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에 영화보자."
"영화?"
"스파이더맨!"
평소 내가 좋아하는 매운 떡볶이를 사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온 황민현은 말도 없이 내가 먹는걸 바라보기만 하다가 저 첫마디를 꺼냈다.
황민현이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탓에, 나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그런 영화들을 자주 보게 되는 편이었다.
토요일이라.. 토요일은 종현 오빠한테 밥 사주기로 한 날인데.
"나, 토요일은 선약이 있다. 미안"
"아 뭐야. 집순이가 하필이면 그때 선약이 있냐"
"아, 그럼 일요일에 보러 가던가."
"와, 나 밀린거야?"
황민현이 이렇게 유독 애처럼 굴어대는 날은 보통 나 지금 굉장히 불만이 있어요, 아니면 불안정한 상태에요. 라는 뜻이다.
그리고 유독 이런 상태에서는 말도 많아지고 평소보다 과하게 웃기도 하고.
내가 황민현을 봐온 게 몇년인데 이정도도 못 알아 챌까봐.
그런 황민현한테 갑자기 그냥 심술을 부리고 싶었다.
신나게 스파이더맨 영화에 대해 미리 떠들고 있는 황민현을 향해 물었다.
"들었어? 결혼."
"아 민아누나? 들었지 그럼."
"축하한다고 전해줘, 누나한테."
나도 순간 황민현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
"오빠!"
"..."
"아, 오빠 진짜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냐, 별로.. 가자."
헉, 종현오빠 좀 화난거 같은데.. 아닌가.
아씨, 그러게 난 왜 첫 만날때도 모자라서 따로 만나는 자리까지 맨날 처 늦고 난리야. 내 뺨을 두어번 치고싶다.
먼저 앞서 걸어가는 종현 오빠를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나도 옆에 붙어서 걸었다.
무표정으로 그저 걸어가는 종현오빠의 옆모습을 힐끔 힐끔 쳐다보며 눈치만 보다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오빠.. 혹시 뭐 먹고 싶은거 있어요?"
"..아무거나 괜찮아."
"아하.."
화났다. 저건 화난거야 분명. 으아ㅏㄱ악
개한테나 줘버린 내 시간개념과 무례함에 정을 확 떼버린 거라구.
종현오빠의 싸늘한 말투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금방 울상이 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떡하지..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게 좋겠지?
라는 생각이 미침과 동시에 고개를 들어 오빠를 보는데,
"아... 진짜."
"...?"
"장난이야 장난. 너 반응이 웃겨서 장난친거야."
"아, 오빠..."
"아 미안 진짜로. 근데 진짜 웃기다. 아.."
종현오빠의 웃는 모습을 보니 긴장감이 풀림과 동시에 다시 안정감이 찾아와서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내 행동을 보고 종현오빠는 계속 옆에서 하핫 하고 웃어대고 있었고..
저 오빠는 무표정이랑 웃는 표정 갭이 엄청나서 조금만 저래도 엄청 무섭단 말이지.
그래도 어쨌든 오빠가 크게 화가 난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오빠, 나 진짜 깜짝 놀랐으니까.. 우리 초밥 먹으러 가요."
"뭐?ㅋㅋㅋㅋㅋㅋ 무슨 논리야?"
"초밥에는 모든 논리가 통한다니깐요.!"
되도 않는 아무말을 지껄이고는 먼저 종현오빠를 앞서서 걸어갔다.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어느새 내 곁에 온 종현오빠는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수민아."
"네?"
"너 귀엽다는 소리 많이 듣지."
"..예?!"
종현오빠는 저런 폭탄발언을 내뱉어서 칭찬에 약한 한낱 모쏠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는,
굳어버린 내 반응을 보고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근처의 초밥집으로 날 이끌고 들어가버렸다.
*
종현오빠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같이 밥을 먹는 그 순간들은 그렇게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했으면서도, 남자와 둘이 보내는 시간은 황민현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았기에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일단, 종현오빠는 기본적으로 다정하고 매너가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하기 전에 미리 수저를 놔주고, 물도 따라주는 건 기본이고. 내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 따위를 닦아준다거나 하는 세심한 행동 말이다.
남자라는 존재는 원래 이런건가.. 싶다가도 주위 동기들을 떠올리곤 금방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마디로, 종현오빠는 흔하지 않은 남자라는 것이다.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고.
잘생긴 얼굴 하니까 갑자기 또 그 때 일이 문득 떠올랐다.
학교에서 종현 오빠와 의문의 여자를 마주친 그 날.
간단한게 같이 먹자고 시킨 맥주를 조금 들이켜서인지 맨정신일때보단 조금 대담해진 나였다.
"오빠, 그때 저희 학교에서 봤잖아요."
"아, 맞다. 응."
"그 ㅇ.. 학교에서 보니까 또 되게 반갑더라구요.. 그쵸? 하핫"
머릿속은 그 여자는 누구..? 여자랑은 무슨 사이..? 라는 질문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지만,
내가 종현 오빠랑 무슨 특별한 사이도 아니고, 그런걸 물을 입장이 되나? 와 같은 현실감과 내 소심한 성격이 합쳐져 또 말을 빙빙 돌리는 중이었다.
"반가웠지."
종현오빠는 턱을 괴고는 횡설수설하는 나를 그저 바라봤다.
"그때, 되게..그.. 정신 없어 보이시던데.."
"아.. 그랬지. 누구랑 얘기하고 있던 중이라."
"그러시구나.."
"..아, 얘기하던 사람은."
꿀꺽.
"여자친구."
"아..! 역시!!!"
종현오빠의 입에서 여자친구라는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나는 놀란 가슴을 숨기기위해 누가봐도 어색하게 테이블을 탁 치며 옳거니 했다.
아, 근데 진짜 여자친구 일줄은 몰랐는데.. 쎄한 느낌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구나...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에?"
"여자친구였던, 사람. 이야"
"...아."
"..."
"죄송해요.. 괜히.. 오지랖 부려서..."
"아니야."
전 여자친구 였구나..
난 종현오빠를 불편하게 한 것 같은 죄책감과 동시에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안도감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중이었다.
왜? 니가 왜 안심을 하는데?
참나.
"그만 일어날까?"
"그, 그럴까요?"
왠지 모르게 어색해져버린 분위기였다.
*
종현오빠는 만류하는 나에게 그래도 밤길은 위험하다며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하여간.. 참, 다정한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랑 연애할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괜히 누군지 모를 미래의 여자가 부러워졌다.
그만큼 종현오빠는 누가봐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때 온 그 친구는, 남자친구?"
"..네?"
"그, 키 크고 잘생긴."
"..황민현이요? 아니에요! 진짜 그냥 친구에요.."
종현오빠는 내 말에 날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때 미친척하고 황민현을 껴안고 있었는데 오해할 만도 하지. 아니, 오해 안 하는게 이상한데?
뭔가 변명을 해야하는데.. 하면서 머릿속을 빙빙 굴리고 있는데,
"사실, 그 날 그렇게 싸우고 여자친구랑 헤어졌어."
".....그 날이면.."
"응, 너 본 날."
갑자기 들려온 종현 오빠의 말에 내 머릿속은 또 순식간에 그날의 일로 가득 찼다.
"바람, 폈거든. 여자친구가"
"...!"
"나쁘지."
"아, 나 취했나보다.. 갑자기 이런 얘기해서 미안, 수민아."
바람.. 바람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종현오빠의 말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도대체? 종현 오빠를 두고?
처음에는 그저 의구심만 가득해서 이해를 할 수가 없었지만,
살짝 앞서가고 있는 종현오빠의 등을 보는 순간, 그냥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아니에요, 오빠! 저한테 막 욕해도 돼요, 그냥!"
내 목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아본 종현 오빠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나를 바라봤다.
"뭐?"
"미우면 미운만큼 다 욕해도 되는데 저한테..! 저 들어주는 건 되게 잘해요. 근데.. 같이 욕은 잘 못해줄 수도 있지만.."
종현오빠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아까처럼 큭큭 웃으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때 조금 쌀쌀한 봄의 밤바람이 불어왔고 종현 오빠의 향이 내 쪽으로 훅 끼쳐오는 순간.
완벽한 배경과 날씨 탓인가, 심장이 약하게 나마 뛰는 것도 같았다.
"고마워."
역시 종현오빠는 착한 사람인지라, 내 앞에서 그 여자의 욕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한테 고맙다고 예쁘게 웃어줄 뿐.
나도 오빠의 웃음에 그저 답하듯 살짝 웃어보일 수 밖엔 없었다.
익숙한 동네를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다는 건 굉장히 기분좋은 설렘이 느껴졌다.
그 누군가가 종현 오빠이기 때문에 가능한건지, 뭔지는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그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날씨가 기분이 좋았다.
"이쪽 골목이에요."
"되게 외진데 산다. 조심해야겠네."
"그래서 무서울 땐 언니보고 마중 나오라고 ㅎ.."
"어디 갔다와."
익숙한 목소리에 말을 하다말고 그 쪽을 보니, 내 집에서 나오고 있는 황민현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당황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사이, 황민현은 우리쪽으로 다가와서 나와 종현 오빠를 번갈아 쳐다봤다.
"어, 왜. 왜 거기서 나와?"
"..누나한테 줄 게 있어서."
"아.."
언니.. 만나러 왔구나.
난 더 이상 말을 이을 수도 무슨 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저번에 알바생분 맞죠? 황민현이라고 합니다."
"..김종현 입니다."
"둘이 왜 같이 오는 길인지는.. 뭐.."
"얘한테, 천천히 물어볼게요."
계속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황민현이 뱉은 말이었다.
*
늦어서 죄송해요ㅠ그냥,,할말이 없습니다,,
이제는 자주자주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해요 독자님들 S2
그리고 저는,, 남주를 누구로 정할지에 대해 사실,, 갱장히 많은 고민중입니다 하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