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렇게 된 건 다 내 불찰이였다. 5년이 넘도록 결혼은 언제 하냐고 닥달하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부모님이 붙여주신 남자와 썸이나 연애를 뛰어넘고 결혼부터 한 내가 잘못이다. 이건 분명 100% 내 잘못이다. 그치만 누가 알았겠어? 나랑 결혼할 사람이 조울증이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 걸. 기분이 오락가락 하니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눈치만 보며 같이 생활한지 어느덧 일주일. 이 결혼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냥 평생 독신으로 살 걸. TV에서 방송중인 개그프로그램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남자가 웃질 않으니 나도 웃음이 날아가 버렸다. 도대체 언제쯤 웃어줄런지. 아니 웃어준 적은 있지. 나랑 대화할 때. 근데 웃는만큼 정색도 많이 하니깐 어느 타이밍에 웃어야 할지 남자도 나도 알 수가 없다. 정신과의사인 친구가 한 명 있는데 한 번 데려가 봐야 하나. 그치만 내 남편이라는 사람도 정신과 의사인걸? 정신과 의사가 조울증이라니. 물론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볼 땐 조울증이 확실하다.
"고민 있어요?"
"네? 저요?"
"여기 당신말고 누가 더 있어요?"
말투 하나는 참 다정하다. 조곤조곤. 게다가 생긴거와 다르게 능글맞기까지 해서 내게 가끔 여보라는 호칭까지 쓴다.
난 아직도 이 결혼이 어색해 그쪽이라고 부르는데.
"고민 있음 말해봐요. 상담해 줄 자신 있으니깐. 게다가 이젠 남도 아니고 남편인데."
"아, 딱히 큰 고민은 아니라 피, 필요없는데-."
내 목소리가 작아지는 동시에 남편이라는 사람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갔다. 아, 또다.
"아-."
"..."
"..."
남자와 내 사이에 들려오는 거라곤 잔뜩 긴장한 내가 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크게 들려왔다. 나에게만 크게 들리는 건지 남자에게도 크게 들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겐 TV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조차 내 침 넘어가는 소리보다 작게 들렸다. 한참동안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나였다."저기-,"
"저기?"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깐 그쪽 부르려고-."
"그쪽?"
점점 험악해지는 남자의 인상에 나는 더욱 더 긴장해야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난거지.
"있잖아요, 내가 많은 거 안 바랄게요. 그냥 이름으로라도 불러주면 안 돼요? 명색이 남편인데 저기나 그쪽은 너무하잖아요. 내 이름 몰라서 그래요? 민윤기에요. 민윤기."
잔뜩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남자에 잠시 속으로 귀엽다라는 그런 미친 생각을 했다. 조울증인 남자와 결혼한 충격이 컸나보다.
"아, 그럼 유, 윤기 씨-."
"..좋네요."
아무래도 내 남편 민윤기라는 사람은 조울증인 게 틀림없다.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