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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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깨
비
소
년
셋
"치킨 사줘."
"이제 틈만 나면 치킨 타령이냐?"
"치킨 먹고 싶어, 나 진짜 치킨 먹고 싶어."
"도깨비감투에 도깨비불까지 있으시면서, 도깨비방망이는 아직인가 봐? 치킨 나와라 뚝딱도 못하는 게 무슨 도깨비야!"
"…그건 열아홉 생일 지나야 가질 수 있어."
"그럼 치킨은 그 때 가서 많이 먹어."
"그 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
꿩 대신 치킨을 사준 것이 화근이었다. 그냥 후라이드만 사가기엔 왠지 미안해서 치즈가루 뿌려진 걸로 가져갔더니, 거기에 완전 빠져버려선 더 달라고 계속 조르기만 한다. 액자 속으로 들어가라고 사정을 해도 박우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얠 누가 말리겠어. 무작정 집 안으로 처들어올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 박우진의 침울한 표정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다가도 저런 표정을 지을 땐 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와악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저 모습이 나는 감당하기 어렵다. 도깨비의 삶은, 어떨까? 살인자의 딸로 살아가는 것보다, 어머니를 잃고 살아가는 것보다 힘겨운 삶일까? 열아홉 박우진이 짊어지고 있는 것은 대체 뭘까. 어쩌면 앞으로 살 날이 반 년도 남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능력 없는 도깨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 둘 다일지도. 그 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 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 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 몇 글자 되지 않는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 때 오기 전까지 치킨 먹자."
……이 웬수를 확. 걱정한 내가 바보지. 그냥 치킨 먹고 싶어서 그렇게 올망올망해진 거였다.
박우진의 식탐을 다 들어주다가는 아르바이트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 냉장고에서 치킨너겟을 찾았다. 후라이팬을 대충 씻고 기름을 둘렀다. 지글지글 치킨덩어리들이 익기 시작했다.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근데 넌 왜 날 꼭 살려야만 해? 나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아니."
"……."
"너 지금 힘들어 보여. 위태로워. 곧 무너질 것 같아. 너한텐 지금 내가 없으면 안 돼."
"……."
"도깨비는 열아홉 생일 전까지 천운에게 가장 필요한 걸 이루어주어야 해. 천운에게 돈이 필요하다면 돈을 주고, 목소리가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주고, 가족이 필요하다면 가족을 주는 거지."
"……."
"내가 보기에……, 너는 너의 삶이 필요할 것 같았어."
박우진의 문장 하나하나가 온 신경을 꼭 잡고 조인다. 그동안 품고 살아왔던 어떤 응어리들이 욱신거리는 게 느껴졌다. 박우진이 저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나보다 어린 소년의 직설적이고 서툰 위로는 생각보다 크게 내 안에서 일렁였다. 치킨너겟을 뒤집는 젓가락이 살짝 떨렸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나의 삶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 외할머니에게 중요했던 건 딸이 남긴 핏덩이의 인생이었지, 나의 인생은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의 시간들이, 꼭 지금 박우진에게서 이런 말을 듣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토록 외롭고 쓸쓸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아아. 바보처럼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가스레인지 불을 끄지 않았다. 지글거리는 소리 안에 내가 훌쩍거리는 게 흩어지라고.
도깨비한테 그런 꾀는 먹히지 않았나 보다. 박우진이 뒤에서 나를 꼬옥 안았다. 도깨비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도깨비도, 심장이 있구나. 이렇게 아득하게 뛰는 심장이 있구나.
"울지 마."
"…응."
"내가 너 살릴게."
가만히 고갤 끄덕였다. 박우진의 품이 참 따뜻했다. 어쩌자고 이렇게 따뜻한 건지. 대책도 없는 따뜻함이었다. 우리는 잠시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박우진은 치킨과는 다른 맛에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는 걸 보니 입맛에 아주 맞지 않는 것은 아닌 듯했다. 나는 박우진의 맞은편에서 턱을 괴었다. 덧니는 있지만 뿔은 없는 도깨비라니.
"어릴 때 동화책에서 나오는 도깨비들은 다 뿔이 있던데. 너는 없네."
"응. 난 없어. 돌연변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고백한 박우진이 마저 치킨너겟을 우물우물 씹었다. 도리어 당황한 건 나였다.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저렇게나 무덤덤하다니. 침착해야 했다. 괜히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간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키며 고민하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박우진은 그저 치킨너겟 먹기에 급급해 보였다.
"…넌 나에 대해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난 너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이랑 나이밖에 없어. 이제 네가 살아온 이야기도 좀 해주라. 응?"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
"내가 그동안 그다지 유쾌하게 산 편이 아니라."
헉. 얘기 잘못 꺼냈나. 눈치를 보며 박우진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 차라리 인상 쓰고 화라도 내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말실수한 거 같은데, 그렇게 화라도 내주면 내가 대놓고 미안해할 수라도 있지, 지금 용서를 구하기엔 상황이 너무 애매하고 어색하다. 어떡하지? 사과를 해야 하나? 그냥 가만히 있을까? 이 짧은 시간 동안 갖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나는 가끔 도깨비의 배필이 되려는 인간들이 이해가 안 가."
"……."
"지옥으로 가는 거야, 그게."
"……."
"넌 그러지 않길 바랄게."
박우진이 말을 마치고 살며시 웃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박우진은 누구보다 어른 같고 또 누구보다 어른 같지 않다. 도깨비는 다 저럴까. 멋대로 행동하다가, 쓸쓸하다가, 덤덤하다가, 식탐을 드러내다가, 안아주다가, 두려워하다가, 슬프게 웃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방금 그 당부하는 말도, 암묵적인 경계 아닐까. 위로는 기억하되 더 이상 깊어지지 말라는. 경고가 아닐까.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갑자기 견딜 수 없게 마음이 허무해졌다.
"있잖아, 시간이 지날수록 손목 위로 천운의 이름이 더 선명해진다고 했지?"
"응."
"내 이름 처음 봤을 때……. 어땠어?"
딱히 궁금하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런 말이 나왔다. 박우진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답했다.
"예쁘다고 생각했어."
"……."
"지금도 예쁘다고 생각해."
다행이다. 내 이름이 쓸모없지 않은 게 아니라서. 네 손목에 그려진 내 이름이 더럽지 않아서 다행이다. 네가 예쁘다고 해줘서 다행이다. 아버지가 지어준 내 이름이 처음으로 값지게 느껴졌다.
눈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내 앞에서 박우진이 사라졌다. 이렇게 불쑥불쑥 사라지는 거,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도깨비는 나의 세계에서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박우진이 앉아있던 식탁 의자를 쳐다보았다. 박우진처럼 갑자기 사라졌던 엄마는, 영영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그게 두려운 것이었다. 또 다시 혼자가 될까 봐.
액자 앞에서 손을 모았다. 할머니, 도깨비가 제 이름이 예쁘대요. 좋은 일일까요? 나는 알 수 없었다.
근데 액자가 깨지면 박우진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 안절부절하며 액자 앞을 빙글빙글 돌았다. 지금 불러서 물어볼까? 에이, 아냐. 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도 궁금한데……. 혼자 불안에 떨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담요로 액자를 꽁꽁 싸서 떨어져도 깨질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물론 액자가 발이 달린 게 아니라면 혼자서 책상 아래로 떨어질 일은 없겠지만, 그냥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침대에서 눈 감기 무섭게 알람이 울리고, 씻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평소와 같은 아침이 시작되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아침을 먹다가, 습관적으로 손목에다 박우진을 썼다. 어라, 또 안 나오네. 왜지……. 잠이 덜 깬 머리는 회전 속도가 느렸다. 식빵을 한 입 더 물었을 때에서야 내 앞에 박우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박우진은 내 체크무늬 브래지어를 뒤집어쓴 채였다. 어라? 어라라?
"…으아아아아악!!!!!!!!!!!!!!!"
내 비명에 놀란 박우진이 흠칫 몸을 떨었다.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뒤늦게 자기가 무엇인가 뒤집어쓰고 있다는 걸 알아챈 박우진이 손을 뻗어 머리에 붙은 것을 떼어냈다. 이내 천천히 그것을 확인하는 박우진의 눈을 보았을 때, 난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몇 초 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 이거 내가 훔친 거 아니야!!!"
"……아, 난 몰라. 맞다, 어제 담요 속에 액자 넣고 잤었구나. 깜빡했다. 음, 그게 그러니까, 담요에 빨랫감이 섞여 있었나 봐."
"……."
"미안해……."
박우진이 푹 고개를 숙였다. 와, 진짜 큰일났다. 도깨비 빡쳤나 봐. 어떡하지? 천운이고 뭐고 천벌 받게 생겼네. 얼굴에 가득 미안함을 담고 박우진을 쿡쿡 찔렀다. 야, 미안하다니까……. 고개 좀 들어 봐. 응?
"못 들어……."
"뭐라고? 안 들려."
"아, 지금 네 얼굴 못 본다고……."
뭐라는 거야, 하나도 안 들리는데. 그래도 괜히 신경 건드려서 천벌 받는 것보단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지.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박우진이 고개를 들고 화를 풀길 기다렸다.
한참 후 고개를 든 박우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휙 다른 곳으로 얼굴을 돌려버렸다. 박우진의 귓바퀴가 붉었다. 귀뿐만이 아니라 얼굴도 붉고, 목도 붉었다. 저렇게 붉어질 정도로 화가 난 건가? 하긴, 나 같아도 남의 속옷 뒤집어쓰고 있으면 진심 빡칠 거 같은데 도깨비는 오죽하겠어.
"박우진. 진짜 미안해. 내가 확인을 잘 했어야 했는데……. 음, 오늘 퇴근할 때 치킨 사올까? 두 마리 사올게! 어때?"
"……앞으로 이러지 마."
진짜 화 많이 났나 보다. 박우진이 끝까지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바닥에다 시선을 박은 채 박우진은 내 손에다 브래지어를 쥐어주고 성큼성큼 주방으로 향했다. 뭐지? 그러고는 갑자기 싱크대에서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야, 박우진……. 화 많이 났어? 응? 치킨 두 마리 사온다니까? 박우진은 내 말을 모조리 무시하고 계속해서 얼굴을 씻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박우진이 말했다. 그렇게나 첨벙거리며 얼굴을 씻었는데 여전히 붉은기가 남아있었다.
"아, 부끄러워서 지금 네 얼굴 못 보겠다고! 말 시키지 마!"
박우진이 그 말을 뱉음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부끄럽게 변했고, 나는 지각을 핑계로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덕분에 오늘은 아주 여유 있게 학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휴, 이따 박우진 얼굴 어떻게 보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퇴근하고 같이 치킨 먹으면서 자초지종이나 더 자세하게 설명해줘야겠다.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였다. 어제 과제 제출도 했고 내일부턴 주말 시작이니까 아르바이트도 없다. 뻐근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아무도 죽지 않고, 아무도 싸울 것 같지 않은 그런 평화로움.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한 생각이지만 그냥 문득 그렇게 느껴졌다. 다 도깨비 덕분인가.
희미하게 내 이름이 불린 소리가 났다. 우뚝 걸음을 멈췄다. 뭐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쁘게 걸어가는 회사원, 아들 손을 붙잡고 있는 젊은 아줌마,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는 여고생……. 그 사이에서 나를 부른 이는 없었다. 잘못 들은 걸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떤 온기가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선배."
"예쁜 이름 부르는 기분 되게 이상하다. 예뻐서 부르기만 해도 막 설레네."
선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이내 떼어냈다. 아마 지금 내 얼굴은, 멍청하게 굳어선 못 봐줄 상태일 것이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말릴 수도 없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 날처럼 얼굴에 열이 올라 뜨거워졌다. 선배가 웃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팡팡 터져서 정신이 없었다. 얼떨결에 같이 걷게 된 우리는, 손이 닿을 듯한 거리를 유지했다. 둘 중 누군가 손을 움직인다면 분명 살갗이 스칠 거리였다. 남자와 이렇게 가까이 걸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손이 닿진 않을까. 그런 걱정 때문에 괜히 불안해졌다. 핸드크림 안 바르고 나왔는데.
"공부는 어렵지 않아요?"
"네, 꼭 배우고 싶어서 온 거라."
"원래 관심이 많았구나."
"…사람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요.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요.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그 사람이 그 때 왜 그랬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버지를 지우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아버지를 알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렇게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난 정말 평생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을 테니까. 난 아버지를 이해해야 했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아버지에게 이유를 만들어줘야 했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선배는 내 이야길 듣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피부가 희구나.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 음, 연락이, 안 오길래."
"네?"
"내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잖아요. 근데 연락이 안 와서."
선배가 시무룩하게 중얼중얼댔다.
"…아, 죄송해요. 전 그냥 예의로 하신 말씀인 줄 알고."
"나 예의로 번호 주는 사람 아니에요."
"……."
"후배님한테 주고 싶어서 준 건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몸이 다 굳어버렸다.
"내일은 뭐 해요?"
"교양수업 과제가 있어서 영화 보러 가려구요. 과제가 감상문 쓰는 거라."
"같이 가도 돼요?"
정말로 다,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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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2입니다!
너무 자주 와서 여러분들 지겹게 하는 건 아닌지... 흑흑... ㅋㅋㅋㅋㅋㅋㅋ
연하는 반말을 쓰고 연상은 존대를 쓰는 이상한 글이 되어버렸군요... (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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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
조만간 또 만나요~ 안녕!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