 우리는 헤어진거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아슬아슬한 그 관계가 얼마나 유지될거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한번 해주질 않는 네 전화를 기다리다

결국 너랑 보고 싶었던 영화를 혼자 보고 나오던 날. 진예경이랑 시내를 누비고 있는 너를 본 그날. 


...좋아한다고 그렇게 이야기해놓고. 혼자 끝내는 게 어디 있어, 황민현. 나쁜 놈아.


혼자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잔뜩 먹고 민현에게 전화를 했어. 눈앞에 보이던 민현을 알면서도 속아주고 싶어서.


네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믿을테니까. 


전화를 안 받는 민현이 속상해서 결국 울어버렸지만. 


-


민현에게서 전화가 온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였나.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걸려온 전화임에도, 네 전화라며 목소리를 예쁘게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었는데. 들리는 건 민현의 목소리가 아니라 시끌벅적한 소음과 함께 들려오는 민현의 동기라는 사람의 목소리였지.

학교앞 술집으로 정신 없이 달려나갔었는데.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새벽까지 술 마실 시간은 있고. 

나한테 연락 한번 할 시간은 없었냐, 따지고 물을걸. 


막상 민현을 보면 그런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못할걸 알았지만. 


"황민현, 민현아. 일어나봐, 좀.”

“....예경아..”

“..........”


민현을 부축하며 나오던 제 다리에 힘이 탁 풀려서, 여주는 주저앉을 뻔 했지. 술에 취해도 좋으니 네가 다정하게 내 이름을 한번만

불러주었다면.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텐데. 왜 믿지도 못하게 해, 나쁜 놈.


민현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민현의 집으로 간 여주가 익숙하게 도어락번호를 누르고 해제된 문을 열며 민현을 침대에 눕혔어. 


네가 나한테 예경이라고 부른걸 네가 기억이나 할까. 


여주는 민현의 침대끄트머리에 기대앉아 울음을 터뜨렸어. 혹여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제 입을 꾹꾹 틀어막으면서. 

그때 차라리 네가 안 깨어났으면 좋았을텐데. 자다말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민현에 놀란 네가 토끼눈이 된 채 민현을 바라보면.

민현은 술에 취한 채로 너를 내려다보다 너를 제가 있는 침대 위로 끌어당겼어. 밤새 저를 예경이라 부르는 민현의 밑에서 지독하게 차가운 밤이 끝이 났다. 

민현이 술기운을 이기지못하고 잠이 들자,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던 네가 다리에 힘을 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어. 

옷을 겨우 주워 입은 여주가 결국 민현의 집밖으로 도망치듯 벗어났지.


그리고 다음날 민현에게선 전화가 왔어. 어젯밤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 눈치여서 여주는 울컥거리는 감정을 뒤로 한채 민현의 목소리를 들어냈다. 

오랜만에 전화를 한다며 다소 담담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 헤어져. 였다. 일방적인 통보였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


민현은 너무 오랫동안 말하지 못해 미안했단 말을 했어. 
아마 그때 영민이 있었다면 저 대신 민현의 멱살을 쥐어잡고 흠씬 두들겨 패줬을지도 모르는데.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며, 그렇게 저대신 화를 내주고 민현에게 할 수 없었던 말들을 다 했겠지.


어젯밤에 네가 한번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줬더라면, 이렇게 끝이 나더라도 조금 덜 슬프지 않았을까, 생각했지.
 어차피 학과내에서 너와 민현이 사귀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너는 그렇게 아무렇지않은 척하며 학교를 다녔고 민현은 그런 널 보며 제 나름대로 마무리를 잘했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 시기즈음에 여주의 학과에 신입생이 새로 들어왔다.

 
그때 만난 게 임영민이었다. 민현은 여주가 조금쯤 정신을 차렸을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 이것 역시 전해들은 소식이었고.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애써 고개를 주억거리며 하루하루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너에게 다가온 건 영민이었어.


같은 학과다보니 전공수업이 겹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너는 영민은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교수가 임의로 뽑은 팀과제의 같은 팀원이 되었어. 

영민은 다정하고 살가운 성격의 후배였지. 요새 들어 통 입맛이 없어, 밥을 거르기 시작한 너를 못마땅한듯 혀를 끌끌 차며 팔을 잡곤 데려온 곳이 학교식당이었지. 


"안 챙겨줘도 되니까, 가서 너나 먹어."


싸가지 없는 제 말투에도 영민은 꿋꿋하게 제 팔을 끌어당겼지. 


아침엔 학회실에 있는 너를 찾아와 대학교앞에서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한 유명한 샌드위치를 사와 떠안겨주기도 했고, 

점심을 삼각김밥 하나로 겨우 떼우려고 학교 매점으로 들어가고 있는걸 또 발견하곤 제게로 달려오다시피 걸어와선 제 손을 잡고 성큼성큼 학교식당으로 데려갔어.

제가 먹을때까지 하염없이 쳐다봐주거나, 여분의 젓가락을 가져와 제 밥위로 반찬을 올려주기도 했어. 

여주는 그런 영민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귀찮기도 했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무섭기도 했고. 


그래서 제게 속이란 속은 다 내보이는 영민에게 일부러 마음을 열지 않았어. 과제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일절 연락도 안 했었고.

심지어 한학기가 끝나가도록 영민의 번호도 몰랐으니 말 다했지. 


번호 주고받은 날이 언제더라. 아. 조별과제때문에 도서관에서 같이 자료를 찾기로 했던 팀원들이 각자 그렇게도 선약이 많은지 영민을 빼곤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아서, 

도서관에 애써 잡아둔 스터디룸도 못 쓰게 된 마당에 우리집이라도 가자. 하며 영민을 앞서던 날.


'같이 가요, 누나.'


영민을 아무렇지 않게 제 집으로 들이자, 쭈뼛거리며 들어서던 영민이 제 뒷통수에 대고 한 말은 아직도 기억난다.

[브랜뉴뮤직/임영민황민현] 사랑을 주세요 | 인스티즈

‘누나, 내가 누나집에 몇번째로 오는 남자에요?’


‘......나한테 너 남자 아닌데.’


'그럼 이제부터 남자 취급해주세요.'


'...헛소리 작작하고, 들어오기나 해.'


'내가 좋아하는 거 다 알잖아, 누나. 너.'


영민이 저를 좋아한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었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제 시간을 써가며 속을 다 내보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영민이 저런식으로 이야기해올줄은 몰랐어.입밖으로 내뱉을줄은 몰랐어. 부러 차갑게 굴고, 있던 정도 떨어질만큼 생각없이 말하고. 

고맙다는 인사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는데. 너는 어느 포인트에서 내게 좋아한다 이야기할 수 있는건지. 


고개만 돌리면 저를 바라보고 있는 곧은 시선의 주인공이 영민이라는 걸 알곤 있었지만. 


'난 누구 안 좋아해.'


그 날의 트라우마는 여직 여주를 괴롭혔어. 나는 아무도 안 좋아해. 

이런 불편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면 집으로 영민을 부르지 않는 거였는데.


영민은 그런 제 옆에서 틈을 노리는 건지, 아님 이도저도 아닌건지. 네 곁을 지켰어. 


그렇게 영민의 사랑에 제가 무뎌져가고 있을때, 너는 불러오는 제 배에 한껏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지.

아닐거라 생각했던 그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처음에 그걸 알았을때 여주는 악몽보다 더 악몽같은 현실에 죽어버릴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어. 

그만큼 절망적이었지. 민현이 없는데 민현의 아이를 가지다니. 두 줄로 나타나는 임신테스트기에 일주일을 꼬박 학교도 결석했는데.

아이를 지울만큼 모질지를 못해서. 제 뱃속에서 저를 엄마라고 생각하며 숨쉬고 있을 아이를 지울 수가 없었지.

 

너는 결국 중간고사가 막 끝났을 무렵에 학교로 향했어. 학과사무실로 향하는 네 발걸음이 썩 가벼워 보이진 않았지. 

가는 길에 마주친건, 일주일간 제 집을 찾아와 현관문을 몇번이나 두드리고. 전화를 해대던 영민이었어.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얼굴 보기 어렵다, 진짜. 누나. 너는 내가 걱정하는건 하나도 생각 안하지?'


'....바쁘니까 비켜주라.'


제 앞에 서있던 영민을 비껴가며 학과사무실에 휴학서를 내고 나온 여주를 기다린건 영민이었어. 밖에서 저를 기다렸던 듯 

벽에 기대고 서있던 영민이 팔짱을 풀어오며 여주에게 말해왔지. 


'내가 귀찮게 해서..휴학해요, 누나?'


...그런거 아니야. 영민의 처연한 눈이 저를 보는게 힘들어서 고개를 돌리고 영민을 지나치자, 영민이 저를 뒤에서 끌어안아왔다.


‘자꾸 도망가지 마. 봐달라고 안 할게요, 그냥 내 눈 띄는 곳에만 있어.'


'...이거 놔.'


[브랜뉴뮤직/임영민황민현] 사랑을 주세요 | 인스티즈

'안 조를게. 누나 너한테 부담 안 줄게.'


길잃은 강아지같은 영민의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품에 저를 밀어넣곤 놓아주지 않으려는 영민을 더이상 밀어내기만 할 자신이 없어져 버려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사용설명서도 간간히 들고올게요...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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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어 이렇게 일이 꼬이다니 속상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작품 항상 잘 보고있어요
7년 전
독자2
여주 어떻게 해요ㅠㅠㅠ 민현이...너무하네요ㅠㅠㅠ
신알신 누르고 갑니다

7년 전
독자3
..이럴수가 이러한 상황이라뇨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걱정이 이만 저만이내용ㅠㅠㅠㅠㅠ신알신 누르고가ㅛㅇ!!ㅎㅎㅎ
7년 전
독자4
헐....민현이 나빳어..... 어떡해 여주ㅜㅠㅠㅠㅠ 다음 편 기다리고 있을게요!
7년 전
독자5
아...민현아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맙소사ㅠㅠㅠㅠ영민아 부디ㅠㅠㅠㅠㅠ곁에ㅠㅠㅠㅠㅠㅠ아..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6
와...민현이 나쁘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여주는 어떡합니까ㅠㅡ루ㅠ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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