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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환상


제9장 ; 아직은






























결국 뜬 눈으로 새벽을 보냈다. 계속 손에 쥐고 있던 쪽지는 땀 때문에 쭈굴쭈굴해졌다. 멍하게 눈만 끔뻑이다 세게 들어오는 햇빛에 창문을 열고 살랑이는 바람을 맞이했다. 지금쯤이면 그 동생은 노인이 있는 곳으로 갔을까. 꼭, 어제 일어난 일들은 꿈인 것처럼 주변 풍경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그 풍경에 녹아들듯 나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무섭게도, 고작 몇 번 겪었다고 익숙해졌다.










"워!!!"


"악!!!!"











[세븐틴/전원우] 봄의 환상 제9장 ; 아직은 | 인스티즈


"일어났어?"





"뭐야, 깜짝 놀랐잖아!"










불쑥 튀어나온 순영이 덕분에 넋 나간 정신이 돌아왔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키득키득하던 순영이 그렇게 잠이 많아서 어떡하냐고 한 소리를 또 하더란다. 잔 게 아니고 밤을 새운 건데…. 핸드폰이 돼야 시간을 알든가 하지. 이 방은 시계도 없어. 있어봤자 햇빛이 들어온 것도 이제 알아차린 정신머리로 과연 알아차렸을까, 의문이 들지만. 괜히 애꿎은 방을 탓해본다.



밖으로 나가자, 저를 제외한 사람들은 다 강가에 있었다. 물장구를 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뒤에서 앉아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느끼는 여유란, 참으로 달콤하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저들의 가족 같은 모습에 가방에서 드로잉북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나도 이래도 되는 거겠지.












[세븐틴/전원우] 봄의 환상 제9장 ; 아직은 | 인스티즈


"뭐해요?"





"아, 원우 씨…."



"애들 그리는 거예요?"

"네. 그냥.. 갑자기 그리고 싶어져서."








아, 혹시 몰라서 주변 좀 돌아보고 왔어요. 따로 어딜 갔다 온 것인지 뒤에서 나오는 원우 씨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본 내 눈을 보고, 단번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차리곤말을 꺼냈다. 옆에 털썩 앉은 원우 씨로부터 눈동자를 돌리고 다시 강가에 있는 사람들과 연필에 집중한다. 사실 원우 씨를 외면하고 싶었다. 어제 화낸 것이 부끄러워서.








"어젠 미안했어요."

"네?"





종이에 부딪혀 서걱서걱 소리를 내던 연필의 움직임이 멈췄다.






"티스 씨는 당연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고 힘들 텐데, 너무 현실만 생각했나 봐요."

"아니요.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해서 말도 못 꺼냈어요.. 괜히 원우 씨한테 화만 내고."

"화 낼 만도 하죠. 티스 씨가 미안해할 거 없어요."






원우 씨가 먼저 사과를 했다. 오히려 자신에게 사과할 일은 없다며 위로를 해주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사과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받아버렸으니.. 차라리 피하지 말고 용기 내서 먼저 말할걸. 꾹 쥔 연필을 다시 움직였다. 그림 잘 그리네요. 특유의 나긋한 말투가 귓가에 울렸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그의 부단한 노력이었다.






"원우 씨도 나중에 그려줄게요."

"진짜죠?"

"제일 멋있게 그려서 선물로 줄게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기분 좋은 웃음이 넘실댔다. 여전히 옆에 앉아 강가에 있는 동료들을 보며 웃는 원우 씨에게서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눈이 옆으로 찢어져 있어 무표정일 땐 사람이 되게 차가워 보이는데 웃을 땐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만다. 두근대는 마음에 얼른 그림 그리는 것에 집중했다. 그냥 내가 긴장해서야. 그 이상 아무것도 아냐.


내가 돌아가게 되면 다시는 못 만날 사람인 걸.











































 "정면으로 들어가는 건 어때? 돌아가면 우리가 버티기 힘들 거야."

"정면은 위험 요소가 너무 커. 차라리 돌아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서서히 좁혀오는 시간에 모두 모여 지도를 확인했다. 다들 이 경로대로 미련의 탑을 가본 적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어디서 어떻게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면 거기서 거기 아니냐며 정면으로 쭉 들어가자는 의견에 한 표 던진 지훈 씨는 책상에 엎드렸다. 어쩐지 얼굴이 따끔한 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 같았다. 역시, 촉은 틀리지 않았고.







"야, 인간."

"자꾸 인간이라고 할래? 똑같이 인간 형태 하고 있으면서."

"노인이 데려가서 무슨 얘기했냐?"

"안 알려줄 건데?"

"뭐?"






뭐야, 둘이 언제 말 놨어? 순영이 옆에서 신기한 듯 물었다. 언제라고 하기엔 지훈 씨는 한 번도 나한테 존댓말을 한 적이 없는데. 고개를 까딱이며 지훈 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한껏 당황하는 눈치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칼만 안 들면 아무것도 아니겠네.






"순영이도 지훈이라고 부르는 거 보니까, 우리도 친구인 것 같은데 그냥 지훈이라고 할게."
"뭐야!?"

"애초에 반말한 게 누군데? 혼자만 하지 말고 쌍방으로 좀 하자."

"야, 내가 권순영보다..."






그만!



승철 씨의 한마디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무어라 말은 하고픈데 입 밖으론 내뱉지도 못하고 씩씩거리는 모습이 꼭 제 동생과 같았다. 동생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곳은 지금 며칠이 지났을까. 엄마도 보고 싶네. 정신이 없어도 잊을 게 따로 잊지. 이곳에 온 지가 며칠짼데 이제야 떠오른 가족 생각에 나도 더 이상 지훈 씨를 골리지 않고 승철 씨의 말에 집중했다. 그래.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려면 내가 여기서 잘해야 해.









"정면으로 들어가되, 체력이 너무 지치거나 못 버티겠다 싶으면 멀더라도 돌아서 가자. 그게 낫겠어."

"그곳에도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완전히 망각의 숲을 점령했으면 어떡해요?"

"걱정 마. 숲 바깥쪽은 결계 때문에 못 들어와."

"결계요?"

"미련의 탑 때문에 그 주변은 전부 결계로 막아놨어. 입구로 들어갈 순 있었어도 아마 중간에 바깥으로 나오진 못할 거야."









순영은 정한 오빠의 말을 듣고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한 번도 망각의 숲에 가보지 못한 탓에 떨린다며 심호흡을 했다. 지훈 씨는 그런 순영이의 등을 두들겼다. 가만 보면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순영을 꽤 각별히 챙기는 듯했다.







"조심해, 권순영. 웬만하면 내 옆에 있고."

"웬만하면 나보고 싸우라며?"

"망각의 숲에서는 공격하지 말고 일단 피해. 우리도 위험한데, 넌 특히 더 위험해."


"내가 혹시 칼 다루는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래?"






급격히 순영의 낯이 어두워졌다. 지훈 씨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눌려버린 순영의 감정 스위치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신은 뭐든 그대로 따르겠다며, 순영은 그대로 일어나 집 밖을 나섰다.


살살 달래가면서 말하지. 승철 씨가 타이르자, 지훈 씨도 고개를 떨구곤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그냥 뒀다가 진짜 잘못되면 어떡해요."





지훈 씨 얘기에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들도 위험하다면서 특히 순영을 감싸는 이유는 뭘까. 푹 쉬고 아침 일찍 출발하자는 말에, 다들 흩어지고 지훈 씨는 며칠 동안 쓰지 않은 칼들을 들고 문을 열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지훈 씨가 털썩 앉아 칼을 꺼내는 모습이 보인다. 할 것도 없겠다, 어디 구경이나 할까.






"뭐 하게?"

"위험하니까 저리 가."

"나 보자마자 칼 겨눌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게 내 일이었으니까 그렇지."






지훈 씨는 그대로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일을 대비해서 미리 사람들 것을 다 들고 온 게 분명했다. 아까 난로에 불을 피우다 풍긴 재를 얼굴에 묻히고 비장한 것이 퍽 우스워 소매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뭐 하는 거야! 얼굴을 붉히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얼굴과는 다르게 성질은 더러울 줄 알았더니, 귀여운 구석이 있네.


얼굴에 재가 묻었길래. 뭘 그렇게 놀라냐며 어깨를 으쓱이니, 여전히 벌건 얼굴로 말 더럽게 안 듣는다며 손을 휘저었다.






"반말하는 거 이제 뭐라고 안 하네?"

"맘대로 해라.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할 거잖아."

"순영이랑 친구면 너도 23살이겠네. 나 진짜 그럼 지훈이라고 부른다."

"나 38살이거든."

"에이, 거짓말."




"살아있었으면."






내가 혹, 잘못 들은 건가. 아니, 원래 여기 사람이 아닌 거야...? 그럼 지금의 넌 몇 살인 거야. 지훈이는 갈던 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손으로 감싸며 어디론가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의 끝은, 강가 앞에서 돌멩이를 던지고 있는 순영이었다.







"이 세계는 시간이 흐르지 않아. 그니까 동갑 맞아."






서글픈 눈빛은 여전히 순영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나와 함께 심판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다. 당연히 이 세계를 다루는 신 혹은 관리들이라고 생각만 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럼 혹시..







"아, 너 때문에 집중이 안 돼. 다른 곳 가서 할 거야."

"..."

"그니까 따라오지 마."





"아 그런데,"

"응?"

"노인네 진짜 무슨 얘기해줬는지 얘기 안 해줄 거야?"

"별 거 없었어. 그냥 난 인간이니까 특별히 조심하라고..."






미심쩍은 눈으로 갸웃거리던 지훈은 집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감추었다. 지훈이 모습이 없어진 뒤에도 한참 그 자리를 바라보던 나는, 아까 지훈이 취했던 자세 그대로 몸을 말았다. 이걸 얘기를 해야 하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저 사람들에게 '이 세계를 구하려면 전 죽어야 해요, 제가 돌아가려면 이 세계를 없애야 해요'라고 말 할 자신이 죽어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세계를 위해 희생한다?


아니. 난 꼭 돌아가고 싶다. 내가 무슨 히어로도 아니고.





아, 모르겠다. 머리 터질 것 같아. 사실 다 때려치우고 이대로 집에 돌아가고 싶다. 내 인생 최대의 고비는 대학을 갈 수 있을지 말지였는데.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진절머리 났다.





'난 어떤 선택을 하든 자네를 믿네. 마냥 어둡지만은 않을 게다.'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가만히 떠오르는 노인의 말. 차라리 선택을 정해주시고 갔으면 이해라도 하려고 노력할 텐데.



저도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과연 어떤 선택이 좋은지. 모두에게 좋을 순 없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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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티스
안녕하세요, 스타티스입니다!
여러분 타임머신은 늦게 올라올 거예요... 제 손가락의 실수로 날려 먹었거든요.. (암울)
그치만 언젠가 꼭 올리겠습니다 +ㅁ+
-
오늘은 좀 다른 편보다 분위기가 잔잔하죠? 다음 편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심판이 시작되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암호닉 ♡
대시, 자몽몽몽, 제로나인, 늘보냥이 님

* 결계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미련의 탑' 결계와 '망각의 숲' 결계는 별개예요! 지금 틀어지고 있는 것은 미련의 탑이랍니다!

7년 전
비회원34.174
으아아 안 자고 있길 잘했어요 저 자몽몽몽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 분위기가 잔잔하다뇨 대박 마지막에 읽고 지금 저 정신 못차려요ㅠㅠㅠㅠㅠㅠ 순영이를 유난히 더 챙겨주는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저 등산하는 거 아니겠쥬,,? ㅋㅋㅋ 흑흑 여주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ㅠㅠㅠㅠ 으아 진짜 재밌었어요 작가님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사랑합니다❤
7년 전
스타티스
자몽몽몽님, 어서 오세요♥ 헤헤 본격적인 얘기 나오니까 기대해주세요 +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1
스타티스님 보고싶었어여!!ㅠㅠ늘보냥이에여~ㅎ역시 이번스토리도 기대를저버리지않네용!!정말 너무재밌어여♡다음편이 너무기대되요♡♡재밌게읽었어여!!감사합니당♡얼른다음이야기도읽고싶네용♡♡
7년 전
스타티스
늘보냥이님, 어서 오세요♥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vㅠ 다음 편에서 봐요 우리!
7년 전
독자2
대시에요ㅠㅠㅠ!!! 어떡해 어떡해 저러다 정들구 결국엔 여주는 죽게되는 선택을 할거같구우ㅠㅠㅠㅠㅠㅠㅠ 오늘도 잘 보구 갑니다 작가님ㅠㅠㅠㅠ
7년 전
스타티스
대시님, 어서 오세요♥ 이야압 제가 더 열심히 써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ㅁ^/
7년 전
독자3
제로나인이에요!ㅠㅠ 할아버지는 끝까지 여주를 괴롭히시네요ㅠㅠ 작가님도 고민많으시겠어요..ㅋㅋㅋ 지훈이와 순영이에게 얽힌 사연들도 너무 궁금함니다.. 간질간질듀근두근..!♡
7년 전
스타티스
제로나인님, 어서 오세요❤ 하 이제 저의 고민도 하나하나 해결해야죠! ㅋㅋㅋ 곧 후두두두 해결됩니다 ㅎㅁㅎ 이번 편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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