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현이의 시점
고3이 되자마자, 나는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공부에 집중을 하고 싶다는 명목하에 였지만, 사실상은 아무 설렘도 느낄 수 없었던 그 1년을 연애라고 칭하기도 민망했다.
난 구질구질한 성격이 아니었고, 그러고 싶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민아 누나를 지우는 데는 어느정도 성공한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여자를 쉽게 좋아하게 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와 사귀었던 여자아이는 누가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누구나의 호감을 사는 아이었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 나는 1년동안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고 공부에 집중했다.
수민이와 나는 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동네에 살다보니 자연스레 같은 독서실에 다니게 되어 전보다는 얼굴 보는 기회가 늘었다.
밤길이 위험하니 항상 집에 올때 수민이랑 같이 오라는 엄마의 말에, 우리는 자연스레 또 항상 같이 밤길을 걸었다.
독서실이 마칠 시간즘 되서 수민이가 공부하고 있는 방으로 그 애를 데리러 가면, 반 이상은 엎드려서 쿨쿨 자고 있었는데,
하루종일 공부에 지쳤다가도 그 모습을 보면 살짝이나마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그 애의 볼을 장난스레 쿡 찌르면 화들짝 놀라면서 잠에서 깨곤 했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책가방을 싸는 모습까지 지켜본 후에야 우리는 독서실을 나와서 함께 걸었다.
"피곤해.."
그렇게 자고도 피곤한지 하품을 쩍쩍 해대며 걸어가는 녀석의 옆모습을 문득 쳐다봤다.
중학생 때 비해 볼살이 많이 빠져서 그런가, 이렇게 보니 누나와 많이 닮아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너무 빤히 쳐다봤던 걸까, 내 시선을 눈치챈 녀석이 날 찌릿 노려보면 난 그제서야 시선을 거두곤 했다.
그렇게 둘이 걸었던 약 1년 동안의 밤길동안 난 지겹도록 그 애의 옆모습을 바라봤던 것 같다.
봄에 바라본 옆모습에는 약간 설렜던 것도 같고, 가을에는 약간 쓸쓸했던 것도 같고.
그저 편하기만 했던 녀석과의 관계가 조금씩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는 듯한 이상한 기분.
그렇게 우리는 고3 시절을 보냈고, 수능을 쳤다.
나는 안정적으로 높은 대학에 합격했고, 녀석은 재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 여주의 시점
"오빠, 안녕하세요!"
"안녕."
그렇게 데이트 아닌 데이트같은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처음 종현 오빠를 마주하는 날이다.
왠진 모르겠는데 평소보다 긴장이 됐는데, 애써 태연한 척 평소처럼 인사를 하면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오빠는 바닥에 쪼그려서 뭔가를 보고 있었고, 나는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헐!"
"귀엽지."
"이 애기는 누구에요.. 아 어떡해, 완전 귀여워."
오빠가 쪼그려서 보고 있는 신문지 위에는 다름 아닌 아기고양이 한마리가 있었고,
평소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바로 오빠 옆에 쪼그려 앉아서 아기고양이에게 정신이 팔렸다.
"며칠전부터 앞에서 낑낑대길래, 일단 먹을거라도 좀 줬어."
"엄마를 잃어버린 건가..? 딱해라.."
역시 종현오빠는 좋은 사람이야. 동물을 좋아하면 다 좋은 사람이라던데 그 말이 맞나보다.
그건 그렇고 이 고양이 진짜 너무 귀엽다.
낑낑거리는 작은 생명체의 모습에 온갖 정신이 팔린 나는 평소 잘 하지도 않는 애교섞인 말투로 고양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아이 예뻐, 애기야~ 어디서 왔어~?"
"..."
"오빠, 얘 눈 좀 봐요. 완전 예쁘죠~!"
"응, 예쁘다."
꿀떨어지는 눈빛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슬쩍 종현오빠 쪽을 보며 물었는데,
고양이가 아니라 날 계속 보고 있었던 건지, 나와 똑바로 눈을 마주친 오빠는, 예쁘다 라고 대답했다.
당연히 고양이한테 하는 말인 걸 아는데도 바보같이 착각하는 느낌이라 황급히 눈을 피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오빠 퇴근하셔야죠! 바톤 터치!"
"수민아."
"네?"
"나, 곧 알바 그만둘 거 같애."
갑작스런 종현오빠의 말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 진짜요..? 왜요? 아, 오빠 설마! 그때 면접 붙은 거에요?!"
"..아니야, 떨어졌어 그건."
"아.."
오빠보다 더 속상한 표정을 짓자, 오빠는 하핳 하고 웃으며 내 등을 토닥여줬다.
"괜찮아. 대신 다른 데서 소개 들어온 일자리가 있어서, 그거 때문에 그만둘 거 같애."
"진짜요?! 아, 다행이다.. 역시 오빠는 잘될 줄 알았다니까요! 축하해요 진짜!"
"고마워. 근데 너 기억하냐, 그거."
"...?"
"너, 나 떨어지면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헉, 맞다.
결과적으로 종현오빠는 잘된 거긴 하지만..
그런 약속을 했었지.. 하핫.
"그랬었져.. 저 약속은 또 지키잖아요! 소원 당장 말해요, 오빠!"
"알았어, 당장 말한다 그러면."
막상 진지한 표정을 짓는 종현오빠를 보니 뭔가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뭐 그냥 간단한 소원이겠지? 밥 쏴라?
"나 모레 생일인데,"
"하루만 같이 보내줄래?"
"저, 저랑요?"
생각지도 못한 소원에 잠시 멍하게 오빠를 바라봤다.
생일날에 같이 시간을 보내달라는 소원이라니..
이거, 좀 좋게 해석해도 되는 건가. 아니야, 이거 또 설레발이야. 일단, 침착하자.
"저야 완전 영광이지만.. , 진짜 그 생일..날을 저랑 보내도 괜찮아요..?"
"응, 너랑 보내고 싶어."
"나 지금 최대한 표현한거다, 이거? 아, 사실 지금 떨려 죽을거 같애."
"대답은 천천히 해줘. 그럼 나 간다~"
저런 말을 해놓고 손을 흔들며 편의점을 쑝 하고 나가버린 오빠에게 잘가라고 인사도 미처 하지못한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가만히 오빠가 한 말을 곱씹어보니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손으로 부채질을 해댔다.
도저히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
거의 일하는 내내 종현오빠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있었던 것 같다.
아침 타임의 알바생 분이 오자, 나는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편의점을 나섰다.
하품을 쩍 하면서 문을 열고 나가는데,
"입 찢어지겠다."
아, 깜짝아!
편의점 벽에 기대 서서 날 빤히 바라보고 있는 황민현의 모습에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후드 모자를 뒤집어 쓴 황민현은 얼굴이 띵띵 부은 게 자다가 일어난 모습 같았다.
그 모습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웃어."
"찐빵 같애."
"...많이 부었어? 못생겼어?"
찐빵같다는 내 놀림에 평소같으면 넌 불어터진 찐빵 같다느니 한 수 더 얹어서 받아치는 황민현일텐데,
뜬금없이 휴대폰을 꺼내 액정화면으로 지 얼굴을 확인하더니 내 눈치를 보면서 저렇게 말한다.
낯선 황민현의 행동에 뻘줌해져서 그냥 대충 '아니 잘생겼어' 라고 답해줬다.
"..."
먼저 앞서 걸어가는 내 옆을 따라온 황민현을 슬쩍 쳐다보니 귀가 빨개져 있었다.
녀석의 귀는 시도때도 없이 빨갛긴 하지만, 오늘따라 더 새빨간 것 같았다.
"자다가 온거야?"
"응."
"너 오늘 1교시 아니야? 피곤하게 왜 그랬어."
"..밤에 악몽 꾸다가, 새벽에 깼는데."
"보고싶어져서, 왔어."
간밤에 악몽을 꿨다고, 내가 보고싶어졌다고, 그래서 자다 일어난 부은 얼굴로 달려왔다고,
날 내려다보며 자기 마음을 그대로 내보이는 황민현이, 순간 그 어느때보다 사랑스러워서.
나도 그 애를 따라 걸음을 멈춰 한참동안 그 애를 피하지 않고 올려다보았다.
"무서웠어?"
"응, 좀비한테 쫓기는 꿈."
"무서웠겠네."
황민현은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이었다.
어릴 적에는 그럴 때마다 부모님 침대로 가서 같이 잤다고 했다.
그리고 크고 나서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거나, 받지 않으면 옆의 인형을 끌어안고 다시 잠을 청한다고 했다.
그 친구에 가끔 내가 해당될 때도 있었고,
난 그저 밤에 황민현의 잠긴 목소리가 좋아서 전화기를 놓지 않곤 했다.
"안아도 돼?"
"...뭐?"
"이사온 다음에 인형도 없어졌어."
"..."
"오늘만."
황민현은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내게 한발짝 다가와 날 살짝 끌어 안았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 위로 황민현의 심장소리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에 응하듯 나도 황민현의 허리를 조금 더 끌어안았다.
겹쳐진 두 심장소리는, 친구로 묶여있던 우리의 관계가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듯 했다.
황민현이 악몽을 꾼 그 날 새벽은, 유난히도 고요했다.
*
안녕하세요! 많이 기다리셨죠 ㅠ (착각)
항상 새벽에만 글을 올리게 되네요 ㅋㅋㅋ 혐생에 치이고 치여서 그런가 봅니다 흑흑
저는 여전히 남주 저울질을 하구 있어요,, 둘다 넘우 좋은걸 어떡합니까 쾅 ㅠ 고를수 없어여
여주는 최고로 복받은 새럼인것 같습니다..!!!
이제 민현이도 종현이도 점점 적극적으로 마음을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이,,호홓
드문드문 오는데도 이런 허접한 글을 항상 반겨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S2S2 핫투
아, 그리구 저번 댓글에서 브금 정리 목록을 올려달라고 요청하셔서!!!
완결 가까워질 때즘에 꼭 정리해서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