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리더 부 부장 정세운
W.체리맛토마토
-
나는 19살 여고생이다. 오늘 옆 대학교에서 축제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온다고 하였다. 진짜 코 앞에 있는데 어떻게 안 갈 수 있나싶어 꾀병을 부려 보충을 뺐다. 혹 지나가다 교복을 보고 알아보는 선생님이 있을까봐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은 뒤 교복과 가방을 무인보관함에 넣고 걸음을 옮겼다.
와, 사람 진짜 많네. 축제 시간보다 더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았다. 몸을 최대한 접어 앞쪽으로 갔다. 맨 앞 펜스쳐있는 곳에 팔을 올려두고 가만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축제를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본교 학생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아무리 내가 우리 오빠들을 보러왔다고 하지만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때문에 열심히 환호를 해주었다.
"저희 학교를 대표하는 아주 자랑스러운 동아리가 있죠? 뭔지 아시나요, 재환씨?"
"아휴, 그럼요~ 저희 학교에서 이 동아리 모르면 간첩 아닙니까! 치어리더 부 맞죠?"
한 마디씩 주고받던 두 남자의 말이 끝나고 치어리더 부원들이 하나 둘 무대위로 올라왔다. 언니 예뻐요!를 외치며 호응하는데 빨간 옷 사이 파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와, 청일점인가봐. 좋겠다... 예쁜 언니들 사이에 혼자 남자라서... 차렷,경레! 인사를 시키는 걸로 봐서 남자는 치어리더 부 부장인 것 같았다. 인사가 끝나고 바로 음악이 틀어졌다.
헐, 미쳤나봐. 제가 19년을 살면서 치어리딩을 처음 보는데 이거 원래 이렇게 멋있는 건가요? 아니, 저 남자가 해서 멋있는 건가. 와, 나 좀 반한 것 같아. 노래에 맞추어 절도있게 딱딱 안무를 하는 것을 보고 입을 떡 벌리고 넋을 놓았다. 한 세 곡은 한 것 같은데 넋 놓고 보니 엠씨가 다음 무대를 소개하고 있었다.
-
멋있다. 진짜 너무 멋있다. 남자 치어리더 진짜 우주 최고 된다! 그 남자만 생각하고 있으니 어느새 나는 원래 목적도 잊고 자리에서 나와 무대 뒷 편으로 가고 있었다. 아직 잊혀지지 않는 그 남자의 모습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려 기억 위에 계속 그림을 덧그리며 걸으니 대기실 천막 근처까지 왔다. 누가 나오는 소리에 움찔 거리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는데 아까 그 남자가 보였다. 헐, 눈 마주쳤어. 남자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 제 갈 길을 갔다. 안 돼, 이렇게 끝낼 순 없어! 이렇게 눈을 마주친 게 번호를 따라는 신의 계시라고 생각해 남자를 붙잡았다.
"저기...!"
"...?"
"제가 오늘 치어리딩이라는 걸 처음 봤는데 와, 저는 이게 이렇게 멋있는 줄 몰랐어요. 근데 그쪽이 해서 더 멋있었던 것 같아요. 저 반한 것 같은데 번호 줄 수 있으세요?"
"저희 학교 학생 아니죠? 나가주세요."
기대에 찬 눈이 식어버렸다. 속사포로 내뱉은 고백에 돌아오는 건 나가라는 말뿐이었다. 그렇다고 내 쫓을 필요는 없잖아, 엉엉. 나가라는 남자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툴툴 거리며 학교 밖으로 나왔다. 사실 날 이 학교에 오게 하려는 빅픽쳐가 아닐까? 맞아, 역시 그런 거였어. 크 똑똑한 사람이네. 이렇게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나 이 학교 꼭 올 거야.
-
이 학교에 올 거라고 말했지만 진짜 올 줄은 몰랐다. 와, 내가 진짜 이 학교에 오게 되다니...
"야야, 여주."
"뭐."
"나 동아리 들라고."
"무슨 동아리."
"치어리더 부. 거기 여자들 밖에 없대. 완전 천국 아니냐."
"미쳤냐? 싸펑피펑? 돌았어?"
치어리더 부의 청일점은 그 오빠 한 명뿐이라고! 너 같은 애를 우리 오빠에 이은 1학년 청일점으로 둘 순 없어! 치어리더 부에 들어가겠다는 개소리를 내뱉는 김동한의 팔을 퍽퍽 치며 욕을 날려주었다.
"아, 왜 욕을하고 그래. 농담이야 농담. 넌 동아리 안 드냐?"
"나? 이미 들었지."
"뭔데 나한테 말도 안 해주고 혼자 가입했냐."
"치어리더 부."
-
"안녕하세요 17학번 경영학과 여주입니다!"
인사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예쁜 선배님들이 나를 보며 박수를 치고 계셨다. 하, 여신님들... 너무 예뻐요...
"여신님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에 놀라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미 내 말을 들은 선배님들은 꺄르르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근데 주는 어떻게 여기 들어오게 됐어?"
"제가 작년에 이 학교 축제 구경왔다가 치어리더 부 공연을 봤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특히 청일점 그 분! 와, 진짜 너무 멋있었어요. 치어리더 진짜 최고예요, 짱짱."
흥분하여 다다다 뱉은 말에 선배님들은 다시 꺄르르 웃으셨다. 세운이 보고 반했구나. 세운이가 멋있긴 하지. 어, 저기 온다. 우리 주 후배 잘 해봐~ 홍홍 웃으며 자리를 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배님이었다. 이름이 세운이라니. 이름 마저 멋있어. 세상 혼자사세운? 혼자 크크 거리며 웃으니 날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민망함에 목을 긁적거리며 고개를 돌리니 그 남자가 날 보고 있었다. 아, 내 심장.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 온 17학번 여주입니다! 저 선배때문에 여기 들어왔어요!"
"아, 그래요?"
남자는 저 한 마디를 하고 자리를 옮겼다.
-
"너의 사랑 부장님 만났냐?"
"당연하지, 나의 사랑 부장님 오늘도 아름다우셨음."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데?"
"그걸 어떻게 다 말로 해 그거 다 말하면 너 오늘 집에 못 ㄱ... 헐, 미친."
"왜."
"저,저기..."
김동한이랑 쫑알쫑알 얘기를 하며 학식을 먹으러 가는데 저 멀리 나의 사랑 부장님이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입을 벌리고 넋 놓고 있는데 입 안으로 손가락 하나가 들어왔다.
"아, 여주 미안 미안. 아, 아프다고!"
"죽는다, 진짜."
벌어진 입에 장난으로 손가락 한 개를 집어넣은 김동한에 손가락을 꽉 깨물어주었다. 이게 어디서 나의 사랑 부장님 관람을 방해하고 있어! 아프다고 내 팔을 툭툭 치는 손길에 그제야 문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
"야, 저기 앉자."
제가 여깄다고 말해주듯 환하게 빛나고 있는 나의 사랑 부장님 대각선에 앉아 밥을 먹었다. 방글방글 웃는 나를 보고 김동한이 시비를 걸어왔다.
"아이고, 우리 주가 입이 귀에 걸렸네. 오빠가 그렇게 좋아? 오구오구~"
"하하, 좋지. 그럼, 아주 좋지!"
개소리를 짖걸이는 김동한에 욕을 할까 했지만 대각선에 앉아있는 나의 사랑 부장님에 이를 악물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따 보자, 김동한.
-
"세운아, 주가 안무 좀 알려줘. 원래 내가 알려줘야 하는데 일이 좀 생겨서."
"아, 그래."
내가 부장님을 짝사랑을 하는 걸 아는 선배님은 부장님에게 날 맡기고 눈을 찡끗하며 나가셨다. 선배님, 제가 밥 한 끼 살게요. 사랑합니다.
"어디까지 배웠어요?"
"팔 돌리는 부분까지요! 그...제가 더 어리니까 말 편하게 하세요...!"
"아, 응."
팔 반으로 접고. 이렇게요? 응, 그리고 다시 펴.
생각보다 연습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내 심장 소리가 순탄하지 않은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조금 쉬다가 다시 하자."
"네! 잠시 커피 사와도 될까요?"
"같이 가자."
한 시간동안 쉬지 않고 연습을 했다. 잠시 쉬자는 나의 사랑 부장님의 말에 커피를 사와도 되냐고 물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가자는 말에 연습실에서 나왔다. 단 둘이 연습도 하고 나란히 걷고 같이 카페도 가고 오늘은 내 생일이 틀림없다. 달력에 별 그려놔야지.
-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요!"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어, 계산 제 카드로...!"
급하게 카드를 꺼내는 내 손보다 빨리 먼저 계산을 해버렸다. 제가 사려했는데... 다음에 사면 되지. 영수증을 확인하며 무심히 뱉은 말에 눈이 커졌다. 저거 다음에 또 같이 오자는 거지?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운이 나빴던 이유는 다 오늘때문이죠? 네, 다음에는 제가 꼭 살게요! 웃으며 답하는 내 모습을 한 번 보더니 자리에 가 앉았다.
"여주!"
카페에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고 앉을 곳을 찾던 김동한에 급하게 얼굴을 가렸지만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쪽으로 오는 김동한이었다.
시발, 저 새끼는 눈치를 어디다 팔아 먹은 거지. 지가 뭔데 나의 사랑 부장님과의 데이트를 방해하는 거야.
"안녕하세요. 17학번 경영학과 김동한입니다. 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미쳤나. 지가 뭔데 나의 사랑 부장님께 말을 걸어?
내 옆에 아예 자리를 잡은 김동한의 팔을 꼬집었다. 드즐르 끄즈르 즌쯔...
"하하, 저는 그럼 이만..."
"아녜요, 둘이 마저 얘기해요. 천천히 와, 주야."
나의 사랑 부장님은 내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동한을 다시 앉히고 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동한 이 미친새끼야 너때문에 나의 사랑 부장님 가셨잖아! 속사포로 내뱉는 욕에 김동한은 케이크를 시키는 것으로 내 입을 막았다. 절때 케이크때문은 아니고... 이미 욕 많이 했으니까...
-
"선배! 저 이것 좀 알려주세요!"
"아, 내가 좀 바빠서 미안."
"선배 오늘 시간 되세요? 저번에 커ㅍ..."
"미안,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선ㅂ..."
"재환선배 같이가요."
-
"..."
"[속보] 여주, 팔팔한 20세에 미치다."
"..."
"야, 왜 그래."
원래라면 장난치는 김동한에 쌍욕을 날려줬을텐데 자꾸 날 피하는 나의 사랑 부장님 생각에 가만히 있으니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왜 그러냐 물어오는 김동한이었다.
"김동한아, 나의 사랑 부장님 왜 자꾸 날 피하지?"
"진짜 피하는 거 맞아?"
"처음에는 진짜 바쁜 줄 알았는데 피하는 거 맞는 것 같아. 나 뭐 잘 못 했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하는 나를 본 김동한은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며 자기였어도 자꾸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구는 내가 싫었을 거라고 답해줬다.
시발, 존나 도움이 되는 게 일도 없는 새끼다.
-
위로는 못 해줄 망정 악담을 퍼붓는 김동한에 가운데 손가락을 하나 날려주고 카페로 왔다.
"아메리카노에 얼음 많이 넣어주세요."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해탈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보고싶던 얼굴이 보였다.
"아,진짜요?"
무슨 얘기를 하는지 같은 과 선배와 웃으며 들어오는 나의 사랑 부장님이었다. 웃는 건 처음 보는데 웃으니까 더 멋있네...
"어, 주야!"
안녕하세요, 재환 선배. 나의 사랑 부장님 덕에 자주 마주쳤던 재환 선배는 날 보고 먼저 인사해왔다. 혼자 왔어? 같이 앉아도 되지? 네, 그럼요. 혼자 왔냐고 물으며 내 앞에 재환 선배와 나의 사랑 부장님이 앉았다. 재환 선배가 주문하러 가고 나의 사랑 부장님과 둘이 남았다. 꽤나 어색했다. 자꾸 날 피하는데 철판깔고 말을 걸 용기는 없었다. 애꿎은 빨대만 잘근 잘근 씹었다.
"빨대 씹으면 안 좋아."
핸드폰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본 건지 빨대 씹으면 안 좋다는 말을 뱉었다. 오늘은 안 피하네 말도 걸고. 더 잘근 잘근 빨대를 무는 내 모습에 나의 사랑 부장님은 핸드폰을 닫고 나와 눈을 맞췄다.
"그만 물라는 소리야."
내가 이해를 못 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그만 물라고 말했다. 계속 피하던게 내가 싫어서 그런게 아니었나... 선배. 응. 왜 저 자꾸 피했어요? 빨대에서 입을 떼고 물었다. 나의 사랑 부장님은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남자친구 있는데 자꾸 같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20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연애란 걸 해본 적 없는 나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언제 남자친구란 게 생긴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아니야? 라는 말이 들려왔다.
"저 남자친구 있어요?"
"그 저번에 카페 같이 왔을 때 만난 같은 과 남자 애."
"제가 김동한이랑 사겨요?"
"안 사겨?"
"선배, 지금 그것때문에 저 피한거예요?"
다른 선배들이 종종 김동한이랑 사귀는 사이냐고 물어왔는데 나의 사랑 부장님까지 그렇게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김동한 진짜 끝까지 도움 되는 게 없네.
억울한 표정으로 절대 아니라고 하니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선배, 이제 저 피하면 안 돼요. 알겠죠? 제가 왜 이 학교에 왔는데 선배가 저 피하면 온 이유가 없어져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줄줄 늘어놓으니 알겠다며 새끼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아, 약속! 한참 내밀어진 새끼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의미를 알아차리고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
그 날 이후로 나의 사랑 부장님과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봤다. 자기 전에 전화도 했다. 간질 거리는 느낌은 꽤나 좋았다.
"선배, 작년에 왜 번호 안 줬어요?"
"미성년자 같아서."
"그래봤자 한 살 차인데!"
"그땐 정확한 나이를 몰랐지."
"만약 알았으면 줬을 거예요?"
"글쎄."
"아, 뭐예요~"
갑자기 작년이 생각나서 작년 얘기를 꺼냈다. 글쎄라는 애매한 답에 뭐냐고 투털 거리니 살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선배, 자꾸 웃으면 저 죽어요. 앞으로 자주 볼 건데 익숙해져야지. 다시 한번 웃으며 말했다. 그쵸, 익숙해 져야ㅈ...어, 그거 무슨 의미예요? 완전 오해할만한 문장인 거 알죠? 뭐가. 다시 입꼬리를 내리고 새침하게 하는 말에 입을 쭉 내밀었다.
"선배, 제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 자꾸 그러면 곤란해요~"
장난스럽게 자꾸 밀당하면 곤란하다고 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맞춰왔다.
"사귀면 곤란할 필요 없는 건가?"
"네?"
"나랑 사귈래?"
그렇게 나의 사랑 부장님과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
쿄쿄,,, 치어리더 부 부장인 세운이가 보고싶어서 열심히 외쳤으나 아무도 안써줘서 자급자족 단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