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어플
04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여태껏 봐왔던 남자는 하나같이 다 어딘가 이상한 남자들이고 다음 등장할 남자도 이상할 걸 알기에 이제 그 어떤 기대도, 두근거림도 없이 두려움만 가득할 뿐이다.
3분!♪
그렇다. 조용한 우리 집에서 소음이라곤 이 3분! 거리는 같잖은 알림음 밖에 없다. 진동으로 해도 나오고, 무음으로 해도 나온다. 확인해봐야 또 알던 것들 뿐이겠지.
6. 3분 어플에 나오는 남자는 다 잘생겼죠!? 그러니 잘생긴 얼굴을 다치지 않게 지켜주세요!
7. 3분 어플을 통해 일어난 일들은 저희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조심하세요!
제발 내 상처 받은 마음도 좀 지켜주세요. 이딴 주의점 읽을 바엔 영자신문을 읽는 게 더 낫겠다. 못 알아 들어도 웃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울 것 같거든.
카톡! 카카톡 카톡!!♪
그래. 카톡은 그나마 친구와의 소통이 가능한 곳이다. 친구와 또 아이돌에 대해 앓으며 행복할 생각으로 들어가는데 모르는 사람이 맨 위에 떠있었다. 또 시작이구나.
여주야
내일 뭐 해?
난 본능적으로 프사를 눌러 확대해 얼굴을 감상했다. 뭐가 됐건 무조건 전진이다. 범죄자만 아니면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얼굴이야. 이제 이 3분 어플을 즐길 수 있는 멘탈이 되어가는 걸지도 몰라.
저.. 친구야
친구?ㅋㅋㅋㅋㅋㅋㅋㅋ
선 긋는 거야?ㅋㅋㅋ
아니!!!!!!
이보게
자네
갑자기 뭐야ㅋㅋㅋㅋㅋ
뜸금 없이!
미안 내가 지금 정신이 없어
내일 왜?
왜 정신이 없어?
내일 말고 오늘 볼래?
그건 안돼
내일 보자
진짜?
내일 본다 했다
난 한입으로 두 말 안해
딴 말하기 없기
영화볼래?
헐 좋아ㅠㅠㅠㅠㅠ
내일 너 회사 끝나고 내가 데리러 갈게
아냐 안 그래도 돼!!
맨날 미안해하더라
착해빠졌어 진짜
어차피 너네 회사랑 우리 회사랑 가깝잖아
그니까 내가 가야지
고마워ㅠㅠㅠㅠ
그럼 내일봐
잘자고
응!!
한 가지 확실한 건 썸은 맞는 것 같다. 뭐가 됐건 카톡의 핵심은 우리 회사로 데리러 온다는 거다. 그럼 백퍼그린라이트지! 과연 내일은 무슨 일이 펼쳐질까 궁금해진다.
썸남
회사가 끝남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번엔 어떤 기막힌 일이 일어날까? 정말 심장이 다른 의미로 떨리는 게 청심환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다.
"여주야!"
"...와."
"오늘은 회사에서 무슨 일 없었어?"
"어? 똑같지, 뭐! 너는?"
"난 직장 상사 때문에 힘들었지. 너 생각으로 버텼어."
"아.."
수줍게 서 있으니 어서 가자며 앞서 걸어간다. 사귀는 사이었으면 손 잡았을 텐데 아쉽다.
썸남
정말 한가지 의문이 있는데 왜 영화 보러 가자면서 카페로 온 건지 모르겠다. 궁금한 건 못 참으니 물어봐야겠다.
"카페는 왜?"
"영화 보자고 했잖아."
"응? 요즘 카페에서 영화를 틀어줘..?"
"개그가 날로 늘어ㅋㅋㅋㅋ 뭐 마실래?"
"응?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난 음..."
"못 고르겠어? 내가 추천해줄게! 이번에 새로나온 건데 오렌지블라썸라떼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어때?"
"홍보대사인가?"
"응?"
"아니야! 그럼 그거 마실게!!"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진동벨이 울렸다. 빛의 속도로 일어나더니 뛰쳐나가는 모습에 감탄하고 있는데 휴대폰 케이스가 이상하다. 가만보자.. 이친구 휴대폰 케이스가 왜 이 카페 로고지..?
"그거 탐나지? 내가 자체 제작해서 만든 거야!"
"굳이..?"
"짜잔! 너 것도 당연히 준비했지! 선물!"
"아.. 고마워!"
"지금 당장 껴봐! 좋지? 난리나지?"
"응 우와아.. 예쁘다.."
순간 내가 양이 된 줄 알았다. 당장 목장에 가도 될 정도로 목소리의 떨림이 예술이다. 기대하는 눈빛에 하는 수 없이 휴대폰에 끼워보자 딱 맞아서 1차 놀랐고 큰 로고에 2차 놀랐다. 이게 뭐냐고.. 제발 정상적인 남자로 한 번만 체험 하게 해주시면 안돼요..?
"이제 영화 볼까?"
"..그래!"
다행히 영화는 익숙한 로맨스 영화였다. 몰입해서 보고 있는데 카페 배경이 익숙해서 고개를 갸웃하니 자기도 느꼈는지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기 배경 투썸이잖아! 내 1순위 영화야."
"....저기."
"응? 왜?"
친히 영상을 멈춰주고 다정하게 묻는 남자에 의해 또 설렘이 밀려온다. 이 3분 어플은 어이없는 일을 겪어도 얼굴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너 이 카페 무지 좋아하나 보다."
"뭐야 새삼스럽게. 너도 좋아하잖아."
"응? 나도?"
"너도!"
"..나 화장실 좀."
"화장실은 저쪽이야."
"안 알려줘도돼.."
"이쪽으로 쭉 가서"
"안다고! 알아!"
화장실에 들어와 머리를 쥐어 싸매다 문득 떠올랐다. 썸남? 카페 이름이 투썸이니까.. 빠르게 3분 어플에 들어가니 어느새 투썸남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 순간 화가 난 나는 벽을 세게 쳐버렸다. 내가 시험을 망쳤을 때도 이렇게 화나진 않았는데. 거울과 눈싸움이라도 하듯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보다가 1시간만 더 버티자 싶어 밖으로 나왔다.
"동동님 역시..!"
저사람은 또 뭐지..? 오늘 투썸 정모가 있는 건지 투썸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진절머리가 나서 토할 것 같다.
"동동님 이번에 보온텀블러 나온 거 겟했어요?"
"당연하죠! 사진 찍었는데 보실래요?"
자연스럽게 나가는 문으로 향하는데 눈치 없는 동동님인지 아리님인지 나를 부른다.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 웃으며 다가가자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 잘 찍지 않았냐며 자랑을 한다. 응. 나도 잘 찍을 수 있는데 널 한 번 찍어줘도 되겠니?
"투투님!"
"예? 개구리 왕눈이도 아니고 뭐요?"
"투투님은 보온텀블러 겟 하셨나요?"
"텀블러나 보온 둘 중에 하나만 했으면 좋겠네요.."
"네?"
"여주야 왜 그래..!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
"나 노래 안 불러!!! 기분 좋을 때도 안 부르는 노래를 갖고 싶다고 부르겠어!!!!"
동동이와 원썸이는 나를 이해 안간다는 듯이 바라봅니다. 아.. 내 편이 필요하다. 아마 어제의 청소부 팀장님이라면 내 편을 들어줬을텐데.. 지금쯤 영화관에서 팝콘을 줍고 있을까?
"우리 만난지 얼마나 됐지?"
"3년 정도 됐지!"
"아니, 오늘."
"1시간 조금 넘었지."
"..시간이 너무 안ㄱ, 하하!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우리 여주 노래 잘 한다!"
"투투님 우리 투썸 cm송 만들까요?"
개같은 소리 그만해. 1억을 줘도 그런 건 안 할 거야. 그 때 알림음이 울려 중도포기권이라도 주나 싶어 빠르게 들어가 봤는데 경고문이 떴다. 아 적응. 리셋 되니까 조심하라고 경고를 줬다. 이건 뭐 레드카드도 아니고.
"하하! cm송 좋죠!"
정말 즉석에서 만들 생각인지 가사까지 창작하는 유치한 짓을 내가 하고 있다. 참여는 하지 않으나 중간중간 오 좋은데? 라며 귀를 후비며 말하거나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도 좋지? 라고 물으면 로봇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 화장실 좀."
"화장실 알지? 저쪽.
"알지ㅎㅎ"
"투투님 다녀와요!"
아니 이 정모에 낀 내가 미친년이지. 썸남과 달달한 한 때를 생각했던 내가 등신이다.. 빠르게 밖으로 나와 x버튼을 누르자 정말로 끝내시겠습니까? 가 처음으로 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o를 눌렀다.
정말 후회 안하세요?
순간 너무 빡쳐서 주먹을 쥐고 휴대폰을 내려쳤다. 갑자기 그 똥꼬발랄한 음성으로 네~ 좋습니다~ 1시간 추가했습니다! 라는 개같은 말과 함께 3분 어플이 아예 꺼져버렸다. 아니 노래방 추가시간도 아니고 뭔 이런 걸로 추가시간을 주는지 모를 일이다. 와 내 주먹 일냈네. 한 번도 안 써보더니 이런 곳에 써서 화가 나가지고 나한테 엿을 줬나보다.
"동동아.."
"왔어?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아?"
"나 너무 아파.."
"아프다고? 병원갈래?"
"..집에서 쉬어야 할 것 같아.."
"내가 데려다줄게. 원썸님 죄송해요.. 내일 또 만나요!"
그냥 이 상황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걸으면서도 아무 말 안하고 있으니 옆에서 눈치를 보는 동동이(어느새 익숙해져버림) 덕에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방금 전 나의 행동에 화가 나서 도저히 표정을 풀 수가 없다.
"많이 아픈가보다.."
".."
"어디 봐."
가던 내 앞길을 막더니 훅 들어오는 동동이에 소리를 지르며 도망갈 뻔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오면 반칙이야 boy~♡ 그 순간 손을 뻗어 내 이마에 손을 올린다. 열이 뻗쳐서인지 뭔지 다행이 열이 나긴 나나보다. 심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는 거 보니.
"아까 말하지 그랬어. 이렇게 아플 동안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거야 너가 신나서 말하니까 못 말했지."
"아플 땐 투썸 허브티가 진리인데. 다시 갈까?"
너무 열이 뻗쳐서 정강이를 차버렸다. 아무래도 난 성격이 문제야. 너무 막무가내라니까. 쭈그려 앉아 아파하는 동동이를 보며 미안함에 안절부절 못하자 고개를 팍 올려 날 바라본다.
"...미안. 아팠어?"
"와 머리가 띵해"
"미안 순간 욱해서.."
"미안하면 내일 투썸 너가 쏴."
"..응?"
"나 제일 비싼 거 먹는다."
"껌이지! 케이크도 사줄게."
내일 어차피 안 볼 텐데 말로 사치를 부려보자. 초콜렛도? 라고 묻는 동현이에 의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행복하게 웃는다. 그래 동현아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만 맛있게 먹으렴. 내일이면 난 너를 볼 수 없단다^^
"다 사줄 테니까 얼른 집에 가자."
"뭐 집에 가자고? 너네집?"
"너네 집은 투썸이잖아ㅎㅎ 투썸에나 가 "
"투썸보단 너네집이지. 앞장 서. 라면이든 뭐든 먹자."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앞장 서라는 동동이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카페청년이 라면은 무슨ㅎㅎ
"너는 여자한테 라면먹고 갈래도 아닌 투썸 먹고 갈래? 이러겠다."
"너 그 말 어디서 배웠어? 써 먹어 봤어?"
"써먹었으면?"
"가만 안 두지. 어딜 날 두고."
"난 그냥 투썸 정모 회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잖아."
"투썸 정모 회원이라니. 투썸 정모 부회장잖아. 자랑 좀 해라."
"회장은?"
"나잖아."
"아니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것도 아니고 너가 회장인데 내가 왜 자랑을 하니.."
진절머리가 나 몸을 부르르 떨며 집으로 가고있는데 급 내 앞을 막는 동동이다. 아니 얘는 왜 자꾸 훅훅 들어와.
"왜.. 뭐..!"
"우리 맨날 이러는 거 지겹지 않아?"
"뭐가..!"
"맨날 이렇게 다가가려고 하면 선 긋는 거. 지겹지 않냐고."
"비켜.. 얼른 집에 가야 돼."
지나쳐 가자 뒤에서 졸졸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 한숨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어차피 오늘 마지막인데 위로라도 해주지 뭐.
" 원래 남녀 사이가 그런 거지. 가끔씩은 밀다가 가끔씩은 당기다가 그런 게 스릴 있는 거거든. 지겨우면 너가 먼저 끝내."
"..."
"내 말 듣고 있어?"
뒤를 돌자 걸어오던 동동이의 가슴팍에 부딪히고 말았다. 순간 너무 놀라 한발자국 크게 물러서려는데 내 팔을 잡고 그 자세 그대로를 유지하며 한마디 한다.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대답 하는 걸 잊었네."
심쿵..! 와 우리 썸은 맞구나. 그저 투썸인 줄 알았는데 썸타는 게 맞았어!!! 처음으로 끝 쯤에 설렘을 주네.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좋은 버전으로 1시간 추가 된 건가?
"그래 지겨우니까 끝내야 겠다."
"이렇게 쉽게? 그럼 썸 탄 게 아니네!"
잠시만 이거 연장 시급해요. 3분 어플 창시자님 투썸의 노예가 될 테니 제발 추가시간 주세요. 노래방, 아니. 축구 추가시간보다 간절하다고요.
"...늦었네! 얼른 집에 가야겠다."
민망한지 앞장 서는 동동이의 뒤를 이번에 내가 쫒았다. 급 손을 뒤로 뻗어 내 손을 잡더니 옆에 세우는 박력에 나도 모르게 어머..! 를 내뱉었다. 투썸 정모도 나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난 쉬운 여자다. 고백 하나에 모든 걸 받칠 수 있는 그런 여자.
"톡할게 들어가."
"어? 어.. 톡을.. 할 수가.. 있나?"
"왜 못 해? 할 수 있어."
"아니야! 톡해! 무조건!"
나에겐 24시간이 있지. 오늘 밤새도록 톡해야겠다 다짐하며 동동이를 보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미친 듯 막춤을 추며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다가 또 신나서 미친듯이 막춤을 췄다. 와 인생 행복하네.
"어차피 24시간이니까 씻고 해도 되겠지?"
누가 들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하는 나의 혼잣말과 함께 화장실로 들어왔다. 씻고 상쾌한 기분으로 나와 톡을 확인하려는데 불안함이 나를 감싼다.
추가한 1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별할 시간입니다!
추가한 1시간이 3분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별할 시간입니다!
추가한 1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별할 시간입니다!
안타깝게도 추가한 1시간이 끝나버렸습니다!
어머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잠시만요. 나 오늘 동동이가 불렀던 투썸 cm송까지 흥얼거렸는데 이건 아니지!!!!! 빠르게 카톡으로 들어가보니 역시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카톡이다. 아 제발 추억 좀 하게 해달라고요ㅠㅠㅠㅠㅠㅠㅠ
날 지켜주는 남자 실행하시겠습니까?
무조건 실행해야지. 전투력이 상승한다.
저 투썸한테 홍보비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뻔뻔
저번 댓글에서 동현이를 추천해주셔서 이번 주인공은 동현이었습니다! 브랜뉴는 사랑 아니겠어요?ㅠㅠㅠ
다음 편은 날 지켜주는 남자입니다! 과연 어떤 남자일지!!!
<암호닉님>
암호닉은 항상 받고 있습니다!
졔/@불가사리/초록하늘/오타/챠미/충성황민현/갓의건/널조화해/구릉구릉/졔졍/정수기/레몬/뀨쮸/바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