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스트 - 여보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교수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분명했다.
과제는 본인만 내주는 줄 아나? 아니면 다같이 짜서 학생들을 괴롭히자 뭐 이런 식인건가?
중간고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과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30시간 넘도록 깨어있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반존대 연하남이 설레는 이유
13
w. 갈색머리 아가씨
아예 시간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간을 너와 있으면서 다 사용을 했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이렇게 자기관리도 못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러고보면 너는 과제가 밀려서 고생이라는 말을 했던 적이 없었다.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거 일수도 있지만 너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원래 알바를 하면서 과제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내 시간을 대가로 돈을 받고 있는 거니까.
그 시간을 나를 위해서 또 다시 쓰는 건... 어찌보면 예의가 아니지.
점장님께 허락을 구하고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너와 조별과제 회의를 할 때 말고는 이런식으로 과제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내일까지 내야하는 과제도 다 끝마치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원래 잠이 많은지라 자꾸 졸음이 쏟아져서 머리가 아픈 것도 지금은 참아내야했다.
"선배. 괜찮아요?"
"말시키지마. 지금은."
어릴 때부터 잔병은 많이 치렀지만 깁스 한 번 안해본 튼튼한 몸이었다.
오늘까지만 버티면 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잠 잘 시간도 없는데 밥먹을 시간은 어디있겠어.
나는 밥보다는 잠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너는 강동호와 함께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강동호는 핸드폰을 하며 내가 준 크로와상을 먹고 있었고 너 역시 과제를 하는지 테블릿과 무슨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저거 봐. 저렇게 쟤는 과제 열심히 하는데 난 지금까지 뭐했던 거야.
"잠깐 눈 붙일래요? 내가 대신..."
"됐어. 내가 할게."
"... 진짜 괜찮으세요?"
안괜찮은데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짜증나는 일은 없었다.
안괜찮은 거 알면서 왜 자꾸 물어보는 건데.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물어볼 뿐이잖아.
흘러내리는 잔머리마저 신경이 쓰였다. 손가락으로 쓸어넘기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짜증이 나지만 짜증을 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호의를 갖고 내게 질문을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서오세요."
"아이스티 복숭아 맛으로 하나 주세요."
"2800원 결제 도와드릴게요. 영수증 드릴까요?"
"아니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조금은 흐릿했던 앞이 제대로 보였다.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스티는 어렵지 않았다. 시럽 세 펌프에 정수물을 타면 되는 것이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만든 음료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주문하신 음료 드릴게요."
"괜찮으시죠?"
"네?"
"안색이 좋지 않아서..."
"아, 뭐. 괜찮습니다."
"잘마실게요."
"안녕하가세요."
기계처럼 말이 흘러나왔다. 늘 했던 말 또하고 또 하는 것이었기에 역시나 어려울 것이 없었다.
손님이 나가자마자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덜컥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자리에서 일어나있었다.
"안되겠어요. 선배 들어가서 30분만 자고 나와요. 내가 할테니까."
"레시피도 모르면서 뭘 해."
"선배 지금 진짜 얼굴색이 어떤지 알아요?"
"내일까지 이거 내야해. 네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선배."
"진짜 미안한데 너 자꾸 그렇게 말걸면 나 이거 못하거든? 좀만 조용히 해줘."
"..."
동호야. 나 먼저 간다.
너는 이렇게 말하며 짐을 챙기고 나가버렸다. 글을 쓰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네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을 것이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혼자 남은 강동호는 포크를 든 채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색하게 웃어보이고 있었다.
"하, 하하..? 민현이가 가버렸...는데요?"
"...알아요."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머리가 아파왔다.
-
알바시간이 끝날 때 까지 너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집에 가면 이제 11시가 다 되어있을 것이다. 12시까지 이메일을 보내야했다.
다행히 급한 과제는 끝이 났으니 집에 가면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뱃속에서는 배가 고프다고 온갖 아우성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우선 급한 것은 잠이었다.
거의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집에 가고 있었다.
곽아론에게 집 앞으로만 나와달라 부탁을 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
발걸음 하나씩 내딛을 때마다 땅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사람이 잠을 자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거기 아가씨."
"..."
"길 좀 물어봐도 될까?"
눈 앞이 다시 흐릿해졌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지? 손등으로 눈을 부벼댔다. 이제야 보였다.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 완전히 풀려있는 눈빛.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손에 들려있는 술병. 며칠동안 빨지 않은 것 같은 꾀죄죄한 옷차림.
누가봐도 수상한 남자였다.
"저 여기 사는 사람 아니에요."
늘 그랬던 것처럼 무시하고 지나가려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한 걸 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무시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남자가 내 팔뚝을 잡아왔다. 옷에 검은 자욱이 묻어났다.
아팠다. 남자에게 잡혀있는 팔이 너무 아팠다.
"사, 사람이 말을 하는데..!"
"이 동네 사람 아니라니까요?"
"어제도 이 길 지나가는 거 봤는데 어디서!"
씨발.
잘못걸렸다.
아. 진짜 별의별 일이 다 생기네. 짜증이 나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힘이 달렸다. 뿌리칠 수가 없었다. 메고 있던 가방을 휘둘러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억! 남자가 잠시 비틀거렸다. 덕분에 손에서 힘이 빠져 뿌리치고 나올 수 있었다.
"이!"
"이름아!"
"곽아론..."
남자가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곽아론이었다. 곽아론을 보자마자 그의 품으로 달려갔다. 곽아론은 바로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남자는 괴상한 소리만 빽빽 지르다 곽아론을 보더니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
끝난 건가. 괜찮아요? 라고 물어보는 곽아론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어. 그런데 곽아론이 왜 존댓말을 하지.
그리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그 뒤로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
눈을 떠보니 내가 있는 곳은 병원이었다.
..? 병원?
내가 왜 여기있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곽아론이 보였다.
... 네가 아니네.
순간적으로 든 생각에 내 볼을 세게 꼬집었다.
지금 네가 그런 생각을 할 때냐. 곽아론한테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 망정.
"일어났어?"
곽아론이 두 눈을 부비며 내게 물어왔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과제는...
"그 보내야 한다는 거 보냈어."
"어?"
"아까 네 남친이 보내던데?"
"뭘 보내?"
"네 노트북에 있는 그 한글 파일."
"..."
"무슨 일이야. 왜 갑자기 병원인데."
"뭔 소리야. 네가 데리고 와놓고."
"나? 나 아닌데."
"어?"
나 오빠 말대로 집 앞에서 기다리다 하도 안오길래 무슨 일 있나 전화하려 했는데 네 남친이 전화하더라.
네 핸드폰으로. 너 지금 병원이라고.
...
그럼 내가 품에 안겼던 사람도... 너였나보다.
그 이상한 남자한테서 구해준 것도... 너였나보다.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애는 쓰러져있지. 네 남친은 안그래도 하얀 얼굴 시퍼렇게 질려있지."
"..."
"잠깐 과로하고 너무 놀라서 정신 잃었던 거래. 링거 다 맞고 좀 쉬다 들어가."
"나 수업..."
"병원 진단서 끊고 가져가."
"..."
"요즘 잠 못자는 거 같더니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안쉬고 학교 가는 거 걸리면 이모한테 바로 콜 때릴 거니까 그런 줄 알아."
"..."
"남친한테 전화해. 여기서 너 일어나는 거 보고간다고 하도 해서 겨우 보냈으니까."
"..."
"성이름."
"지금 전화 못해."
"못할게 뭐있어."
"그런게 있어."
싸운 것도 아니고 안싸운 것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야.
괜히 이불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나 진짜 한심하다. 고맙다고 말을 해도 부족할텐데 지금 전화 하나 못한다고 이러니.
"오빠."
"왜."
"남친이 너 걱정 많이 했어."
"..."
"일어났다고 전화는 해줘야지."
"..."
"핸드폰 여기있어. 나 화장실 갔다올게."
"응."
곽아론은 내게 핸드폰을 쥐어주고 밖으로 나갔다.
핸드폰을 그러쥔 채로 화면만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너는 그 이상한 남자에게서 나를 구해주고 쓰러진 나를 업어서 병원까지 오고 내 노트북에 있는 과제를 메일로 교수에게 보내기까지 한 것이었다.
바보. 호구새끼. . 누가 그러래.
손등으로 눈가를 부벼댔다. 손등에 눈물이 축축하게 묻어나왔다.
왜 자꾸 나 기대게 만드는 건데.
화를 냈으면 화를 냈던 사람처럼 나한테 잠깐 신경 꺼도 되는 거잖아.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네 번호를 꾹꾹 눌렀다. 이미 저장은 되어있었지만 내가 직접 번호를 누르고 싶었다.
그 정도의 수고는 해줘야할 것 같았다.
신호음이 들려왔다.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여보세요?)
네가 전화를 받았다.
-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침묵을 깬 사람은 나였다.
"나야."
(네. 선배.)
"병원... 이야."
병신. 데려다 준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요.)
"...어디야?"
(선배.)
"응."
(나 못미더워요?)
"..."
(내가 선배보다 어려서 그런가? 그래서 그래요?)
"...민현아."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마요. 마음 약해지니까.)
"..."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알바 끝나도록 연락이 없어서 이야기 하려고 선배 집 쪽 가는데 진짜...)
"..."
(진짜 다른 거는 몰라도 선배.)
"응."
(몸 좀 챙겨요. 사람 걱정 그만 시키고.)
이럴까봐였다. 최대한 나 혼자 아둥바둥 버티려고 했던 이유가.
(내 말 듣고 있어요?)
"민현아."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
"나 너 보고싶어."
(...)
"보고싶어 미치겠어. 나 어떡해?"
(진짜... 성이름.)
"응."
(이름아.)
"빨리 와."
(기다려요.)
전화가 끊어졌다. 핸드폰 화면은 눈물로 얼룩이 져있었다.
베개 위에 얼굴을 묻었다. 머릿속에는 그 생각 뿐이었다.
네가 보고싶었다. 이토록 간절히 누가 보고싶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빨리 와. 아니면 내가 갈까? 지금까지 나는 달려오는 너를 기다리기만 했는데 이번에도 기다려도 괜찮은 걸까?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직 링거 수액이 좀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바늘을 빼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곽아론이 화장실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성이름!"
곽아론이 나를 불렀지만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출구가 어디더라.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손에는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언제 너에게 연락이 올지 몰랐다.
그리고 만났다. 너를.
"..."
"내가 진짜..."
"..."
"못살아요. 기다리라고 했잖아."
"싫어."
"몸 좀 잘 챙기라니까."
"너 거기 있어. 이번에는 내가 갈거야."
"..."
그대로 너에게 다가가 네 품에 안겼다.
너는 두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바닥으로 내려놓고 나를 끌어안았다.
네 옷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내 눈물 때문이었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엉엉 소리가 나도록 울어대며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듣기 싫은 괜찮아 가 아닌 정말 위로가 되는 괜찮아 였다.
처음이었다. 괜찮다 라는 말을 듣고 정말로 괜찮아진 것이.
-
"받아적어요."
(입술 불퉁)
"빨리."
(여전히 불퉁한 얼굴로 핸드폰 메모장 킴)
"밥은 적어도 하루에 두 끼는 먹는다."
(그대로 적기는 하지만 역시나 얼굴은 퉁퉁)
"잠은 적어도 하루에 5시간 이상은 잔다."
"나 원래 그것보다 많이 자는데."
"과제가 있는 날에도."
(입 꾹)
"집 가는 길에는 황민현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비..."
"무제한으로 바꿔요."
(자기가 내줄 것도 아니면서 하고 툴툴대며 적는다)
"데이트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한다."
"어?"
"적어요."
(뭔가 이상하지만 적는다)
"하루에 포옹 3회, 뽀뽀 1회 이상은 꼭 지킨다."
"..."
"빨리 적어요."
"뒤질래?"
"오빠 잘한 거 없어. 빨리 적어."
(베개를 던진다) "너부터 뒤져."
오늘도 이들은 평화롭습니다.
-
쫍쫍쫍.gif
<암호닉>
짱요 / 응 / 뿜뿜이 / 책상이 / 너우리 / 0713 / 모기 / 아몬드 / 황제님충성충성 / 책민현 / 샘봄 / 붐바스틱 / 아가베시럽 / 다녜리
수 지 / 과자 / 민현29 / 윙팤카 / 0846 / 슬 / 융융 / 댕댕민현 / 애정 / 숨 / 뿌얌 / 하핫
레인보우샤벳 / 사이다 / 쟈몽 / 하나 / 짐느러미 / 사용불가 / 3536 / 루케테 / 마카롱 / 돼지바
여주 심리가 잘 묘사되었으면 좋겠네요.
지금까지 여주는 저런 이상한 남자를 비일비재하게 많이 만났답니다.
그래서 초반에 민현이의 태도에 낯설어했던 거에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하고는 다르니까.
간만에 진지한 글이네요.
사실 쓰면서 어색했답니다...ㅎㅎ
사실 민현이는 복숭아 아이스티 손님한테 친절한 여주때문에 질투나서 삐진 것도 있다는 건 안비밀
암호닉은 이번화까지만 받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