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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과의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난 그 후, 며칠 간은 알바를 하는 중에 별다른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동안 바뀐게 있다면, 종현 오빠와 조금은 말을 트고 친해졌다는 것이다.
아, 종현 오빠는 나보다 한 살 위라고 했다. 지금은 취업 준비중인 일어일문학과 4학년이고, 놀라운 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뭐, 학교 근처 편의점이라 예상은 했지만..
둘 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서로 한탄을 하는걸로 시작하다가, 동질감인지 뭔지 모를 감정 때문인지 꽤나 빠른 시간 안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딷랑-
"안녕하세요, 오빠.. 어!"
"어, 왔어? 하핳.."
맨날 더워보이는 후드티 아니면 맨투맨티를 입고 있던 종현 오빠였는데, 왠일로 깔끔하게 수트를 쫙 빼입은 모습에 나는 잠시 입을 벌리고 오빠를 쳐다봤다.
와, 이렇게 보니까 진짜 잘생겼네 저 오빠...
잘생긴 남자를 보면 자동으로 두근대는 심장은 내가 철저하게 이성애자라는 걸 증명해주는 듯 했다.
"오빠, 오늘 무슨 날이에요?"
"..낮에 면접 봤어."
"아 맞다! 오늘이였지! 어떻게, 면접은 잘 봤어요?!"
맞다, 목요일 날 면접 본다고 그랬었지. 뒤늦게 기억이 난 내가 호들갑을 떨면서 물어보자, 오빠는 그런 날 보고 웃으며 '최선은 다했지.'라고 답했다.
"내가 촉이 왔는데, 아마 이번엔 오빠 붙을 것 같애요."
"뭐? ㅋㅋㅋ"
"진짜라니까요. 내가 촉 좀 좋아요."
"진짜지? 그럼 만약에 나 떨어지면 소원 들어줘."
"소원? 아 그깟 소원! 알았어요! 근데 어차피 붙는다니깐?"
"알았어 알았어, 말만이라도 고마워."
오빠는 큭큭 웃으며 내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었다.
"아, 오빠 그리고 이번 주말에 괜찮아요? 밥 먹는거."
"주말? 응, 괜찮아. 근데 사달라는 거 그냥 농담이였어."
"아니에요! 무조건 사줄거니까 거절은 거절할 거에요. 그럼 토요일 저녁 괜찮죠?"
"..그래 그래, 알았어"
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 없는데 그냥 입 싹 닫는건 절대 아니다 싶어서 약속 도장까지 받아내고는, 편의점을 나가는 종현 오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또 몇명의 손님을 받고 남는 시간에 밀린 과제라도 할까 싶어서 노트북을 꺼내려는데,
Rrrrrr-
[황미년]
사실, 그렇게 좋아한다고 덜컥 말을 내뱉은 그 날 이후로 황민현과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
아니, 일방적으로 내가 씹은 게 맞지만...
그래도 직접적으로 전화까지 온 적은 처음이여서, 우선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뭔 대답을 안 해?
전화가 끊긴 건가 싶어 다시 확인해보니, 통화는 계속 연결 중이였다.
다시 전화기를 귀에 갖다대고 자세히 들어보니 황민현의 숨소리는 들렸다.
"야, 뭔 걸어놓고 말을 안해!"
-나 술 머거써.
"뭐?"
-어디야 너..
"..나 알바중이지."
-...
"술도 못 마시는게 또 분위기다 뭐다 하면서 주는 거 다 받아마셨ㅈ.."
뚝-
갑자기 끊긴 전화에 황당한 표정으로 가만히 화면을 응시하다가 이내 휴대폰을 짜증스럽게 내려놨다.
이게 어디서 술 취해가지고 일하는 친구한테 전화질이야.
하여튼, 주변에선 황민현이 완벽하고 다정하고 멋있는 애로만 소문 나있지만, 내가 얘의 실체를 까발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다고.
혼자 궁시렁 궁시렁대다보니 또 시간이 훌쩍 흘러가고 있었다.
딸랑-
"어서오세요!"
과제를 하던 터라 눈은 노트북에 고정한 채로 대충 들어오는 손님에게 인사만 하고 다시 과제에 집중했다.
그러자, 갑자기 내 앞으로 확 끼쳐오는 술냄새에 표정을 잔뜩 찡그리며 고개를 드니,
"..김수민~"
"아 깜짝이야!"
눈은 다 없어져가지고 실실 웃으면서 내 앞으로 다가온 황민현 때문에 그만 놀라서 노트북 화면을 칠 뻔 했다.
거의 술이 떡이 된 모습에,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황민현을 노려보는데,
그런 날 보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왜 그렇게 무섭게 쳐다봐.."
"술냄새 나, 집에나 가."
"..진짜 가?"
사실, 술냄새고 뭐고 그냥 오랜만에 보는 황민현의 얼굴에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지만.
또 괜한 심술을 부렸다.
그런 날 다 꿰뚫어 본다는 듯이, 잔뜩 풀린 눈을 하고서, 진짜 가? 라고 묻는 황민현.
짜증나.
"..가지마."
바닥만 쳐다보면서 작게 읊조렸다.
황민현이 밉고, 짜증나고, 싫은데. 황민현이 가는 건 더 짜증나고 싫다.
내가 뱉은 말이지만 괜히 쪽팔려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술 취해서 그런가.."
"...?"
"왜 예쁘지."
바닥만 보고 있다가, 저 한마디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드니, 날 보며 씨익 웃고 있는 황민현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지금 내 얼굴은 술 때문에 빨개진 황민현의 귀만큼이나 빨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내 눈을 계속해서 똑바로 맞춰오는 황민현 때문에 결국 또 나는 먼저 시선을 피했고, 괜히 물건을 정리한답시고 다른 곳으로 자리까지 피했다.
"..."
갑자기 정적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이미 잘 정리되어 있는 윗쪽 선반에 있는 과자들을 괜히 다시 재배치 중이였다.
그런 나를 아직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 같은 황민현의 시선이 안 보는데도 느껴져서 죽을 것만 같았다.
뒤적 뒤적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는 척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엄마!"
"...손 안 닿는거 같애서."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와 내 뒤에 선 황민현은, 손을 뻗어서 내가 집으려고 했던 과자를 먼저 집어서 나한테 건네주었고.
멍청한 나는 황민현이 날 뒤에서 껴안기라도 하는 줄 알고 그만 뜬금없이 엄마를 찾아버렸다.
굉장히 이상해져버린 분위기 탓에 경직되어서 그냥 황민현이 건네준 과자를 끌어안고만 있었다.
"나 이제 갈까?"
"..어?"
"너 일하는 거 방해하는 거 같다. 이제 갈게."
황민현도 이상해진 분위기를 느낀건지 뭔지 머리를 긁적이며 나에게서 한발자국 떨어졌고,
계속 굳어 있던 나는 발걸음을 옮기려는 황민현을 보고, 급한 마음이 들어 들고 있던 과자를 내팽겨치고
황민현을 뒤에서 끌어안았...
"...?"
뒤돌아 있는 황민현을 가지말라고 뒤에서 붙잡는 게 내 시나리오였는데 말이지.
황민현은 내 예상과 달리 내 쪽을 보고 있었고,
급한 마음에 달려가 황민현을 붙잡은 나는 결국 황민현을 정면으로 끌어안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근두근,
내 심장소리인지, 황민현의 심장소리인지, 우리 둘의 심장소리가 합쳐진 건지
알 수 없는 심장 박동소리만이 내 귓가에 들렸고,
술에 취한 건 황민현인데, 난 미친 척하고 황민현의 품에 얼굴을 처박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떨어지시죠."
네?
갑자기 나와 황민현 사이를 갈라놓는 억센 손아귀에 영문도 모른 채 그 인물을 바라보니,
종현오빠?
"오, 오빠."
"위험한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라고 했잖아. 빨리 신고해."
아, 이건..
복잡해졌다.
아마, 종현 오빠는 황민현을 저번의 그 취객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만 같은데.
"아, 오빠! 걔는 제 친.."
"누구신데요."
"누구시냐구요."
내 다급한 말을 끊은 황민현은 언제 술이 깬건지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종현 오빠를 쳐다보고 있었다.
종현 오빠는, 나와 황민현을 한 번 번갈아 쳐다보더니 뭔가를 눈치챈 건지, 황민현을 잡고 있던 팔에 힘을 풀고는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김종현 인데요."
"..이름 궁금하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
"야, 야 황민현! 너 왜 그러냐.. 하핳, 오빠 죄송해요. 제 친군데 술을 많이 마셔가지고.. 원래 이런 애는 아니에요."
뭔가 싸늘하게 얼어붙은 분위기에, 나는 제 발 저린 사람처럼 애써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황민현을 다그쳤고,
종현 오빠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황민현은 이제 시선을 돌려서 날 내려다본다.
그 눈빛이 너무 차가워서, 난 살짝 움찔하고는 종현오빠 쪽을 가리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쪽은 내 전타임에 알바하시는 분이야. 종현 오빠라고.."
"..."
"죄송해요. 제가 오해를 했나 보네요. 저번에 취객한테 위험한 일 당할뻔 했던 적이 있어서요."
"...그랬었어?"
"아, 아니 뭐 심각한 건 아니였고! 그, 오빠가 지나가다 도와주셔서.. 잘 해결됐어!"
내 말은 들은 황민현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종현오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수민이 일할 때까지 같이 있어주기로 했어요. 이제 가보셔도 될 것 같네요."
"..."
"그, 그래요. 오빠! 밤도 늦어서 피곤하실텐데 어서 들어가세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종현 오빠는 내게 인사를 건네고는, 황민현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는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둘만 남은 편의점에서, 내가 왜 황민현의 눈치를 봐야하는 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기분이 나빠보이는 녀석의 눈치를 살피기만 했다.
"야, 나 괜찮으니까 너도 얼른 집에 가서 쉬어."
"...그러게 내가 알바하지 말라고 했지."
"뭐?"
"하여튼, 진짜 말 안들어."
"..."
"맨날 신경쓰이게 하는 게 니 특기지?"
거의 처음으로 보는 것 같은 황민현의 화가 난 듯한 모습에, 난 괜히 쫄아서 아무말도 받아치질 못했다.
황민현은 앞머리를 쓸어넘기고 한숨을 푹 쉬더니, '나 의자에서 좀 잘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깨워.' 라는 말을 던지고는,
의자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는 눈을 감았다.
모르겠다, 황민현이 왜 화가 난 건지.
그냥 진짜 내가 말을 안 들어서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취객 취급 받은거 때문에 화가 난 건지.
확실한 건, 황민현은 지금 술이 깬 상태라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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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주변이 없어서 일일이 답댓글은 못달아드려도 항상 감사하게 댓글들 읽고 있어요 ㅠㅠ
부족한 글 좋아해주셔서 그 힘으로 이야기를 계속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다들 사랑합니다..하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