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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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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소
년
여덟
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었다. 내가 잘못 보고 착각을 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나를 서서히 조여오던 그 불길한 느낌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주변 공기가 모자란 기분이 들 정도로 뛰었다. 이렇게 뛰어본 게 얼마 만인지 심장이 아프게 두근두근거렸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달리기를 멈추고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골목 어귀로 들어섰다. 박우진을 붙잡고 뛰는 내내 이상한 힘이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다. 박우진의 손목에 내 손자국이 빨갛게 남아 있었다.
"…미안."
"괜찮아."
조그맣게 사과를 건네자 박우진은 별 말은 않고 뛰느라 엉망이 된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손길이 참 다정했다. 속에서 왈칵 뭔가가 쏟아져 흐르려고 했다. 다시는 이런 기분, 느끼지 못하는 줄 알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소중하단 듯이 어루만져주는 이 손길을 다시는 겪지 못하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가만히 나를 챙겨주는 박우진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박우진."
"응."
"나 좀 살려줘……."
"……."
"나 좀 데려가."
"……."
"네가 사는 곳에."
머리를 거치지 않은 말이 그대로 입을 통과했다. 어디로든 좀 떠나고 싶었다. 이 상황이 너무 끔찍했다. 잘못은 아버지가 했고, 단지 난 그의 딸일 뿐이데 왜 아직까지도 이렇게 고통 받으며 도망쳐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아버지를 본 건 딱 한 번이었다. 아버지가 출소하던 날이었다. 아버지가 형 생활을 하는 동안 이미 끝난 재산분할 상황을 알리려고 변호사 아저씨가 나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으러 갔었다. 보고 싶지 않다는 나를 달래는 데에 실패한 변호사 아저씨는 결국 혼자서 아버지를 만나고 왔다. 나는 멀찌감치, 아주 멀찌감치 서서 아버지의 흐릿한 뒷모습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온 신경에 소름이 돋았다. 저 사람이 엄마를 죽였구나. 모르고 있던 사실도 아닌데 새삼 두려웠다. 엄마를 죽인 사람이야, 그런데 나라고 못 죽일까. 나는 하늘에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제발 아버지를 보는 일이 없기를. 설령 내가 그보다 일찍 죽어 먼저 장례를 치르게 되어도 찾아오지 않았으면 했다.
"안돼."
"……."
"그건 안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우진이 답했다. 무척이나 경직돼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박우진의 속눈썹이 미묘하게 떨리는 걸 보았다. 어느덧 밤이 찾아오고 있었고, 우리는 새까만 하늘 아래에서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왜?"
"……."
"나 살리겠다고 약속했잖아."
"……."
"거짓말이었니."
또. 또.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상하게 박우진 앞에만 서면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진다. 나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박우진이 미워서 또 애처럼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박우진은 화를 내도 좋았다. 화를 내야 맞는 거였다. 나한테서 그런 말을 들어버렸으니. 하지만 박우진은 한참 말이 없었다. 어떤 표정도 없었다.
"박우진. 너는 말이야."
"……."
"네가 죽기 싫어서, 날 살리려는 거야?"
"아니."
"아니면?"
"……."
"아니면 뭔데."
박우진의 얼굴이 형편없이 무너졌다. 그 얼굴이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내가 죽으면 박우진도 죽는다. 나의 죽음이 곧 박우진의 죽음이었다. 박우진이 나에게 그렇게 헌신적이고 필사적인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박우진에겐 다 상관없는 일 아닐까. 내가 죽든 말든. 내가 살 이유를 찾든 말든. 다 관심 없고, 그저 본인의 미래를 찾아가기 위해 나를 끌어들이는 건 아닐까. 박우진이 그럴 리 없잖아. 한편으론 그렇게 믿고 있으면서도 난 알고 있었다. 박우진이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 역시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박우진은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뭘 기대했는지. 내가 우스웠다. 나는 박우진한테서 대체 어떤 말이 듣고 싶었던 걸까. 핸드폰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뒤늦게 아르바이트 생각이 났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박우진에게 상처를 주고, 거기에 내가 또 다시 상처를 받는다.
"전에 말했잖아. 거긴 인간한텐 지옥이야. 위험해.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내가 널 데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지켜주면 되잖아."
"……거기선 그럴 수 없어. 난 그렇게 못해."
우리의 톱니바퀴는, 정말 운명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꼭 들어맞는 중일까. 박우진의 목소리가 꼭 흐느끼는 것처럼 슬펐다.
"왜? 왜 못해?"
"……."
"돌연변이라서?"
어디선가 도깨비불이 반짝 나타났다. 도깨비불이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파랗게 번뜩였다. 화르륵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도깨비불이 무섭지 않게 느껴지는 건, 박우진이 결코 그러지 않으리란 믿음에서 나오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후회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허공으로 흩어진 말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멍청해서 울고 싶었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말까지 내뱉었을까. 박우진은 속으로, 돌연변이인 자길 얼마나 저주하고 자책하고 있을까.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나는 무슨 자격으로 저 아일 자꾸만 자책하게 만드는가.
"응."
박우진은 긍정했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고갤 끄덕여달라고 뱉은 말이 아니었다. 화를 내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게 만들어주었으면 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왔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내가 집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죽집에 전화를 걸어 몸이 아파 가지 못했다고 둘러대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밀린 설거지와 방 청소를 했다. 박우진은 침대 옆에 서서 멀뚱히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내 사과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느 틈엔가 사라져버린 박우진을 원망했다. 왜 이렇게 미련하냐고 묻고 싶었다. 그 때에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박우진에게 미안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급하게 얼음으로 찜질이라도 해봤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퀭한 상태로 학교에 가 무슨 정신으로 수업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엔 온통 박우진, 박우진, 박우진뿐이었다.
"출석이랑 조별과제 합쳐서 기말 점수에 반영한다고 했던 거 다들 기억하죠? 조는 랜덤으로 뽑았으니 확인하세요."
아, 조별과제 싫은데……. 과에서 별로 친한 사람도 없고. 한숨을 폭 쉬고 스크린에 떠 있는 조를 확인했다. 3조였다. 학번 옆에 나열된 이름들을 차근차근 확인하는데, 마지막 즈음에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 하나가 있었다. 성시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리다가 성시현과 딱 눈이 마주쳤다. 아마 쟤도 같은 생각 중이겠지. 날 쳐다보는 성시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 중얼거리다 조원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섰다.
조원들 중 여자는 성시현과 나 둘뿐이었다. 성시현은 다른 조원들과 꽤 친한지 그 사이에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내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 순간 그 분위기가 뚝 끊기는 게 느껴졌다. 별로 신경은 안 쓰였다. 어차피 성시현과 나는 평생 볼 사이도 아니다. 나도 싫어하면 그만이었다.
"발표 주제 먼저 정하고 역할 분담하면 되겠다."
"음…. 교수님은 유럽권 영화 좋아하시는 거 같던데. 유럽권 영화 하나 정해서 장르 특성이랑 같이 발표하면 어떨까요?"
"야, 바보냐? 그럼 더 깐깐하게 보실 거 아냐. 우리 점수 깎이기 쉬울 거라고."
"……."
"생각을 하고 말을 해라, 좀."
의견 내기 무섭게 성시현이 내 말을 다 잘라먹었다. 정색까지 하며 나를 다그치는데, 어이가 없어 웃음도 안 나왔다. 쟨 대체 내 어디가 그렇게 맘에 안 차서 저러는지 모르겠다. 사춘기 여중생도 아니고. 여기서 더 입 열면 싸움만 날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다른 조원들이 하나 둘 의견을 내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말을 맞춰가고 있을 때 이번엔 왜 가만히 있느냐고 성시현이 트집을 잡았다. 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추라는 건지……. 최악의 조별과제가 될 것 같았다.
수업이 대충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는 길에 문득 창문에 비친 나를 봤는데 상태가 가관이었다. 여전히 붓기가 빠지지 않아 눈두덩이는 평소 모습의 두 배였고 표정까지 침울해서 꼭 시체 같은 모습이었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집 가서 푹 쉬어야겠다. 생각하던 도중,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액정에 선배의 번호가 떴다.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됐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지금 선배를 만나더라도 온 신경은 박우진에게 가 있을 듯했다. 전화는 꽤 오래 끊기지 않았다. 툭툭 손톱을 물어뜯었다.
"워!"
"으악!!!!!!!!!!!!"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가슴을 부여잡고 뒤를 돌아보니 선배가 개구쟁이처럼 꺄르륵 웃고 있었다. 너무 크게 놀라버린 건 아닌가 싶어서 눈치를 살피는데 선배가 다음에 또 해야지, 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이 자꾸만 느슨해졌다. 나에게 더 이상 어떤 불행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런 안일한 기분이 들었다. 선배를 보고 있으면 몸 끝까지 어떤 안도감이 차오른다. 나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차분하고 잔잔한 감정이었다.
"왜 전화 안 받아요."
"…죄송해요."
"내 목소리 듣기 싫어서 그랬어요? 아, 마음 아프다."
선배가 마음이 아프다며 장난스럽게 우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살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는 강의실 복도를 벗어나 학교 건물 밖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선배의 보폭이 나를 맞춰 조금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헉, 그러고 보니 나 지금 완전 폐인이잖아. 뒤늦게 알아차리곤 서둘러 고갤 숙였다. 선배가 시시콜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날씨가 좋다느니, 학식은 역시 가끔 먹어야 맛있다느니.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선배한테 못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정문 앞까지 갔을 때, 선배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
"나 좀 봐요."
고요한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선배가 큰 손으로 내 뺨을 쥐고 억지로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마주치게 된 선배의 눈이, 달았다.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나는 퉁퉁 부은 눈을 선배한테 들킨 게 창피해서 제발 놔달라고 버둥거렸다.
"어제 늦게 죽집 갔었거든요. 근데 없길래."
"……아."
"분하더라고, 뺏긴 게."
"……."
"그래서 집까진 내가 데려다주고 싶었어요."
선배는 천천히 말했다. 덕분에 그 모든 게 나에게로 콕콕 박히고 말았다. 얼굴이 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선배의 손이 그 열감을 느낄까 봐 무서웠다. 이 서툰 내 마음이 선배에게 그대로 고스란히 전해질까 봐.
"횡단보도 앞에서 아버지를, 봤어요."
"……."
"너무 무서워서 아무 것도 못했어요."
더듬더듬 나온 내 말을 듣고 선배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선배의 손이 내 뺨을 부드럽게 살살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한결 마음이 나았다. 이제 더는 혼자서 외롭게 끙끙거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선배가 계속 위로를 해주지 않을까.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었다. 선배가 조심조심 쓰다듬는 이 느낌 자체가 나에게는 위로였다.
"내가 준 부적이 소용 없었나 보네."
"……."
"미안해요."
나는 괜히 가슴이 뜨끔했다. 내게 부적을 쥐어주며 잘 가지고 다니라던 선배의 말이 귀에 이명처럼 퍼졌다.
"내가 데려다줬어야 했는데."
"…있잖아요, 선배. 선배님이 제 옆에 있었으면."
조금 덜 무서웠을까요? 내 말에 선배가 스르륵 손을 풀었다. 선배의 온기가 남아있는 두 볼을 만지작댔다. 따뜻했다. 나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어제 내 옆에 박우진이 아닌 선배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억지로 화를 낼 일도, 박우진이 그런 말을 들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박우진은 상처 받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미치자 어두운 표정을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나란 애는, 정말. 앞으로 박우진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게 궁금했다. 내 옆에 박우진이 아닌 선배가 있었더라면 좀 더 다른 결과를 맞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박우진을 할퀸 내 험한 말들이 선배한테 그대로 되돌아가 기어이 같은 상처를 줬을까. 선배는, 살려달란 나의 말에 머뭇거리지 않고 나를 구해줬을까? 박우진과는 다르게 내 말을 들어주었을까. 선배는 대체 어떻게 했을까. 머릿속으로 갖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팥이 든 주머니를, 선배가 부탁한 것처럼 계속 가지고 다녔다면. 정말 나쁜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글쎄, 내가 옆에 있었으면 적어도 울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선배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일도 과외해요?"
"……아니요."
"아버님이 왜 갑자기 찾아오신 건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학교 근처까지 오신 걸 보면 조만간 집도 알아내실 거 같은데."
"……."
"아버님이랑 만나서 얘기 나눌 생각은 없는 거죠?"
"…네, 아직은."
"그럼 우리 집에서 잘래요?"
선배가 나른하게 물었다.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선배만 올려다봤다. 장난이란 말을 덧붙이지 않는 걸 보니 선배는 진심인 듯했다.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보더니 선배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지?
"아니, 같이 자자는 게 아니고."
"아…."
"나는 뭐, 동기들 집 번갈아서 자면 되니까. 우리 집 빌려주겠단 뜻이었는데."
"아, 저는, 그게. 선배님이 저랑….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방금 그 표정 한 번만 더 보여줘요."
"……."
"진짜 귀여웠단 말이야."
나한테 있어 선배는 밀어낼 수 없는 존재였다. 그 무엇도 같이 하지 말라던 박우진의 충고를 우습게 여기는 건 결코 아니었다. 아니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피하려고 해도 선배는 불가항력처럼 내게 밀려들어왔다.
선배가 떼를 썼다. 자꾸만 이상한 표정을 부탁하길래 나는 싫다고 도리도리 고갤 저었다. 아쉬워하던 선배는 어디 가서 함부로 그 표정 짓지 말라고 엄하게 말했다. 이유를 물어도 선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남자 사는 집이라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여자동기 집으로 알아봐줄까요?"
"괜찮아요. 정말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럼 천천히 생각해봐요. 나야말로 진짜 괜찮으니까."
이젠 인정해야 될 때가 온 것 같았다. 나는 선배를 좋아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 심장이, 표정이, 피와 살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과연 이 감정을 내가 잘 숨길 수 있을까. 나의 천운 앞에서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질 않았다.
혼자서 갈 수 있다는 내 말을 선배는 듣지 않았다. 결국 집 앞까지 날 데려다준 선배가 나중에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불안하게 행복한 느낌이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 엄청난 금기를 깨버린 듯한.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집에 얼마 못 있다 나가서 치킨을 사가지고 왔다. 겨우 이런 걸로 내 실수를 용서해달란 건 아니었다. 그냥 사주고 싶었다. 그냥 박우진이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싶었다. 지금은 그런 마음뿐이었다. 식탁에 대충 치킨을 놓고 컵에 콜라를 따랐다. 그리고 손목에다 박우진의 이름을 썼다.
"안녕."
"…응."
박우진의 내뱉는 목소리가 무뚝뚝했다. 그 감흥 없는 눈이 식탁을 한 번 훑더니 다음으론 나를 천천히 응시했다. 무엇이 담겨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눈이었다. 박우진이 식탁을 그냥 지나치고 내 앞으로 왔다. 눈빛이 쌀쌀맞고 서늘했다. 괜히 불러내서 화를 더 부추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나 며칠 없을 거야."
"……뭐? 왜?"
"어머니 제사라."
"…아, 그럼 며칠 본가에 가 있는 거야?"
"아니."
"그럼?"
"남해에 있을 거야."
나는 박우진이 하는 말이 영 알아듣기 어려웠다. 남해에 도깨비 무덤이 있다는 소린 들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박우진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말하는 게 덤덤한 걸 보니 꽤 오래 전 일인 것 같긴 하지만. 박우진도 나처럼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은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혹시라도 또 말실수를 할까 봐 두려웠다.
"며칠 정도 걸리는데?"
"한, 나흘 정도."
"……오래 못 보네."
"응."
"…치킨 안 먹을 거야?"
"너 먹어. 나 원래 제사 즈음엔 입맛 없어."
"……그래. 너 돌아오고 나면, 그 때 또 사줄게."
왜 이렇게 마음이 쿡쿡 쑤시는지. 그냥 괜히 마음 한편이 저리고 아팠다. 이건 어디서 오는 통증일까. 나는 꾹 입술을 깨물었다. 누가 건드리면 툭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내가 자초한 일인데 억울했다. 박우진이 변했다는 사실이. 박우진과 빨리 풀어서 예전처럼 지내고 싶었는데 며칠 보지 못한다니 너무 속상했다.
"이제 나흘 동안은 너 부르면……. 안 되는 거지."
"……."
"……알았어."
박우진이 여길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이 참 질기고 악착 같았다. 박우진은 어떤 대꾸도 없었다. 그게 너무 서글펐다. 박우진이 무슨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어렴풋 알 것도 같아서.
"누나. 어머닌 나를 낳고 싶었을까?"
"…왜 그런 소릴 해."
"어머닌 다 알았을 거야. 눈이 세 개든, 뿔이 없든, 다리가 여섯 개든. 어찌 됐든 내가 반드시 돌연변이로 태어날 거라는 거."
"……."
"그런데도 날 낳고 싶었을까?"
"……."
"그런데도 날 낳고, 사랑했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체 얼마나 깊은 상처를 건드린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계속해서 나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박우진은 어쩌면 평생 나를. 어쩌면 평생 나를. 정말 어쩌면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박우진은 내 앞에서 사라졌다. 한순간 연기처럼 뿌옇게 사라지는 박우진을 나는 잡을 수 없었다. 오늘도 아르바이트엔 갈 수 없을 듯했다. 나는 식탁 맞은편, 박우진의 몫으로 따라놓은 콜라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컵에 물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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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2입니다!
다들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저는 주말에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늘은 아침에 수강신청하느라 정신이 없었네요...! ㅋㅋㅋㅋ
손이 느린 편이라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두 성공! (박수 짝짝)
저는 치밥파라 치킨을 먹을 때 꼭 밥을 같이 차리는데, 보시는 안치밥파 불편하실까 우진이를 위한 식탁엔 우선 치킨만 차리는 걸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헤헤... 독자 님들은 어떠신가요. 치밥파? 안치밥파? @''@?
전개가 너무 더뎌서 지루하네요. ㅜㅜ 앞으로는 시원한 전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읽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드리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랄게요.
봉봉 님,햄찌 님,칭어랭니 님,슘슘 님,사랑둥이 님,0618 님,빵야 님, 물만두 님, 요하이 님, 희동이 님, 뿌꾸뿌꾸 님 외 도도도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제가 너무 사랑합니다. ♥
조만간 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