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유독 강의실 분위기가 부산스러웠다. 이유인즉슨 전공 수업이 끝나자마자 잡혀 있는 사진과 남자애들과의 과팅 때문이었다. 며칠 전, 별안간 여자단톡방에 2학년 선배가 초대되어 하는 말이 '과팅나갈사람' 여섯 글자였다. 선배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러 개의 카톡이 물밀듯 쏟아져 나온 결과, 여섯 명의 동기들이 과팅에 나가게 되었다. 물론 나는 카톡을 뒤늦게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단톡방 알림을 꺼놓았다.
" 야 오늘 여자애들 뭔 날이야? "
한껏 차려입은 동기 여자애들을 눈짓하면서 김재환이 제 눈을 비비며 물어왔다.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김재환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 오늘 사진학과랑 과팅한대. 야 너도 오늘 수업 끝이지? "
" 엉? 어, 엉. "
" 그럼 오랜만에 떡볶이 먹으러 가장. 다니엘 수업 끝났나 물어봐봐. "
전공 책을 허리춤에 끼고 이제 막 수업이 끝난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는데, 멀뚱히 서 있는 김재환과 내 앞으로 곤란한 표정을 지은 채 여자 동기 여럿이 총총 와 섰다. 서로가 우물쭈물 눈치만 보더니 그나마 친한 동기 여자애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 여주야, 여주야. 너 수업 끝나고 뭐 없지? 응? "
" 어? 아, 어. 왜? "
" 아 그게 있잖아.... 새휘가 원래 과팅 나가기로 한 거 알지? 근데 갑자기 일있대서...아, 너 그 언니 성격 알잖아. 빵꾸 내면 우리한테 뭐라고 할 게 뻔해가지구... "
여기서 그 언니란 과팅을 주도한 2학년 선배를 뜻한다. 1학년 동기들 사이에서 그 언니의 성격은 유명했다. 잘해줄 때는 어마 무시하게 잘해주는데 또 자기가 기분이 안 좋을 땐 그렇게 싹수가 노랄 수가 없다. 암묵적으로 동기들 사이에서는 되도록이면 그 언니에게 밉보이지 않는 게 더욱 행복한 대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통했다. 제발 여주야...응? 이렇게 부탁할게. 그냥 갔다가 연락도 안 해도 돼. 응? 동기 여자애가 애걸복걸하며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지금 남자친구가 있고, 비록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서 동기들 대부분은 모르지만 엄연히 남자친구가 존재했다.
" 미안. 나 그런 거 안 좋, "
" 야아. 그냥 있다만 와 있다만. "
엉거주춤 내 옆에 서 있던 김재환이 낮게 속삭였다. 기세를 몰아 우리 앞에 울상을 짓고 있던 동기 여자애들도 내 이름을 마구잡이로 불러대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아, 미친. 김재환 주둥이 진짜. 곁눈질로 김재환을 흘기자, 그래도 양심은 있어 미안한 모양인지 김재환이 멋쩍게 웃으면서 뒷걸음질을 치며 그대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돌겠네 진짜. 일은 벌려놓고 쏙 자리를 피한 김재환을 속으로 저주했다.
" 제발, 응? 여주야, 여주야 제바알. 우리 좀 살려주라. 응? "
" ....나 진짜 있다만 올 거야. 아무것도 안 하고. "
내가 말을 뱉음과 동시에 강의실 가득 환호가 울렸다. 저리도 좋을까. 그 언니가 어지간히 무섭긴 한가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 전체에 깔린 먹구름을 거두어내고 동기 여자애들이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그 틈에 끼여서 사물함에 전공 책을 넣던 와중, 그래도 오빠에게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휴대폰을 냉큼 들었다.
" 나 잠깐 어디 들려야 돼서…장소 카톡으로 알려주면 바로 갈게. "
" 응, 응! 너 안 오고 그러면 안 돼. 알았지? "
신신당부를 하고선 동기 여자애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 휴대폰을 들고 바로 오빠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지잉- 짧은 진동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하면 방금전까지 내 옆에 있던 김재환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가뿐히 김재환의 카톡은 읽씹을 해주고 곧바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 소리는 들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무대 준비하느라 많이 바쁜가? 그도 그럴 게 주말 내내 공연이 잡혀 있어서 요 며칠 데이트는 꿈도 못 꾸었다. 연락도 어제 오후에 한 게 끝이었다.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음 주에 실컷 놀 생각이었다. 끊임없이 같은 소리만 반복되는 휴대폰에서 귀를 떼고 액정을 보았다. 저장되어 있는 번호와 이름은 오빠의 것이 맞는데. 무슨 일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지? 아랫입술을 짓이기다가 결국엔 전화를 그만두었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3월에 처음 과팅을 나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과팅 상대들도 우리처럼 새내기인 남자애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서로를 이성적으로 본 다기엔 단순히 '친구'로 생각했다. 그 이후로 단톡방이 생겨서 이따금씩 학교 주변 술집이나 밥집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그뿐이었다. 1학기가 채 되기도 전에 연락은 끊겼고 과도 달랐기에 마주치는 일도 없어서 서로가 서로를 잊은 채 살았다. 분명, 그랬는데.
" 사진학과 17학번 김동현이에요. 다 동갑..이니까 말 놔도 되지? "
그때는 불어불문학과였던 애가 지금은 사진학과가 되었다. 과는 달랐지만 학번과 이름은 그때와 같았다. 아직도 카카오톡 채팅방 맨 밑엔 김동현 외 9명과 한 단체카톡방이 유효할 것이다. 물론 개중에 몇 명은 단톡방을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김동현을 또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과팅에서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김동현은 미처 날 알아채지 못한 듯 자기소개를 한 후에 술잔을 제 옆의 친구에게 내밀었다.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하는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순간 김동현과 눈이 마주쳤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그 애의 시선을 맞받아주는데 벌써 술잔이 내 앞으로 오게 되었다.
" 실음과 17학번 김여주..고요. 네.. "
딱히 할 말이 없었을뿐더러 애초에 나는 나오기로 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충 소개를 마치고 술잔을 내 옆 동기에게 건넸다. 이래서 내가 과팅이나 소개팅이 싫은 거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억지로 입가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덧 각자의 소개들이 모두 끝이 났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전에 슬슬 동기 여자애에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술잔을 하나씩 놔주는 사진학과 남자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데 마침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김동현이 난데없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 얘랑 잠깐 밖에 나갔다 와도 되지? "
그러더니 나를 콕 집어 말하면서 동기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뭐야, 갑자기..? 얼떨결에 동기들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김동현은 나오라는 눈짓을 내게 보내고 먼저 룸을 나가버렸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옆에 있던 동기가 귓속말을 속닥이면서 웃었다. 여주야 쟤가 너 마음에 드나 봐. 대박, 대박. 그런 게 아니란다 친구야……턱밑까지 그 말이 차올랐지만 입을 다물고 나도 룸을 나왔다. 룸을 나오자마자 술집 밖, 난간에 기대 있는 김동현이 눈에 띈다. 내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몇 달전에 쟤한테 돈 빌렸는데 안 갚고 막 그랬나? 가까워질수록 김동현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게 느껴졌다. 딸랑- 술집 문에 달려있는 소리를 들었는지 김동현이 고개를 내 쪽으로 틀었다.
" ...... "
" ...... "
김동현은 아무말없이 뚫어져라 날 바라보더니 심각한 표정과 목소리로 대뜸 물었다.
" 너 남자친구 있지 않냐? "
" 뭐? "
" 너 남자친구 있지 않냐고. 같은 과 선배랑 사귀는 거 아니였어? "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
" 맞네. 남자친구도 있는데 과팅 나오는 건 어디서 배운 상도덕이냐. "
별안간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더니, 내가 누구와 연애를 하는지도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김동현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오해를 해도 아주 단단히 하고 있다. 우선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데 술집 엘리베이터가 띵- 멈추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웬 남자가 안에서 내렸다. …어? 내가 지금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은 분명,
" ...... "
방금전까지 연락이 되지 않던 오빠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려 조심스레 내게 시선을 두었다. 땀에 젖은 듯 머리카락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고 얼굴 또한 마찬가지였다. 색, 색 가뿐 숨을 내쉬면서 오빠가 나와 김동현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 이게 당최 무슨 상황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아주 큰 죄라도 지은 것 마냥 분위기가 무거웠다. 서 있는 게 힘겨운 듯 거친 숨을 내쉬는 오빠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듯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 여주야아.. 전화.. 못 받아서 미아내. 근데, "
돌연 말을 잇던 오빠의 몸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물론 김동현도 놀란 나머지 동시에 오빠의 양팔을 붙잡으며 외쳤다. 오빠! 형! 일단은 김동현의 등에 오빠를 업히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아니 대체 이게 뭔 상황이야. 땀에 젖은 오빠의 얼굴을 보는데 괜히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서 근방에 있는 택시를 부리나케 잡아탔다. 그때였다. 손에 꼭 쥔 휴대폰이 긴 진동을 울렸다. 닭똥 같은 눈물이 얼굴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걸 손으로 슥슥 닦으며 액정을 보았다. 민현오빠에게서 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뚝, 진동이 끊겼다.
뒤를 돌아 김동현의 옆에 두 눈을 감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오빠의 얼굴을 보자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진짜. 제발 별 일이 아니길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다신 과팅 같은 거 나가지도 않겠습니다. 평소에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양심선언까지 했다. 그 순간, 한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짧은 진동과 함께 화면에 빛이 돌았다. 다름 아닌 문자였다. 발신인은 아까와 동일인물인 민현오빠였다.
〈여주야 종현이 혹시 연락 돼? 연락 되면 나한테 전화 좀 줘.〉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세상이 아무리 좁다 한들 이렇게나 좁을 수가 있을까 싶다. 갑자기 이 생각이 왜 들었냐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 아무튼...야, 오해해서 미안하다. "
김동현이 코코팜을 건네면서 내 눈도 차마 마주치지 못한 채 사과를 했다. 병원 복도에 기다랗게 놓여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 중 하나인 코코팜의 입구를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눈물을 흘린 탓에 콧물이 절로 훌쩍거렸다. 김동현이 말없이 휴지를 주었다. 콧물을 있는 힘껏 풀려다가 휴지를 돌돌 말아 콧구멍에 쑤셔 넣었다.
" 아니, 나 원래 종현이 형이랑 연락하고 그런 사이 아니었거든. "
묻지도 않았는데 대뜸 김동현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잠자코 코코팜을 홀짝이면서 김동현의 이야기를 들었다.
" 형이 원래 말 수가 적고 내성적이라, 아무리 내가 말 걸어도 응, 응. 이게 다 였거든. 나는 형이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
" ..... "
"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종현이 형 되게 좋아했어. 그래서 형이랑 같은 대학교 가려고 공부도 열심히하고 그랬지 뭐. "
" 킁- "
" 아...드러. "
" 뭐. 계속 얘기해 봐. "
김동현이 환멸의 눈길로 날 한 번 보곤 코코팜을 따서 한 입 마셨다. 김동현과 김종현. 두 사람의 관계는 친척 동생과 친척 형이었다. 오빠가 느닷없이 술집에 온 이유도 김동현이 오빠에게 연락을 해서였고. 그제야 이해되지 않던 상황들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
" 근데 언제였지. 한 달 전쯤 가족모임을 갔는데 형도 왔더라고. 평소처럼 상투적인 인사만 하고 밥 먹고 어른들은 2차 가고 나는 그냥 큰집에서 tv 보고 있었거든. 근데 형이 갑자기 내 옆 소파에 와서 앉는 거야. "
" ... "
" 그러더니 우물쭈물 대면서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휴대폰 화면 내밀면서. 그래서 봤더니 너랑 카톡 한 대화창이더라. 와, 김여주라고 저장되어 있는 거 보고 설마 넌가 했는데. 네가 맞더라고. "
" 오빠 나 김여주라고 저장했어? "
" 어? 엉. 한 달 전이면 사귀기 전인가? "
" 그럴걸. 뭐야, 오빠 정 없네. "
" 지금은 아니겠지. 아무튼. "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어느새 내 얼굴에는 웃음이 동동 띄워졌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여태 몰랐던 오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듣는다는 건 굉장히 설레는 일이었다.
" 형이 너 되게 좋아해. 지난주 쯤 또 가족모임 있어서 만났는데, 내가 먼저 물어봤다? 너랑 잘 됐냐고. 그랬더니 형이 얼굴 새빨개지도록 아무 말도 못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아.. 형 잘 안 됐구나 싶었는데 형이 조용히 내 귀에 속삭이더라. "
" 뭐라고? 야 잠깐만. 나 심장 마사지 좀. "
" .....? "
" 말해 봐. "
" 당여난 건 묻는 거 아니래써. 정확히 이 발음으로 그랬다. 그러면서 여주, 여주. 네 칭찬을 엄청 했지 아마. "
결국 참았던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피식피식대면서 웃는 날 보며 김동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앉았던 몸을 일으키곤 코코팜을 마저 들이켰다. 그랬단 말이지. 친척 동생에게 내 칭찬을 그렇게 하고, 여주, 여주하면서 내 이름까지 발설하고. 아... 얼굴 또 그때처럼 새빨개졌을래나. 토마토처럼 울긋불긋 빨간 얼굴로 짧은 발음과 함께 귓속말을 했을 오빠의 모습을 상상하니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안되겠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고 있는 오빠에게 어서 가야한다. 김동현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빈 캔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 난 그럼 간다. "
" 야, 오빠가 내 칭찬 뭐뭐 했어? "
" 말해주면 너 버릇 나빠질 것 같아서 안되겠다. "
입꼬리를 씰룩이면서 김동현이 캔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뭐야, 시시하게. 눈을 흘겨도 김동현은 정말로 알려줄 생각이 없는 듯 휘파람을 휘휘 불더니 손인사를 했다. 나도 김동현에게 웃으면서 손을 연신 흔들었다. 김동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즈음 문득 민현오빠 생각이 났다. 맞다. 연락 달라고 했는데 왜 그게 지금 생각났지. 허겁지겁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때마침 짧은 진동이 울렸다.
〈여주야 연락 안 줘도 돼 괜찮아.〉
지금 내 생각을 꿰뚫기라도 한 듯 민현오빠에게서 온 문자 내용이 그랬다. 가만히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다가 바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응급실 안으로 다시 발을 들였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 하얀 커튼 속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입술을 꾹 물고 웃음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침착하게 걸음을 뗐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민현은 텅 빈 집안의 침대에 홀로 누워 휴대폰 액정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침대 옆 탁자 위에는 종현이 좋아하는 전복죽과 참치야채죽이 골고루 들어 있는 종이 가방이 놓여 있었다. 혹시 몰라 약국에서 약도 사왔는데, 민현에게 온 카톡을 읽어보니 아마 병원에 간 듯 싶다. 병원이라면 죽어도 가기 싫어하던 종현이었는데 새삼 민현은 사랑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다. 스윽 휴대폰 액정에 올린 손가락을 위로 놀렸다. 민현은 좀 전에 온 종현의 카톡 내용을 다시 곱씹었다.
어찌나 긴장을 한 건지, 아니면 빨리 타자를 쳐야 했던 건지 종현이 보낸 내용들에 오타가 난무했다. 민현은 한참이나 종현이 보낸 카톡을 보다가 침대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종이 가방을 들고 부엌으로 가서 식탁 위에 죽이 든 플라스틱 용기들을 꺼냈다. 민현은 깊은 생각에라도 잠긴 듯 아직도 뜨근한 김을 내뿜는 죽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 ..... "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오빠. "
" .... "
" 오빠 눈 뜬 거 다 봤어요. "
종현은 꽤 강단 있는 여주의 어투에 배시시 웃으며 눈을 천천히 떴다. 죽기보다 병원을 제일 싫어하는 종현이지만, 여주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것쯤은 이젠 아무것도 아니었다. 종현은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으면서 저를 내려다보는 여주의 얼굴을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친척 동생인 동현에게 여주가 지금 과팅을 나왔다는 카톡 내용을 보자마자 종현이 무슨 정신으로 술집까지 뛰어갔는지, 여주는 아마 모를 거다. 술집 앞에 동현과 서 있는 여주의 모습을 보자마자 종현은 눈물샘이 요동쳤지만 꾹 참았다. 여주에게 전말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을 차마 버티지 못하고 종현의 몸이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며칠 동안 공연 준비를 한답시고 밤을 새우면서까지 무리한 생활을 한 탓이었다. 여주에게만큼은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종현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시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 과팅 나간 거, 오빠한테 말하려고 했어요. "
" ... "
" 몰래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구요. 그리구 원래부터 나가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갑자기 나가려고 한 애가, "
" 여주야아. "
" .... "
" 좋아해요, 좋아해요. "
느닷없이 종현이 좋아한다는 말을 던졌다. 지난 번, 여주가 제 품에 안겨 한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종현은 여주에게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여주가 과팅을 나왔다는 동현의 말에 때아닌 화가 난 것도 속상했다. 짧은 순간에라도 감정에 이끌리지 말고 여주를 믿었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질투가 굉장한 종현은 짧은 순간에 눈물이 비집고 나오려 하는 걸 꾹 참았더랬다. 여주는 말을 멈추고 종현의 얼굴을 넌지시 내려다보다가 아- 무언가를 깨달은 듯 히죽 웃어 보이며 종현의 눈을 올곧이 응시한다.
" 오빠가 그 말을 하면 내가 뭐가 돼요. 내가 더, 더 좋아하고 좋아해요. "
" 으흥흥..흐흫..흫.. "
종현의 웃음소리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나왔다. 그리도 좋을까. 여주는 홍홍거리는 종현을 빤히 바라보다가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는 종현의 얼굴을 보고선 손을 뻗어 거침없이 종현의 이마에 손등을 얹었다.
" 오빠 근데 괜찮아요? 아직도 열 나는 것 같은데... "
" 으응.. 갠, 갠차나. "
" ...열 더 나는 것 같은데요? 오빠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
" 지짜 갠차나...하, 핫. 여주야아 손, 손 좀... "
제 얼굴 곳곳을 매만지는 여주의 손길에 종현의 얼굴이 급속도로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그 속을 알 리 없는 여주가 일단은 종현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사 선생님 부를까요? 여주가 묻자 종현은 고개를 도리질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와 함께 응급실을 빠져 나왔다. 병원 복도를 걷는 와중에 일순 여주가 걸음을 멈추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종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 오빠 페북해요? "
" 응? 응. 왜애? "
" 그럼 오빠 폰 좀 잠깐만 줘봐요. "
영락없는 아이 같은 웃음이 여주의 얼굴에 퐁퐁 피어 올랐다. 종현은 무엇에 홀린듯 여주에게 제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패턴 따위 없는 종현의 휴대폰을 손으로 몇 번 누르더니 여주가 씨익 입꼬리를 가득 끌어 당기며 웃었다. 제 휴대폰과 종현의 휴대폰을 양손에 들고 화면을 두어 번 누르곤 여주가 종현의 휴대폰을 다시 돌려주었다. 종현은 의아한 얼굴로 여주가 건넨 휴대폰을 받으며 입을 벙긋거렸다.
" 여주야아 뭐해써? "
" 오빠. "
" 응? "
" 당연한 건 묻는 거 아니랬어요. "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그 시각, 페이스북은···
김여주님이 김종현님과 함께 있습니다.
201X X월 X일
♥
김종현님과 연애 중
201X X월 X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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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빈 김재환 강다니엘 이거 뭐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재환 김여주 해킹당한거 아님? 얘 이런 거 안올리는데
강다니엘 대박ㅎㅎㅎㅎㅎㅎ
옹성우 야 얘들아 근데 나 왜 여주랑 친구 아니지?
권현빈 ㅋㅋㅋㅋㅋㅋㅋㅋ아 성우형ㅋㅋㅋㅋㅋ
옹성우 근데 얘네 좋아요수 뭔데 이렇게 많아;;
김재환 김여주 슈스자나요 형
이벙헌 헐 여주 대학가더니 남친생김?
전디현 송헤교 야 이거봐.....ㅠㅠㅠㅠㅠㅠ
김회수 헐 뭐야 여주야 너 이오빠랑 사겨?
이여니 손애진 대박 잘어울린다..
도짜님들 Q. ㅡㅅㅡ...
저 A. (면목없음) 하핫.. 데둉함..니다...쿨럭..
너무 오랜만이라서 호다닥 도망가고 싶지만..흑흑
이번편 근데 먼가 되게 쓰면서도 뭐지..? 싶은..ㅋㅋㅋㅋㅋㅋ..ㅠㅠ
동현이 깜짝출연 감사하고요... ㅎㅁㅎ
요즘 들어서 더욱 느낍니다 저는 손곶아라는걸..흑흑
앞으론 책 좀 많이 읽어야겠숩니다..^^...노력하께요 도짜님들
아 마자 그리고 암호닉 신청 제가 쭈르륵 보았는데요
도짜님들 신청 양식 어긋나는 거 너모..너모너모 많아..☆
궁금한 건 언제든지 물어봐주십쇼! 바로바로는 아니더래두 기필코 답해드리겠숩니다
다음편은 특별편 아니면 번외가 될 것만 같은 느낌적은 늑힘~☆
도짜님들 그럼 죤새벽 되십쇼! 저는 넘 졸려서 자러가께요..
읽어주셔서 감싸함돠!!!!!!!!! 지짜 이런글 읽어주는 도짜님들은 라잌 엔제루 싸라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