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아요? ”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에게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어버버 거리는 나를 보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 잠깐만 여기 있어요. 가만히 어디가지 말고 딱 여기 있어요. 누나. 알겠죠? ”
자신이 빠져나온 자리로 나를 더 깊숙이 밀어 넣고는 그는 말했다. 위험하니깐 그대로 있으라고 그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범인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갔고, 나는 다리가 풀려 움직이지 못했던 터라 집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 검은 옷,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를 쓴 남자가 다시 다가왔다.
“ 흠- 여기 있었네? ”
쓰레기통 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남자는 겁에 질려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나를 보곤 비열하게 웃으며 다가왔고, 곧 쇠파이프가 내 머리에 세게 내리박았다. 점점 흐려지는 의식에 나도 모르게 그를 찾고 있었다.
...살려...줘 종...현아
내 옆집에 살인범이?
-4-
(종현시점)
“ 아, 엄마 나 진짜 집 한 채만 줘! 학교가 너무 멀단 말이야. ”
“ 그래서 엄마가 네 전용 차랑 기사 딸려줬잖니. 학교만 잘 다니면 되는데 뭘 그렇게 궁시렁 거려. ”
“ 아아앙 엄마 나 그냥 학교주변에 집 하나만 구해줘요. 그러면 나 진짜 엄마 말 잘 듣고 착한 아들 할게요. ”
으휴 돈 덩어리 그래 알았다. 엄마 입에서 기분 좋은 승낙이 떨어졌고 그제서야 엄마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때어 내곤 머리위로 하트를 그렸다. 사랑해 엄마. 근데 엄마 돈 많으면서... 그렇다. 우리 집은 대한민국에 그 어느 집에 비교해도 딸리지 않는 그런 부를 가졌다. 소위 말하면 난 금 수저다. 태어날 때부터 난 돈 걱정하지 않고 내 멋대로 내 필대로 살아왔다. 그런 나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고, 학교에서도 다 나를 동경하거나 시기하는 그런 사람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삶에 익숙해졌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렇게 살 계획이었다.
“ 오... 아파트 생각보다 깨끗하고 좋네. ”
엄마가 집이라며 찍어준 주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차에서 본 모습은 쓰레기장이며 공사장이며 심지어는 폐교까지 있었다. 도대체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날 여기로 보냈을까. 생각을 하며 새로운 집에 대한 기대감이 확 저버렸을 때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숲이 우거진 공원에 놀이터까지 있는 생각보다 단란하고, 깨끗해 보이는 아파트였다. 리니아파트... 역시 엄마스타일이네.
이미 가구와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은 다 세팅이 되어있었다. 뭐야 엄마, 다 새로 산거야? 집사주기 싫어하더니 이렇게 츤데레야. 우리엄마가... 웃으며 집안을 구경하던 중 가구가 너무 널브러져 있어서 깔끔해보이지도 그다지 넓어 보이지도 않는다는 생각에 가구를 옮기려고 목장갑을 꼈다. 그 순간 그의 폰이 울렸고, 종현은 다시 목장갑을 벗고는 전화를 받았다.
“ 어 영민아 ”
-야 니 이사했다매! 왜 나한테 말 안했냐. 집에 갔다가 놀랬다이가.
“ 미안 너무 바빠서 까먹었다. ”
-까먹을게 따로 있지 우리의 몇 년의 우정을
“ 미안미안 내가 밥살게. 영민아 용서해줄꺼지? ”
-그 밥 오늘 사라. 놀러갈게.
“ 아니 지금 집 청소도 다 안돼서 어차피 여기서 못 노니깐 밖에서 먹자. 우리 맨날 먹던 거기로 ”
-이참에 너거집 한번 가볼랬더만 다음엔 집으로 불러라.
“ 아 알겠어 알겠어 그럼 좀있다 보자. ”
-어.
휴 가구는 갔다 와서 옮겨야지 귀찮은 자식. 영민이와는 오랜 우정을 쌓아오고 있다. 뭐 오랜 우정이라고 해봤자 3년 그 정도 일 것이다. 대학교를 와서 알게 되었으니... 하지만 오래 알았던 듯 3년을 항상 내 곁을 지켜왔으며 아직도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는 그런 존재. 그런데 이사소식도 말을 안 하다니... 서운할 만하네. 오늘 맛있는 거 많이 사주자 라는 생각으로 영민이에 대한 생각을 접고, 집을 나섰다.
“ 여-왔냐. ”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빨간 머리. 영민이다. 20살이 되고 나서부터 영민이는 오직 빨간머리만 고집하는데 왜 그러는지 알 것도 같은 것이 빨간 머리가 그렇게 잘 어울린다. 학교 다닐 땐 어떻게 흑발하고 다녔나 몰라. 하긴 그것도 잘 어울렸겠지.
“ 어. 벌써 시켰네. ”
“ 당근 니 오면 바로 먹으려고 했는데 오늘 좀 빨리 나오길래 먼저 먹고 있었다. ”
“ 치사한 놈 ㅋㅋㅋ ”
“ 네네 오늘의 물주 종현님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
“ 근데 넌 안 덥냐. 이 더운 날에 옷을 뭐 그렇게 껴입고 난리. ”
“ 어휴 물주님. 패션을 모르시네요. 패션의 완성은 레이어드. 몰라? ”
“ 패션의 완성 좋아하네. 도대체 흰색 티셔츠 안에 흰색 옷을 왜 또 입는 건지. 니 맘대로 해라 그래. ”
서로 이야기를 하며 먹던 도중 영민이의 폰이 울렸다.
띠리링-
“ 어, 야 잠시만 내 반쪽 전화 좀 받고 올게. ”
“ 내 반쪽 돌았나. 사랑꾼아 사랑꾼 은근히 사랑꾼이야. ”
영민이는 2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 같은 과라서 어쩌다 보니 둘이 꽁냥꽁냥 사귀고 있더라. 영민이가 먼저 좋아해서 그런지 기특하게도 아직까지 큰 트러블 없이 둘이 아주 좋아죽는다. 부럽게... 휴 나는 언제쯤 한탄하며 소주를 입 안 가득 들이 부었다. 아으 써.
“ 어... 종현아? 있잖아. 나 좀 가봐야 될 거 같은데... ”
“ 와 이 새끼 봐라? 친구 바로 버려버리네? ”
“ 내가 보고 싶다는데 어떡해. 내가 가줘야지 안 그러냐? ”
“ 안 그렇다 이 자식아. 배신자 새끼. ”
“ 어이구 종현이 삐져떠여? 야 미안. 다음번에 내가 진짜 2차까지 쏠게. ”
“ 빨리 가봐. 너의 그 반쪽님 기다리신다. ”
“ 고맙다. 내일 학교 오지? 이 형님 내일 아침에 교양 수업 있는데 들을 수 있을 진 잘 모르겠지만ㅎ 학교에서 보자 ”
“ 야. 아침에 네 여친 집에서 나오기만 해봐. 집에 가서 자. 잠은. ”
“ 그러니깐 집에 가잖아. 내 여친 집. ”
저거 위험한데. 내가 걱정을 하거나 말거나 음흉하게 윙크를 날리고, 웃으며 짐을 챙겨 떠나는 영민이다.
영민이 가고 나도 그냥 빨리 가서 가구나 옮겨야지. 하는 생각에 슬슬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와선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같이 올라가나 보다 하며 그냥 문이 닫히려고 할 때 아이가 열림 버튼을 눌렀다.
“ 안대여 엄마도 가치 가야 해여...”
우물쭈물 말을 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풋-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 엄마 언제 오시는데? 라고 묻자 저기 오꺼에여. 담시만 담시만 이쓰묜 저기에 띠옹 하고 나타나꺼에여. 하며 기다리자는 아이였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 아이의 엄마처럼 보이는 사람이 뛰어왔다. 으이그 여기 있었네. 하며 아이를 데려가려하자, 아이는 엄마 요기가자. 응? 요기 대휘하테 가자. 라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진영아...시간이 너무 늦었잖아 내일 오자 알겠지? 하며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 아 죄송합니다. 우리아이가 친구네 집 놀러가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
“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
아이의 소동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너무 오랜 시간 1층에 머물러있었고,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았을 꺼라 생각했던 나는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려먹은 생각인 것을 7층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7층입니다- 하고 문이 열리자 내 앞엔 어떤 여자가 짜증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근데 그 눈빛은 어느새 겁에 질린 눈빛으로 바뀌어있었고, 당황한 나는 그냥 집에 들어가 버리자. 하며 그 여자를 지나쳐 집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 내 뒤를 쫒던 그 눈빛이 왠지 모르게 많이 신경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