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요즘 여행가는 프로그램 많이 하네. 영민아, 너도 이거 봐? "
내 집인 것마냥 영민이 집 거실 쇼파에 드러누워 무료하게 리모컨을 손에 쥐고 채널을 돌렸다. 케이블 채널을 더 선호해서 케이블 채널 위주로 짧게 여러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다가 모든 프로그램의 공통 주제가 여행인걸 깨달았다. 개중에는 꽃보다 할배, 1박 2일처럼 유명한 시리즈도 껴있었다. 비교적 최신 프로그램인 '뭉쳐야 뜬다'를 보다가 내 옆에 앉아 무릎 위에 올려둔 노트북으로 잔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영민이에게 이런 프로도 보냐고 물었다. 광고계 흐름을 본다고 TV를 자주 시청하니까, 이런 프로그램도 보는지 궁금했다.
장시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느라 눈에 무리가 왔는지, 미간을 지그시 누른 영민이의 고개가 TV로 향했다.
" 가끔? 왜, 여행 가고 싶어? "
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물어본 건 아니였지만, 여행이 가고 싶냐는 영민이의 물음에 나는 괜히 어물거렸다. TV 화면에선 출연자들이 방송이면 대게 그렇듯 그 나라의 음식을 먹으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특정 시즌없이 꾸준히 바쁜 일때문에 여행을 떠났던게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영민이랑은 더더욱 같이 여행을 목적으로 어딘가를 갔던 걸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고. 물론 지금도 둘 다 일때문에 어딜 놀러가는게 현실적으론 힘들겠지.
" 여행이야 가고는 싶지.... "
두 눈은 여전히 음식에 대한 감탄이 흘러나오고 있는 TV에 고정한 채로, 투정부리듯 여행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바로 내 말에 대꾸를 할거라고 생각했던 영민이는 말이 없었다. 천천히 TV에 고정하고 있던 시선을 힐끔 옆으로 옮겨 영민이를 확인했다. 영민이는 다시 노트북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 타자를 치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듯 물어본 거같아서 일하는 영민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천천히 시선을 TV로 옮겼을 때였다.
" 방해 안 받고 일주일동안 여행 갈 수 있게 할게. "
" 정말? 언제? "
" 곧. "
" ... 어? "
" 그러니까 미리 가고 싶은 곳 생각해놔. "
영민이의 뜬금없는 말에 내 고개는 다시 영민이쪽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영민이도 장난끼가 옅게 깔린,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같이 좀 웃자, 왜 또 너 혼자 웃고 있어. 서로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채로 나는 영민이가 한 말을 되짚었다. 여행 기간은 일주일, 거기에 가까운 미래. 그리고 저와 함께하는 여행임을 암시하는 말. ... 내가 오버하는게 아니라면, 신혼여행을 말하고 있는 거였다.
내 표정변화를 보곤 소리내어 웃던 영민이가 잠시 웃는 걸 멈추고 확인하듯 물었다.
" 알았지? "
요즘 들어 부쩍 결혼과 그 이후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빈도가 늘어간다 싶었는데, 어쩌면 지금 정점을 찍은 거 같았다. 물론 이제는 나도 자연스럽게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생각하고 그걸 표현하는 요즘이기에 부담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괜히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너랑 갈지는 생각 좀 해볼게. "
" 나 말고 누구랑 갈려고? "
내 말을 듣자마자 영민이가 저가 아니면 누구랑 갈거냐며 내 어깨를 감싸안아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내가 장난을 치는 건 또 기가 막히게 알아차려서는 평소와 다르게 어정쩡하고 불편하게 날 꽉 끌어안아 내게 맞장난을 쳤다. 그렇다고 아프게 꽉 안고 있는 건 아니여서, 장난에 맞춰 그 팔을 밀어내는 척을 했다. 장난이여도 팔 힘의 차이가 어마무시했기때문에, 날 감싸안은 팔은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애초에 이 장난의 시작은 답정너나 다름이 없어서, 팔을 풀려고 끙끙 대던 걸 멈추고 영민이에게 기대며 입을 열었다.
" 너랑 갈거야. "
" 못 들었어. 누구랑 간다고? "
" 너요, 너. 임영민 팀장님 당신이요. "
나를 꽉 당겨 안고 있던 팔이 느슨해졌다.
이내 내가 저에게 편하게 기댈 수 있게 팔의 위치를 바꾼 영민이는 어느새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하여간. 점점 더 능구렁이 같아지는 이 남자를 내가 어떻게 이길까. 영민이는 날 안고 있는 자세 그대로, 불편하게 한 손으로 타자를 이어 치기 시작했다. 빠르게, 그러나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타자 치는 소리는 유난히 타다닥, 소리를 내며 내 귀를 자극했다. 아까 TV를 보며 간간히 들리던 타자 소리에 비해 커지고 조금 더 빨라진 타자 속도는 한 손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내 대답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싶을 정도로 영민이의 기분이 한층 업된 게 느껴졌다.
그의 기분 변화와는 별개로 일을 다시 시작한 것 같아서, 영민이에게 기댄 채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다시 '뭉쳐야 뜬다'를 보기 시작할 때 타자 치는 소리가 서서히 느려지다가 이내 멈췄다.
" 그래, 꼭 나랑 가자. "
멈춘 타자 소리의 빈 공백은 영민이의 웃음기 베인 목소리가 대신 채웠다.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들려온 그의 낮지만 다정한 목소리는 절로 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임영민 아니면 내가 누구랑 가겠어,
이제는 다른 누군가를 생각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을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큰 존재가 되어버린 시점에서.
친절한영민씨
: 회식
" 모두 앞에 있는 잔을 들어올려주시고─ "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는 환영회와, 두 달내내 우리팀과 홍보팀을 괴롭혀오던 장기 프로젝트 끝난 기념으로 잡힌 회식이 갑자기 통보처럼 잡혔다. 그 결과, 나는 쉴 계획으로 가득 찬 주말을 하루 남기고 디자인팀과 홍보팀 직원들로 북적이는 회식 자리 한가운데에 앉게 되었다. 누적된 피로감때문에 분위기만 맞추다가 빠지려고 했는데, 환영회가 임 팀장과 나를 위한 환영회라 졸지에 이 자리의 주인공까지 되어버려 꼼짝없이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홍보팀의 분위기 메이커라는 김동현 대리의 말을 따라 자리에 착석한 모든 사람들이 착실히 잔을 들어올렸다. 분위기상 건배사가 나올 것 같은데, 김 대리는 뜸을 들이며 말을 아꼈다. 그래서 잠시 잔을 쥔 왼손에서 좀 더 편한 오른손으로 바꿔잡을 때였다.
" 이쯤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힘 써주신, 입사와 동시에 바쁘셨던 우리 임영민 팀장님과 김여주 팀장님이 하시는 건배사를 좀 들어봐야겠죠? "
... 건배사의 주인공으로 지목을 당했다.
내 고개는 바로 임 팀장을 찾아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디자인팀과 홍보팀으로 나뉘어 앉았음에도 나와 가까이 앉아있던 임팀장이 주변 팀원들의 성화를 못이겨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건배사를 두명씩이나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자, 여기저기서 내 이름을 부르며 팀장님도 일어나야하지 않겠냐는 말들에 결국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손은 소주잔을, 그리고 소주잔을 쥐지 않은 손으론 뒷머리를 긁적이던 임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지목당한 바람에 임팀장도 나처럼 조금 당황하고 있던 것 같았다.
서로 3초간 쳐다보고 있다가, 임팀장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면서도,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이 잘 마무리 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임팀장은 언제 저가 당황했냐는듯 자기 소주잔을 고쳐잡은 뒤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 프로젝트 회식 외에도 이 자리가 저와 디자인팀 김여주 팀장님의 입사를 환영해주는 자리라 들었습니다. 우선 불금에 귀한 시간을 이 환영회에 참석해주시는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팀장 따라오느라 고생 많으셨을텐데 잘 따라와주셔서 제가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
" 팀장님 거짓말이 느셨어요~! "
" 하얀 거짓말도 어느정도 진심이라는 거 아시잖아요, 동현씨─. 그리고, 우리 홍보팀외에도 두 달간 같이 고생해준 디자인팀에게도 감사 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회식 비용은, 전적으로 회사가 부담하니까 프로젝트때문에 쌓인 스트레스 여기서 다 푸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마무리 건배 선창은, 우리 김 팀장님께 제가 넘길게요. "
대학시절 PPT 발표만 200번은 해봤다고 농담 하던게 사실은 진담이 아니였을까 싶을 정도로, 임팀장은 즉흥적으로 청산유수 건배사를 마무리 지었다. 깔끔하게 내가 선창만 하면 되도록 말을 끝내준 덕에, 나는 가볍게 목을 풀며 여전히 잔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한 번 훑은 뒤 회사 이름을 외쳤다.
" PROCE를 위하여! "
" 위하여! "
" 직원 여러분, 첫 잔은 무조건 원 샷! 입니다~ "
동현씨의 유쾌한 외침에 모두가 들어올렸던 잔을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여기저기서 크으─,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그 후부터는 정말 잔을 내려놓을 틈이 없었다. 디자인팀 회식이면 우리팀 직원들이 돌아가며 따라주는 술을 받고, 다시 내가 소주병을 받아 맞따라주는 걸 반복하면 되는데 홍보팀까지 함께한 자리여서인지 홍보팀 직원들까지 내 자리로 찾아와 따라주는 바람에 평소 마시는 양의 두 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빠르게 잔을 비워서 약간 취기가 돌기 시작할 때였다.
"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
어느새 내 맞은 편엔 임팀장이 앉아있었다.
매일 보던 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그는 여태 다른 직원들이 그런 것처럼 내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주는 대신 내게 생수가 가득 담긴 컵을 내밀었다. 취기때문에 살짝 어질대는 머리에 이마를 한 손으로 짚으며 그 물컵을 받아들었다. 내 옆에 줄 맞춰 세워져있는 소주병과 갖은 술병들 (대게 다시 들고 가는 것을 직원들이 까먹고 놓고 간 병들)을 눈으로 훑던 임팀장이 금방 비워낸 물컵에 다시 물을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계속 이마를 짚고 있는 나를 걱정하는게 티가 나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 이렇게 마시다가 한 번에 훅 취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여주씨. "
" 그러게요. ... 저 원래 술 잘 마시는데. "
최근 들어 술을 마신 적이 거의 없어서인지, 내 스스로가 당황스러울정도로 빠르게 취한 감이 있었다. 디자인 계열의 특성상 술자리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술은 잘 마셨는데. 괜히 억울해서 원래 술은 잘마셨다고 덧붙이니, 임팀장은 대답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투정 늘어놓는 아이를 달래는 듯한 리액션이라, 진짜라고 말하려던 참에 양손에 소주병과 잔을 들고 김동현 대리가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더불어 그의 등 뒤로 회식장소에 있던 노래방 기계 하나로 흥이 난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 그러고보니 제가 우리 두 팀장님들하고는 아직 건배를 못했네요, 맞죠? "
비교적 젊은 연령층이 몰린 디자인팀과 홍보팀인데도 들려오는 노래는 회식 자리의 흔한 선곡인 남행열차였다. 누군가가 열창하는 남행열차 소리를 뚫고, 임팀장 옆자리에 잠깐 앉은 동현씨가 소주병을 익숙한 폼으로 흔들어 돌리며 물었다. 정신없이 다른 직원들과 술잔을 부딪힐때 동현씨가 없었을 줄이야. 초록색 병 안에서 소용돌이 치는 걸 바라보고 있다가 임팀장의 시선이 줄곧 이마를 짚고 있는 내 손에 향해 있는 걸 알아챘다. 괜찮아진 척 이마를 짚던 손을 내리며 족히 서른 번은 다른 잔들과 부딪혔을 내 잔을 잡자, 어쩌면 자연스럽게도 그와 눈이 마주쳤다.
" 그래도 제가 동현씨 직속 상사니까, 먼저 따라줄게요. "
내 안색을 확인하는 듯한 그에 괜찮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까딱여보았지만, 임팀장은 기어코 동현씨의 손에 들린 소주병을 받아 그의 잔을 채웠다. 조금이라도 내가 다시 술을 마셔야 할 타이밍을 늦추려던 것 같았지만, 같이 건배하고 싶다는 동현씨의 말에 그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그때의 임팀장 표정은 마치 꿀 먹은 벙어리같은 표정이라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콩깍지라도 씌인건지, 그게 너무 귀여워보여서.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런 나를 따라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임팀장이였다.
그런 우리 둘이 잠시 잊은 게 있다면, 동현씨였다.
동현씨는 건배를 하기 위해 소주잔을 들어올리다말고 눈을 가늘게 뜨며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 근데 임 팀장님이랑 김 팀장님 아까부터 너무 수상한 거 알아요? 둘이서만 여기 남아있고. "
" ... 우리 둘이 저기 끼면 그게 눈치가 없는 거죠. 생각해봐요, 누가 상사랑 놀고 싶겠어요. "
당황해서 눈을 데굴 굴리며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았다. 다행히 술기운에 그냥 던져본 말이였던 건지 뒤따라오는 추궁은 없었다. 수고 많으셨다며 다시 입을 뗀 동현씨와 건배를 하고 다시 입 안에 소주를 털어넣었다.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은 채로 다시 한 잔을 하니까 코끝이 곧장 찡해지는게 슬슬 집에 갈때가 걱정이 되었다. 직립보행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건배 후 바로 나를 확인하는 임팀장을 괜히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 티도 못내며 다가올 미래를 걱정했다.
건배를 하고 다시 직원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려고 일어나던 동현씨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저 임팀장님과 똑같이 생긴거 봤어요'라며 뭔가를 찾아 바쁘게 핸드폰 스크린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손이 자꾸 미끄러지는게, 취한게 분명해보였다. 그때 임팀장이 다시 물 한컵을 따라 내 앞에 놓아주었다. 컵에 담긴 냉수를 마시고 나니 기분탓인지는 몰라도 어지러움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을 만지작대는 동현씨 몰래 고맙다고 입모양으로 임팀장에게 표현하자 임팀장이 살짝 고갤 끄덕일 때였다.
" 이거요, 이거. 얘 임팀장님 닮았죠? 그쵸, 김 팀장님? "
고개를 퍼뜩 들어올린 동현씨가 나와 임팀장이 볼 수 있게 핸드폰을 우리쪽으로 돌려주었고, 그의 핸드폰 화면엔 왠 하얀 동물 캐릭터가 춤을 추고 있었다. 처음엔 너무 뜬금없어서 멍하니 그 화면을 응시하다가, 정말 어이없게도 임팀장과 닮은 그 묘한 캐릭터가 웃겨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소리내 웃었다.
" ... 내가 이거랑 닮았어요? "
" ... . "
" 아니─, 정말로? "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임팀장의 사투리 억양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랑 같이 박장대소하던 동현씨가 마치 내 대변인이라도 된 것처럼 그의 물음에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그런 동현씨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나를 쳐다보는 임팀장을 보면서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있으니 어느새 또 나를 따라 웃고 있는 임팀장이였다. 임팀장이 웃는 걸 본 동현씨가 대뜸 주위를 조용히 시키며 우리쪽으로주목시켰다. 그러니까, 평소라면 적당히 분위기만 띄웠을 동현씨가 취했다는 거다.
하나 둘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직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우리에게 향해있었다.
" 직원 여러분, 우리 팀장님들이 여기 나란히─. 조용히! 앉아 게시는게 말이 됩니까? "
" ... 동, 동현씨─? "
" 두 분 환영회인데! ... 대앤스! 대앤스! "
흥이 오른 동현씨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창 노래를 부르고 와서 이미 흥이 올라있던 다른 직원들도 박수까지 치며 동현씨를 따라 "댄스"를 외치고 있었다. 춤엔 젬병인 나는 그야 말로 동공지진이였다. 그렇게 동현씨를 선두로 분위기는 나와 임팀장중 한사람이라도 뭔가를 해야할 것처럼 흘렀고, 아까 그 알파카 춤이라도 추는 게 어떠냐며 동현씨가 임팀장에게 물었다 (하얀 캐릭터가 알파카였던 모양이였다). 덕분에 알파카 춤이 뭔지 궁금해하던 모두가 그 영상을 한번씩 돌려보게 되었다.
그런 직원들 사이에서 난감한 웃음을 흘리는 임팀장과 여전히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뒤로 한 채, 아직 노래방 기계 앞에 서있던 직원이 '아니면 김 팀장님 노래하실래요?' 물어왔다. 다들 술에 취한 탓인지 바로 내가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는 여론으로 바뀌었고, 이내 테이블까지 두드리기 시작했다. ... 좋은 사람들도 술 앞엔 소용이 없구나. 괜히 눈치가 보여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계속 술만 마시다가 처음 일어난 탓에 몸이 휘청거렸다.
" 아, 그럼 또 제가─ 이 분위기를 위해, 절 희생해서 우리 유 과장님 노래에 맞춰서, "
" ... ? "
" 춤 출게요. "
내가 휘청대자마자 임팀장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내게 쏠린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임팀장이였다. 회식내내 최대한 챙겨줄 수 있는 한 나를 챙겨주려는 모습에 미안해져서 괜찮다고 하려했으나, 임팀장은 곧장 그 길쭉한 다리를 휘적대며 노래방 기계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목을 축이러 왔던 직원들이 신이 나 호응을 해주었고, 결국 나는 머뭇거리다 자리에 앉았다.
유 과장님의 선곡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였다. 이 나이대라면 모두가 아는 노래인지라, 몇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박수라도 열심히 쳐야할거 같아서 시작된 전주에 맞춰 박수를 치는데, 임팀장이 그 전주에 맞춰 아까 그 하얀 알파카가 췄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말 그 춤을 출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모두가 박수를 치다말고 그를 쳐다보다가, 이내 폭발적인 호응을 해주며 웃기에 바빴다.
어색한 몸짓으로 그 캐릭터의 춤을 따라하면서도 결국엔 민망한 웃음을 흘리는 임팀장이였다. 춤추는 모습이 동현씨때문에 내가 술을 먹었을때의 표정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여운 거였다. 뭘하든 귀여우면 정말 그 상대를 좋아한다던데,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미안한 마음도 이 애정을 이기질 못했는지, 나는 어느새 핸드폰을 들고 그를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물론 빙그르 도는 거 같은 머리때문에 금방 핸드폰을 쥔 손을 내렸지만. 결국 임팀장은 그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다른 직원들에게 붙잡혀 자리에 돌아오지 못했고, 나는 또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직원들틈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바쁘게 잔을 들어올렸다.
얼마나 마셨는지, 어느순간부터 빠르게 올라오는 취기때문에 지끈대는 것마저 즐겁게 느껴질 정도에 이렀다. 기분이 밑도 끝도 없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고개를 받치려고 손을 다시 이마로 가져가려는데, 내 손이 닿기도 전에 차가운 무언가가 내 이마에 먼저 닿았다. 내 고개를 주체할 힘이 없어서 눈만 조금 옆으로 돌리니 이젠 당연하게도 임팀장이 내 곁에 서있었다.
" 집에 갈래요? "
내 이마에 닿은 건 임팀장의 손이였던 모양이였다.
여전히 내 이마를 받쳐준 상태로, 집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오는 임팀장이였다. 괜찮다고, 아직 더 있을 수 있다고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이게 또 내 마음대로 안되는 거였다. 그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등받이에 내가 기댈 수 있게 자세를 고쳐주는 임팀장의 손을 따라 몸을 맡겼다. 종잇장마냥 내 어깨를 감싼 그의 손을 따라 내 몸이 움직였다. 그덕에 임팀장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어서, 그냥 또 웃고 말았다. 당황하는 표정도 귀여워.
" 이미 많이 마신 거 같은데. 정말 집에 안 가고 싶어요? "
" 네─. "
" 그럼 더 마실거예요? 다른 직원들도 이제 집에 갈거예요. 벌써 집 간 직원도 있고. "
" ... 저 아직 임 팀장님이랑 안 마셨어요. "
고분고분 임 팀장의 물음에 대답해주다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던 마음이 바닥으로 금방 내리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내 감정기복이 이렇게 크지 않는데, 왜 이러지. 그냥속상해졌다. 아까 동현씨랑 함께 건배하던 순간을 빼고는 오늘 임 팀장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없다는게. 내 말에 고개만 옆으로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임 팀장이 팔을 뻗어 소주잔 두개를 우리 앞에 가져다 놓더니 술이 찬 병을 찾아 테이블 위에 올려진 병들을 흔들었다. 그의 손에서 흔들리는 병들이 두 개가 되었다가 한 개가 되기를 반복했다.
" 영민씨, "
" ...? "
" 지금 병 두 개 든 거죠? 왜 자꾸 두 개가 한 개로 보이지? "
나는 진지하게 물어본 건데, 임팀장이 소주잔에 맥주를 따르다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진지한데. 그래서 웃지 말라고 핀잔을 주자, 여전히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웃고 있는 얼굴로 알겠다며. 웃는지 안 웃는지 보겠다고 눈을 세모꼴로 떠보이자, 잠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합죽이를 하는 것처럼 입술을 움직이는 그였다. 또 웃음을 참는 모양이였다.
" 임팀장님. "
" 네─ "
" 영민씨. "
" ... "
" 영민아. "
그냥.
왠지 그를 부르고 계속 싶었다. 별 다른 호칭 없이, 그냥 그의 이름도 부르고 싶었다. 그를 부를때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고개가 짧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잠시 턱을 괴고 몸을 돌려 그런 나를 바라보던 임팀장이 말도 없이 맥주를 따랐던 소주잔을 들어올리더니 자기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나랑 같이 마시자니까, 혼자 마셔.
" 아, 진짜. 나랑 같이 마셔야지 왜 혼자 마셔요? "
" ... 나도 모르게 마셔버렸네. 미안해요. "
" 그럼 우리 이거 마시는 동안은, "
" 네─. "
" 반말해요, 반말. "
밑도 끝도 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갑자기 차분하게 변하는게 좋았다. 언제나처럼 애정이 어린 그 눈빛은 차분해지는 순간에도 변하지 않는 걸 보았을때. 왜 차분해진 건지. 아니면 그냥 내 고개가 흔들려서 잘못 봤던 걸 수도 있고. 뭐가 되었든, 내 입 안에서 굴려지는 그의 이름이 좋았다. 그래서, 이 사람이 김 팀장말고, 여주씨 말고.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했다. 정말 뜬금없게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임 팀장은 대답 대신 내 앞으로 소주잔을 놓아주었고, 그는 자기가 비워버린 소주잔에 다시 맥주를 따랐다. 내 소주잔이 자꾸만 두 개로 보여서 테이블을 더듬거리자 그런 내 손을 감잡아 임 팀장이 소주잔을 찾아주었다. 오늘따라 임팀장의 손은 시원했다. 항상 따뜻하던 손인데. 아까부터 더운게, 내가 뜨거워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아까 동현씨가 했던 말 기억하죠? 아니, 기억해? "
" 무슨 말? "
" 첫 잔은 원 샷. "
임 팀장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의 잔을 찾아 내 잔을 부딪혔다. 그의 잔도, 내 잔도 두 개로 보여서 건배하는 것마저 애를 먹었다. 짠─ 소리가 짧게 들리고, 나는 바로 입으로 잔을 가져갔다. 그러나 입에 잔이 닿기도 전에 임 팀장이 내 손목을 잡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굳은 채로 그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딱 봐도 힘주지 않은 채로 내 손목을 잡은 그의 손은 내 손에 들려있던 잔을 빼내어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영문도 모른 채 잔을 그에게 뺏겨서 멍하니 그를 쳐다보는 와중에도 계속 흔들리는 고개가 갑자기 위아래로 맥없이 흔들리던게 멈췄다. 동시에 내 턱선을 따라 시원한 감촉이 느껴졌다. ... 그러니까, 임 팀장이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서. 그래서 고개가 흔들리는게 멈췄고, 내 볼이, 턱선이. 시원하게 느껴졌던 거였다.
눈이 마주치는 시간이 이상하게도 길었다.
살짝 나를 바라보느라 내리깐 그의 긴 속눈썹이 그가 눈을 깜빡일때마다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일정도로, 그정도로 서로의 얼굴이 가까웠다. 3초도 안 되는 순간, 뭔가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생각이 들때쯤, 그가 자신의 고개를 뭔가를 의식한 것처럼 뒤로 살짝 뺐다. 그리곤 그 얼굴엔 다정함과 장난스러움이 섞여 나오는 표정이 깔렸다.
" 여주야. "
" ... "
" 너 취한 거 같은데. "
" 아니 아직 안 취─ "
" 취했어, 너. "
여전히 내 얼굴을 감싸쥔 채로, 그의 능청맞은 표정과는 달리 꽤 단호하게 내가 취했다고 말한 임 팀장은 천천히 내 얼굴에 닿았던 손을 뗐다. 이상하게도 내 고개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술은 나중에 둘이 있을때. 그때 같이 마시자. 뒤이어 내 귀를 간지럽히는 나를 달래는 듯한 그의 말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끄덕임에 살짝 입꼬리가 올려 웃던 모습이 내가 그 자리를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이였다.
심한 갈증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땐, 컴컴한 어둠속에서도 단번에 알아차릴만큼 낯선 방 안 낯선 침대 위였기때문에.
*
주저리 |
안녕하세요, 드래곤 수프입니다. 제가 예상치 못하게 오른팔에 깁스를 하는 바람에 2주만에 친절한 영민씨를 올리게 되었어요ㅠㅠ 기다리신 독자님들이 계시다면 먼저 사과드립니다ㅠㅠㅠ 한 손으로라도 써볼려고 했는데, 한 줄 쓰는 것만 몇 분씩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깁스 풀고 바로 쓰기 시작했는데도 결국 월요일이 되서 2주로 넘어가버렸네요...(롬곡) 이제 두 손이 자유로워졌으니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주 2회 연재 하겠습니다. 기다림도 짧게, 완결도 빠르게. 몇 편이 완결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제 개강 전까지 부지런히 연재해나갈 예정이에요. 주저리가 길어지는 거 같아서 안 쓰려고 했지만, 저 동현이 많이 애정합니다. 이번 편 역할때문에 괜히 찔려서 넣는 거 맞아요... 그저... 이번 편을 위해 저런 귀여운 눈치없는 존재가 필요해서... 그게 어쩌다 동현이가 된 거지, 저는 다정하고 믿음직한 동현이 많이 아껴요.ㅋㅋㅋㅋㅋ (하지만 알파카 춤은 제 사심이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킨십에 굉장히 고민이 많아서 조금 느리게 끌고 있는 경향이 살짝 있는데, 이러나 저러나 작중 둘은 성인이니까요. 인티에서 허용되는 범위까지는 제 고민만 끝나는대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밀당 아니에요...! (전 밀당 못합니다ㅠ_^) 많이 늦었지만,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에서 봬요! |
암호닉 확인 |
1. 이번 편까지만 암호닉을 받고 한동안 받지 않을 계획입니다. (지금 암호닉분들의 암호닉을 제대로 다 외우고 싶어서요) 2. 암호닉 신청은 [] 안에 신청하시고 싶은 암호닉을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3. 누락된 암호닉이 있으시면 바로! 댓글로 알려주시면 확인하자마자 수정하겠습니다ㅠㅠ 4. 암호닉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티/돌하르방/40745/임금/ 챱챱이/영민아/짭짤이/네오/ 쁘니야/빵민/요를레히/영민뿌우/ 1MILK콩/경찰차/감자도리/밍스/ 15/REAL/꾸루/보호/ 파카야/배챙이/맑음/임알파카/ 1121/으갸갸갹/흥흥/달빛/ 스타일/크리스마스/메이/어어/ 바밤바/포동이/바구진/앒파카영민/ 체리/영민수니/923/0212/ 찰떡/809/1225/영미니겨로내/ 코튼캔디/습기/영부인/토마토요정/ 요롱코롱/비비빅/임영미니/daydream/ 나는 널/0618/임파카/얌얌/ 다솜/임영민1225/체리민/레몬티/ 모과꽃/임빵민/팤/숮어/ 날밤/금붕어/뇽민/새우깡/ 러브블러썸/한여름비/워터파카/슙달/ 토마토/♤ 기쁠희 ♤/쿠마몬/팤파카/ 보노보노☆/620/딮닼/민트향/ 치즈/관영/참치/유닝/ 앒팝카/영민이꺼/990419/미니/ 오월/윰/임절미/너구리/ 김까닥/엄마영민이랑결혼할래/121/밍아 신호등/콜미용국/푸린/뿌에엥 꿍낑꿍꽁/돼지바/0404/우왕 벤쿠버/파카/임팤팤/030901 몽구/꽁뚠/도메이러/루이비/ 토마토(독자140님)/알파카레/앞파카/몽나농 0틈메이러/왜불러/임영고시/뿌Yo/ 뿡치탁치/이과생/마이쮸/헬로/ 친영/영민영/파파/어둠/ 톰보2/대저 임체리/지훈마크/거북이/ 짭짤이토마토/초지일관/정팀장/녤/ 미키/조리pong/남융/핀아/ 유딩/닌닌/5반 25번/동그라미/ 레밍/형사/효이/이과생/자몽망고/ 128/수끼/수시/몽글몽글/핫초코/ 임서방/퍼지네이빌/푸르린/딥영라부/찌요나 팤영미니/#새벽 세시/luv_ym/유자/ DS/가람/방울파카/령민/ 라프리마베라/초롱이/연애학/0226/ 균킹/인연/잉어킹/샘봄/ 찌요나/힐링미/yuns/찬아찬거먹지마/ 넌내희망/1206/김곰/치즈/ 빨주노초파남보라/뭉게구름/콩알뼈/으낭/ 국캥거루/곤듀/밀르/안녕/ 203/군밤/얄루얄루/구르밍/ 첫눈/뚜기/달밤/햄찌/ 뿡뿡이/은처언재/영민봄/우동/ 망고망고/R=VD영민/11023/영미니맘마/ 잰/알파카파카/99/어부/ 팤하야/사랑사랑사랑/킬링/데헷/ 임0미인/아마수빈/괴물/비니/ 장순/자몽레몬청/리치/피치라벤더/ 영원/두부두부둡/용국맘/영부/ 만월애/늘봄/파이리/뿡빵이/ 천령/꾹복칭/슈우/기화/ 딸기모찌롤/감자감자/흑토마토/녜르/ 물파스/MeeU/예희/낭낭/ 경화수월/파카앞길창창/얄류/갓빵/ 클레멘타인/모니/러브미/리코/ 방구뿡/민트초코/햇살/초코/ 빵빰/얄류/507/12062508/ 유자청/호어니/참새짹짹/호두/ 다녤/666666/메리크리스마스/나로/ 팤마토/윙지훈/빨간머리/딸기맛초코파이/ 칸쵸/희동이/징징이/파카빵/ 박캐도/아듀/꾸스/머랑둥이/ 9525/레몬소스/5732/윙팤카/ 뉴욕/나로/뿜뿜이/영민이지/ 두동/자두/분홍/민녀/ 사용불가/새우/영미니/털없조 파카/ 020/영쓰/0228/임녕민/ 참새/흰색/응/우지니최고야/ 빵야/베리믹스/남고/수박바/ 백이/널조화해/러버/키드오/ 제로/951225 임영민/1231/영미니(독자151)/ 포뇨/삐까/임영민충성충성충성/살사리/ 121/ |
BGM |
그_냥의 한 걸음 한 걸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