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연애중을 올린 뒤로 캠퍼스를 거닐 때마다 종현과 여주를 힐끗거리는 시선들이 보다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여주는 종현의 손을 덥석 잡았지만 종현은 침만 꼴까닥 삼키면서 돌이 되기 일쑤였다. 여자와 스킨십을 한 건 기껏해야 유년시절 짝꿍인 여자아이들과 손을 잡은 게 끝이었다. 둥글게 둥글게- 수줍게 웃는 어린 종현의 모습이 찰나에 스쳐간다. 여하튼. 오랜만에 자취방에 모인 종현 외 3인방은 머리를 맞대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야 종현아. 너 그럼 여주랑 키ㅅ, "
" 성우야. "
" 아니, 그렇잖아. 여주 손만 잡으면 심장이 쿵쾅쿵쾅거리는데 키...그거는 아직 하지도 않았을 거 아냐. "
주말 아침부터 원래대로라면 오후에 있을 공연이 취소가 된 바람에 종현은 소파에 앉아 근심 가득한 얼굴로 콧바람만 슉슉 내쉬고 있었다. 민현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종현에게 물을 내밀며 물었다. 종현이 공연 못해서 슬퍼? 옅게 웃는 민현의 얼굴을 천천히 올려다보면서 종현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아랫입술을 가만 두질 못하며 달싹였다. 민현의 다정한 추궁 끝에 종현이 뱉은 말은 이랬다.
안니... 여주랑.. 손만 잡으면 심장이 막..쿵쿵쿵..뛰어서 미칠거가타 미녀나..
울상을 지으면서 말하는 종현의 얼굴을 건너보며 민현은 그저 종현이 귀여워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티는 내지 않고 휴대폰을 들었다. 오랜만에 성우와 재환이 출동할 때가 온 것이었다. 전화를 건 지 10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성우와 재환이 차례대로 벨을 누르곤 안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이 자취방에 들어서자마자 종현은 민현에게 한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방금 자다 깬 모양인지 재환은 까치집을 둥둥 띄운 채 샐쭉 웃었고, 성우는 음흉한 미소와 함께 제 가슴을 한 번 탁- 쳤다. 그러더니 민현이 건넨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좀 전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키로 시작하고 스로 끝나는 단어에 대한 질문. 그 탓에 종현의 얼굴이 급속도로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다. 민현은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는 종현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았고 성우는 아직도 속이 타는지 물을 연신 마셨다. 재환은 홀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종현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 형, 형. 그럼 오늘 공연 취소돼서 김여주 만나요? "
" 으응.. 아마두... 그럴 거 가타. "
느릿하게 말을 뱉어내는 종현을 바라보던 성우의 눈빛이 별안간 번뜩였다. 성우가 얼굴을 앞으로 쭉 내밀고는 낮게 속삭이려다 이내 다시 얼굴을 뒤로 내뺀다. 지난번의 사건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괜히 나섰다가 종현이 여주에게 물음표살인마라는 말까지 들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성우는 행동을 조심하기로 결심했다. 큼큼, 헛기침만 하고 아무런 말도 잇지 않는 성우를 보며 민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 성우 너 무슨 말 하려던 거 아니였어? "
" 아니? 야 민현아 네가 말해 봐. 나는 가만히 있을게. "
" 형, 아직 잠 덜 깼어요? 형이 웬일이에요. "
" 우리 재환이는 조용히 하자? "
입가에 힘을 잔뜩 주며 웃는 성우의 말에 재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종현을 보았다. 역시나 종현의 얼굴은 새빨간 토마토처럼 익어 있었다. 그 옆에 앉아있던 민현이 자리를 옮겨 성우 대신 가운데에 앉아 조용히 세 사람을 바라본다.
" 오늘 여주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 종현아? "
" 다섯시에..영화 보기로 해써. "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면서 재환과 성우가 대화를 나누는 민현과 종현의 모습을 두 눈을 끔벅이며 바라보았다.
" 종현아, 여주 손 잡으면 심장이 어떻게 떨려? "
" 막... 숨도 못 쉴 만큼 떨리구.. 말도 안 나오구.. "
여주와 손을 잡은 당시를 회상하는 듯 종현이 살포시 눈을 감으며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성우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수줍은 소년의 고백을 형상시키는 종현의 모습을 숨죽이며 바라보았고, 재환은 비스듬히 고개를 꺾어 종현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종현이 형 김여주한테 잡아먹히면 어떡하지. 흑흑. 당찬 여주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 어, 형 카톡왔어요. "
마침 재환의 옆에 종현의 휴대폰이 놓여 있던지라 재환이 반짝 빛나는 종현의 휴대폰을 건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휴대폰을 건네받던 종현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져만 갔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성우가 근질근질거리는 입술을 여러 번 혀로 쓸더니 기어코 입을 열었다.
" 야 종현아...뭔데 그래? "
" ....여주가아.... 오늘.. 못 만난대... "
세 사람이 바라본 종현의 얼굴은 시무룩함에 전멸 당하고 말았다. 힘 없는 손으로 종현이 휴대폰 화면을 세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화면 가득 들어찬 여주의 이름 밑으로 연달아 온 카톡이 보인다.
여주 ♧
오빠 진짜 진짜 미안한데요ㅠㅠㅠㅠ 오전 10:21
오늘 못만날 것 같아요.. 갑자기 가족모임 있다 그래서 ㅠ_ㅠ 오전 10:21
진짜 미안해요 ㅠㅠㅠㅠㅠ 오빠 내일은 시간 어때요? 오전 10:21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어떠한 말도 섣불리 꺼내지 못했다. 톡, 톡, 톡. 휴대폰 자판을 말없이 두드리는 종현의 손가락 움직임만 눈에 담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야아!!!!! 김여주!!! "
" 귀청 떨어지겠다. 오빠 너는 여전하다 여전해. "
" 야 오랜만에 봤는데 표정이 왜 그러냐? 어? "
살갑게 웃으며 내 옆에 바짝 따라붙는 남자를 그저 바라봤다. 내가 지금, 어? 원래대로라면 오빠랑 영화 보고 밥 먹고 황금 같은 데이트를 할 시간인데. 끓는 내 속도 모른 채 남자가 방긋방긋 웃는다. 남자의 이름은 강동호. 나와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사촌 오빠지만 성격은 어째 나보다 동생 같다.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돌연 미국에 가서 음악 공부를 한다며 떠났다가 오늘 예고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탓에 할머니는 끔찍이도 아끼는 손자가 돌아왔다며 당장이라도 귀국 파티를 열어야 한다 성화였다. 결국에는 큰집인 우리 집에서 강동호의 귀국 파티를 하기로 했다. 한 사람도 빠지면 안 된다는 할머니의 말에 오빠와의 약속까지 취소하고 우리 집 위치를 모르는 강동호 때문에 내가 직접 강동호를 데리러 버스정류장 앞까지 마중을 나오게 된 것이었다. 하... 존나 욕 나올 것 같다.
" 야, 야 동생. 너 나 없는 동안 남자친구는 생겼냐? "
" 남이사 내가 남친이 있든 말든. "
" 와, 야 너 안 본 사이에 애가 왜 이렇게 까칠해졌냐~ 왜 그래~ "
" 오빠. "
" ....어? 왜... 조용히 할까? "
" 어 제발. "
슬슬 내 눈치를 보더니 강동호가 그제야 입을 닫았다. 저놈의 주둥이는 어째 변한 것 하나 없냐. 속으로 혀를 끌끌 차고 우리 집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강동호의 좋은 점은 눈치가 없지만 빠른 수긍을 한다는 점이었다. 내 표정을 단박에 읽고 제 눈치껏 입에 힘을 꾸욱 쥔 채 집이 가까워질수록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했나 싶어 고개를 슬쩍 틀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동호가 입을 히죽 벌린다.
" 뭐. 나 말하라고 안 했는데? "
" 아...그랳? 야 나는 네가 나 쳐다보길래 말 해도 되는 줄 알았, "
" 나 남친 있어 오빠. "
" 헐!!! what the fuck!!! 이모도 아냐? "
아 세상에. 미국에서 온 티 내는 것도 아니고. 돌연 영어 욕을 내뱉는 얼굴을 있는 힘껏 노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알 리가 있나. 사실 엄마에게 아직 말하진 않았다. 우리 엄마 성격상 남자친구가 있는 걸 알게 된다면……
" 야 너 큰일났다 헿. 내가 이모한테 말하며는 너는 그냥.... "
내게는 딱히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도 강동호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강동호가 꼬리를 내리고 살랑살랑 웃으며 내 팔꿈치를 툭툭 친다.
" 아 말하지 말까? 야 알았어 말 안 해, 안 해. "
아마 우리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빠를 데려오라며 난리 난리 쌩난리를 칠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오빠를 엄마에게 데려왔다 치면, 아... 갑자기 두통이 오는 것 같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오빠를 향해 콧소리를 내면서 오구오구를 할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다. 아직은 안 된다. 자칫하면 오빠가 엄마 앞에서 겁에 질려 도망갈지도 모른다. 내가 남자친구의 유무를 엄마에게 말하는 걸 섣불리 하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 야 근데 남자친구 어떻게 생겼냐? 귀여워? 잘생겼어? "
" 둘 다. "
" 둘...다? 네가? "
" 오빠. "
" 아..알아써. 조용히 할까? 그래, 그래~ "
휴대폰에 있는 오빠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웬걸. 생각해보니 오빠랑 단둘이 찍은 사진이 없다. 미친 거 아냐? 사귄지 며칠째인데 아직도 같이 찍은 사진이 없지? 심각한 표정으로 대문 앞에 서서 걸음을 멈추자 강동호가 손가락을 쫙 펴서 내 앞에 휘젓는다. 때마침 미동 없던 대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면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이모가 주걱을 들고 서 있었다. 반사적으로 강동호에게 시선이 갔다. 강동호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이모에게 인사를 한 뒤, 나는 그들을 지나쳐 먼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 갑자기 오빠가 너무 보고싶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종현과 민현이 퍽 심각한 얼굴로 각자의 휴대폰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민현은 점점 채워지는 카톡 대화방을 찬찬히 훑었고 종현은 제 눈을 연신 비비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민현이 옅게 웃으며 종현의 손에 들려있는 휴대폰과 제 휴대폰을 동시에 집어 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답지 않게 목소리를 띄우며 입을 연다.
" 현빈이 과장 심하잖아. 여주 닮은 사람일거야 종현아. 아니면 여주 친척오빠일 수도 있구. "
" ....응, 응... 마자... 미녀니 네 말이.. 다 마즐거야.. "
" 여주랑 30분 전에도 연락했다며. 그럼 괜찮아 종현아. "
" ...응. "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새 종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민현은 제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쓸어넘기며 종현 모르게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현빈이에게 따로 연락을 해봐야 하나. 다짜고짜 형들!! 비상!!! 김여주 지금 어떤 남자랑 둘이 걸어가요!!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우리 학교 사람은 아닌데... 종현이 형 뭐 아는 거 없어요? 여주 없는 단톡방에 가득 울려 퍼진 현빈의 말에 종현은 물론 민현과 성우, 재환마저 당황한 채 카톡을 읽어내려갔다. 다니엘만이 홀로 평온했다. 아빠 아니얗?ㅎㅎㅎㅎ 다니엘을 제외한 다섯 남자는 약속이라도한 듯 다니엘의 말을 스루했다. 재환은 동전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 연습을 하다가 여주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여주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성우는 지식in에 글을 올렸다. 지난번 페이스북에 배신을 당한 이후로 성우는 지식in을 즐겨 찾았다. 민현은 휴지를 뽁뽁 뽑아 종현에게 건네었다. 종현은 작은 손으로 휴지를 받아 들곤 코를 킁- 훌쩍이기 시작한다.
" 미녀나.... 나능.. 여주를 믿어.. 친척오빠..마즐거야.. "
" 종현아. "
" 응. "
" 오랜만에 둘이 술이나 마실까? "
대뜸 술을 마시자는 민현의 물음에 종현의 동그란 눈이 느릿하게 민현을 향한다. 싱긋 웃으면서 민현이 종현을 내려다보며 덧붙인다. 단둘이 술 마신 적은 되게 오래됐잖아. 그냥 그 집 부침개 생각나서. '그 집'이라 하면 민현과 종현이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처음 가 본 술집이었다. 김치부침개가 바삭바삭하고 연주황빛 조명이 인상적인 곳. 분위기가 푸근해서 종현과 민현 둘 다 만족스러워하던 곳이었다. 다만 술집 안이 좁아서 세 명 이상은 같은 테이블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성우와 함께 다닌 이후론 간 기억이 없다.
" 갈까, 종현아? "
" ...응. 잠깐마안.. 여주한테 마지막으로 카톡 하나만 보내께. 하핫.. "
톡, 톡. 종현의 손가락이 다시금 움직인다. 30분 전의 카톡이 끝으로 연락이 되지 않는 여주가 걱정됐지만, 가족모임이라고 했으니 그런 거라 믿었다. 종현은 여주에게 민현과 술을 마신다는 카톡을 요령껏 남겼다. 미처 1이 지워지지 않는 여주와의 카톡방을 바라보다가 민현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가자 종현아. "
" 응. 미녀나 근데 이짜나... 현빈이 과장 많이..심해? "
" ...응? "
방금 전 민현이 위로한답시고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걸 종현이 다시 되묻는다. 민현은 다소 놀랐지만 이내 놀라지 않은 척 태연한 얼굴 표정을 유지하며 싱긋 웃었다. 현빈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의의 거짓말. 친구를 위해서라면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필요했다.
" 응. 현빈이 과장 되게 심해. "
" 그러쿠나... 몰라써. "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종현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신발을 구겨 신는다. 민현은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말끔히 참고는 종현의 신발 옆에 놓인 제 신발을 찾아 신었다. 여전히 종현의 발은 제 발보다 작았다. 짧은 순간 민현은 종현의 신발을 눈에 담았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동호와 여주는 결국 집을 탈출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지루한 집안 분위기에 못이겨 동호가 여주를 설득해서 집 밖으로 나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마침 여주도 어른들의 반복적인 말들에 지쳐갈 때 즈음이었기에 스스럼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동호를 따라 나왔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 소리를 듣다가 별안간 동호가 걸음을 멈추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여주를 넌지시 본다.
" 뭐.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
" 여주야 나 오랜만에 한국 술이 땡긴다. "
" 미쳤나 봐. 술도 못 마시면서 무슨. "
" 야 아니야~ 나 미국에 있을 때 맥주를 비어채로. 어...? 비어가 맥주인가..? "
제가 말을 뱉고도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동호를 여주가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저 오빠는 대체 언제 철들지? 여주는 속으로 생각하다가 몇 시냐는 동호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냈다. 어른들이 말을 나누고 있어서 차마 아까는 휴대폰을 꺼내 보지도 못했다. 진동이 아닌 무음으로 해놓아서 여주는 제 휴대폰 화면에 뜬 부재중 전화와 문자에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 야아- 몇시냐니까? "
" 오빠 조용히 해 봐. "
" ...어? 그래, 그래. 야 내가 좀 시끄러웠지? "
동호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곤 여주가 찬찬히 문자를 훑어본다. 마지막으로 온 문자 내용을 보는데 여주의 턱이 무의식적으로 벌어졌다.
〈야야야ㅑㅇ 너 지금 어디야 머야 가족모임맞아? 현빈이가 너 다른남자랑 있는거 봤다는데 지금 종현이형이랑 민현이형도 알아 그사람 뭔데? 우리학교 사람은 아니라는데 걍 친척형이지?〉
재환에게서 온 문자를 보다가 그만 여주가 혀를 끌끌 찼다. 이놈의 권현빈이 또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어디서 저와 제 사촌오빠인 강동호를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상 현빈이 민현 외 네명에게 이 사실을 알렸나보다. 여주는 일단 재환에게 문자를 보내려다가 혹시나 싶어 데이터를 켰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종현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여주가 침착하게 종현으로부터 온 카톡을 읽으려는 그 순간, 대학로에 멀뚱히 서 있는 여주와 동호의 앞으로 남자의 형체 두 명이 가까이 왔다. 여전히 휴대폰에 정신이 팔린 여주와 달리 동호가 먼저 남자 두 명을 발견하고 어설프게 웃으며 제 뒤통수를 긁적인다.
" 저기 혹시 지금 몇 시인지 아세여? 제가 시간을 안 보고 나와가지고...하핳.. "
동호의 물음에 그제야 여주의 고개가 소리가 난 곳으로 향한다. 여주는 순간 움직이고 있던 손놀림을 멈추었다. 다름 아닌 종현과 민현이 담담한 얼굴로 여주를 보며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종현은 여주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술을 연신 달싹였고 민현은 여주의 옆에 서있는 동호를 비스듬히 내려다보았다. 흡사 먹잇감을 잡아먹을 준비를 하는 맹수처럼 민현이 동호를 훑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동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여주와 종현, 민현을 번갈아본다.
" 아, 오빠. 지금 카톡 보내려구 했는데.. "
민현의 표정이 워낙 강렬해서였을까. 여주는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며 말을 이어갔다. 유심히 여주와 종현을 바라보던 동호가 무언갈 깨달았다는 듯이 아! 홀로 무언의 외침을 하더니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어 이 상황 그건데? 완전 불륜 현장 목격. 뭐 그런건데? "
" ..오빠 조용히 해라. "
" 안녕하세요! 저는 김여주 사촌오빠 강동호 입니다!! 반가워요!! 나잇스미츄!! "
세상 해맑게 인사를 건네는 동호 덕에 민현은 얼떨결에 동호의 손을 잡아버렸다. 위아래로 과격하게 흔드는 동호의 바운스에 맞춰 민현의 어깨도 동시에 들썩인다. 이제야 종현의 얼굴이 환히 펴지기 시작한다. 울망울망한 눈이 올망올망하게 변하여 여주를 지그시 응시한다. 여주가 샐쭉 웃으면서 동호를 제지시키곤 종현의 앞에 가서 서슴없이 손을 덥석 잡는다.
" 오빠. 또 막 혼자 울라고 했어요? "
" ..안니, 내가 언제 울었다구 그래 여주야아.. "
" 오빠 손이 왜이렇게 차요. 어- 갑자기 엄청 뜨거운데? "
" 야아- 너 지금 뭐하냐? 내가 이모한테 확 그냥..... 아.. 사막여우씨 조용히 할까요? 네.. 조용히 할게요. "
깨갱- 동호가 민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꼬리를 내렸다. 미처 민현의 이름을 알지 못해서인지 동호는 사막여우를 닮은 민현에게 그대로 사막여우씨라는 말을 뱉어버렸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다행히도 민현이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여주의 남자친구는 살면서 처음 보는 동호로서, 지금 기분은 마치…,
" 우린 이만 가요. "
" ...네? "
" 종현아, 여주야 먼저 갈게. 연락 해. "
민현이 동호를 질질 끌면서 종현과 여주에게 인사를 마치고 뒤돌아섰다. 뜻하지않게 동호는 민현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아니, 잠, 잠시만여... 동호가 말을 내뱉자 그제야 민현이 걸음을 멈추었다. 걸음을 멈춘 민현과 동호 사이에 알듯 모를듯 미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동호는 저보다 한 뼘은 큰 민현을 올려다보면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저기요..? 동호가 말을 건넸음에도 불구하고 민현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언제나 담담한 민현의 두 눈이 촉촉했다. 동호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민현을 응시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오빠. 우리 일단 사진 찍어요. "
" ...으응? 여주야아 갑자기..? "
" 갑자기가 아니에요 오빠. 내가 앨범을 보는데 글쎄, 우리 같이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는거에요. "
민현과 동호가 사라지자마자 여주는 열변을 토하듯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종현이 흐흐흫.. 부끄러운 웃음을 짓다가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는 나직이 읊조렸다.
" 근데 여기서능.. 부끄러어서... "
사진 하나 찍는 게 왜 부끄러운 일이지? 여주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낯을 가리는 오빠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벤치로 가요 오빠. 여주가 또 종현의 팔에 제 팔짱을 끼며 웃었다. 종현은 여주 몰래 마음 속으로 숨쉬기를 시작했다. 제 심장 소리가 여주에게 들릴까 한참이나 숨을 참고, 내쉬고를 반복할 때 즈음 어스름한 골목길 옆 벤치에 도착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벤치가 퍽 낭만있게 놓여 있었다.
" 여기는 처음 오는 거 같은데 대박. 오빠 여기 분위기 완전 좋아요. "
" 여주야아 좋아? "
" 이 오빠 또 당연한 걸 묻네. 일로 와서 앉아봐요. "
여주가 먼저 벤치에 앉아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우두커니 서서 여주를 보던 종현이 씨익 웃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살랑살랑거리며 여주의 옆에 다소곳 앉았다. 여주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어플에 들어갔다. 요즘 유행 중인 어플이었다. 강아지가 될 수도있고 고양이, 곰돌이, 거북이 등 귀여운 캐릭터에 얼굴을 합성할 수 있어 요긴했다. 사실 한번도 사용해 본적은 없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이 어플로도 사진을 찍고 싶었다. 어, 이거다 이거. 신이 난 채 동물을 고르는 여주를 바라보며 종현은 무릎 위에 올려 둔 주먹에 힘을 주었다. 말아 쥔 주먹 안 손바닥에 땀이 가득 차는 건 삽시간의 일이었다.
" 오빠 이거로 해요! "
" ...응! "
" 가까이 더 와봐요 오빠. "
단숨에 종현과 여주의 양 볼이 밀착했다. 종현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여주와 이렇게나 밀착한 적은 처음이었기에 심장이 또다시 요란스러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여주가 고른 건 요즘 유행하는 어니부기 캐릭터였다. 혼자 각도를 여러 번 잡더니 다섯 번째로 한 각도가 마음에 들은 듯 여주가 같은 포즈를 다시 취한다. 그리고는 카메라 속 종현을 바라보며 방긋 웃는다.
" 오빠, 하나 둘 셋- 하면 찍을거에요. 알았죠? "
" .... "
" 아 오빠 또 긴장했어요? 대답 못하구 고개 끄덕이는 거 봐. "
뭐가 그리 웃긴지 여주가 방그르르 웃으면서 휴대폰에 손을 갖다 대었다. 하나, 둘, …이윽고 셋을 외치는 여주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주가 둘을 외친 순간 종현이 고갤 돌려 여주의 발그레한 볼에 제 입술을 살포시 맞추었다. 이제는 떼야 하는데 미처 타이밍을 잡지 못한 종현의 입술이 여전히 여주의 볼에 닿았다. 곱게 말아 쥔 두 주먹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그때였다. 종현의 입술이 순식간에 여주의 볼에서 떼어지고 곧 다른 곳에 닿았다. 그 순간 말아쥔 종현의 두 주먹이 스르르 풀리며 힘없이 무릎에 얹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종현의 속눈썹을 보면서 여주가 씨익 입꼬리를 끌어 당기며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입술을 떼고 종현의 얼굴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 ..... "
" ..... "
찰나의 순간, 종현과 여주의 눈빛이 허공에 맞물렸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저들끼리는 이미 무슨 뜻인지 알아챈 눈치였다. 여주가 배시시 웃으면 종현도 여주를 따라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는 서로 눈을 폭 감는다. 마침내 종현의 입술이 여주의 입술에 다시 닿았다. 입술을 간지럽히는 온기가 어느덧 가을 냄새를 연신 내뿜는다.
도짜님들 Q. 지금 시각이 대체 몇,
저 A. 데둉합니다... 요즘 또 백수돼서..흑흑
아니 그것보다 도짜님들 오늘 종현이랑 여주가 뭘 했어요? 네?
지짜 쓰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읍니다..^^... 조절했다고요!! 그렇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동호가 특별출연☆ 했숩니다ㅋㅋㅋㅋ
원래 아론이 하려고 했는데 아론이 말투로 하면 너무 웃길 거 같아섴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실패~☆
무튼.. 도짜님들.. 특별편도 재밌게 봐줘서 넘 감사했고요.. 아니 우리 도짜님들은 다 천사인가바;
지짜 재밌다고 댓글도 달아주고 추천도 박아줘서 을매나 고마웠게요 ㅠㅠ흑흑
다음편은 벌써.. S편이네여 소름돋아요 지짜... 곧 z가 얼마 남지 않아써...
새벽이라 넘 횡설수설하는 것 같고욬ㅋㅋㅋㅋㅋㅋㅋ
아! 저 조만간 큐앤에이 올릴거랍니다 도짜님들 궁금했던 거 그동안 생각하고 있으세요!!!!
없으면 저 우럭요!!!!!!!!! (쩌렁쩌렁)
그럼... 도짜님들 굿나잇하시고요.. 싸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