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친과 썸남 사이의 묘한 관계성 02
[ 부제 : 수학여행가서 남고 숙소에 갇혀진 썰 ]
" 여기에 니가 왜 있어, 진영아. "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던 인물의 등장에, 좀 더 수식하자면 이번 수학여행에서 설마 보겠나 싶었던의 그 설마의 가능성을 이뤄낸 구남친의 등장에 나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처럼 바보같이 더듬기만 할 뿐이었다.
"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여기 올려고 했던 게 절대 아닌데, 아니 난 여기 지은이네 숙소인줄 알았고, 난, 난 그냥 편의점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학주같은 사람이 걸어오길래.. 아 뭐라는거야, 배진영..."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눈빛에 없던 기까지 다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상상해봐라.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고요하고 깜깜한 공간에 박지훈, 아니 전 남자친구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바로 코 앞에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을. 호랑이 굴에 들어가더라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서 나온다던데... 과연 이 상황에 정상적인 이성을 가지고 서 있을 '전 여자친구'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 ♬♬
그 때 정적을 깨우는 벨소리가 울렸고, 누군지도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받았다.
- 여보세요? 배진영 너 맞지 이 번호?
" 누구세요? "
- 와 실망이다. 진영이 너, 나랑 헤어진지 십분도 안됐는데 목소리를 못 알아들어? 와..ㅋㅋㅋ
" 영민오빠? 근데 왜 전화..."
영민오빠라는 말을 하자마자 여유로운듯 나를 쳐다보고 있던 박지훈의 표정이 어딘가 불편한 것 처럼 금새 굳어졌고, 그에 나는 헤어진지 반년이 넘어가는 전 남자친구 앞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말하는 것 조차 눈치를 보는 그야말로 찌질한 전 여자친구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 너 편의점에 지갑 놔두고 왔어. 내가 네 지갑들고 왔는데 지금 내려올래, 아니면 내일 만날까?
" 헐. 지금 당장 뛰어 갈게요, 아니 금방 갈게. 기다려, 제발.. "
너무 어색한 이 공간과 박지훈과의 이 이상한 벽치기를 묘사하는 자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무이한 길이자 핑계였다. 내 무의식에서 나온 '제발'이라는 단어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간절한 내 바램을 대신해 주었다.
잡고 있던 문고리를 세차게 돌리는 순간, 내 손 위로 차갑고 부드러운 손이 겹쳐졌다.
" 가지마. "
헤어진 사이에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스킨쉽을 자연스럽게 해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도 그런 것이 박지훈은 인생에서 딱 한번 연애를 해 본 나와는 다르게 그 외모와 걸맞게 여자를 다룰 줄 알았다. 나와 사귀는 첫 날,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서도 포옹을 하며 잘가라고 말해주는 둥. 박지훈에게 여자라는 존재는 오는 것도 막지 않고, 가는 것도 막지 않는 그런 단순하고 쉬운 존재였다. 그런 박지훈에게 나는 어느 순간부터 ' 뭐가 아쉬워서 얘는 나랑 사귀는 걸까? ' 라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고, 나의 박지훈과 나를 비교하는 그 사소한 생각들로 나의 행동이, 나의 행동은 박지훈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게 했으며, 둘사이의 멀어지는 거리의 주 원인이 되었다.
어쨋든 지금 내 기분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헤어진 연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도 좀 많이. 나는 지금도 아무렇지 않은게 아닌데. 그래서 괜히 더 삐뚤어진 시선으로 대하고, 말한 건지도 모른다.
" 니가 무슨 상관인데? "
" 그리고 지금 이 자세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좀 떨어져주지? "
정말 말 그대로의 뜻이였다. 그는 지금 나의 행동에 아무 상관도 할 수 없는 자격이였다. 틀어지면 틀어졌지, 결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충고를 할 관계는 아니였다. 특히 계속 같은 자리에 있으라는 명령은 더더욱 더.
그 때 처음으로 박지훈의 초점이 흔들리는 눈을 보았다. 헤어지자고 할 때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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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401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박지훈의 3박 4일 수학여행 룸메이트이자 반장인 안형섭은 인원체크를 마치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총총 걸어가는 중이었다. 혼자는 무서워서 못자는데 어떻게 해야 박지훈이 자기와 같이 자줄까 라는 아주 귀여운 고민을 하면서.
맞은 편 엘리베이터에서는 로비에서 배진영을 기다리다, 곧 인원체크가 있다며 빨리 오라는 같은 숙소 동생들의 재촉에 일단 급하게 올라던 임영민이었다.
" 어? 영민이 형! 왜 이제 올라와요? "
" 형섭이? 나 편의점 갔다가 오는중~ 그럼 내일 보자! "
손에 들고 있는 그 여자여자한 핑크색 지갑은 뭐냐고 물으려다 타이밍을 놓친 그는 형 취향도 참 특이하다고 혼잣말을 하며 401호의 문을 두드렸다.
" 지후나! 나 왔어. 문 좀 열어줘٩(ˊᗜˋ*)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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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들리는 안형섭의 목소리에 꽤 당황한 나는 방금 화냈던 것을 잊고, 울상을 짓고 어떡하냐며 박지훈에게 매달렸다. 박지훈도 나만큼 당황한 듯해 보였다. 지금 이 적막한 숙소에 남여 둘 밖에 없는 이 상황을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오해 할 가능성이 크다 못해 분명했다. 일단 나는 떨어진 편의점 과자들과 컵라면을 대충잡아 신발장에 던져넣었다. 이상한 소문이 나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저 형섭이라는 아이의 눈에 띄지않는 것 밖에 없었다.
문을 빨리 열어달라는 안형섭의 징징거림에 박지훈은 알겠다며 나에게 자기 방의 위치를 손으로 가르켜주었다. 그 안에 숨어있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당당하게 편의점에 나서는 나보고 불안하다고 했던 친구들에게 만약 내가 살아 돌아간다면 예언가라는 직업을 꼭 추천해주고 말거란는 생각을 하며 침대 밑에 몸을 숨겼다. 난 지난 18년 동안 조물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짓은 하지 않았는데,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셔서 나를 골로 보내시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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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형섭이 잘 준비를 하는 듯 하고, 박지훈이 침대 위에 앉으며 이 상황이 웃긴듯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조금만 기다리라고 작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기는 개뿔. 지금 벌써 30분째인데.) 박지훈에게 간다고 할 때 놔줬으면 지금 나는 밑 층에서 신나고 놀고 있었을 거라고 욕을 사발로 하려고 심호흡을 하려고 할 때,
" 지훈아~ "
안형섭이 베게를 두 손으로 꼭 끌어안으며 과즙을 50개 정도 발라놓은 상큼한 표정을 지으며 이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 나 할 말 있는데... "
" 싫어. "
" 같이 자 주.. "
" 안돼 "
" 나 혼자 자면 한 밤중에 소리지를 지도 모른단 말이야. "
" 어, 그럼 우리 서로 방문은 닫고 자는 걸로 하자. "
" 수학여행에서 처음으로 혼잠을 해보는 것도 멋진일이야. 난 너의 밤을 응원할게. "
" ..."
" 그럼 하는 수 없다. "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한 박지훈에 입술을 한번 쭈욱- 빼더니 곧바로 뒤돌아가는 안형섭에 박지훈이 어디가냐며 묻자,
" 너 내일 진영이네 애들이랑 판 벌이기로 했던거 학주쌤 한테 말 하러 가야지, 뭐 어쩌겠어. 이게 반장의 임무인데. "
안형섭 Win.
결국 목덜미가 잡힌 박지훈은 같이 자는 거 대신 잠들기 전까지 옆에 있어주겠다고 새끼 손가락으로 약속을 하고 - 도장 - 복사 - 코팅까지 마친 후, 진짜로 안형섭을 재우러 둘은 옆방에 들어갔다. 금천남고 4대천황 둘의 저 모습을 3층의 여자애들은 알까 라고 혀를 쳐대며 나도 이제 평화로운 301호 실로 갈 채비를 하였다. 침대 밖 세상이 이렇게 밝았던가. 호랑이 굴에서 살아나온 나에게 스스로 머리를 쓰담으며 칭찬을 한 번 해주고, 신발장에 숨겨놓은 과자들을 주섬주섬 봉지에 담아넣었다.
" 일단 이거 사오라고 시켰던 최민영부터 족치고, "
" 그 다음은 애들이 말릴 때, 나만 믿으라고 했던 배진영. "
나를 자책하며 신발을 신었다. 간다는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세상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래도 옛정 생각해서 숨겨준거 보면 고맙다는 말을 해야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또 나가려 할때 가지말라고 잡아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든 걸 생각하면 죽빵하나 선물 해 주고싶고. 박지훈은 참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혼자 궁시렁거리며 투정하고 있을 때였다. 하늘은 왜 이리 나한테 가혹할까. 이 방에서 자야할 것이란걸 직감했다.
" 야 이 새끼야! 지금 시간 12시야. 내가 분명 11시 취침, 인원 체크 이후 각자 숙소에서 외출 금지라고 했을텐데? "
" 아니 그게, 쌤.. "
" 학번 이름. "
" ...아 "
" 학번. 이름. "
밖에는 진 짜 학 주 에게 걸린 불쌍한 희생양의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분명 지금 이 4층 학생들은 숨을 죽이며 문에 귀를 대고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정말 망한 것 같다. 아니, 그냥 망한게 맞다.
그 때 뒤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진영아. "
" 어쩌냐, 너 오늘 그냥 나랑 자야할 것 같은데. "
+ epiloge. 수학여행 숙소 배정은 어떻게 된건가.
1반은 첫 반인 특권으로 전교에서 한 명만이 독방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24 : 1의 엄청나다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박지훈이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었다. 이번 마지막 수학여행을 하늘이 축복해주시는구나 싶었던 박지훈에게 여행 이틀 전 카톡이 왔다.
배진영 [ 너네 숙소 몇 호? ]
안형섭 [ 나 401호 ]
안형섭 [ 배진영 닌 어디야 ]
[ 뭔소리야 ]
[ 내가 401인데 ]
[ 독방으로 ]
[ ? ]
배진영 [ ? 난 407 ]
배진영 [ 어케 된거ㅋㅋㅋㅋ 박지훈 독방이잖 ]
[ 안형섭 니 424호 아니냐 ]
안형섭 [ ㅇㅇ원래 424 였지 ]
[ ..원래? ]
안형섭 [ 근데 숙소 정원 6명까지잖아 ]
배진영 [ ㅇㅇㅇ ]
[ 그래서 그게 왜 ]
안형섭 [ 우리반 25명인데다 내가 끝번호라 ]
[ 아 설마 ]
[ 하지마라 ]
[ 싫어 ]
배진영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지훈 미리 화이팅 ]
배진영 [ 안형섭 잘 때 끌어안고 자는거만 빼고 ㄱㅊ ]
배진영 [ 이 가는거랑 잠꼬대 오지게 하는것도 같이 빼자 ]
배진영 [ 아 또 뭐 있냐면 ]
[ ㅅㅂ 그만 ]
안형섭 [ 어쩔수없이 401호 ]
배진영 [ 어쩔수없이? ]
안형섭 [ ㅎ ]
[ 안가 수학여행 ]
Q. 안형섭과 단 둘이 방을 배정받은 소감은?
[ 박지훈 / 18세 / 금천남고 4대천황이라 불림 ]
" 행복해요. 행복하고 말고요 ^_^ (자본주의 미소) "
Q. 방금 입술에 경련 일어난 것 같은데?
[ 박지훈 / 18세 / 지금 죽고 싶음 ]
" "
끝난 줄 아셨죠?
+ 금천남고 4대천황 멤버들 소개
안형섭
금천남고 2학년 6반 반장. 욕은 절대 사절. 학부모 계에서 최소 5번은 언급되는 인기스타이다. (대부분은 "우리 ㅇㅇ이도 형섭이 반만 닮았으면 ")
가끔 보여지는 찐따미 (+ 훌륭한 얼굴) 가 남일고 여학생들을 입덕하게 만드는데 열일한다.
박지훈, 배진영과 같은 초-중-고 출신으로 배진영과 함께 세명에서 같이 논다. (끼리끼리논다는 대표적인 긍적적 예시)
임영민
원래는 19살로 고3이지만 복학해서 2학년 4반. 복학한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대충 어릴 때 아파서 복학 한 걸로 알려져있음)
생긴 것과 같이 착한 성격에 복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동급생들과 매우 친하다. 주변학교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금천남고에서도 인기가 많다.
여주의 어릴적 옆집 오빠이자, 첫 짝사랑.
배진영
금천남고 2학년 2반 학생. 남중-남고출신으로 '여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잘생긴 얼굴과 착한 성격 때문에 인기는 많으나, 유독 여자앞에서 낯가림이 심해 모태솔로라고 알려져있다.
얼마 전,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다는 소문의 주인공.
박지훈
금천남고 2학년 1반. 여주의 전 남자친구이다. 학기중에는 바빠 방학 때만 잠깐 다닌 미술학원에서 여주를 만나 인연이 이어져갔다.
잘생긴 얼굴 값을 하며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나머지 3명과는 다르다. (1화의 박지훈이 페북에 올린 글에서 알수있음)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말은 틱틱대면서 할 건 다해주는 츤데레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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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번 글에서 생각치도 못한 많은 관심 넘 감사드려요! 초록글에 오른거 보고 진짜 눈물바다.. 독자님들 반응 넘 귀엽구,, 또 귀여워서 최대한 빨리 들고 왔어요 =3 울독자님들 대리 설렘 엄청나게 해드리고 싶은데 이게 이번 회차 스토리상 목표 성취 실패.. (핑계) 다음회에는 꼭..! 항상 진부한 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넘 감사드려요! 이제 방학이라 하루종일 컴터앞에 앉아서 글만 쓰려구요ㅎㅎ 방학 끝나기 전까지 완결 낼 생각이예요'ㅁ' 신알신 해주시면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알람 갈거예요 데헷 이번 화 분량 제 기준 많은 편인데 (+ 노잼) 쓰면서 독자님들 지겨워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되네요ㅠㅠ 아 그리고 댓글에 썸남이 영민인줄 알고 계시는 분이 대다수이시던데 원래 제 의도는 제목의 구남친와 썸남 모두 지훈이를 의미하고 있던..! 삼각관계보다는 영민이와 여주의 관계를 질투하는 지훈이.. 가 머지않아 나타날거라 생각하시면 편하실듯 해요!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