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근
도
근
도
깨
비
소
년
여섯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계속해서 술잔만 빤히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왁자지끌하고 시끄러운 이 분위기,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았다. 누가 작정하고 귀에 소리라도 쩌렁쩌렁 지르는 듯 따가웠다. 나는 동기들 혹은 선배들이 서로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고 헤헤 웃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오고 싶지 않았는데.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우연히 과대를 마주쳤고, 그 손에 이끌려 가게 된 곳은 전공과제 제출이 끝난 기념으로 만들어졌다는 술자리였다. 강의실에서 마주쳐 드문드문 아는 얼굴들이 다였고 이들의 이름은 단 한 글자도 기억나지 않았다. 거의 초면 수준인 나를 보고, 동기들은 티가 나게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그에 나도 어색하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다였다. 불편하다.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 술병이 너저분했다. 간혹 주변에서 담배냄새가 났고 하지만 사람들은 빨갛게 취해 거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동기들이 따라준 술잔을 받아먹은 게 벌써 네 번이었다. 술에 익숙하지 않은 몸은 점점 몽롱해지기 시작했고 이젠 졸리기까지 했다.
"저기, 너는 과 활동 별로 안 하지?"
"…아, 응."
"왜?"
그리고 잠이 깼다. 내 앞에 앉은 여자동기가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왜, 라고 묻는 표정에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를 싫어하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턱을 괸 채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참 예쁘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동기들의 시선이 하나 둘 여기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떡하지. 큰일이었다. 아직도 적당히 대답할 말을 고르지 못했다. 식은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술자리나 엠티 가서도 한 번을 못 봤네."
"맞아."
"성격이 원래 좀 조용한 스타일?"
"그냥 뭔가 구리니까 항상 숨어있는 거겠지."
굳어버린 분위기를 풀기 위해 다른 동기들이 한 마디씩 말을 던졌다. 여전히 나는 나의 존재감에 대해 변명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나온 중얼거림을 똑똑히 듣게 되었다.
"너 내 이름은 아니?"
너도 내 이름 모르잖아.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는데 결국엔 뱉어내지 못했다. 주변에서 나를 보고 있는 시선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동정과 연민을 담은, 가냘퍼 죽겠다는 눈빛들. 난 저 눈을 본 적 있었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난 후 내 곁에 누구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어른들이 가지고 있던 눈이었다. 쟤 이제 어떡하누. 그렇게 말하고 있던 눈동자. 난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동기들의 눈이 말했다. 너 이제 어떡할래.
나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왠지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주섬주섬 핸드폰을 챙기며 이 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싫다. 어렵다.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또 도망 가?"
"야, 그만해. 성시현."
"쟤 취했냐? 아까부터 왜 저래. 이제 성시현한테 술 그만 줘."
술을 마셔서 그런가. 평소라면 상처 받았을 상황인데 그렇게 많이 아프진 않았다. 술이 정신을 들뜨게 만들어버려서 내 통각까지도 둔하게 변해버렸나 보다. 그렇게 믿는 편이 편했다. 내가 술을 마셔서, 내가 잘못해서, 다 내 잘못이라. 술기운에 맘 아픈 게 덜한데도 이렇게 도망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름이 시현이구나. 이름까지 예쁘다……. 멍청하게 생각했다.
"어, 영민오빠!"
성시현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뒤늦게 술자리에 합류하게 된 선배를 알아본 과 사람들이 주변에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선배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많이 이상하겠지, 지금 내 표정. 거의 울기 직전일 듯했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저렇게 못마땅해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성시현이 오늘 내게 한 말 중엔 틀린 것이 없었다. 그걸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비참한 것이었다.
오빠라니. 친한가 보네. 나는 아직인데. 무의미한 생각들을 나열하고 나 혼자 입술을 깨물었다. 박우진이 선배와는 그 무엇도 같이 하지 말라고 했다. 박우진이, 선배와는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부탁했다. 순순히 도깨비 말을 들어줘야 할까.
"오빠, 왜 이제 왔어요. 기다렸는데."
"…일이 좀 있어서."
"여기 앉아요. 전에 하던 얘기 마저 해야죠."
아무래도 오늘은 들어줘야 할 것 같다.
나는 테이블에서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술에 약한 몸이 잠깐 비틀거렸다. 선배가 팔을 뻗으려다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선배 곁을 스칠 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술집을 빠져나올 때까지,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다.
가느다란 달이 떠 있었다. 술기운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집까지 잘 갈 수 있을까. 학교 근처라고 해도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은 거리가 너무 깜깜했다. 눈을 비볐다. 졸려. 얼른 자고 싶다. 자고 싶은데, 자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쉽게 잠에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우으.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얼굴이 뜨거웠다.
오른 손목을 들고, 박우진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 취한 몸이 너무 무거웠다. 집까지 돌아가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나 진짜 혼자구나. 새삼스럽게 또 느꼈다. 이렇게 외로운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지. 스무해 사는 것도 이렇게 외로운데, 앞으로 그 많은 날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지……. 눈물이 핑 돌았다. 누가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와악 쏟아질 것 같았다. 무서웠다. 박우진을 불러내는 게 두렵다. 세상에 하나뿐인 천운이 이렇게 막막하고 비참하다는 걸 알게 되면 박우진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더디고, 나약한 속도였다. 어지럽고 속이 아팠다. 과대를 미워하다가 끝은 늘 그렇듯 나였다. 나는 나를 미워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다 내 잘못이었다. 왜, 라는 물음에 내 모든 걸 쏟아내지 못한 잘잘못. 나는 결국 손목에 박우진을 쓰지 않았다.
"저기요."
"……."
"걷기 좀 힘들어 보이시는데, 제가 도와드릴까요?"
모르는 사람이었다. 생각하는 게 느렸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릴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뒤늦게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갤 저었다. 그러자 남자가 샐쭉 웃었다.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걸어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한 발자국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지 말란 뜻으로 더 세게 고갤 저었다. 남자는 무시했다. 다급하게 손목 위에 박, 까지 썼을 때 몸이 움직였다.
"당신 뭐야."
눈을 몇 번 깜빡거렸을 때에서야 상황파악이 됐다. 선배의 등 뒤였다. 선배가 등 뒤로 나를 숨기고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화를 꾹꾹 누르고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한적한 밤길 사이에서 남자가 몸을 흠칫하는 게 보였다.
"뭐냐고 묻잖아요."
"…그, 그러는 넌 뭔데!"
"그건 알 거 없고."
그러고 보니 선배에게 나는 뭐지.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다.
"신고하기 전에 가요."
선배의 말에 남자가 당황하며 언성을 높이다 이내 사라졌다. 여전히 달은 가느다랗게 떠 있었고, 밝았다. 달빛이 선배에게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선배에게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선배 머리통 위에 쌓이고 있는 반짝반짝한 달빛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선배가 푹 한숨을 쉬며 내 이름을 불렀다.
"방금 큰일날 뻔했어요."
"……네."
"미안해요."
"……."
"내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선배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달랐다. 나는 선배의 미안하단 소릴 들으면서 모든 걸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선배는 자꾸 나를 기대고 싶게 만들었다. 의지하고 싶게 만들고, 울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사실 살인자의 피가 흐르고 있고, 천운인 도깨비와 이름이 묶여 있는 사람이라고. 다 쏟아버리고 싶었다. 그 천운이, 선배의 눈조차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고. 그런데 나는 그걸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확인하고 싶었다. 박우진이 말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느낌이 무엇인지.
"걸을 수 있겠어요? 업어줄까요?"
"선배님."
"……."
"저는 선배님이 살아있었으면 좋겠어요. 죽어있는 건 너무 슬프니까."
"……."
"손 한 번만 잡아봐도 돼요?"
그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우진이 틀린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선배의 이 밤처럼 새까만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선배가 천천히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고요한 손이었다. 나는 선배의 손을 붙잡고, 눈을 감았다. 뜨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박우진은 이 손을 잡고도 그런 말을 뱉어낼 수 있을까. 적어도 난 아니었다. 선배의 손은 살아있었다. 난 한참을 선배의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우리는 달빛이 내리쬐는 골목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거리가 아니었다. 우린 몸을 꼭 붙이고, 손을 맞댄 채 걷고 있었다.
"선배님."
"네."
"시현이라는 애 있잖아요……."
"네."
"…그 애랑 많이 친하세요?"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말이 튀어나왔다. 선배가 내 말을 듣자마자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질투해요?"
"……아니요."
선배가 이번엔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어떤 부분이 웃긴 거지.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못하고 정면만 쳐다보며 걸었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공기를 가득 메워주었다.
"선배님."
"네."
"전 사람이 무서워요."
"……."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너무 무서워요."
"……."
"선배님. 우리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어요."
잔잔하게 퍼진 음성 끝에는 살려달라는 신호를 섞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앗아간 뒤 나는 어디 가서 내 이름조차 섣불리 말하지 못했다. 소문은 늘 빠르게 퍼졌고, 나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틈만 나면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다. 뭔가 구리니까 숨어있는 거, 맞다. 다 맞는 얘기였다. 악순환이었다. 학교를 옮겨도 일주일 후면 나는 또 다시 혼자 지냈다. 아이들은 나이에 맞지 않게 눈치가 빨랐고,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혼자 동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 입으로 누군가에게 아버지 얘길 꺼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나는 살면서 내 얘기를 해본 적이 없는데, 항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떠들고 있었고 단정지었다. 선배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그러졌다. 나는 또 혼자가 되는 걸까. 차라리 선배가 이대로 등 돌리고 내 앞에서 멀어졌으면 좋겠다. 선배가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걸 알게 되면 이제 괜한 기대조차 하지 않고 살아도 될 텐데. 예전처럼, 내가 여태까지 그래온 것처럼 죽은 듯이 살아가면 될 텐데.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세요. 선배한테 부탁하고 싶었다. 나는 이 불안하고 무거운 적막이 싫었다. 순식간에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선배가 지그시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이내 시선을 피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세상이 한순간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깊었었나. 선배에 대한 마음이 이토록 깊고 단단했었나. 나는 푹 고개를 숙였다.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까.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내 아버지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건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그의 딸이라는 것은 더욱 미동도 없을 사실이었다. 말하든 말하지 않든, 어떤 쪽이더라도 선배는 언젠가 나를 떠나게 되지 않았을까.
"이리 와요."
긴 정적 끝에 선배가 뱉어낸 건 그 한 마디였다. 선배가 내 앞에서 팔을 벌렸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러자 선배는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꼭 껴안아주었다. 숨이 막히면서도 편했다. 다정한 느낌보단 꾸역꾸역 옥죄는 포옹이었는데 왜인지 그 어느 품보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선배의 큰 손이 내 뒤통수를 조심조심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이내 선배가 나를 품에서 떼어냈다. 선배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겨울바다처럼 반짝거렸고 예뻤다.
"주고 싶은 게 있는데."
"……."
"부적이에요."
나쁜 일을 막아주는. 선배가 내 손에다 작은 주머니를 쥐어주었다. 천천히 손바닥을 펼치자, 복잡한 한자가 쓰인 끈으로 묶인 주머니가 보였다.
"잘 가지고 다녀요."
그 주머니 안엔 팥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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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2입니다.
영민이 분량 좀 늘려보자...! 했더니 이번엔 우진이가 등장하지 못하는 대.참.사... ㅋㅋㅋㅋㅋㅋㅋ ㅜㅜ
다음에는 둘 다 나오니 걱정하지 마세요. 헤헤
시현이라는 뉴페이스의 등장... 왠지 모르게 뒷목이 싸해지는 건 저뿐인가요? @''@...
봉봉 님, 햄찌 님, 칭어랭니 님, 슘슘 님, 사랑둥이 님, 0618 님, 빵야 님 외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