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의리에 대하여
지코 & 소진 - 아프다
"누나 왔어-"
한껏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하루가 긴 것처럼 느껴지는지. 점심 때 황대리님과의 식사가 확실히 힘겹긴 했는지 살짝 체기가 있었다.
내 얼굴을 살피던 옹과장님이 마침 팀장님도 안 계시니 그냥 조퇴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아까운 반차 낼 필요 없으니 조금 일찍 들어가보라고 하셨다.
그래도... 라며 말문을 열긴 했으나 도저히 더 일을 할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씀 드렸다.
강과장님에게도 상황을 이야기를 하고 먼저 퇴근했다. 마침 야근이라고 하니 적어도 밤 9시 이후에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거운 몸을 끌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터줏대감 박지훈님이 계셨다.
"너도 끼려면 돈 내래~ 아 진짜 웃겨!!!"
내가 온 건 들리지도 않는지 TV를 보며 바닥을 팡팡 쳐대며 웃고 있는 박지훈이다. If you wanna come along, you have to pay...? TV를 가득 채운 한 문장.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누나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를 정도라니... 내심 서운해져 아무런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바깥 온도가 너무 높아 더워 죽어버릴 것 같았는데, 사람이 집에 있으니 에어컨을 켜놓아서 시원한 게 좋기는 하다.
이번 달 전기세 얼마나 나오려나... 나 혼자 쓰는 것보다 족히 세 배는 나올 것 같은데. 박지훈이 집에 있어서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엄마한테 칭얼대기라도 해야 하나...
별 부질 없는 생각을 하며 방에 들어가려 하니, 박지훈은 누나 왔어? 하며 물어왔다. 분명 응, 이라고 대답을 하려 했는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지쳐서다.
바닥에 가방을 내동댕이치듯 내려놨다. 선풍기를 켜고, 철푸덕 소리가 다 날 정도로 바닥에 누워버리니 등줄기에 닿아오는 차가운 느낌이 꽤 시원하다.
덥다... 더워....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빼꼼 문이 열린다.
"일찍 왔네? 복숭아 깎아줄까?"
복숭아? 왠 복숭아? 했더니, 이모가 보내주셨어. 한 박스. 나는 아.... 하면서 멍청한 소리를 냈다. 깎아줘? 다시 한 번 묻는 박지훈이다.
아니... 누나 체한 것 같아. 했더니 왜? 어쩌다? 하고 묻는데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니 너무 길어서 포기했다. 누나 좀 쉴래. 했더니 아무런 말 없이 문을 닫는다.
날씨가 너무 자비없다. 어쩌면 이렇게 더울 수 있지... 사이판도 이것 보다는 덜 덥겠어. 가만가만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바닥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과장님 만나기 전까지 이렇게 바닥에 누워 좀 쉬다 나가야겠다. 점심부터 맞아놓은 비수 때문에 온 신경이 그곳에 집중되어 몸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하아.... 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 진짜. 예감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황대리님과 옹과장님이 형동생 하는 사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한창 때의 강과장님과 옹과장님 사이 만큼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옹과장님이 황대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을 수 있는데,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들으셨길래 그런 것들을 물으셨는지 모를 일이다.
굳이 옹과장님이 아니더라도 들을 만한 소식통이 있는 건지, 그 소식통은 또 어떤 이야기를 옮긴 건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옹과장님이 안 계시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은 또 무슨 의미인지. 아무리 만약이라 해도 아무 뜻 없이 그런 가정을 내걸 분은 아닌 것 같은데. 답답했다.
제주도에 다녀온 이후 옹과장님과는 어색한 게 좀 풀렸다고 생각했다. 워크숍 장기자랑에서 같이 진행을 맡은 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이다.
하지만 계속 마음에 걸렸던 게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그게 미처 마무리되지 못한 감정에 뿌리를 둔 거라 믿었다.
두 달만 시간을 달라고 하셨던 과장님. 그리고 여름휴가도 가지 않은 채 일에 매달리셨던 그 모습.... 혹여 그것들이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싶었다.
"....모르겠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생각만 했던 말이 입을 통해 툭 나왔다. 예상에 없이 나온 목소리인 만큼 듣기 싫게 갈라진 게 내 귀에 들어왔다.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날도 너무 덥고, 뭐가 뭐지 하나도 모르겠고. 종일 기가 빨려 축 늘어진 몸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눈을 떠보니 어느새 온 세상이 캄캄해져 있었다.
-
"과장님- 고생했...."
과장님의 전화를 받고 집에서 나왔다. 한참을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잤기 때문인지 머리가 멍했다.
집 밖으로 나오니 항상 있던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과장님의 차. 반가운 마음에 얼핏 웃음이 들었는데, 오늘 하루 중 처음 웃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조수석 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맸다. 과장님을 보며 고생했다고 말하려 했는데,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급하게 입술을 맞춰오는 과장님.
뭐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긴 했는데 허리춤에 감아오는 큰 손이 뭐가 애닳게 느껴졌다. 아무 말없이 쏟아지는 키스를 받아내고 있으려니 살짝 숨이 가빠졌다.
흐으, 하는 민망한 소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고, 그 소리를 들은 과장님은 조금 더 깊게 혀를 섞었다. 볼이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가쁜 숨을 쉬는 나를 봐주지 않는다. 허리께에 감겨있던 손은 조금씩 내려가 힙 근처에 닿아있다. 무엇 때문에 이리 마음이 급한가 싶었다.
한동안 엄마와 떨어져 있다가 다시 엄마를 만나 품에 안기는 아이처럼 애달픈 느낌이다. 나는 군말 않고 과장님을 받아주기로 했다.
"..........."
"............"
츕,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과 입술이 떨어졌다. 과장님은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주었다.
나는 손을 뻗어 과장님의 목을 안았다. 차 안이라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라 어쩔 수 없었다.
얼마간 아무런 말 없이 있던 우리. 정적을 깬 건 나였다. 과장님의 볼을 만지며 먼저 말을 걸었다.
"...힘들었어요?"
"......."
대답하지 않지만 긍정의 의미를 담은 침묵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젝트가 영업팀에 바통 터치되면서 할 일이 많이 생겼을 거였다.
안 그래도 휴가 후 복귀라 과장님도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을 텐데, 그 상황에서 일까지 쏟아지니 아무리 과장님이라고 해도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다 나는 점심도 황대리랑 같이 먹느라 못 먹는다고 하지, 그러고 나서는 또 체한 것 같다고 먼저 들어간다고 하지... 이래저래 과장님에게도 긴 하루였던 듯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과장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으려니 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흐읍,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과장님의 냄새를 맡으려고.
"몸은 괜찮아?"
"네. 좀 잤더니 나아졌어요."
"갑자기 왜 체했어.. 점심 잘 못먹었어?"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점심을 잘 못 먹은 건 아니었다. 점심 때 못 받을 만한 질문을 받아서였지.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던 과장님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셨다.
옹과장님 안 계시면 어떨 것 같아요? 하는 황대리의 물음이 생각났다. 과장님은 혹시 아는 게 있으실까 해서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과장님 혹시... 옹과장님 부서 이동이나 파견 같은 거, 이야기 들으신 적 있어요?"
"....아니. 없는데."
"그럼 뭐 이직이라든지... 그런 거는요?"
"없었어. 못 들었어."
과장님은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 했다는 표정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님은 왜, 무슨 이야기 들었어? 하고 물어오셨으나 나도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닌지라 고개를 저었다.
강과장님도 모르는 이야기라면 내가 알 리는 더더욱 없었다. 역시 이 부분은 황대리만 알고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라면 아닌 건데, 혹시나 해서요. 덧붙여진 내 말. 과장님은 혹시라도 그런 이야기 들리면 말해줄 테니 너무 걱정 말라며 나를 다독이셨다.
옹과장님과의 관계 문제와는 별개로, 내 일에 있어서 옹과장님의 위치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강과장님도 모르는 게 아니기에 이런 사항은 나 만큼이나 예민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아, 맞다. 황대리님 결혼 상대가 정대리님인 거 왜 저만 이제야 안 거에요?"
웃음기를 띄우고 과장님을 향해 물었다. 아, 그게... 하면서 운을 띄우는데 내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사실을 지금 처음 아신 것 같은 상황.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긴 했는데, 아마 연차 1년 미만인 사람들은 알기 쉽지 않았을 거야... 다들 쉬쉬 했으니까. 하시는 과장님이다.
사내 연애라서요? 하고 물으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아무도 그 둘이 진짜 결혼할지 몰랐거든. 과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사귄다는 거야 다들 알고는 있었는데, 정대리가 누구랑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느낌은 아니었어."
"정대리님이요?"
"응. 워낙 이미지도 세고, 기도 세고.. 그런데 민현이 만나고 많이 바뀐 거야."
"아....."
"지금보다 한 세 배는 더 셌으니까... 연애는 그렇다 쳐도 결혼은 어렵겠다고 다들 생각했던 거지.
나도 좀 그렇게 생각했어."
역시 가시 돋힌 장미가 예쁜 법인가... 워낙 화려하게 예쁜 느낌이셔서 콧대가 높을 거라 예상하긴 했는데 엄청난 센캐였다니. 의외였다.
그런 분을 변화시킨 게 황대리님이라니... 그건 또 더 의외였고. 오늘은 하루 종일 의외의 의외를 거듭하는 날인 것 같다.
어쨌든 그런 비하인드가 있던 거구나. 연애로만 그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다들 쉬쉬하셨던 거고.
그런데 날짜까지 정확히 잡히고 청첩장까지 돌리는 상황이니, 다들 의외라 놀라면서도 축하해주시는 분위기겠구나, 싶었다.
결혼이라...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미묘한 상념에 빠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드라이브나 할까?"
과장님이 내 손을 잡아왔다. 드라이브나 할까? 하며 묻는 목소리가 다정하고 따뜻했다.
사내연애는... 장단점이 명확해요. 황대리님의 목소리가 또 다시 생각났다.
-
(황민현 시점)
[잠깐 나 좀 봐. 3층 층계.]
성우형에게서 쪽지가 왔다. 알았다고 답장을 하고 휴대폰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관련된 일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숫자 3을 눌렀다. 3층입니다. 하는 말을 듣고 뚜벅뚜벅 층계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 밖을 내다보며 기다리려니 한 4분쯤 지났을까, 형이 나타났다.
나는 돌아서서 인사를 했고, 형은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랑 같이 점심 먹었지."
"네."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애가 오후 내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냐."
내 예감이 맞았다. 이럴 줄은 알았지만 너무 빨리 나와버린 본론이다. 불쑥 대답을 하기에는 질문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상한 소리 한 거 아니지? 하고 물어오는 형이다. 나는 말했다. 이상한 소리 좀 했으면요. 그게 뭐 어때서. 이미 점심 때부터 화를 눌러온 터라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민현아."
"이 상황에서 제일 이기적인 게 누군데요.
거기다 대고 몇 마디 좀 던졌다고 해도, 그게 그렇게 큰 일인가.."
형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상황을 지켜봐 온 나로서는 형의 그런 표정에도 화가 났다. 내가 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낄 일도 아니다.
애매한 위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척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라 눈 한 번 꾹 감고 아는 척 하기로 마음 먹었다.
옹성우와 강다니엘의 사이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던 건 나였다. 적어도 해원기획 안에서는 말이다.
물론 어쩌다 보니 성우형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어 성우형의 편에 서게 되었지만, 관계가 악화되었을 당시 강과장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둘 사이의 관계가 나빠진 원인은 당시 마케팅팀의 박과장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좋아질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안에서 시작한 관계라면 모를까. 대학부터 쭉 같이 다니고, 둘이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오해만 풀리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믿었던 거다.
설령 그 기간이 2년을 족히 채우고도 남았더라도 말이다. 대화만 충분하다면 눈 녹듯 풀어질 오해일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 그 애가 둘 사이에 들어서면서 둘의 관계는 정말 회복 불가능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둘, 그러니까 ○○○와 강과장의 연애의 시작이 정확히 언제 쯤인지는 몰라도, 고민하고 생각하고 배려하느라 좋은 타이밍을 날려버린 성우형이라는 건 확실히 알았다.
형이 내게 저한테 있었던 일을 일거수일투족 세세하게 말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라서, 나도 내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판단해야 했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가 그날이었다.
영업마케팅부서 회의 후 회식날. 그러니까 옹성우와 강다니엘이 주먹질하며 싸웠던 날. 그때 강과장과 ○○○가 나란히 택시에 탄 모습은, 내가 처음으로 잡은 심증이 아닌 물증이었다.
못났다. 저 자신에게 말하는 성우형의 목소리가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었다. 그 후에 제주도에 가서는 아주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고 사형선고를 받고 왔다.
형이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억울했지만, 사랑이라는 게임에서 공평한 기회를 기대하는 게 더 말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형이 이렇게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모습은 드문 일이고,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도 빈번한 일은 아니니까. 나는 그게 안타까웠다.
"너무 미워하지마. 그럴 것도 없어."
"형 눈에만 예쁘지, 제 눈에 예쁘겠냐고요."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할 건데. 달라지는 거 없잖아."
"달라질 거 바라고 따로 밥까지 먹인 거 아니에요."
워크숍 즈음 해서 인사팀 박우진 인턴을 찾아갔다. 퇴근 후 축구 몇 번 하면서 친해진 사이라 직원들의 휴가 신청내역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평소 남 일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만 들리는 이야기는 까먹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전략팀 일이라는 게 애초에 정보수집과 분석, 그리고 기억에 어두우면 진행될 수가 없다. 말하자면 직업병인데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다.
그런 와중에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람 둘이 ○○○와 강다니엘이었다. 둘의 휴가가 완벽히 겹쳤다.
휴가 중 체류지를 선택하는 란에서 나란히 '국외'를 골랐다. 사이판 가겠네. 짚이는 건 하나인데 증거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왠지 그럴 것 같은, 촉 같은 것.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당장 내 일은 아닌데 마치 내 일인 양 어이가 없었다. 고민할 게 따로 있어 휴가도 포기한 옹과장과는 다분히 비교되는 행보였다.
".....형 가기 전까지 아무런 말 못할 거 아니까.
내가 원래 누구 일에 그렇게 참견하고 관심 갖는 사람이 아닌데...."
"....."
"화가 너무 나서. 답답해서 독하게 이야기 좀 했어요.
그렇다고 말로 때린 것도 아니고. 찔려 보라고 질문 몇 가지 던졌어요. 그게 끝."
성우형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내 표정을 살폈다. 쌍커풀 없는 긴 눈이 뭘 말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 만큼이나 안타까운 기분이려나.
내가 못할 말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제 넘는 짓을 했다는 생각도 안 든다. 나한테도 이 정도 말을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그런 거였다.
"...나 아직 간다고 말한 적 없어."
"누가 봐도 가는 게 맞잖아요."
성우형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건 사실 꽤 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게, 그러네. 벌써 반 년 가까이 지났다.
2월 쯤이었던 것 같다. 16년도 말에 일본 도쿄에 뿌리를 둔 중견기업과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꽤 많은 포상이 주어졌다.
문제는 그게 해원기획에서는 포상으로 끝났지만, 성우형의 능력을 유심히 지켜보던 중견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사실 협력업체로의 이직은 어찌 보면 스파이 또는 배신자로 찍힐 수 있는 법. 성우형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래도 해원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한 탓이었다.
(해원과의 의리라고는 하지만 ○○○가 그 의리 중 절반 이상의 이유를 차지했다는 데 내 손목시계를 건다.)
그 기업은 성우형의 거절을 수용하는 듯하더니 이후에도 여러 차례 연락을 해왔다. 4월 도쿄 출장 때에도 성우형이 도쿄에 머무는 걸 알고 잠시 찾아왔더랬다.
그들의 적극적인 대시의 이유는 간단했다. 광고기획사 출신으로 잔뼈가 굵은 마케터가 필요한 거였다. 옹성우가 적임자였다.
이번에 ○○○와 같이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아니 사실은 그게 마무리되기도 전에 그 기업에서는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 프로젝트 건만 잘 마치면 정말 우리쪽으로 와주면 안 되냐고. 반 년 가까이 이어진 끈질긴 대시였다. 그렇게 조르는 데에는 당연히 자신만만한 대우도 있었다.
근무지가 도쿄인 게 관건이긴 했으나 연봉이 훅 뛰었다. 그런데다 성우형의 전체적인 커리어를 봤을 때에도 득이면 득이었지 실은 아니었다.
설령 긴 기간을 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여러모로 따졌을 때 해원보다는 나았다. 해원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나한테 들어온 조건이라면 두 손 들고 갈 만한 조건이었다.
애초에 성우형이 고민하는 이유는..... 말하기 너무 뻔해서 민망하기까지 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고민 중이야... 모르겠어. 아직."
"......."
나는 붙잡고 싶었다. 거기보다 낮은 연봉이더라도, 그냥 서울에서 같이 일하고, 최대한 함께 가자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여기 남아있으라고 말하는 게 성우형에게는 더 고역이고, 고문이었다.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미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었다. 형이 도쿄행을 택할 거라는. 그래서 나의 곁도, 해원도 떠날 거라는. 그런 마음의 정리.
어차피 받게 될 상처와 겪게 될 헤어짐이라면 미리 준비하는 게 낫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성우형과 눈을 맞췄다.
"더 이상 형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이를 악 물었다. 형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보기 |
31편에 댓글 달아주신 암호닉 분들(0~4차 암호닉 신청자만 해당하고, 32편 업로드 되기 전까지 댓글 달아주신 분들만 집계했습니다.) [덧깨비] [우주] [12100809] [회사워니즘] [갓의건] [녜리] [국국] [녤루] [도앵도] [박참새] [호두] [늘봄] [빠뺘뽀뾰쀼] [현] [피치씌] [피치수플레] [뿌랑] [블라썸] [뚠뚠] [이히] [녤부] [마이관린] [구낸내] [징징이] [몽글] [리베0511] [넌내희망] [츄얼] [율예] [필통] [퍼지네이빌] [뉄뉄] [녜리12] [에비츄] [동그리] [쫑쫑] [꽃녤] [유우] [뀨쓰] [슬] [엘제이] [춘쟝] [녤림캐쳐] [재환콩] [딸기시럽] [녤과장] [쀼쀼] [체크남방] [입학하자] [강옹량] [계란찜] [다녤잉] [간장계란밥] [어어] [빨간머리] [꼬꼬망] [분홍색솜사탕] [DMR] [로지] [요거팅팅] [다녤이랑워니랑] [묭묭이] [수박바라밤] [121027] [크뽀] [졔졍] [알바생] [녜르] [일오] [응] [칸타타] [1122] [녤볼루션] [마카롱] [몽구리] [너부리] [민트향] [다녤의만두] [하늘연달] [불꽃] [짚고긴한커피] [0226] [■계란말이■] [자몽] [뇽뇽] [슝왈이] [파리링] [새우] [우럭] [키친타올] [새벽] [녤꽃] [바밤바] [누나] [수수나무] [비눗방울] [아마수빈] [파요] [옹기종기] [일개사원] [비버] [리베르떼] [수저] [달달한 복숭아] [뚜띠따띠] [녜리2] [과장님나이스샷] [애벌레] [옹침] [동태] [극성갑독자] [사용불가] [다정] [메론바] [휘린] [딸기맛초코파이] [구원자] [샘봄] [환타] [다람쥐] [녤리리아] [11023] [#0613] [남융] [020716] [윙지훈] [무네큥] [mj] [짱짱맨] [다댕이] [송송아]
5차(마지막) 암호닉 신청자 : 70명
[꼬맹이] [☆별☆로] [열혈사원] [깡구] [웖] [레인보우샤벳] [강단이] [칭찬은 성우도 춤추게 한다] [마요] [핸] [녤니야] [지니] [강천사] [묭묭이(수정요청)] [♤기쁠희♤] [코타] [309] [12] [시금치] [이불] [어린왕자] [루쇼] [강단] [녹차마루] [갱댄이] [다녤0525] [1232] [강단이의 꼬맹이] [솜구름] [백설탕] [오징어만듀] [딸기모찌롤] [댕니엘] [예그리나] [로운] [녜리12] [슐슐] [강달리엣] [현기증] [빛] [자몽맛구름] [강낭콩] [새우깡] [연두해요] [하루만녤이의루니가되고싶어] [상큼쓰] [사모녤드] [올라프] [리본] [슘슘] [비모] [꾹꾹스] [댕댕민현] [금요일] [센터] [다비밥] [0709] [몽쟈] [퐁퐁이] [다니스] [지블] [일이일공] [녤롱] [황사] [피아] [강단2] [은무룩] [포카] [이번생실화냐] [형광개구리]
제가 신청 확인 댓글 달아드린 분들만 암호닉 신청되신 거고요, 선착순 안에 들었더라도 양식 틀리신 분들은 확인 못 해드렸습니다. 암호닉이라는 게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물론 독자님들 기억하는 거는 정말 좋은데 뭔가 관리하는 게 심적으로 많이 지치는 일이라는 걸 매번 깨닫습니다ㅠㅠ 강과장은 계속 이대로 가더라도 차기작에서는 좀... 방법을 달리해봐야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쏟아지는 워너원 떡밥 소나기에 다들 우산 잘 챙기셨나요?ㅋㅋ 저는 현생이 너무 바빠가지고 떡밥 따라가지 못하고 강과장부터 들고 왔습니다.. 근데 다 쓰니까 주말이 끝나 있네요... 내 주말 어디 갔지? 엉엉.. 날씨가 진짜 자비없게 더워요 ㅠㅠ 다들 건강 잘 챙기시고요...진짜 사람 죽을 것 같은 더위네요ㅠㅠ
지난 편에 뜬금없이 황대리가 결혼한다고 해서 독자님들이 놀라셨던 것 같은데ㅋㅋㅋ 7편(도쿄출장)과 24편(그 남자의 사정)에서 황대리 결혼 스포 및 떡밥이 마구마구 흩뿌려진 적이 있었지여..? 오래된 에피소드라 기억들이 가물가물하신 것 같아서 오늘 사담에서 넌지시 언급해봅니다..ㅎㅎ 오늘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구... 댓글에서 우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지만.... 저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여...♡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워너원 데뷔 축하해!!!!!!!!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