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나는 아직도 그 때,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부족한 것 없이 예쁜 옷만 입고 맛있는 것만 먹고 자랐던 내가 부산 깡촌으로 이사를 갔던 그 날을 말이다. 험한 길을 덜덜 거리며 달리던 아빠의 차와, 숙연하게 고개만 숙이고 있던 엄마와, 인형 하나를 손에 꼭 쥐고 처음보는 창 밖의 풍경에 넋을 잃었던 나를 말이다. 자기가 아끼는 미미 인형을 꼭 보여주겠다던 민희도, 나중에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손가락까지 찍었던 수영이도 다 보고 싶었다. '거기가면 친구들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거야' 라며 정신 똑똑히 차리라는 말로 날 겁주었던 엄마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이 싫었다. 날 둘러싸던 그 모든 것이 말이다.
우리 집 10분 거리엔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신 사립 초등학교가 있었다. 다들 예쁜 교복에 노란 가방을 매고 다니며 하하호호 웃기 바빴다. 나도 내 친구들과 함께 그 곳에 갈 줄 알았다.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친구들과 함께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날을 원했다. 그런데, 고작 8살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신기하다. 난 모든것이 내 뜻대로 되지 못할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새웠다. 엄마 아빠는 짐 옮기기에 급급했고 나는 눈치껏 정자에 앉아 주변 경치나 감상하고 있었다. 처음보는 종류의 벌레들이 이리저리 기고 날며 내 주위를 빙빙 돌았고 습한 공기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날 덮었다. 최악이였다, 말 그대로 최악. 민희와 수영이의 얼굴을 그리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가가촉촉해졌다. 안 울려고, 안 울려고, 어떻게든 안 울려고 하늘을 올려다 보려는데 저 멀리서 시선이 느껴졌다.
"……"
"……"
"…누구세요?"
나보다 쬐끄만 남자 아이 하나가 정자 기둥 뒤에 숨어 얼굴만 빼꼼 내민채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살짝 찢어져 매서웠는데, 어린 나에게는 동화속 마귀할멈의 아들 같이 보였다. 그저 날 바라만 보는건데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뭘 보노."
"응?"
"뭘 보냐고 인마. 고마 봐라."
"니가 먼저 봤잖아…"
"허이고 참나, 니가 먼저 그래 꼬롬하게 보고 있으이께 내가 보는거 아이가."
"뭐, 뭐라고…?"
"됐다 가시나야."
그 남자 아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나를 혼란스럽게 해놓곤 그렇게 아파트 안으로 쏙 들어갔다. 무슨 말인진 잘 모르겠으나 시비를 거는듯한 말투에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8년 인생동안 처음 듣는 말이였다. 꼬롬은 무슨 뜻이며 보노는 왜 말하는 것인가. 나 보노보노 닮았다고 그러는건가? 무튼 그 아이는 나에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그 살짝 올라간 눈은 자기 전까지도 자꾸만 생각이 났다. 엄마 아빠한테도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 얼굴에 그늘이 넓게 쳐져있어 아무 말도 걸 수가 없었다. 난 나이는 어렸지만 눈치는 제법 어른스러웠다.
짐을 다 옮긴 후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곤 좁은 방에 이불을 깔아 누웠다. 엄마도 아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
잘 자란 인사에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다만 엄마가 있는 쪽에서 나지막히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아빠는 내 쪽으로 누워있던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나 때문에 이러는건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걸까.
많은 생각을 이루며 잠에 들었다.
허름한 초등학교에 가서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냥 저냥 자기 소개를 하고, 몇몇 여자 애들이 내 자리에 모이고, 그냥 그게 다였다. 평범한 초등학교 전학에 뭘 더 바라겠는가. 다만 한 가지 부러운것이 있었다면 학교를 마친 후 정문 앞에서 많은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을 기다리고 계셨다는거다. 오늘 등교 할 때도 엄마는 나에게
'오늘만 엄마가 데려다 주는거야. 엄마가 너무 바빠서 이제 같이 학교에 오고 갈 수가 없어. 집에 올 때 혼자 와야 되니까 길 잘 기억해야해, 알았지?'
라고 말했다. 조금 서럽긴한데 고작 집에 혼자 가는걸로 울거나 우울해지고 싶지 않았다. 씩씩하게 눈물을 닦으며 혼자 정문을 나서긴 했는데… 도무지 어떻게 집에 가야할지 모르겠다. 엄마와 등교할 땐 한 30분 정도 걸렸던거 같은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봐도 길이 생각이 안 났다. 우선은 친구들이 우르르 모여 이동하는 쪽으로 쭉 걸었다. 등교길에 봤던 문구점과 사진관이 있는것 같기도 하였다. 홀린듯이 친구들을 따라 걷고 또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거 아이다."
"어?"
"거 아이라고 바보야. 니 집에 갈라 카는거 아이가?"
"응 나 집에…"
"빙시야 글로 가면 못 간다. 애가 왜케 띠리하노 얼굴도 맹하고."
"뭐라고? 띠리?"
"내 따라온나 지지바야."
어제 본 그 남자애였다. 역시 나보다 쪼끄매서는 나를 슬쩍 올려다보며 내 손목을 잡곤 끌고 갔다. 매서운 눈으로 뭐라뭐라 말은 한 거 같은데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집에 데려다 주겠단 말인거 같아서 그 손을 뿌리치진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그런데, 계속 걷다보니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얘가 정말 날 집에 데려다 주는게 맞을까? 이상한 마귀할멈 집에 데려가서 '엄마 오늘도 여자 애 한 명 데려왔어~' 라고 자랑하진 않을까, 그렇게 마귀할멈에게 잡히고, 감옥에 갇히고, 엄마 아빠를 영영 못 만나고……
"이거 놔!"
"야가 와이카노."
"내가 니 꿍꿍이를 모를 줄 알아? 놔!"
"미칬나 이게… 점심 떄 뭐 먹었노? 아!"
"놓으라고!"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정수리를 반대 손으로 콱 내려 찍었다. 머리통을 만지며 아파하는 사이에 나는 반대편으로 멀리멀리 도망을 쳤다. 내가 뛸 수있는 전력을 다해 힘껏 뛰었다.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니 멍한 표정으로 내가 뛰는걸 바라보던 아이가 갑자기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폐가 으스러질 정도로 뛰고 있는데 그 아이는 너무나 모순적이였다. 이미 멀리 뛰어간 나를 따라 잡는데도 그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하며 엄청난 속도로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헥헥 거리는 내 옆에 따라와선 또 말을 걸었다.
"니 달리기 왜케 못 하노. 닌 다리로 안 뛰고 얼굴로 뛰나."
"하…뭐라고?"
"내 안 따라오면 니만 손해디, 알제? 니 혼자 부산 한 바퀴 빙 돌고 싶나? 니 알아서 해라, 난 모른다."
"야, 잠깐만…"
"내는 갑니데이―"
내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그 아이는 다시 뒤를 돌아 아까 그 속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은근히 그 얼굴에 미소를 짓는데 왠지 저 말이 진짜인거 같아 나도 모르게 뛰는 걸 멈추었다. 아이가 가는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걔가 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래서 진짜 안 올끼가? 진짜로? 내는 진짜 모른디. 니 어예되든 난 모른디. 난 모른다 캤다. 어? 니 진짜 안 오든 말든 내는 상관 없는데 진짜 안 올끼가?"
"……"
"꿀 먹었나, 말 좀 해봐라."
"갈게…"
나는 다시 그 아이가 있는 쪽으로 총총 뛰어갔다. 그냥 나도 모르게 그 말에 신뢰가 갔다.
그래, 어제 우리 아파트에서 만났으니까 괜찮은 친구 아닐까? 알고보면 착한 친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뛰어가다보니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돌부리에 발이 걸렸다.
"으악!"
"아따 마 저 가시나가 진짜."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 앉으려고 하는데 또 그 아이가 내게 달려와 손을 잡았다. 손 힘은 또 어찌 그렇게 센지 차라리 넘어지는게 덜 아프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악스럽게 잡힌 손이 아파서 쓰읍거리니 그 아이는 또 황급히 손을 치웠다.
"니 원래 이렇게 손이 마이 가는 아가? 아따 마 윽시로 귀찮네."
"미안해…"
"내가 그런 소리 들을라고 이 칸줄 아나, 어휴… 됐다 손이나 도봐라."
나도 모르게 미안하단 말이 입에서 나왔는데 그 아이의 표정이 은근히 풀리는 것이 보였다. 손을 도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가만히 있으니 자기가 아까 세게 잡은 나의 손을 낚아채 가까이 살폈다. 살짝 붉어진 손을 슬쩍 보더니 후하고 바람을 불어주고는 또 내 손을 던졌다.
"가자."
"……응!"
그 아이의 목소리는 아까완 달리 살짝 누그러져 있었다. 귀에 필터가 낀건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텐 그렇게 들렸다. 마냥 나쁜 애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가방끈을 잡았다.
"무겁다 가시나야. 거 말고 여 잡아라."
가방끈을 잡은 내 손이 느껴졌는지 그 아이는 내 손을 잡아 끌어 자신의 손목을 잡게 했다. 그리고는 또 내 쪽으론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걷는다. 그 아이의 빠른 걸음에 나도 모르게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걔가 고개를 일체 돌리지 않은 덕분에 나는 그 아이의 옆 모습을 실컷 구경하며 집에 갈 수 있었다. 조그만 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 먼 길을 걷는 30분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어색한것은 아니였다. 굽은 길을 돌아돌아 아파트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드디어 그 아이가 입을 열었다.
"니 몇층 사노."
"나 8층 살아, 너는?"
"됐고, 니 내일 집에서 몇시에 나갈낀데."
"오늘은 엄마랑 여덟시에 나왔는데…"
"알았다."
타이밍 맞게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빠르게 올라탄 그 아이는 순식간에 8층과 9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슬쩍 보니 확실히 나보다 키가 작은 것이 느껴졌다. 내 목 부근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정수리를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뭐고, 와 웃노."
"어? 나 안 웃었는데?"
"뭐라카노 니 방금 웃었잖아 인간아."
"아니 안 웃었다니까? 진짜 억울해."
"니, 니 진짜 뭐가 억울하노 어? 내가 젤 억울하다, 아이고 마 이래 답답해가지고 내 살겠나."
조그만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툭툭 쳐대는 아이가 이상하게 조금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키가 나보다 작아서 그런가?
8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할거 같아 입을 막 떼는데
"잘 ㄱ……"
인사를 채 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쟤는 정말 착한걸까 나쁜걸까 하는 의구심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집에서 혼자 교과서를 보고 있는데 얼마 안 되서 엄마가 집에 왔다. 물에 불려둔 미역 마냥 엄마의 몸엔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엄마 나 오늘 엄마 없이도 집 잘 찾아왔어! 나 저녁도 혼자 차려 먹었고 교과서도…"
"응 잘했어 00아, 근데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데 우리 나중에 얘기할까?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미안하단 말을 마지막으로 쇼파에 스르르 누워 잠이 들었다. 죽은건지 기절한건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곤히 잠이 든 엄마에게 작은 담요를 덮어주었다.
하고싶은 말이 많았지만 잠이 든 엄마의 표정엔 어제 봤던 그 그늘이 우중충하게 덮혀있었다. 어제보다 더 짙어진 것 같았다.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방으로 들어갔다.
밤이 되어 엄마와 함께 잠을 청하려는데 뒤늦게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끼익하는 소리와 동시에 풀썩 주저 앉는 소리도 들렸던거 같다.
여덟살인 내가 할 수 있는건 가만히 있는거 밖에 없는것 같아 그저 이불을 뒤집어 쓰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아까 그 엄마의 모습처럼 가만히, 그렇게.
아침에 눈을 떠보니 엄마와 아빠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식탁에 차려져있는 식은 밥과 김치 몇 쪼가리를 먹고는 이를 닦고 가방을 싸고 어제 입었던 옷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엔 엄마의 글씨로 쪽지가 하나 남겨져 있었다.
'엄마가 못 챙겨줘서 미안해. 다음주부턴 엄마가 밥도 해주고 머리도 묶어줄게. 우리 00이 사랑해'
사랑해란 단어를 보는데 엄마의 그 어둡던 얼굴이 떠올라 또 눈가가 촉촉해졌다. 다음 주든 다음 달이든 상관 없으니 그냥 엄마가 밝게 되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쪽지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현관 문을 열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왠 낯익은 뒷통수가 한 명 앉아있었다.
"…너 거기서 뭐해?"
"아따 가시나 마 학교 늦게 가고 싶나. 왜 이래 안 나오나 했네. 니 인간아 여덟시에 나온다매, 지금 몇시고?"
"나 3분 늦었는데…"
"됐고, 가자."
어젠 좀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또 느껴지는 매서운 눈빛과 무심한 표정에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고 걸었다. 씩씩하게 몇 걸음 앞서 나가는 아이의 뒷통수를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어제 웃어서 화가 난건가? 아님 내가 너무 귀찮은건가? 귀찮으면 왜 우리 집 앞에 있었던 거지? 대체 왜 저러는거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걸음이 느려지는 동안 그 아이는 뒤를 홱 돌아봤다. 천천히 발을 옮기는 나를 보곤 그 아이는 슬쩍 걷는 속도를 낮추었다.
"야."
"어?"
"내가 좀…걷는게 좀 빠르다."
"어…."
"그냥 그렇다고."
그 아이는 또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자기 손목에 안착시켰다. 그리곤 내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여유있게 길을 걸었다.
"내 손목 좀 봐봐라, 니가 세게 잡아가지고 여 다 벌개졌다. 어? 보이나 여기?"
"내가 그랬다고?"
"그래 인간아, 내가 빨리 걸으면 좀 잘 따라올 것이지 거북이처럼 그래 느적하게 걸으니까 어? 여기 이케 세게 잡아가지고 말이야."
"그럼 빨리 걸으면 되지, 왜 천천히 걸어 오늘은?"
"뭐라카노, 내 원래 이래 걷거든?"
"근데…"
"됐다, 가자."
학교에 가는 30분 내내 그 아이는 어제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않았다. 하나 달라진 것은 종종 시선을 아래로 내려 자신과 나의 발 걸음을 흘겨 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빨리 걷다가, 또 아래를 보며 느리게 걷다가. 그것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언제쯤 고개가 내려가는지 타이밍을 알 것도 같았다. 아이가 또 다시 빠르게 걷다가 시선을 내릴때쯤 곧바로 나도 허리를 숙여 그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이…이 가시나가 와, 와이카노 이거…"
"빨리 가도 돼. 우리 빨리 안 가면 쌤한테 혼나잖아."
"아, 알겠다 알겠다, 알겠으니까 그 얼굴 좀 치워봐라."
그 아이의 볼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처음으로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또 피식 웃음이 새어나가는걸 보고 아이는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했다.
"니, 니 또 웃제 또. 와 자꾸 웃노 나보고."
"웃으면 안되냐?"
"애가 그르케 어리벙벙 해갖고 웃기만 하면 보기 싫다."
"난 니 얼굴 빨개지는게 더 보기 싫다."
"뭐라카노 이 가시나가!"
그 아이의 말투를 따라하며 장난을 치자 아이는 더 씩씩대며 화를 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친구는 아닌 거 같았다.
민희도 수영이도 좋지만 이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넌 이름이 뭐야?"
"니 알 거 없다."
"내 이름은 000이야, 너는?"
"니는 알 필요 없으세요."
"니라고 하지 말고 00아 해주면 안 돼?"
아이는 또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난건지 내가 마지막 말을 하자마자 또 침묵을 유지했다. 어젠 아무 말 안 해도 어색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머쓱한 기분이 들어 어색해졌다.
오늘 날씨도 더운데 계속 손목을 잡고 있어서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쩍 손목을 잡은 손을 떼내려는 순간, 그 아이가 내 손을 낚아채더니 또 손목에 안착시켰다.
"내 똑띠 안 잡으면 니 학교 못 간다. 000."
"어? 뭐라고? 000? 너 내 이름 부른거야?"
"그럼 내가 니 이름 불렀지 내 이름 불렀겠나."
"그래서 니 이름은 뭔데? 나도 이름 부르고 싶어. 우리 친구하자, 응?"
그 아이의 입술이 옴싹달싹 거렸다. 말을 하려는 건지 말려는 건지, 자기 하고 싶은 말은 툭툭 잘 내뱉으면서
내가 묻는 말엔 대답 하나 못 하는 애가 처음으로 어리숙해 보였다.
"…박우진, 내 이름 박우진이다."
"박우진? 이름 예쁘네."
"예쁘고 자시고 간에, 난 니 처럼 맹한 애랑 친구 한다고 한 적 없다."
"에이, 학교 같이 가면 다 친구지. 안 그래 우진아?"
"……됐다 인간아 모른다."
우진이라고 이름을 부르자 또 다시 귀가 붉어졌다. 푸르댕댕한 토마토가 익었다가 어려지기를 반복하는 것과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도착해 1학년 건물을 들어서려는데 우진이가 또 말을 걸었다.
"니 몇 반이고."
"나 5반이야, 너는?"
"됐고, 가라."
우진이는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처럼 홱 돌아 자기의 길을 갔다. 그래도 어제같은 의구심은 들지 않았다.
내 마음에 내 생각에, 우진이는 좋은 아이로 스며 들었다.
그 날 모든 수업이 마친 후, 우진이는 우리 반 뒷문에 서 있었다. 내가 말을 거니 또 '내가 니 같은걸 와 기다리노' 라며 부인하기 바빴다. 이게 박우진만의 표현 방법이란걸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8살의 봄부터, 6학년의 봄까지. 우진이는 그렇게 나와 등하교를 매일 같이 했고, 그 동안 나는 손목을 잡지 않아도 될 만큼 어른스러워졌고 길도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우진이는 특유의 그 시크함은 변치 않았으나 날이 가면 갈수록 키가 점점 커지더니, 나와 똑같아졌다가 순식간에 나보다 8cm가 더 자랐다. 8cm나 더 길어진 다리로 우진이는 더욱 여유롭게, 더욱 빨리 뛸 수 있었다. 운동회 때마다 달리기 선수로 뛰고, 축구 경기를 할 때마다 남자 애들은 우진이 팀이 되고 싶어 했다. 운동 할 땐 그렇게 우사인 볼트 마냥 뛰면서 왜 나랑 걸을 땐 그렇게 느적느적 걷는지 모르겠다. 3학년 여름의 어느 날에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뭘 그런걸 궁금해하노, 신경꺼라."
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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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ㅎㅎㅎ필자의 그지같은 필력에 무릎을 탁 칩니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고... 초딩들이 왜 저렇게 알콩달콩 하나 싶고... 그리고 저는 대구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산 사투리를 몰라요ㅠㅠ 대충 제가 평소에 쓰는 말을 갖다 붙혀 봤는데... 부산 독자님들의 피드백을 기다립니다 남주로 누구를 할까 투표를 했는데 우진이가 1표 차이로 1등을 했어요 그래서 우진이로 넣어봤는데 투표해주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직 감춰진 뒷 이야기가 있답니다ㅎㅎ 기대해주세요 사랑합니다 독자님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