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도 시끄럽게 마음을 치는 그 소리들에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가지런하게 벗어놓은 신발을 얼른 다시 신고 도장 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빨리 오셔서 나 먼저간당. 운동 화이팅 ! ]
그 날은 평상시의 수업시간처럼 조용했고 나는 글자가 빼곡한 교과서를 보고 있었다. 그 때 뒤에 앉은 아이가 내 등을 쿡쿡 찔렀고, 고개를 들어 교실 안을 보았을 때는 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아이들이 몸을 돌려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렇다 할 어떤 말도 입으로 뻥긋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날 부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까. 정적 중에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다시 시끌 시끌한 잡음들이 교실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그 잠깐의 침묵 속이 너무 두려웠다. 나를 부르는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에 갔고, 평소 내가 아픈 것을 잘 알고있던 선생님은 내 손을 잡으며 '아까 어디가 좀 안좋았니?' 하고 물으셨다. 난 말 없이 조퇴증을 받아 교무실 문을 닫고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청력의 감퇴는 메니에르 병에서 따라올 수 있는 증상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당장 시급한 것은 내이의 수술이라고, 증상 없이 나타나는 현기증이나 현훈은 지금처럼 갑자기 쓰러질 때 상황에 따라 몸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하지만 수술을 했을 때 청력이 어느정도 잔존할 수 있을지, 소실될 지는 보장할 수 없다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보청기를 받아 엄마의 손을 잡고 나왔다.
창섭이는 가수가 될 거라고 했다. 노래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아직은 못 들려준다고, 목소리가 더 멋있어지면 꼭 나에게 먼저 들려주겠다고. 그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나는 이 희미해져가는 빛을 내 손으로 먼저 놓을 수 없었다.
* * *
음악실 이동수업이 끝나고 수정이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먼저 교실쪽으로 뛰어갔다. 꽁지가 빠지게 뛰는 모습에 혼자 킥킥 웃으며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다음 시간 수업할 책을 꺼내려 몸을 책상 밑으로 기울이는 순간, 반대쪽 귀를 날카롭게 할퀴고 가는 느낌에 황급히 몸을 다시 세웠다. 바닥에는 보청기가 떨어져 뒹굴고 있었고, 귀에 손을 갖다댔을 때는 따뜻한 핏방울이 타고 흐를 때 였다.
"와... OOO, 너 진짜 귀 안들려?"
"대박, 진짠가봐! 야, 이게 보청기야? 이거 끼면 나 더 잘 들리려나?"
'한 번 껴봐, 껴봐.' 나 보다 빠르게 보청기를 주은 애들은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웃기 바빴다. 평소에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던 애들이었다. 몇몇의 가시 돋힌 말은 익숙했지만, 덕분에 교실 안은 한 순간 시선이 집중되었고 지금의 상황은 심장이 빠르게 뛸 정도로 나를 무섭게 잠식해왔다.
"...돌려줘."
"야, 대답 잘만하네. 아직 영 병신되진 않았나보다?"
"달라고 했잖아..!"
"..아, 근데 이게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보청기를 뺏으려 저에게 다가가는 나를 가볍게 밀쳐내곤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밀어내며 작은 목소리로 이를 악물고 나에게 읊조렸다.
"병신이면. 좀. 병신답게, 납작 엎드리고. 없는 듯이 살라고."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내 가슴팍에 보청기를 던지는 순간 수정이가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야? 왜 몰려있어? 어? OOO!'
"야, 너 피..! 이리 나와, 보건실 가자. 아니다, 너 병원갈래? 이창섭 불러올까?"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날 보던 그 애들은 안절부절하는 수정이를 보며 코웃음 치곤 자리로 돌아갔다. 당장이라도 창섭이를 불러오려는 수정이의 손을 꼭 잡고 '나 괜찮아. 같이 보건실만 가줘, 수정아.' 하고 눈을 맞췄다. 수정이는 이내 입을 꾹 다물고 바닥에 떨어진 보청기를 주워 나를 데리고 교실 밖을 나왔다. 문이 닫기자 곧 수정이는 자신이 눈물이라도 떨굴 듯이 글썽이며 나를 바라봤다.
"쟤 진짜 유치한거 아니야? 이민혁이 너한테 고백했다고 이러는게 말이냐고. 저거 진짜 열등감 덩어리잖아!"
"뭐야, 정수정 너 왜 울라고 그래!"
"맞잖아, 어떻게 사람이 아픈곳을 가지고 그럴 수가 있냐고오...!"
"어어, 야! 울지마 좀 좀!"
수정이는 이내 닭똥같은 눈물을 뚝 흘리더니 나를 꽉 껴안았다. '이창섭한테 말하자, 아주 반 죽여놓아야해 그런 나쁜년들!' 보건실로 가는 발걸음을 쿵쿵 옮기며 수정이가 씩씩거렸다.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엉덩이를 풀썩 붙이고는 수정이도 그 옆에 끌어앉혔다.
"수정아. 이제 창섭이한테 말 하지마."
"에? 왜? 너네 싸웠어?"
"으응, 아니. 이제 이런 짐 짊어주기 싫어. 창섭이, 여태껏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거야. 착해빠졌잖아. 이번에 기획사 들어간거도 있고. 사고치면 꼬투리 잡힐게 뻔한데, 구설수 오르게 두고싶지가 않아."
"야... 그래도....."
"부탁 할게, 이제 방학하면 졸업이잖아. 으응? 정수저엉-"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다가 표정이 어두워진 수정이의 옆구리를 쿡쿡 쑤시자 수정이는 어쩔수없다는 듯 표정을 풀고는 내 귀를 아프지않게 닦아주었다.
"...짜증나, OOO."
밉지않게 나를 노려보던 수정이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나마 내 맘을 놓게 하는 그 발랄한 웃음소리는 복도의 정적을 작게 메웠다.
* * *
요즘들어 축제에 나갈 노래 연습을 하느라 통 너를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가끔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먼저 먹고 일어나는 너가 내 뒤통수를 콩 치고갈때나 잠깐. 재빠르게 후다닥 사라지는 통에 제대로 보지도 못하지만.
너가 병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같이 집을 갈때나 한 번씩 같이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요즘들어 넌 부쩍 병원에 가는 날이 많았고, 가늘한 팔에 작은 생채기들이 조금씩 늘었었다. 날이 그리 추워도 다리가 못나보인다며 신지 않던 검정 스타킹을 요새 자주 신어 다리는 보지 못했지만. 울긋불긋한 상처들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오늘도 넘어졌어?"
"아니, 뭐. 그냥. 사물함에 부딪혔어. 요즘 안넘어져. 아아주 강해졌거든."
"근데 상처가 어째 더 보여."
"나 원래 멍 잘 들잖아."
"이거 멍 아니고, 긁힌거-"
"어어, 변태! 어딜 만져!"
"허?"
교복 소매를 걷으려 하자 손등을 찰싹찰싹 치고는 어느새 다온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던 너는 도로 내게 다가와 푸스스하게 웃으며 '내일 봐' 하고 제 목도리를 내 목에 둘러주곤 문을 닫았다. 한 동안 발랄하게 닫힌 문을 보다가 달큰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 목도리에 코를 묻었다.
아, 지금 빨개진 귀는 당연히 추워서.
* * *
오늘은 급식실에서도 들리지 않는 너의 기척에 밥을 빨리 먹고 너가 있는 교실로 올라갔다. 분명히 요즘 무슨 일이 있는거 같은데, 도통 모르겠어서. 너가 어디있나 두리번 거린 널찍한 교실엔 작은 너의 뒤통수는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교실로 들어오는 정수정을 툭 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미..친, 내가 더 놀랬다."
"아니, 뭐. 하하. 그럴 수도 있는거지. 2층은 뭐, 왜."
"내가 여기 왜 오겠냐, OOO는?"
"아, 아까.. 이동수업하다가 쓰러져서 보건실... 아, 아니아니.! 야, 아니다 나 먼저간다!"
귓가가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를 꽥꽥 질러대던 정수정은 이내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잽싸게 사라졌다. 삽시간의 순간에 벙쪄버린 나는 가만 그 자리에 서있다가 뒷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요즘 걔네 OOO한테 좀 심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거 학폭이잖아. 안그래도 힘 없는 앤데 맨날 밀어대니까 뼈라도 부러질까봐 무섭더라, 난."
"난 보청기 뺏을 때. 진심 불쌍-"
"너네, 그거 지금 무슨 소리야."
"어? 뭐가.."
"학폭이니, 보청기니. 그게 다 지금 무슨 개소리냐고."
* * *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칠게 보건실 문을 열었다. 쳐져있는 커텐 사이로 '수정아, 스타킹 사왔어?' 하는 가늘한 너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커텐을 재치자 당황하여 동그랗게 커진 너의 눈에 내가 가득 차올랐다. 이내 내 시선은 발갛고 푸르스름하게 엉망이 된 너의 하얀 다리로 옮겨졌고, 입을 옴싹거리는 너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길게 늘어져 귀를 덮고 있는 머리를 한 손으로 걷어 올렸다.
항상 머리를 한갈래로 깔끔하게 묶으며 '그냥 나 확 단발로 자를까? 귀찮아.' 하며 찡찡거리는 너에게 '난 긴 머리한 너가 더 좋아.'라고 답하면 볼이 예쁘게 물들었던 너였는데. 그런 니가 요즘들어 항상 머리를 내려트리고 다니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작은 귀에 힘겹게 자리한 듯한 이질적인 그 물건. 머리카락을 걷어낸 내 손을 꽤 거칠게 쳐낸 너의 눈에는 금새 눈물이 차올랐다.
"이게 다 뭔지, OOO 니 입으로 설명해."
"이동수업하고 오는 길에 어지러웠어. 그래서.. 넘어진거뿐이야."
"거짓말 그만해. 넘어지면 여태 멍만 들었잖아.. 이거 누가봐도 생채긴데 너 왜 자꾸 거짓말하는거야. 누군지 말해, 너 괴롭히는 애들."
"창섭아, 그냥 밀치는 정도가 다였어, 나 손찌검 당하지는 않았어. 그러니까 제발.. 나 괜찮아."
애절하게 부탁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 답답한 마음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무엇이 그리 두려워서 너의 몸을 사리게 하는 것인지, 그게 분명 저보다 나를 더 위하는 것 같은 모습에 가슴 한켠에서부터 시작하여 손가락 끝이 저려왔다.
"그럼 지금 너, 그 귀는... 어떻게 설명할건데."
잔뜩 고여 있던 눈물은 마지막 나의 질문에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와는 대조되게 너의 입은 굳게, 단호하게. 하지만 그 눈물과 똑같이 천천히. 목소리를 흘려냈다.
"굳이, 너가 다 알아야할 이유. 없잖아."
"뭐..?"
"너, 이러는거 죄책감이야. 나한테 이렇게까지 안해줘도 돼. 그 전부터 나는 병이 있었고, 운 나쁘게 니가 장난친 그때 몸이 안 좋았던 것 뿐이야. 친구로서 너는 필요이상으로 대해줬어, 나 고맙게 생각해. 이제 거기까지만 하면 돼, 창섭아."
"...허."
죄책감. 난 그 단어로 시작한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던 너의 다른 모습을 봤던 그 날. 그 것이 모두 나 때문이라고 무의식을 잠식해나갔으니까. 시작은 분명 죄책, 그 단어였으리라.
하지만, 그 어느것보다 해사한 미소로 제 손을 내밀던 그 날, 죄책이란 그 무거운 감정은 생각보다 아주 가볍게 짧은 찰나의 순간처럼 내게 머물지않고 스쳐지나갔다.
"...죄책감, 아니야."
"그럼... 뭔데."
"..."
"그럼, 너도, 내가 불쌍했어..?"
"..제발,"
"결국은 너도,.. 연민이었구나."
먼저 죄책감 때문이라는 너의 말을 부인해버린 것은, 내 마음보다 입이 먼저였다. 하지만 뒤 따라온 너의 아주 나쁜 질문에는 전자와 달리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더라. 왜, 내가 너의 주위를 그렇게 멤돌았는지. 1초, 2초, 시간이 지나가는 나의 침묵 속에서 너의 상처가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몰라주고, 그 순간에 죄책도 연민도 아니라면 나는 왜 너를 놓지 못한 것인지. 고민하려드는 큰 실수를 범했다. 나는 그날의 내가 '그런것이 아니라고, 연민이 아니라고, 내 말을 들어달라고.' 먼저 말하지 못한 것을. 잔뜩 아픈 눈으로 내 옆을 지나치는 너의 손을 잡지 못한 것을 지금도 몹시 후회한다.
첫사랑이었다고, 말하지 못한것을 몹시 후회한다.
꼬옥 읽어보기이 |
1. 전편의 마지막 구절에서 가을을 겨울로 바꿨어요. 2. 01, 02, 03, 04 … 쯤의 분량이 나올 지, 상-중-하 로 끝낼지 고민 중입니다. 하지만 일단 목표는 완결이에요! (๑•̀ㅂ•́)و✧ 자알 하면 다음편에 끝날 수도 있겠네용. 3. 이야기를 전개하려니 감정선을 그려내기가 어렵네요..흑. 한마디로 허접합니다아. 4. 현재 진행된 이야기들로 원하는 전개가 있으시면 꼭 댓글 달아주세요! 5. 현재 BGM이 펜타곤 분들의 Beautiful입니다. 이거만큼 어울리는? 느낌이 없어요.ㅠㅠ 글 분위기에 맞는 BGM 추천해주세요! 6. 전편에 댓글달아주신 분들 덕분에 이번 편이 나왔어요! 다같이 좋아해주신 덕. 입니다.(*ˊૢᵕˋૢ*) 7. 수정했다가 다시 올리네요. 후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٩(๑ ᐛ ๑)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