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자마자 그냥 가구는 내일 옮기고 자버릴까 하며 쇼파에 누웠다. 눕자마자 방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그녀가 생각났고, 그 눈빛이 두려움에 가득 찬 그리고, 누군가에게 구원을 바라는 그 눈빛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려 눈을 감아 잠에 들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다.
그녀가 집에 잘 들어가는 것을 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고, 이미 발걸음은 쇼파를 떠나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나가면 맞은편에 있는 베란다로 다가갔다. 혹시나 여기서 그녀가 보일까 하는 생각에...
어두컴컴한 길에 딱하나 의지할 수 있는 가로등이 보였다. 그 자린 항상 사람들의 발걸음에 의해 비벼지는 자리였지만 오늘은 한없이 공허해 보였다. 안 오는 건가... 하며 그냥 집에 들어가려고 했던 나는 공허함이 조금씩 조금씩 채워지는 그림자를 보며 안심했다.
그거면 됐다. 잘 오는 걸 봤으니. 하고 집에 들어가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할 만 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내가 왜... 신경을 쓰는 거지? 태어나서 나 말고 누군가를 이렇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는 나는 이 감정이 어색했다. 이 감정뿐만 아니라 그냥 지금 가슴속에서 무언가 솟구치는 짜릿한 또 다른 이 감정도 뭔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어색했다.
도저히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피아노를 잡았다. 심심할 때마다 그냥 뚜닥거렸고, 어쩔 땐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켜주기도 정리해주기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피아노를 쳤겠지만 지금 여기는 아파트다. 소음은 굉장히 서로 불편한 것이다. 사실은 그것보다도 내 소음에 그녀가 잠에서 뒤척이며 깨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 마음을 강제적으로 종결시켰다. 새로운 환경에서 일어나는 그냥 그 흔해 빠진 관심과 흥미일 뿐이라고.
그렇게 그냥 정리해버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후련했다. 이 구조에 옷장은 어디가 가장 잘 어울리는 지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충 마음에 들도록 가구들을 옮기고 나니 그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내 옆집에 살인범이?
-05-
‘ 살..살려주세요.’
‘꺄악-’
‘너는 살인범이야!’
무겁게 짓눌려지는 눈을 힘겹게 떴다. 꿈이구나... 오랜만에 가위눌렸네. 왜 이번장르는 살인범일까. 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또 그녀의 모습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제 왜 나를 보고 그런 표정을 지은거지. 나를 한참 괴롭히던 그 감정의 시작엔 이 질문이 있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얼른 물어보고 싶었다. 옆집 문 앞에 섰지만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벨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던 새 갑자기 문이 열렸다. 머리에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채 뭐가 그리 바쁜지 허겁지겁 나오던 그녀가 나를 보곤 깜짝 놀랐다. 물론 나도 깜짝 놀랐다.
“ 아... 저기 ”
당황해서 그냥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 말을 꺼냈는데, 그녀는 문을 도로 닫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말해보자. 하며 벨을 누르곤 이사 왔다고 말을 먼저 시작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그녀는 아직 경계심이 풀리지 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저기 어젯밤에 혹시 많이 시끄러우셨으면 사과드리려구요... 이사가 처음이라 이것저것 만져본다고 가구위치를 옮기다보니 새벽이어서... 아차, 싶어서 그만두긴 했지만 그래도 시끄러우셨을 거 같아서요... ”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신경을 쓸 찰나도 없이 나는 말을 뱉고 있었다.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에 걱정되어 잠 한숨도 못 잤다는 말을 했다. 사실 가구 때문에 걱정된 게 아니면서... 물어보고 싶었다. 왜 나를 그렇게 경계하고 두려워하냐고.
근데 그 물음은 그녀의 물음으로 인해 먹혔다.
“ 아 저 근데 이사오셨다구요? 와 이 아파트에 드디어 남자가 사는구나. ”
응?
“ 네? 그럼 남자가 아무도 안 살아요? ”
“ 네. 제가 여기서 산지 6년이 되어 가는데 한 번도 남자가 사는 걸 본적이 없어요. 이제 살인사건 안날 수도 있겠네요. ”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구나... 그러고 넘기려 했지만 순간 한단어가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꿈’ 꿈에서 나는 살인범이었다. 너무 놀랐다. 이 집으로 이사 오자마자 가위를 눌리질 않나 이 동네에 살인범이 있다고 하질 않나. 괜히 이사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고난 후엔 그녀는 없었다. 집에 들어오자 계속 울리고 있었는지 노래가 반쯤 넘어간 벨소리가 들렸다.
<영민이> 휴대폰액정에 박힌 이 세 글자를 보곤 소스라치게 놀랬다. 오늘 하루 시작한지도 얼마 안됐는데 무슨 놀랄 일이 이렇게 많아. 이번에 내가 놀란 이유는 오늘...평일이다. 고로 난 학교를 가야한다.
-야!! 니 지금 어디야. 왜 안와.
“영민아... 나 아직 집이야. 어떡해 오늘 교양 늦겠다. 교수님한테 말 좀 잘해줘...”
-으이그 지가 내일 빨리 오라고 뭐라 해놓고 나라고 여친 집에서 나오고 싶었겠냐? 가지 말라고 하루만 빠지라고 그리 극구만류해도 지 때문에 학교 왔구만. 지는 무슨
“아아 빨리 갈게... 조금만 조금만 늦는다고 해줘.”
- 알겠다. 빨리 와.
얼른 전화를 끊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아 나 아침밥 꼭 먹어야 되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침밥까지 먹으며 여유를 누릴 시간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강의실로 슬금슬금 들어갔더니 다행히도 아직 출석체크를 하기 전에 우리 교수님 특유의 시작 말씀 중이었다. 문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는 영민에게 다가가자 빨리 앉으라고 자신의 가방을 치워줬다. 야 그래도 다행. 아직 안 늦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나를 보더니 영민이가 물을 건넸다. 영민이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받아서 마시기 바쁜 나를 보고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출석 부른다. 대리출석 다 잡아낸다. 나 목소리 다 구별하는 거 알지. 자. 김종현. '
' 이걸로 오늘 강의 끝. 침 닦고 다 나가라. '
내가 오늘 들은 교수님의 걸걸한 그 목소리는 딱 이 두 마디 뿐이었다. 내 온몸의 신경은 오직 어제부터 계속 신경이 쓰이는 그녀에게 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멍을 때린다 싶으면 그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별로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알고 싶었다. 그녀에 대해... 좋아하는 것은 뭐고 싫어하는 것은 또 뭔지. 아니면 이상형은 어떻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내가 왜 알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상했지만 그 이유를 딱히 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난 항상 내 멋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 야. 니 진짜 뭐 어디 아프나. 왜 하루 종일 애가 멍해. ”
오늘 하루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내가 왜 화가 났고, 왜 웃었는지. 항상 영민이에게 말해주던 내가 하루 종일 말도 없고 멍하니 걷기만 하고 강의를 들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을 보던 영민이가 못 참겠는지 걱정이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 아니... 아픈 건 아닌데. 그냥 누가 계속 생각나서. ”
“ 누구? 내가 아는 사람이야? ”
“ 아니... 이사 간 아파트 옆집사람. ”
“ 왜 니한테 뭐라 그러디? ”
“ 그런 게 아니고... 그냥 그 여자가 나 쳐다보던 거 계속 생각나고... 그냥 뭐 좋아하나...이런 거 궁금하기도 하고... ”
“...여자? 어때. 젊어? 예뻐? ”
“ 어... 예뻐. 그것도 존나. ”
“ 오~ 뭐야. 좋아하냐? 드디어 김종현이 사랑을? 이야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새끼 의외로 순수하네. 뭐 첫눈에 반했어요. 이런 거냐. ”
사...랑? 내가?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에이 한두 번 마주쳤는데 사랑은 무슨...
“ 오바떨지마. 지 연애한다고 다 사랑인줄 아나. ”
“ 뭐래. 나도 그렇거든. 뭘 좋아하는지, 어떨 때 웃는지, 또 지금은 뭐하고 있는지 항상 궁금하다. 그러니깐 나 전화 좀 할게. 지금 뭐하는지 궁금해. ”
“ 아씨 저 봐 우정보다 사랑이지 너는. ”
“ 당연한 거 아니냐. 니가 뭐 좋다고. ”
누가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는 말을 스스럼없이 뱉고는 휴대폰을 꺼내 최근 연락 가장 위에 떠있는 <내 반쪽♡>을 눌러 귀에 댔다.
옆에서 있는 애교 없는 애교를 다 떨며 통화하는 영민을 보며 나는 또 그녀 생각을 했다. 내가 진짜 사랑이란 걸 하고 있는 건가. 다 모르겠고, 그냥 보고 싶은데. 나중에 만날 수 있을까. 무작정 그냥 앞에서 기다려 볼까. 하는 도중 영민은 통화를 끝냈는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뭐 이제 어떻게 할 건데? 고백하게? 아니. 아직은. 어제 처음 만났다니깐? 그럼 뭐 어쩌라고. 야. 임영민. 나랑 우리 집 같이 가자. 아 왜 나 여친이랑 오늘 밤도 함께 있을 거란 말이야. 아니 진짜 잠깐만 내가 맥주 살게. 그냥 같이 가자 나 혼자 좀 떨려...
잠시만 진짜 잠시만 이다. 하며 따라오는 영민을 데리고 집 앞 슈퍼에서 맥주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여기서 기다리면 올 거야. 하며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려 했을 때 멀리서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 야 임영민 저기, 저 여자. ”
“ 오... 예쁘네. 딱 니가 좋아하는 하늘하늘하고 지켜주고 싶은 스타일. 이야 드디어 사랑을 만난거야. 김종현? 왜 이러고 있어. 가서 말 걸어봐. ”
“ 뭐라고? 아니 무슨 표정으로 어떤 목소리로? ”
“ 아, 니 맘대로 해! 그런 것까지 신경 쓰다 지나가버리겠다. ”
영민이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는지 투닥 거리며 말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더욱 더 가까워졌다. 나를 미는 영민이의 손길에 의해 나는 그녀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온 건 어! 옆집 여자! 하는 어색한 말이었다. 영민이가 뒤에서 키득거리는 게 들렸고, 나는 그녀에게 같이 집 가자. 라고 말했다. 고백을 한 것도 아니고 청혼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집 같이 가자라는 저 말 한마디에 가슴이 뛰었다. 그 말 뒤에 따라오는 그녀의 웃음을 보자 기분이 너무 좋아졌고, 가슴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 그럼 저도 무서워서 그러는데 항상 집 같이 가실래요? 아까 살인사건 때문에 충격 받아서 아직 무섭단 말이에요... 하핫. ”
역시 난 내 멋대로 내 삘 대로 살아온 인간이다. 여느 때였으면 당당하게 뱉었을 말이지만 그녀 앞에선 귀까지 빨개져오는 것을 느꼈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밤이라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내 얼굴은 빨갰고, 목소리는 떨렸다.
안녕하세요.
토마토마입니다. ପ(´‘▽‘`)ଓ♡⃛
3화 까지는 매일매일 오다가 점점 늦어지고있네요ㅠㅠ
요즘에 좀 바빠지고 내용은 또 어떻게 마무리 해야되는지 막막하고 그래서 조금씩 미뤄지는것 같아요ㅠ
종현이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길게 끌 생각은 없었으나... 종현이의 감정을 더 많이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나 길어져버렸네요ㅠ
이야기가 너무 질질 끌리는 것같아 한편으로는 정말 아쉽습니다..
그래도 뭐 알아서 완결은 나겠죠?ㅎㅎ
항상 많은 관심과 사랑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힘이나고 글을 쓰게 되는것 같아요ㅎ
오늘 하루도 화이팅! 하시고 모두모두 기분좋게 마무리하세요 (*˘︶˘*).:*♡
항상 BGM에 도움을 주시는 이그조 팬 장..효원님 감사합니다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