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 눈앞에 꽉 차는 건, 한숨을 쉬는 너였다.
* * *
너는 왜 한숨을 쉬어?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는 거야.
황민현이 왜 한숨을 쉬는지, 황민현의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역시인가, 이미 내가 늦은 거고, 난 그냥 친구였던 거고, 그런 거야?
바들바들 떨리는 오른손을 간신히 올려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말하지 말 걸,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도, 나는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내가 아직 어려서, 그리고 서툴러서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선을 너무 넘어버렸기에, 그 책임도 내가 지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남사친과 이상형의 경계_10
“민현아. 내가 뭘 어떻게 하자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러니까 그냥 나는...”
“그냥?”
자꾸만 자연스럽게 숙여지는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눈을 맞춰오며 네가 내게 물었다. 너는 내 말 끝을 따라하면서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네 표정은 어딘가 이상했다. 기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뭔가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하, 모르겠다.
“그..냥.. 말한 거야, 뭐 사귀자.. 이런 것도 아니고.. 미안, 미안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진짜 미안.”
마음이 급해졌다. 네 표정이 왠지 어두워진 것 같아서.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것 같아서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다. 그런 표정을 짓는 너는 익숙지가 않아서 나는 너무 무섭거든.
“미안해. 어... 그러니까! 방금 내가 한 말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어... 나한테 좀만 시간을 주면 다시 내가 전에 그냥 네 친구로.. 어.. 다시 돌아올게! 그러니까 너...ㅁ...”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장난친 거야?”
“아니, 아니! 그런 건 진짜 아니야! 이런 장난을 내가 너한테 왜 치냐... 화내지 말고, 아..까.. 내가 말한 건 진짜 내 진심 맞아. 진짜야. 근데 너는 나 안 좋아하는 거 내가 아니까 그래서 네가 앞으로 나 피할까봐.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거 되게 많이 고민했는데, 말하고 털어버린 뒤에 내가 다시 원래 친구로 돌아오려고 한 거야... 불편해서 이제 나 못...”
“이영채. 너는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님 뭐야.”
으잉? 황민현 너 왜 자꾸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알 수 없는 표정만 짓고, 알 수 없는 행동만...
갑자기 네가 웃는다? 뭐지. 황민현이 웃는다. 입꼬리를 올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릴 정도로 예쁘게 미소 짓는다. 아, 예뻐. 입이 너무 예쁘네, 웃는 게 너무 예뻐.
“나도 너 좋아해.”
황민현이 나를 좋아한다? 상황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황민현이 나를 좋아해..?
“그리고 내가 너보다 훨씬 먼저 좋아했어. 어떻게 너를 안 좋아해, 예쁜데 용감하기 까지 해. 먼저 와줘서 고마워. 눈치를 못 챘는데도, 많이 무서웠을 텐데도 용기 내줘서 고마워. 내가 못하는 걸 네가 먼저 해줘서 너무 고마워.”
어버버. 얘, 뭐라는 거예요 지금? 지금 내 뇌가 제대로 작동하는 거 맞아요?
“니가 나를 좋아한다고..? 진짜?”
“응 진짜. 내가 더 좋아해. 일루 와봐-. 좀 안아 보자.”
황민현이 나를 좋아해... 황민현이 나를 좋아해..?
황민현도 나를 좋아해! 여러분 황민현도 저를 좋아한대요! 황민현도!
나도! 너도! 우리 서로 좋아한대요!
안아 보자,는 말 뒤로 황민현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왔다. 처음에는 그냥 꼬옥-. 그리고서는 머리를 막 헝클어뜨리더니, 갑자기 또 내 머리에 제 볼을 부비기도 하고, 나를 안은 채로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아 좋다. 아 좋아-. 영채야 이거 진짜야? 혼잣말을 반복하면서, 황민현은 이상행동을 반복했다. 나를 안은 채로. 너도 나처럼 이 상황이 실감이 나지 않는가 보다.
자꾸만 의심하는 녀석을 나도 안아주었다. 나도 좋아해, 이거 진짠가 봐. 나는 안긴 채로, 말없이 내 맘을 전했다.
너는 나를 안은 채로, 나는 네게 안긴 채로. 설레는 서로의 체온이 더웠다.
열대야-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기분 좋은, 후덥지근한, 하지만 산뜻한, 우리가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 이 순간이었음을 깨달은-였다.
10. Not too late, finally untangled a twist of fate
– 늦지 않게, 꼬여있던 것을 풀어낸
행복 회로를 얼마나 돌리고 있었을까, 불현듯 현실이 떠올랐다.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아니 근데 이 새끼 미친 거 아니야? 나를 부둥부둥거리면서 안고 있는 황민현을 밀쳤다.
“야, 너 여자친구 있잖아!!!”
“응? 뭐라는 거야, 일루 와아-.”
나를 다시 안으려는지, 황민현은 으레 하는 빙구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다가왔다. 안 돼, 이건 윤리적으로 안 되는 일이지. 내가 좀 행복하다고 그래도 이건 아니지이...
“너 내가 다 봤다고, 어떤 여자애한테 고백 받는 거.”
“알아, 너 본 거.”
“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그 날 분명 물어봤었잖아 혹시 나 따라 내려오지 않았냐고. 너 본 거 같아서 물어본 거야.”
허... 와 황민현, 내가 알던 네가 아냐. 생각보다 너무 똑똑한데? 아니 이게 아니지, 정신을 다시 차리고 끝까지 물을 건 물어야지.
“그럼 뭐 내가 본 거 알겠네. 너 여친 있잖아. 근데, 어? 내가 너를 좋아하고, 그니까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막 이렇게 비윤리적인 행동은 하면 안 되지. 안 그래, 어?”
“진짜 뭐래. 내가 걔랑 왜 사겨.”
“안 사겨 그럼???”
“당연한 거 아니냐. 됐지? 그럼 일루 와봐, 좀만 더 안고 있게.”
안돼, 안돼.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어. 안 사귄다고 쳐도 확실하게, 처음부터 확실하게 다 알아야 돼. 암 그렇고말고. 집중하자, 황민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내가 아냐.
또다시 헤헤거리며 다가오는 황민현의 얼굴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래 이영채, 쉽게 넘어가지마.
“아 왜애 또오-. 영채야, 뭔데 그래 또. 뭔데!”
“야 그럼 사귀는 것도 아닌데 초콜릿은 왜 받아줬어? 나 그것도 봤다고, 막 너랑 그 여자애랑 스탠드에 나란히 앉아가지고 알콩달콩 막. 우와 초콜릿이네-, 너 이러면서 막 받았을 거 아냐.”
황민현은 별안간 끅끅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쟤 왜 웃어. 야 이 새끼야, 나는 지금 완전 진지하거든?
“이거 끝 아니잖아. 그리고 오늘도, 어? 나 집 오는데 또 봤다고 너 걔랑 있는 거. 걔 막 모자 쓰고 너랑 같이 걷다가, 갑자기 그 여자애 폰이 반짝하더라. 어디서 연락 오니까 집 간 거 아니야? 걔가 그리고 미친, 네 엉덩이는 왜 만지냐? 말이 되냐고 그게. 어? 입이 뚫렸으면 이제 말을 해봐. 아 황민현, 웃지만 말고 빨리 말하라고.”
내가 이렇게 윽박지르는데도 황민현은 몇 분 동안 몸을 들썩이면서까지 웃어댔다.
“야, 너는ㅋㅋㅋㅋㅋㅋㅋ 아 이영채.ㅋㅋㅋㅋㅋㅋㅋ”
“아 웃지 좀 말고 말을 하라고. 나 가, 그냥?”
웃으면서도 계속 내 손을 잡고 있던 황민현의 오른손을 쳐낸 뒤, 내가 정말로 뒤를 돌자, 그제야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하는 녀석이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나는 지금도 초조한대.
무슨 일인지 당최 알 수 없어서 눈알만 굴리고 있는 내 두 볼을 턱 하고 잡더니 눈을 맞춰 온다.
이 새끼 이쯤 되면 이거 버릇이다. 사람 설레게 하는 버릇.
“우리 영채가 질투했어요?”
아 진짜 이 새끼 말투 왜.이.래. 아무 말 없이 계속 째려보고만 있으니까 자기도 정신을 차렸나보다.
“야, 그런 거 진짜 아니야. 초콜릿은 걔가 고백하면서 주려고 직접 만든 건데 그날 밤에 못 줬다고 다시 준 거야. 내가 안 받으려고 했는데, 마음 거절해도 어차피 네 거니까 그냥 먹어달라고 해서 받았어. 이거 먹으면 친구하는 거다? 막 이러면서 장난치면서 넘어갔어.”
괜한 오해를 했다. 오해라서 너무너무 다행이지만, 매우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이건. 아 쪽팔려. 쪽팔려서 입술만 삐죽거리고 눈을 피했다.
“그리고 아까 그 여자는 우리 누나야ㅋㅋㅋㅋㅋㅋㅋㅋ너는 몇 년을 보고도ㅋㅋㅋㅋㅋㅋ 아 이건 진짜 웃겨...”
미친 너네 누나라고? 허 내가 그렇게 오래 봐온 언니라고?
허. 참 나. 이쯤 되면 내 눈을 뽑아버려야겠다. 이 두 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하느님 제 눈을 도로 가져가세요.. 듣고 나서 생각하니까 키가 조금 더 크고 머리가 좀 더 길었던 거 같기도...?
와 진짜 오늘 흑역사 생성 갑. 이건 너무 쪽팔려서 설렘이고 뭐고, 행복이고 뭐고, 황민현과 같은 공간 속에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속으로 하나 둘 셋 하고, 뛰어야겠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하나. 둘.. 셋... 뛰자!
했는데 한 발자국도 못 내딛고 황민현한테 붙들렸다. 이번에는 양 어깨가. 동시에 놀라서 녀석이랑 눈도 마주쳐 버렸고.
“야 너 하나 둘 셋 하고 뛰려고 했지?”
치맨가.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게 너인데, 그치 민현아?
너 왜 도망가려고 했어. 쪽팔려서 그렇지, 아니 내가 언니를 몇 년을 봐왔는데 그걸 어떻게 그렇게.. 됐어 황민현 너 앞으로 이 얘기 그만해.
왜애-, 나는 너 질투하는 거 너무 좋은데? 아 뭐가 좋아, 너 내가 진짜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알아?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
어, 야 또 울려고 하네. 울지 말고, 그냥 내가 다 잘못했어. 근데 그럼 나는 얼마나 초조했겠냐? 너가 김종현인지 뭔지랑 다니는 거 보고. 하핳, 그건 또 그렇네.
야 너 그렇게 웃지마, 그거 그 형이랑 비슷해. 하핳, 이거? 오빠랑 시간을 많이 보내서 그런가, 닮아가나~?
나란히 그네에 앉았다. 한 손은 줄을 붙잡고, 다른 한 손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네를 앞뒤로 조금씩 움직이며 우리는 못 다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풀어내야할 것들이 많았다. 앞으로도 우리에게는 풀어야할 것들이 많겠지. 드디어, 이제야, 마주할 수 있게 된 너와 내가 그 일을 잘해낼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아, 친구로 지내온 13년과 앞으로가 얼마나 다를지는 정말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많으면 어때, 같이 해나가면 되는데, 그치 황민현?
나의 왼손, 너의 오른손. 두 손이 깍지 낀 한 손이 되었다. 한 손에 의지해 타고 있는 그네는 가끔은 좌우로 흔들렸지만 그래도 좋았다.
앞뒤든, 좌우든, 동서남북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안 그래?
내가 네 손을 잡고, 네가 내 손을 잡고 있는데.
오보이의 주저리 |
드디어!!!!!!!!!!!!둘이!!!!!!!!!!!!!!길고 길었던 방황을 끝내고!!!!!!!!!둘이 마주보고!!!!!!!안고!!!!!!손잡고!!!!!!!!!!!! 지금 제가 최고 신났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글 쓰는데 민현이 너무 좋아서 움짤도 많이 넣어보았습니다,, 둘이 행쇼해,, 꽃길,, 웨딩길까지 걸어라,, 너무 졸려서 할 말 많았는데 다 까먹었어요..뭐였..더라.. 댓글은 참 너무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ㅠㅠ 가장 최근 글에는 다 답해드릴려고 노력중이구요! 정주행 시작하셔서 남겨주시는 댓들도 다 확인해요ㅜㅜ정말 감사합니다ㅜㅜ 그럼 여러분 안녕히계세요~~ (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