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간의 학창 생활, 그리고 그 종지부를 찍을 마지막 겨울 방학. 오랜만에 스트레스 풀러 노래방이라도 가자고 운 띄운 사람은 분명히 나였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 상황은 그와 정반대로 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봤자 이제 수능도 다 끝난 고3들이 또 어디에서 스트레스를 그렇게 많이 받는다고 방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지치지도 않는지 한 번도 안 쉬고 노랠 꽥꽥 불러 건지. 평소 같았으면 나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오늘은 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뛰어노는 친구들 사이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는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노래방 말고 다른 데를 가자고 할 걸 그랬나보다. 따분함에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그나마 얌전히 앉아서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는 민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민하야, 뭐해?"
"나 게임하는데 방해 되잖아, 저리 가 있어."
"야, 내가 게임만도 못하냐?"
"어, 못해. 그러니까 언니 게임 끝날 때 까지 가서 얌전히 앉아있으면 놀아줄게."
내가 저런 색깔 이어 맞추는 게임보다도 못하다니.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내가 쟤랑 말로 싸워봐야 질 게 뻔하니까 내가 먼저 빠지는 거다. 이렇게 하찮은 내 신세를 한탄하며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항상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민하는 예쁘다. 하지만 안경만 쓰면 그렇게 수학 잘하는 초식공룡 같이 생겼다. 안경 쓴 민하를 비유하는 표현 중에서 이보다 더 싱크로율이 높은 표현은 없을 것이다. 돋보기 안경을 쓰던 민하에게 요즘 초등학생들도 그런 안경은 안 쓴다는 둥, 원래는 예쁜데 그 안경만 쓰면 못생겼다는 둥, 그 돋보기 안경 한 번 벗기려고 얼마나 생떼를 썼는지. 그 노력의 결과로 바꾼 검은색 뿔테 안경. 저게 훨씬 나은 것 같다. 아니, 어떤 안경이었어도 예전의 그 돋보기 안경보단 나았을 것이다.
내가 하다하다 노래방에서 할 일이 없어서 게임하는 박민하 얼굴이나 관찰하고 있을 줄이야, 내가 미쳤지. 나도 뭐가 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휴대폰 잠금을 풀어보았지만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꼭 이렇게 필요할 땐 귀찮던 연락도 안 오더라니깐. 뻘쭘하게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눈을 돌리던 중, 벽에 낙서가 조금 있길래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이럴 때 보면 이런 것도 재밌다. 내용은 며칠, 누구 누구 왔다 감, 커플로 추정되는 이름 사이에 끼워진 하트 정도로 한정 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뭔들 재미 없으리. 낙서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다가 재미있어 보여서 가방에 굴러다니는 매직 하나를 꺼내 꾹꾹 눌러 글씨를 썼다. 휴대폰 번호와 완전 미인이니까 연락하라는 형식의 낙서. 민하도 게임보다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생겼는지 빤히 쳐다본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에다가 그런 되도 않는 뻥을 치면 어떡해?"
"뻥 아니거든? 뭐 어때, 설마 진짜 연락 오겠어?"
"너 같은 초딩들이 장난 전화 걸겠지. 완전 유치하게, 거기 짜장면 집 아닌가요? 이러면서."
"아, 그럼 완전 짜증인데. 진짜 그러면 어떡해?"
"어쩔 수 없지, 뭐. 그러게 누가 이런 데에 낙서 하래?"
민하의 말을 듣고 나니 괜히 낙서했나 후회 되기도 하고 이게 뭐라고 지울까 말까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이게 무슨 큰 결심이라고 지우려고 다시 매직을 집어 드는 순간, 노래방 시간도 다 됐겠다 파도 마냥 쓸려 나가는 친구들 덕분에 나는 내가 한 낙서를 지울 겨를도 없이 끌려나왔다. 나와 집 가는 방향이 같은 민하와 같이 집에 가는 내내 진짜 싸이코한테 걸려서 이상한 거라도 보내면 어떡하냐며 찡찡거렸더니 그런 거 아무것도 안 올거니까 설레발 치지나 말라고 성을 내길래 풀이 죽어선 집에 도착할 때 까지 내 운동화 코 끝을 보며 조용히 걷기만 했다.
"진짜 안 오겠지?"
"아 좀, 안 온다니깐 그러네. 그러니까 걱정 말고 빨리 들어가기나 해."
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민하에게 혼났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징징거렸다. 나는 일단 기세 좋게 일을 저질러놓고 나중에 와서 엄청 후회하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래서 다들 나보고 쭈구리라고 하는 건가? 집으로 들어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침대에 누워있다가 금방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 일어나서 휴대폰을 켰을 때, 오늘 정말 재미있게 잘 놀았다는 내용이 있는 단체 채팅방, 친구들, 그 외 사적인 메세지, 몇 개의 카톡방 중에서도 유독 낯설고 눈에 띄는 것을 제일 먼저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름은 문곰이라고 저장 되어 있고, 프로필 사진은 고양이 사진이라 내가 아는 사람인지 얼굴을 확인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뭐해요?]
처음으로 본 메세지가 뭐하냐는 메세지라서 약간 당황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이 친근하게 대하고는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투로 뭐하냐고 물어보기는 하는데 나한테 존대하고 그럴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주변에는 없다. 그래도 혹시나 번호를 잘못 저장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야 할 거 나에게 했을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답장을 해주기는 해야 할텐데, 이럴 때엔 뭐라고 보내야 할지를 몰라서 형식적으로 보냈다.
-누구세요? 저 아세요?
[네, 알죠.]
내가 자느라 답장을 몇 시간이나 지나서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내 답장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 마냥 보내자 마자 노란색 숫자 1이 사라지고 금방 답장이 온다. 누구길래 나한테 이렇게 깍듯이 대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 사람이 얄미워졌다. 마치 자기는 다 아는 듯이 이야기 하는데 나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괜한 소외감도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프로필 사진으로 걸려있는 고양이 마저 나를 놀리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꽤나 당당한 말투로 나를 안다고 하니 뭐라고 추긍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마침 또 다른 답장이 왔다.
[낙서 보고 저도 모르게 저장했어요. 경리 씨, 그렇게 미인이라면서요?]
-아, 네. 근데 제 이름은 어떻게…
[써있잖아요, 이름.]
생각을 해보니 카카오톡엔 제가 저장해놓은 이름이 뜨고, 나는 거기에 정직하게 박경리라고 저장을 해 놓았다. 근데 그것도 생각 못 하고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니. 창피해서 집안도 서늘한 이 겨울날에 금세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다. 더군다나 아까 낙서 했던 거 까진 괜찮다. 하지만 미인이라니, 뭐라니. 그 내용에 대해 난 불과 몇 시간 전에 내 흑역사를 만들 꼴이 되어버렸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을 해봤자 이미 물은 엎어졌고 그것은 다시 쓸어담을 수 없는 게 되어버렸다. 이러나 저러나 내가 잘한 짓은 없지만 지금 연락하고 있는 이 사람은 아직까지는 내가 걱정한 류의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창피로 인해 오른 열을 식히느라 답장도 못 하고 있어 상대방이 답답할 만도 한데 또 다시 먼저 운을 띄워준다.
[이렇게 문자로 하는 것 보다 만날래요?]
한낱 별 거 없는 노래방에 해놓은 그저 그런 내 낙서가 단지 장난에서 비롯된 것 뿐인데 지금 이 사람은 꽤나 진지한 태도로 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눈치가 없더라도 어떤 면으로 보아도 그런 느낌 정돈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평소에 남 부탁 같은 것도 거절은 커녕 싫은 티도 잘 못 냈기 때문에 당장 얼굴도 모르고 요즘 세상 흉흉한데 뭘믿고 어떻게 만나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묘한 이끌림이 있었다. 단지 이 사람 좋다. 가 아닌, 이 사람은 괜찮을 것 같다. 라는 느낌. 그래서 나 또한 흔쾌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어디에서 볼까요?
우여곡절 끝에 우린 적당한 약속 시간과 그 노래방 근처로 장소를 정했고 나는 약속한 카페에 나오기는 했는데 막상 오고 나니 걱정되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어색할 땐 어떻게 해야 될까, 내가 재미 없으면 어떡하지, 알고보니 이상한 사람이면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도망 가야지. 아, 그건 예의가 아니려나. 등등 생각이 꼬리에 꼬릴 물어 혼자 앉아서 별 생각을 다 하며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 친구가 주선한 소개팅이라도 나온 것 마냥 설레게 출입구만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목도 좀 타는 것 같아서 오자마자 먼저 시켜놓은 카라멜 마끼야또를 마셨는데 뜨거운 줄도 모르고 급하게 마셨다가 도로 뱉을 뻔 했지만 겨우 꾹 참고 삼켰더니 입 안은 물론, 속이 다 뜨거웠다. 물론 아무도 못 봤겠지만 내가 한 짓이 너무 창피해서 얼굴도 좀 뜨거운 것 같다.
"엄청 뜨거울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누군가 말을 걸어오길래 뜨거운 목구멍과 얼굴을 겨우 가다듬고 고개를 올려 그 쪽을 봤을 땐, 딱 봐도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은 데다가 비주얼도 괜찮은 여자가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미모에 감탄하다가 괜찮다고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관심도 고마운데 제 건너편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길래 이건 너무 과잉친절 아닌가 하며 벙쪄서 쳐다보고만 있었다.
"경리 씨, 맞죠? 벽 낙서."
"네? 그럼 설마…"
"저 맞아요. 경리 씨 미인이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연락 했는데, 정말 미인일 줄은 몰랐네요."
"……."
나는 오히려 여자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물론 그 행동은 초면에 칭찬이 부끄러운 이유도 있었지만. 미인이라고 써놓은 걸 봤으면 당연히 남자가 연락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떡하니 여자가, 그것도 아주 예쁘고, 키도 크고, 몸매도 빵빵한 여자가. 여자라는 건 생각지도 못 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실망하지 않고 거절 할 수 있을까 라는 걸 궁리하느라 우물쭈물 거리지도 못 하고 벙 쪄 있는데 조금 더 앞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내가 상상한 나쁜 일을 당할 것도 없고, 게다가 이렇게 예쁘기도 하니까 내가 거절할 구실을 아예 잃어버렸다.
"저는 문현아예요. 나이는 어떻게 돼요? 전 스물 둘인데."
"아, 저는 이제 스물이에요."
"아직 어리구나, 곧 졸업도 하겠네요? 어리다고 생각하니까 더 귀엽다."
"저보다 언니니까, 말… 편하게 놓으셔도 돼요."
"음, 알았어요. 지금 말고, 조금 더 편해지면 그 때 놓을게요."
내가 우려하던 어색하고 뻘쭘할 상황도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려는 언니 덕분에 한결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나하나를 나누다 보니 이름, 나이 등의 기본적인 정보 말고도, 내 카카오톡에 친구 추가만 되어 있던 언니의 번호도 새로 저장하게 되었고, 사는 동네, 언니가 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 언니가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이름은 호야랑 모야 두 마리라면서 혹시 고양이 좋아하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모습이 귀여웠다. 내가 그렇다고 했더니 화색을 띄우면서 고양이 사진을 보여줬는데 언니의 프로필 사진으로 있을 땐 그저 얄미워 보이기만 했는데 다시 한 번 보니까 어쩜 그렇게 귀엽던지, 고양이가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가끔은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냐는 뜬금 없는 소리에 아무 대답 못 해 당황도 하고 자연 예찬론을 줄줄 늘어놓기는 해도 이것 또한 내가 생각하는 이 언니 나름의 매력이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이야기를 길게 나누다 보니 내 나름 매력까지 정의 해줄 수 있을 만큼 사이도 가까워졌다.
"다음엔 우리 집에 올래요? 맛있는 것도 해주고, 우리 고양이들도 소개 시켜주고."
"언니는 요리도 잘해요? 와, 멋있다."
"아니, 잘하는 건 아니고 그냥 조금…"
내 칭찬에 말 끝을 흐리는 언니의 얼굴을 끝까지 주시했는데 얼굴이 금방 붉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칭찬에 약한 타입인지, 아까부터 내가 약간의 칭찬만 해줘도 몸 둘 바를 모르고 몸을 꼬기도 하고, 고갤 푹 숙이고 있기도 했으며, 종국엔 머릴 넘기면서 얼굴을 식히려고 손 부채질을 하는데 머릴 넘기는 모습이 여자에겐 실례가 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였다. 멋있다는 게 예쁘다고 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카페에서 이야기만 나누던 언니와 나는 어느 정도 가까워져,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나, 영화 장르 보는 취향이 비슷해 영화를 보고, 음식 취향도 비슷해 같이 맛있는 밥도 먹고, 흔히 연인들 뿐만 아니라 친구끼리도 자주 다니곤 하는 코스를 언니와 함께 오고 갔다. 그것들을 다 누리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꽤 늦어져 어두워진 시간이 왔고, 정말로 안 데려다 줘도 된다고 한참이나 길 한 가운데에서 실랑이를 버리다가 차마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언니를 이길 수 없어서 먼저 백기를 들었다. 이걸로 인해 지금은 단지 연인 뿐만 아니라 친구끼리도 자주 다니는 코스가 아닌, 연인들이 다니는 코스가 되었다.
"언니, 이제 가도 돼요. 저 진짜 다 왔어요."
"경리 집에 들어가는 거 다 보구 갈게요. 진짜로, 그것만 보고 간다니깐?"
"언니 고집 진짜 세."
결국엔 우리 집 앞 까지 와서야 안심이 된다며 날씨도 추운데 자기 만나러 나와줘서 고맙다며, 오늘 나 덕분에 재밌었다고 두 손을 꼭 잡고 이야기 해주는 게 강아지 같았다. 추운 건 나만 추운 게 아닌데 괜히 그렇게 말하니까 미안해져서 양 손으로 언니의 볼을 그러쥐고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또 언니의 얼굴에 열이 올라 붉어지는 게 어두웠지만 가로등 덕분에 볼 수 있었다. 그러더니 언니의 표정이 평정심을 찾고 얼굴을 그러쥐고 있던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경리야."
"네?"
"언니는, 오늘 경리를 처음 봤지만, 경리가 좋아요."
"저는 처음에 언니가 여자인 거 알고 도망 갈 생각이었거든요?"
"……."
"근데 언니 예쁜 데에 혹 했는데 보면 볼수록 매너도 좋고."
"……."
"아니, 그, 그러니까 아무튼, 저도 언니 좋다구요."
"그럼, 우리 앞으로도 매일 이렇게 데이트 하자."
남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를 이야기 이거나 콩깍지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는 이야기 이겠지만 그 날은 춥기만 한 겨울 날에, 눈은 오지 않았지만 눈 오는 날 고백 받은 것 보다도 로맨틱 했다. 남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나한텐 그랬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는 거의 언니와 매일 눈도장을 찍고 있다. 가끔은 내가 밖에서 만나자고 하면 오늘은 호야, 모야랑 놀기로 약속해서 안된다며 나를 언니의 집으로 불렀다. 내가 고양이 보다도 못하냐고 질투도 몇 번 했지만 고양이는 자취하는 언니에게 가족 같은 존재라고 말하길래 혼자 사는 게 외로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금방 언니를 이해 해 주었다.
그리고 그 후에 친구들과 다시 그 노래방을 찾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놀러. 우연찮게 또 내가 낙서 하던 날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새롭게 회상도 할 겸 낙서를 훑다가 기억을 더듬어 내가 낙서를 해놓았던 곳을 보았는데 이상하게 그 곳엔 내가 해놓았던 번호와 연락하라던 내 글씨는 커녕, 매직으로 숯덩이 마냥 검게 칠해져 있기만 했다. 민하는 그걸 보고 왜 너가 낙서 해놓은 곳만 이렇게 칠해져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누가 했을지는 그려지듯 뻔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