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면 뭐가 떠올라?
"..어두워"
별이 어둡다고? 병신
결국 니년도 니 에미랑 똑같아
내가 엄마랑 똑같다고?
내가 엄마랑 똑같다고 하기엔
..난 아빠를 너무 많이 닮아버렸는걸
불가항력
: 사람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힘
아빠, 별은 왜 밝아?
별? 우리 여주가 매일매일 쳐다봐줘서 저렇게 예쁘게 빛나는거야.
진짜? 그럼 매일매일 바라봐줄래! 더, 더 환해져서 우리 가족 예쁘게 비춰달라고!
웃기게도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화가 나게도 이 좁은 골목길은 빌어먹을 별 덕분에 환하게 빛난다. 왜 빛나는거야, 너는. 나는 이렇게 어두워져 버렸는데. 왜 어이없게 너 혼자 그렇게 빛나는데, 왜. 아무 의미 없는 추억들을 회상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별은 더욱 칠흙같은 밤하늘을 밝혀주었고 덕분에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았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내 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차라리 상처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아프지도 않을텐데 사람은 이상하게도 눈에 보여지는것에 아주 취약했다. 분명 아까전에 생긴 상처들일텐데, 왜 이제서야 생긴 것처럼 이렇게 아려오는건지. 결국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한걸음, 두걸음 위태롭게 무거운 발걸음을 떼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차라리 이렇게 아파하다가 사라지고싶다. 저 바람에 휩쓸려서 별이 되고싶다. 더 이상은 몸이 버틸수가 없었다. 꼭 잠 오는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웠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몸을 뒤로 젖혀 누워버렸다. 아름다웠다. 그저 걸으면서 고개를 들어 쳐다본 하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아름다웠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흐릿해진 눈 앞에 쏟아져 내렸다. 그 별들 아래로
별빛을 받은, 알수없는 표정을 짓고있는 놈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 우리집, 갈래."
놈은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학교에 나오면 종일 누워있거나 옥상에서 담배냄새를 잔뜩 묻혀오거나, 그 둘 뿐이였다.그리고 분명 저번주에 학교에서 보았을땐 검정 머리였는데 언제 새빨갛게 물들인건지. 붉은 머리, 붉은 입술 그리고.. 붉은 상처들. 궁금하진 않았다. 놈 역시 내 상처에 대해 묻지 않았으니까.지금 물어도 대답이 쉽사리 돌아오지 않을거라는걸 서로 잘 아니까.
사실 우린 친하지 않았다. 아니, 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같은 반에 문제아 두명이 있고 그 두명이 우리였다는거. 그저 선생님들 입에 함께 불릴 뿐이였다. 아, 그 꼴통들? 하곤. 적어도 나는 문제아는 아니였다. 그렇다고 치부해버린건 빌어먹을 담임이였지. 평소엔 아는체도 하지 않다가 이렇게 마주했는데 웃기게도 놀랍지 않았다. 이상함의 연속일 뿐이였다. 놈이 지금 이 시간에 이곳에 있는것도, 놈이 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나도. 모르는 사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의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본인 집에 올 의사를 묻는 놈도. 다 이상했다. 너무 이상해서 놀라지 않은건가.
"..응"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나인데도 바닥에 버려져 있기는 싫었던건지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사실 대답이라고 하기도 웃길정도로 작고 힘이 없는 소리였다. 신음에 더 가까운 소리인가. 놈은 이무것도 묻지 않았다. 부가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안쓰럽게 쳐다봐 주지도 않았다. 그저 힘겹게 누워있는 나를 말없이 조심스럽게 안아 업을 뿐이였다. 평소에 하는 언행, 말이 많진 않지만 늘 욕짓거리가 섞인 말투와 거칠고 투박한 행동들과는 대조되게 나를 만지는 손길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그 손길이 너무나도 애정어려 몸이 살짝 떨렸다. 꼭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는 행동과 비슷했다. 업힌 임영민의 등은 정말로 따뜻하고 넓었다. 어릴적 아버지 등에 업혔던것이 생각났다. 웃기게도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가 떠올랐다. 서로에게 오가는 말은 여전히 없었다. 둘의 온기와 숨소리, 별빛만이 좁은 골목을 희미하지만 짙게 채울 뿐이였다. 점점 눈이 감겼다. 불가항력이였다.
아이들은 모두 임영민의 불친절함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말투를 싫어했고, 그의 행동을 싫어했고, 어울리지 않는 묘한 다정함을 싫어했다. 야, 너 선생님이 불러. 이게 임영민과 나의 첫 대화였다. 대화라고 말하긴 웃기지만, 이 일 말고는 접점이 없었다. 그는 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임영민의 화를 부를 생각은 없었다. 잠자코 놈 옆에 앉을 뿐이였다. 웃기게도 담임은 우리 둘을 짝으로 붙여놓았다. 쓰레기들끼리 뭉쳐있으라는 소리인가. 놈에게는 늘 섬유유연제와 담배 냄새가 섞인 묘하게 좋은듯한 향이 짙게 났다. 근데 오늘은 평소와는 살짝 다른 냄새를 풍겨왔다. 역겹고 비린 냄새였다. ..야, 너한테 무슨 냄새 나. 아까 말을 붙일땐 눈도 마주치지 않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역으로 질문하였다. 무슨냄새? 정액냄새? 돌아오는 질문은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우린 고작 18살이였다. 여기서 멈췄어야 한다. 하지만 한번 터진 입은 멈출줄을 몰랐다. 그 냄새가 왜 너한테 나는데? 입꼬리를 당겨 웃는 놈의 얼굴이 비릿했다. 병신, 떡치고 왔으니까 그렇지. 정상적인 대화가 아니였다. 그래, 너는 나보다 더한 미친놈이였다. 아니, 나는 미치진 않았다. 미친 아버지 밑에서 미치도록 맞을 뿐이였다. 아버지는 다정했었다. 한없이 다정했던 어릴적 아버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떠난 이후 아버지는 미쳤다. 나를 죽을때까지 팼다. 집에 있는 물건을 던져 부시는건 옛날 얘기다. 집에 있는 모든것이 박살나 더이상 부술 것이 없자 아버지는 내 몸을 부셔질정도로 팼다. 몽둥이로도 패고, 주먹으로도 패고, 심지어는 발로 온몸을 걷어차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눈물을 참고 신음을 참으며 하루하루 버티는것을 제외하고는. 눈을 감았다 떴다. 아직 그의 등에 업혀 있었다. 그는 나를 업고 가파른 언덕을 말없이 오르고 있었다. 힘들지도 않은건지 숨이 고르다. 놈은 외관이 깨끗하지 못한 집 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곤 능숙하게 나를 한 손으로 받쳐들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고리를 당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온통 임영민 냄새로 가득했다. 담배냄새와 섬유유연제의 묘한 조화는, 이상하게도 나를 안정시켰다. 내부 인테리어는 너무 단조로워 설명하기도 웃겼다. 전자레인지와 싱크대. 행거와 일인용 침대. 그 뿐이였다. 놈은 조심스럽게 나를 침대 위에 눕혔다. 침대위에 눕자 냄새가 더욱 짙게 풍겨왔다.
" 병신, 너 안자지."
아, 힘없는 탄식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눈을 느릿하게 떴다. 임영민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금새 작은 방 안이 담배연기로 자욱해졌다.
" 어디서 처맞아 가지고선."
쯧,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오가는 말은 없었다. 그는 방금 핀 담배를 바닥에 지져 끄더니 벌떡 일어섰다. 순식간이였다. 놈의 몸이 내 위를 가뿐히 점령했다. 저항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불가항력이였다. 가까이서 보이는 임영민은 웃고있었다. 근데 울고있었다. 그래, 분명했다. 어두웠지만 확실했다. 놈은 울고있었다. 서로의 눈이 정확하게 맞물렸다. 그 누구도 먼저 피하는 법이 없었다. 무서울법한 상황이였지만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놈의 시선을 피하지 않자 눈썹을 한번 꿈틀, 하더니 조소를 짓는다. 저번에 학교에서 봤던 비릿한 웃음이였다. 내가 처음으로 입을 뗐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허공을 채웠다.
" 너 나 알아? "
" 당연하지."
놈이 실소를 터뜨린다. 입꼬리만 움직이는 웃음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 웃었다. 작게 터진 웃음은 점점 커진다. 꼭 미친사람처럼 고개를 처 들어 웃었다. 찰나의 순간이였다. 그 짧은 순간에 바로 웃음을 멈추고 다시 눈을 마주했다. 아까보다 더욱 가까워진 얼굴이였다. 역시,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법이 없었다.
" 넌 나 아냐? "
".. 당연하지."
놈과 꼭 똑같은 대답을 했다.
" 그럼 잘 알겠네, 나 어떤 새끼인지."
내 몸 옆에서 지탱하고 있던 두 손중 한 손이 내 턱을 투박하게 잡는다. 턱이 아려왔다. 놈의 얼굴이 확 가까워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 또한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쁜 숨소리만이 귓가에서 맴돌 뿐이였다. 그 숨소리조차 한순간에 멀어져갔다. 몸 위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사라졌다. 침대가 한번 들썩하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살며시 눈을 떴다. 놈은 뒤통수만을 보여주었다. 담배를 다시 꺼내들었다. 어두운 방안에 잠시 밝은 불꽃이 드리웠다 사라진다. 하얀 연기가 다시 방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곤 현관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여는 손길이 거칠었다. 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처 자, 문이 거칠게 닫혔다. 순식간에 방안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눈을 느리게 떴다 감았다. 암전이였고, 불가항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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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인작가 불항입니다! 사실 아주 예전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독자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갔었답니다.. 넘나 따순 인티..
사실 이걸 단편으로 쓰려고 한건데 반응이 좋다면 장기연재로..
암호닉은 당연히 받습니다! 많이많이 받습니다!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