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에그-VOICE (*꼭 같이 들어주세요 !)
목소리의 형태
나는 꽤나 지쳤던 것인지, 담아뒀다고 생각치도 못한 마음 깊은 곳의 아주 미운 말만 잔뜩 풀어내곤 급하게 보건실 문을 닫고 도망치듯 학교를 나왔다. 사과해야하는데, 창섭이 잘못이 아닌데. 그런게 아닌거란거, 분명할건데. 그래도 혹여나 내 말이 사실이라고 그러면 나 너무 아플거같다, 창섭이가 많이 미워질 것 같다. 넋없이 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퇴근시간이 한 참 남았음에도 쇼파에 앉아 있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어..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꽤나 무섭게 팔짱을 끼고는 나를 올려다보셨다. 오늘 일찍 오셨네요- 하는 내 말을 가로막고 엄마가 먼저 무거운 말씀을 꺼내셨다.
"OOO. 너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니?"
"..어.. 아니..."
"넌 엄마가 모를거라고 생각했어? 매일 같이 늘어오는 상처며, 하루 한번씩 스타킹이 바뀌는데? 어쩔려고 그걸 엄마한테 말도 안하고-"
"미안해요."
더 이상 나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또 다시 터져버린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혼자 잘 해내기는 커녕, 그렇게 또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안겨줬다. 너무 내 자신이 한심해서, 미안해서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 그리고, 나도 너무 힘들어서. 그 동안 넘어지며 여기저기 부딪혔던 곳들이, 누군가 제 존재 이유를 알아주자 그제서야 고맙다는 듯이 온통 쑤셔오는 것 같았다. 모든 상황이 틀어진 지금 더 이상은 내게 버틸 힘이 없었다. 나의 몸도, 마음도. 내게 모든 것을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 내가.. 아파서 미안해요."
엉엉, 아이처럼 울어버리는 훌쩍 커버린 나를 엄마는 여전히 아이를 다루듯 품에 안고 도닥여주셨다. 늘 그랬듯, 이렇게 또 다시 남겨준 상처로 엄마의 마음은 나만큼 울퉁불퉁 하겠지. '전학 가자.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 OO야.' 뜻밖의 말씀에도 내 머릿속은 꽤나 단순했다. 나는 그렇게 창섭이를 남겨둔 채, 떠나버렸다.
* * *
처음 보청기를 착용했을 때, 완전한 청력이 저하된 상태가 아닌 보통 청력과 그 이하를 오고가다보니 보청기를 끼기엔 귀에 무리가 많이 갔었다. 더 이상은 그렇게까지 하면서 들어야 할 목소리도 내게선 멀어졌기에, 그 날 이후로 보청기를 내려놓았다. 그 결과로 나는 현저하게 낮은 청력에서 그 이상으로 들리지 않게 되었고, 누군가 악 지르지 않는 이상은 어떠한 소음도 내게는 소음이 아니게 되었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나서도 물론, 또박또박 천천히 말을 하지 않는 이상 나는 그 소리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음에 따라 말을 할때 점점 나의 발음도 조금씩 무너졌고, 나의 목소리이면서도 그 생소한 발음에 적지않은 충격이 나를 휘감았었다.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리를 옮겨 다니게 된 고등학교 생활은 나름 괜찮았다. 당장의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에 전념하는 아이들은 나에게 별다른 시선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친절했달까. HR시간에는 나를 위해 수화동아리도 생겼고, 나름대로 종이에 글을 쓰며 말을 걸어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늘 오전수업이 끝나면 수화교육원에 갔다. 그 곳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의 가족들이 있었다. 적어도 이 곳에서 나는, 타인이 아니었다.
그 날은 눈이 왔다. 하늘에서 제법 송이송이 떨어지는 눈을 보며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시린 새도 못느끼게 눈송이는 내 피부에 닿자마자 따뜻하게 녹아내렸다. 매번 첫눈이 올때면 서로의 집에 놀러가서 맛있는 걸 먹고, 영화를 보며 저녁이 되면 밖으로 나가 잔뜩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겼었다. 그 때도 너는 한없이 작은 내 발자국을 보고 놀리다가 발이 시려올 때 쯤이면 훌쩍 나를 업어 눈밭 위에는 고작 너의 발자국만 찍어냈었는데. 이렇게 꼬박 3년, 너를 떠나오던 날부터 너를 포기했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늘 사소한 것에서도 너의 흔적을 찾아냈다. 하염없이 내리는 하얀 눈송이에서 어느 덧 너의 향기가 타고왔다. 늘 너의 등에 업힐 때 마다 내 몸까지 감싸던 그 섬유유연제 향기가.
머리보다 마음이 앞선 두근거림을 붙잡고 뒤를 돌았을 땐, 너가 아닌. 학교 후배인 성재가 서 있었다. 동아리를 같이 하는 성재는 내년 회장은 자기라며 늘 나를 따라 교육원에 오곤 했었다. 그럼, 그렇지. 너가 올리가 있겠어. 씁쓸함을 들리지않는 웃음소리로 털어냈다.
[뒤에서 나오지 말랬지, 놀랬잖아.]
[눈이 와서, 오늘은 수업 끝이래요. 같이 집에 가요, 누나.]
[그래, 안그래도 곧 쌓이겠다. 미끄러워지기 전에 가자.]
[가방, 들고 나올게요.]
먼저 내려가 있으라는 성재의 말에 코트 단추를 꾹 여매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엔 내 착각이라고 느꼈던 너의 향이 여기저기 덧칠해져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너는 이곳에 있었다.
* * *
"이제 데뷔 얼마 안 남았대. 그래서 너한테 가겠다고, 자꾸 알려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 지인짜 미안해! 그래서, 만났어?"
두손을 모아 말하는 수정이를 보며 웃었다. 오랜만에 낀 보청기는 주변의 시끄러움을 내 귀로 모두 모으는 것 같았다. 수정이의 눈치가 가득 담긴 질문에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애가 타라고 뜸을 들였다. 빨리, 얘기좀 해봐! 힘들면, 손으로 해도 괜찮아.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말하길래 그제서야 나는 입을 뗐다.
"아니. 못 만났어."
재활을 시작했지만, 아직 발음을 짓기가 힘들어 남은 말들을 손짓으로 지어냈다.
이창섭, 고민을 어찌나 했는지 잔뜩 망설이다가 간 것 같더라. 누구든 변하는게 왜 안무섭겠어. 나 자신도 그랬는데, 창섭이도 자신 없었겠지. 내 목소리가, 자기 목소리가 전달이 안 될 수 있다는게, 걔한텐 컸을거야. 아, 진짜 찾아올 줄 알았으면 그 날 보청기 꼈을텐데, 언어 재활도 열심히 했을텐데. 그럼 그냥 안 보냈을 틴데. 괜히 또 후회스럽고 그랬는데, 이제 창섭이 가수 된다며. 목소리 질리도록 들을 수 있겠지, 난 그럼 된거야. 굳이 나를 향한것이 아니어도 난 어쨌든 그 목소리만 들으면 된거야. 정말 오랜만이겠다, 꿈에서만 들었거든. 빨리 듣고싶어, 빨리 보고싶어. 창섭아.
* * *
"콘서트 홍보 VCR 영상에 수화 자막을 넣은 아이돌"
[비투비 이창섭은 데뷔 초부터 뛰어난 수화실력으로 유명했다.
처음 팬싸인회에서 말을 할 수 없는 팬이 오면서 처음으로 수화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다들 어떻게 수화를 할 수 있는 것인지에 의문이 많았는데, 한 방송 인터뷰에서 같은 질문에 "수화 또한 또 다른 목소리다. 가수로서 노랫말을 음성으로 전할 수 없다면 손짓으로라도 꼭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었다.
그 후에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비밀 봉사 및 기부 소식이 관계자의 제보로 알려지며 또 한번 관심을 모았었다.
팬들은 매번 올라오는 비투비 비하인드 영상에서 늘 등장하는 시그니처 포즈(?)로 유명한 눈에서 손가락을 흩뿌리는 듯한 동작이 '그리워요'란 뜻의 수화란 설이 나오면서 수화에 얽힌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도 늘 따라오고 있다고.
이번 콘서트 홍보의 VCR에서도 타 가수와는 다르게 수화 자막을 직접 촬영하여 영상의 하단에 넣은 것으로 이목이 집중되었으며, 물론 그 아이디어도 이창섭의 제안이라고 밝힌 관계자의 후문이다.
비투비의 2017 '여름 밤, 우리' 콘서트는 오는 8월 1일 핸드볼 경기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나는 눈이오던 5년 전, 그렇게 또 너를 눈 앞에 두고 도망쳤다. 수화를 하던 너를 보며, 깨끗한 너의 귀를 보며. 내가 지금 너의 앞에 선다면, 너는 어떠한 말도 못할 것이고 어떠한 말도 못 들을 것이다. 그런 너를 보며 당황하는 나를 보고 너는 또 아파할 것이고, 지금은 너의 앞에 설 때가 아니였다. 그렇게 느끼고 나는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지금 당장 달려가서 끌어안고 싶은 그 향기를 뒤로 한채 몸을 돌렸었다. 한 참을 울었다. 왜 세상은 너에게 그렇게 가혹한 것인지, 너무 이쁘고 착한 아이인데, 어디까지 무엇을 뺏어갈 것인지. 왜 나마저 너의 곁에서 이렇게 떼어두려 하는 것인지.
수화를 배웠다.
대학교에 들어갔다. 많은 인기 있는 동아리 중에 나는 덩그러니 있는 수화 동아리에 들어갔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이 주 모티브였던 동아리는 수화를 배우고,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멘토로도 활동을 했다. 멀리서나마 나는 이렇게 너에게 다가가려고 열심이었다. 그러던 중 데뷔가 확정되었다. 매일 같이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마다, 나는 너를 생각하며 노래했다. 지독하게도 더딘 이 울림이 언젠가는 너에게 닿을 것이라고 그렇게 되내이며. 그렇게 오늘의 콘서트까지 오게 되었다.
'다들 재미있게 즐기고 계신가요?' 공연이 제법 능숙해진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개인 무대를 시작 하기 전 마이크를 먼저 잡았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과 함께 큰 환호성이 섞여나왔다. 나는 한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새 공연장 안의 소음이 조용해지고 나는 다시 마이크를 입 가까이로 가져왔다.
"어, 저희 이번에 VCR이 굉장히 화제더라구요. 음, 많이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요. 저의 그러한 사연들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이렇다할 말씀을 못드렸어요. 지금은 한 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볼까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동안 기다려주셨으니까요."
"소중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 친구의 아픔에 대해 저와, 그 친구 서로의 생각이 많이 차이가 있었어요. 서로의 배려가 오해가 되었고 때문에 여러 번 많이 어긋났고, 마지막에도 저는 도망쳤다? 그렇게 표현해야겠네요. 그저 처음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친구가 그 친구였고, 가수가 되어서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에 이 자리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어서 처음엔 포기하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했을 때, 이 자리에서 꿋꿋하게, 노래하고 있다면 언젠가 저를 봐주겠다고 생각했어요. 네, 못 만난지 올해로 8년째에 접어드네요. 좀 길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되게 많이 그 친구가 그립습니다. 늘 당장 오늘, 또 그 날의 오늘은 꼭 그 친구 앞에 서있으면 했습니다. 과연, 이 자리에는 있을지. 지금 제 목소리가, 제 마음이 들릴지 간절하네요."
" 오늘, 제가 준비한 무대는 VOICE입니다. 뒤에 화면에 제 손이 나올거에요,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는 자리에서 이런 저의 사소한 마음에 휘둘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제 마음을 함께 들어주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 * *
평소보다 꽤나 절절했던 개인 무대를 이어, 엔딩 무대까지 끝낸 뒤 흠뻑 젖은 채로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수고했다는 말을 멤버들, 스텝들과 나누며 기념 사진을 찍고 겨우 물을 한 모금 하려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바깥에서 '창섭아, 친구.'하는 소리를 듣고 도로 소환되어버렸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온다고 했었는데, 그 애들인가 싶어서 몸을 바깥으로 옮기자 그 곳에는 정수정이 서 있었다.
"어, 뭐야 너. 못 온다더니 왔네?"
"못 올수도- 있다고 한거지. 나 오늘 화보 한 팀 찍자마자 밥도 못 먹고 온거얌마. 뭐, 오늘은 선물 전해주러 온거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는 갑자기 뒤로 돌던 정수정은, 뒤에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을 내 앞으로 턱- 하고 떠밀어 내놓았다. 그리고, 나는 아까 노래를 부르다 터져버리겠다, 했던 심장이 다시 미친 듯 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늘 내가 꼬맹이를 줄여서 꼼이라고 부르 던 것처럼, 자그마한 너가. 여전히 내 마음을 홀렸던 하얗고 볼은 붉게 물들은 볼에, 혹시나 울었던 것인지 물 자국이 작게 눌러붙어 있는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머리는 여전히 길었으며, 앞머리는 길어져서 옆으로 넘어가 그마저도 예쁜 이마를 내놓고 있었다. 맑고 깊은 눈에 내가 담기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내 주변에 다시 온통 너의 향기가 휘감아지기 시작했다.
8년 만에 만난 너였다.
"아니, 어떻게.. 아니, OOO, 너.. 공연 본거야? 언제 온거야? 정수정 너, 아니, 이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아, 오랜만인데, 나 너무-]"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동안 연습했던 그 인사말들이 무색할 정도로 내 입에서는 말을 방금 배우기라도 한 것 마냥 아무 말이 터져나왔다. 그러다, 이내 너가 듣지 못한 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입을 닫고 급하게 손가락으로 대화를 만들었지만, 그 마저도 전부 꼬여버렸다. 너는 그런 나의 눈을 단 1초도 피하지 않았다. 너의 눈은 그저 느리게, 한 번 씩 깜박거릴 때마다 물기를 한 번 씩 머금어 채워나갔다. 그리고 최대에 달했는지 그 순간의 깜박임에 긴 눈물방울이 말라붙은 볼을 다시 적셔나갔다. 당황해서 그런 너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는데, 너는 어떠한 행동으로 그런 나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창섭아, 보고싶었어."
"너무 보고싶었어, 창섭아."
"늦게 와서 미안해."
앞으로 너를 만나면 정작 마주친 너의 생소한 모습에도 절대 놀라지말자, 슬퍼하는 모습 보여주지 말자. 씩씩하게, 너보다 더 씩씩하게 맞서겠다고 했던 나의 그 다짐들을 무색하게, 괜찮다고 위로해 주듯이 나를 친절하게 무너트려주었다.
8년 전, 그 날 처럼 맑고 곧은 목소리가. 나는 이제, 괜찮다고. 너는 지금 괜찮냐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읽어봅시당! |
1.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취준생이 사죄드립니다.(˃̣̣̣̣̣̣︿˂̣̣̣̣̣̣ ) 2. 얼른 둘이 재회시키려고 쓰다보니 성급한 면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아도, 예쁜 이야기 빨리 쓰고싶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부탁드려요!! 3. BGM은 스탠딩에그-VOICE 입니다! 저, 이분들 콘서트 다녀 와서 이 노래 듣고, 아 이거다. 하고 생각나서 쓴 거에요. 창솝이가 부른 노래라고 생각해주시고 같이 들으면서 읽어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4. 다음 편 부터는 예쁜 이야기로 찾아 올게요! 재화한 후 달달한 이야기 원하는 소재 댓글 남겨주세요! 5. 항상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로! 힘이 되어서 글을 써요!♥️ 6. 추가로, [~]부분은 수화내용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