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written SOW.
These tears, they tell their own story
눈물에는 모두 이유가 있어요
Told me not to cry when you were gone
당신은 떠나면서 나에게 울지 말라고 했죠
But the feeling's overwhelming, it's much too strong
그런데 이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고 너무 버거워요
Can I lay by your side, next to you, you?
당신 옆에 같이 누워도 될까요? 당신, 바로 당신 옆이요
And make sure you're alright
당신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어요
59.악마의 본성
석진은 기절하지 않았다. 다만 기절하고 싶을 만큼 아팠을 뿐. 석진이 여주와 정국을 보낸 이유는 하나 였다. 태형은 지겠지만, 지민은 질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지민은 태형의 패배를 인정 한 적이 없었다. 치유 마법으로 대강 머리의 상처를 치료한 석진이 창문 밖으로 몸을 한껏 빼곤 저 멀리 보이는 정국과 여주를 바라봤다. 타이밍은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겠군. 아마 여주와 정국이 현장에 도착 했을 때 즈음엔, 피로 뒤덮여 있을 테니.
*
"김여주, 진정해. 울지 말고. 멀쩡할 거야. 언제나처럼."
"정국아, 나 ‥ 태형 없으면 죽어."
"알아."
"진짜야, 나 지금 심장이 ‥ 흐, 너무 아파."
울컥, 여주가 피를 토해냈다. 정국은 하얀 와이셔츠를 흠뻑 적신 피는 ‥ 악마의 피 색과 같은 보라색을 띄고 있었다. 정국은 보랏빛 혈흔을 떨리는 손으로 쓸어 내렸다. 정국의 손에 옅게 묻어 나오는 혈흔은 여주의 상태를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정말, 여주가 죽으면 어떡하지. 마계에 사는 인간 남자애가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었다. 여주를 위해서라도 태형에게 한시 빨리 도달하는 게 우선이었다. 분하게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여주와 정국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채 태형은 편히 눈을 감았다. 긴 시간 갈망했던 여인은 제 바람대로 살아있고, 제 친구도 아마 잘 살아 나갈 것이다. 태형은 악마인 주제에 꽤 행복한 삶을 살았다며 웃었다. 심장이 뜯겨 나간 고통치곤 꽤 나름대로 참을 만 했다. 아직 청각을 죽지 않은 것으로 봐선 자신은 아직 죽은 게 아니라고 확신한 태형은 언젠가 여주가 제게 조잘조잘 말했던 책의 내용을 떠올렸다. 생명은 숨이 끊기고, 심장과 폐가 멈추더라도 청각은 살아 있기 때문에 끝까지 좋은 말만 해주어야 한다고. 비록 지금의 자신에겐 좋은 말을 옆에서 속삭여줄 이가 없지만 태형은 간간히 들리는 지민의 목소리에 위안을 얻었다.
사실 알고는 있었다. 지민이 윤기의 심장을 꺼내어 제 몸 안에 넣으려고 한다는 것을. 하지만 아마 불가능 할 것이다. 아무리 대악마로 승진하신 윤기라고 해도 그는 반류로 너무 오래 살아왔다. 태형과는 아예 맞지 않는 상성이었다. 태형은 대악마 중에서도 막강한 힘의 차이를 보이는 악마였다. 100년도 살지 못한 윤기의 심장은 태형에겐 너무 작았다. 윤기의 심장을 들고 오는 지민의 소리가 들렸으나 태형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청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은 이미 끊긴 뒤였다. 말을 어떻게 하는 지, 자신의 언어가 무엇이었는 지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여주의 얼굴만이 선명하게 남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태형을 울게 했다.
"씨발, 이게 왜 안 들어가냐고. 야, 김태형. 일어나봐 빨리."
지민아, 우리 여주를 잘 부탁해.
"미련한 새끼야, 너 이렇게 죽어버리면 악마 체면 다 죽이는 건데 괜찮냐? 어? 아가는, 어떻게 할 건데."
네 말대로 난 참 미련한 생명이었을지도 몰라. 惡악을 추구하는 주제에 善선의 결정체를 만들어 내다니. 내가 너무 오만했어.
"내가 걔한테 뭐라고 말을 해. 네가 그 아이를 사랑했다는 거 그거 하나만은 네가 말 해야지."
그래도 내가 그녀를 위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서 다행이야. 나를 망가뜨리는 건 오직 그녀여야 했으니까. 근데 지민아, 나 너무 여주가 보고 싶어. 듣고 싶어, 닿고 싶어. 처음으로 죽음이 두려워졌어.
"지민님, 여주가, 여주가 숨을 안 쉬어요."
Dear lord, when I get to heaven Please let me bring my love.
신이여, 내가 만약 천국에 간다면 나와 내 사랑을 데려가게 해주세요.
내 죽음이 아니라, 바로 여주의 죽음이 말이야.
完 結. 악마는 신에게 구원을 청할 자격이 없다.
" 너 왜 이렇게 멍하냐 오늘 따라? 기차 타는 게 그렇게 힘들어?"
정국의 말에 여주가 초점을 정국에게로 맞추었다. 데자뷰인가, 아니면 내가 꿈에서 이 장면을 봤나. 정국은 이맘때즈음이면 항상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 여주에게 정국은 너도 아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고로 기억을 잃었다고 믿는 여주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만나러 갔다. 故人 민 윤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처음 보는 것이 맞았지만 여주는 알지 못하는 낯선 느낌에 항상 납골당으로 향할 때 마다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정국은 항상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사진만 봐도 우는 여주가 그의 사진을 보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 지 상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사진은, 그러니까 태형의 사진은 없지만.
"근데 올해는 꽃이 안 놓여져 있네. 항상 놓여져 있었는데."
"그러게."
벌써 윤기를 보러 온 지가 5년째였다. 기억이 모두 지워지고 인간계에 온 여주와는 달리 정국은 기억이 온전했다. 정국이 인간계로 올 때 함께 온 것은 단 세가지 였다. 여주, 윤기의 뼛가루가 담긴 자기, 그리고 지민이 여주에게 준 반지.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였지만 악마의 생명을 함부로 다룬 윤기와 태형, 그리고 그 사이에 끼게 된 여주는 모두 큰 죄에 해당했다. 마계는 물론이거니와 천계도 칭송하는 신은 이 셋에게 벌을 주었다. 윤기는 환생을 하지 못하는, 영원히 떠돌게 되는 벌을, 여주는 모든 기억을 잃는 벌을, 태형에게는 ‥ 태형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되는 벌을. 하지만 정국은 태형의 벌이 가장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나 음료수 사올게, 정국아 먼저 차에 가 있어."
"같이가."
"됐어, 내가 애냐? 더워 죽겠으니까 차에 시동이나 켜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요."
차에 다다른 정국은 버젓이 놓여 있는 여주의 지갑을 보며 헛웃음 쳤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덜렁거리는 건 알아줘야 해. 지갑도 놓고 간 주제에 무슨 음료수를 사 와. 여주의 지갑을 들고 편의점으로 향한 정국은 좁은 보폭으로 걸어가고 있는 여주의 뒷모습을 보곤 서서히 걸음 속도를 줄였다. 저 느긋한 성격은 대체 누굴 닮았나 몰라. 남몰래 미소짓던 정국은 편의점 문을 여는 낯선 인물에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가장 가혹한 벌을 받고야 만 사람.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 가장 경멸하던 존재로 변한 태형에게 더 얹혀진 벌은 바로,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잊게 된 것. 그리고 그 여인마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태형과 여주는 그렇게 지나쳤다. 정국은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눈에서 떨어지고 있는 눈물은 울지 못하는 그들을 대신해서 우는 것이라고 위로하며.
하지만 곧 들려오는 음성에 고개를 번쩍 들은 정국은 놀라운 광경에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 막았다.
"저기요, 혹시 민윤기라는 분에게 항상 꽃을 두고 가시는 분이 그 쪽이에요?"
"네?"
"아, 아니. 이 꽃 ‥ 항상 오늘만 되면 놓여 있거든요."
"맞는데, 그 쪽도 민윤기씨랑 아는 사이신가 봐요."
"아, 네 ‥ 뭐. 아는 사이이긴 한데 제가 기억을 못해서."
"네?"
태형의 손에 쥐여진 푸른색 꽃을 가리키며 여주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태형은 태연스럽게 여주에게 윤기와 아는 사람이라고 물었으나 곧 되돌아온 대답에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기억을 못한다고요?
"네, 5년 전 사고로 ‥."
"신기하네요, 저도 5년 전에 사고가 나서 기억을 못하거든요."
더 이상은 안된다. 정국은 달려가 여주의 손목을 붙잡았다. 야, 가자. 당황한 여주는 허우적 거리며 태형에게 꾸벅 숙인 뒤 큰 보폭으로 걸어가는 정국을 따라잡았다. 왜 그러는데? 음료수 먹고 싶다며?
"간곡히 부탁한 결과가 이거야. 최대한의 자비라고 하셨어."
"만약 인간계에서 둘이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요?"
그 땐 진정한 죽음을 맞이 하겠지. 둘 다.
석진의 목소리가 자꾸만 정국의 귓가에 맴돌았다. 태형이 죽고, 여주가 죽은 직후 석진은 신에게 자비를 구했다. 그 결과가 이러한 벌들이었다. 여주가 죽은 이유 자체가 태형의 죽음이기도 하고 태형이 죽은 이유도 여주가기에 아예 이들을 떨어뜨리는 건 불가능 할 것이라고 했단다. 하지만 기억을 지워버리면 아무리 많은 인연이 쌓이더라도 무너질 것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또 인연을 쌓아 연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면 이번엔 자비 없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정국은 겨우 살고 있었다.
제 손에 잡힌 여주의 체온이 아직 따뜻했다. 정국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여주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그 감사를 태형으로 보답해 줄 순 없었다. 정국에게 소중한 존재 둘이 만나서 후에 둘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건 정국에게 내리는 또 다른 벌일 테니. 정국은 5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 벌을 피해서 달릴 수 밖에 없었다. 방금 태형의 앞에서 여주를 데리고 빠져나온 것 처럼.
결국 신은 아무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여주의 목숨을 구걸했을 태형이의 기도도, 마지막까지 태형의 목숨을 구걸했을 나의 기도도. 나는 이 기도들의 공통점을 알았다. 목숨을 구걸한 인물들의 정체는 모두 악마였다. 악마의 기도를 신이 들어줄 리 ‥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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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4 ~ 2017. 08. 19
지금까지 악마와 아이의 일상을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텍파와 후기는 같이 내일 찾아오겠습니다. 후기에 모든 질문들을 답변 해 드릴 예정이니 질문 할 내용을 댓글에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생각 중인 악마와 아이의 일상 외전과 번외, 그리고 시즌 2는 모두 인티가 아닌 ㅂㄺ 에 연재 될 예정이오니 그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후기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