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늦은 아침, 나는 어디선가 자꾸만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몸을 뒤척이다 부엌에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다니엘의 뒷모습을 보고는 새삼 저 남자가 다시 내 곁에 있게 되었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뭐해?” “어, 일어났어? 너 아침 먹어야지.” “…내가 하면 되는데 뭐 하러 해.” “쓰읍, 그냥 드세요. 거의 다 됐으니까 저기 가서 앉자!” 나는 다니엘의 손에 이끌려 식탁에 털썩 앉아 얌전히 아침을 기다렸다. 눈곱도 제대로 못 뗀 채 멍하니 있다 보니 내 민낯이 괜히 민망해져 세수라도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다니엘은 곧장 나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어디 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그런 눈빛. 결국 나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아침을 먹어야 했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 민낯을 조금이나마 가리려 알 없는 안경이라도 찾아 쓰고서 다니엘이 앞에 음식을 놓아주는 걸 가만히 바라봤다. 셀프 해장을 위한 건지 그가 내려놓은 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콩나물국이었다. 나는 원래 아침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가 퍼 준 밥은 거의 손대지 않고 국그릇만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는 복스럽게 잘 먹는 다니엘의 모습만 넋 놓고 바라봤다. “그렇게 빤히 보면 나 먹다가 체해.” “…아, 미안.” “푸흐흐- 아니, 농담이지 바보야. 얼마든지 봐도 돼.” 다니엘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눈을 뜨고 이렇게 아침까지 같이 먹고 있으니 다시 신혼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아침을 다 먹은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기대어 앉아 영화도 보고 채널 돌리다 나오는 예능도 조금씩 보며 시간을 보냈다. 딱히 무언가 의미 있는 걸 했다고 말은 못 하지만, 그저 둘이서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게 가장 큰 의미였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집에서만 있다가 주말을 보내버리기엔 아쉽다는 다니엘의 말에 동의한 나는 차키를 챙겨 그와 함께 드라이브에 나섰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 드라이브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차키 줘. 운전 내가 할게.” “싫어, 내가 할 거야.” “쓰읍, 그냥 주시죠?” “치, 맨날 자기 불리할 때만 존댓말 쓰지.” 결국 나는 차키를 다니엘에게 넘겨주고는 조수석에 올랐다. 나도 운전 잘 하는데. 다니엘이 차를 출발시키고 나서도 괜히 입을 삐죽이며 뚱한 표정을 하고 있던 나는 이내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절로 났다. 나는 차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을 달리자 오른손을 창밖으로 내밀어 바람을 느꼈다.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실컷 만끽할 수 있었던 가을밤의 드라이브였다. - “아, 내리기 싫다.” “너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 빨리 들어가.” “그냥 네 집에서 자고 출근하면 안ㄷ…” “안 돼. 빨리 가.” “너무해, 진짜. 나 그렇게 보내고 싶어?” “어?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오랜만에 보는 다니엘의 애 같은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 당황한 나는 그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그의 손을 잡고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손등을 쓸며 그를 달랬다. 아예 안 볼 것도 아닌데 왜 그래. 우리 이제 겨우 다시 만났는데. 결국 나는 다니엘과 함께 차에서 내려 그의 입술에 짧게 뽀뽀를 해 주었다. 그는 그제서야 웃음을 띠며 내일 점심시간에 카페로 가겠다는 말과 함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 차를 끌고 멀지 않은 우리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집에 도착해서도 자꾸만 다니엘의 얼굴과 음성이 떠오르고 웃음이 나는 걸 보면, 내가 정말 그를 다시 좋아하긴 하나보다. 사람 감정이라는 건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신기한 존재였다. - 다니엘과 다시 만나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자주 왕래하며 이젠 거의 내 집이 그의 집이고 그의 집이 내 집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익숙함을 너무나도 빨리 가져다주는 시간은 꽤나 무서운 존재였다. 이제 겨울이 오려는 듯 꽤 쌀쌀해졌지만 그래도 화창한 날씨에 기분 좋게 출근해 카페에 앉아있다 보니 기분이 꽤나 좋았다.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꽤나 많았고, 사소하게라도 내 신경을 긁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늘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괜히 설레는 마음에 기분 좋게 향긋한 차를 마시며 평소에 조금씩 읽다 뒷부분만 조금 남은 소설책을 읽고 있던 그 때, 누군가가 카페를 찾아왔다. 딸랑- “어서오세…” 아니, 방금까지 내가 했던 말 다 취소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할 정도로 너무 좋더라니. 좋은 일이 생기기는 개뿔, 꽤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게 생겼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저번에 나에게 명함을 넘기며 강다니엘이 카페에 나타나면 연락을 달라고 했던 여직원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분명 내게 뭔가를 따지러 온 거였다. 나 그 날 명함 버린 걸로 기억하는데. 진짜 망했네. “저 기억하시죠?” “네? 아… 네.” “왜 연락 안 주세요? 아직도 그 분 카페에 안 오시나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아니라면 카페에 오긴 왔다는 거네요? 아니, 한 달이 되도록 연락이 없으시길래. 근데 왜 연락 안 주신 거예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아… 하하…….” 나 말 좀 하자. 그렇게 궁금했으면 네가 직접 오든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말을 속으로 삼키며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정중하게 사과를 표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그 날 받은 명함을 잃어버려서요." “진짜 그 남자랑 아무 사이 아닌 거 맞죠? 설마 일부러 잃어버렸다고 하거나 뭐 그런…” 딸랑- 여자와 말씨름을 하고 있던 와중에,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던 와중에 또 누군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 바로 앞에서 자꾸만 나를 압박해오는 이 여자 때문에 그 누군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참을 내게 쏘아대던 그녀는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그제서야 말을 멈췄다. 신경을 긁는 하이톤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려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며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여자의 뒤로 다가온 손님을 확인한 나는 그저 눈을 깜박이며 멍해졌다. 아니, 쟤가 지금 등장하면 안 되는데. “아, 저기… 혹시…” “여보야.” “……?” “……?!” 미쳤다. 미친 게 틀림없다. 얘가 왜 이러는 거야. 당황스러운 건 이 여자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저 눈만 깜박이며 가만히 다니엘을 바라봤다. 뭐, 뭐라고? “여보야. 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 “…….”
“주문 안 받아, 여보야?” “어… 어어… ㅇ, 오천원.” 다니엘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낯간지러운 호칭과 함께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도 더듬고 다니엘이 건네는 지폐 한 장을 받을 때도 손을 덜덜 떨었다. 그런 내 손을 붙잡은 다니엘은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안중에도 없는지 계속해서 다정다감하게 말을 내뱉었다. “손을 왜 이렇게 떨어, 어디 아파? 에어컨 바람 너무 쐬어서 그런가?” “아, 아니… 왜 이래…?” “점심 먹었어? 안 먹었지? 내가 요 앞에 가서 도시락이라도 사 올까?” “…허, 나 참.” “아니… 저기…” “뭐 먹고 싶어? 내가 다 사 올게!” “야…….” “그렇게 아니라고 잡아떼더니만…나 참 어이가 없어서.” 아무렇지 않게 닭털을 날려대던 다니엘과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번갈아보며 바라보던 여자는 어이가 없다며 중얼거리더니 이내 빨개진 얼굴로 카페에서 나가버렸다. 뭐 어찌됐든 진상 하나 퇴치했으니 속이 후련하긴 하네. “뭐야, 갑자기- 놀랐잖아.” “저 여자 언제부터 너한테 그랬어?” “얼마 안 됐어. 너 이렇게 막 나와도 돼?”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어? 그 사람 내 애인이다 한 마디 딱 하면 됐잖아.” “뭐래… 이렇게 막 나와도 되냐니까?” “점심시간이라서 같이 밥 먹으려고 왔지. 너 밥 안 먹어?” “나 그냥 빵으로 때우려고 했는데…?” “아, 뭐라는 거야 꼬맹아. 빨리 먹고 싶은 거 얘기해, 사 올게.” “꼬맹이 같은 소리 하네. 죽을래? 커피 마실 거야, 말 거야?” “…마실래. 아니 진짜 밥 안 먹어?” “난 여기서 빵 먹으면 된다니까. 그리고 내가 어떻게 자릴 비워?” “그러게 알바 쓰라니까….” “됐네요. 저리 가서 기다려. 커피 갖다 줄게.” 겨우 다니엘을 자리로 보낸 나는 능숙하게 커피를 내린 뒤 작은 쿠키도 챙겨서 그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갔다. 내가 맞은편에 앉자마자 해사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오는 그 덕분에 다른 손님들의 눈치가 꽤 보였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내게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운 손님이 찾아와 우리 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아줬으면 했다. 물론 부끄러워서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내 감정이었지만. - “얼른 가라니까?” “아, 진짜. 왜 이렇게 헤어지기 싫지?” “왜 이렇게 애같이 굴지? 빨리 가서 돈 벌어 와야지.” “내가 돈 벌어 오면 뭐 하지?” “…나랑 데이트 해야지.” “어? 뭐라고? 잘 못 들었어!” “아씨, 빨리 꺼져!” 회사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터라 카페 안에 있던 손님들도 슬슬 빠져나갔다. 그걸 본 나는 다니엘도 그들과 별 차이 없는 회사원이라는 걸 깨닫고 그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빨리 일 하러 가. 나랑 꼭 같이 식사를 하겠다는 고집을 부리다 결국 아무 것도 먹지 못한 그가 걱정된 나는 탈의실에 놔두었던 빵을 챙겨 그의 손에 쥐어주며 그를 카페 밖으로 밀었다. 기어코 내 뽀뽀를 받아내고 나서야 마감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하며 차를 끌고 떠난 다니엘을 배웅하고 다시 카페로 들어온 나는 잠시 미뤄뒀던 테이블 청소를 하며 일에 집중했다. 유리창 청소, 설거지 등 온갖 잡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꽤나 흘렀다. 내가 간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 무섭게 그 오랜 정적을 깨고 새로운 손님이 카페를 찾았다. 어서오세요- “우리 담이는 뭐 먹을래?” “음… 나는 초코! 헤헤-” “으유, 알았어-” “주문하시겠어요?” “네, 핫초코랑 카페라떼 주세요.” “사이즈는 스몰 괜찮으세요?” “네. 여기요.” “카드 받았습니다. 9000원 결제할게요.” “엄마아, 나 이것도!” “이 샌드위치도 같이 계산 해주세요.” “네, 12,000원입니다. 여기 카드 있습니다-” 카페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 손님은 한 모녀였다. 한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젊은 엄마. 아이는 엄마의 옆에 앉아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 연신 쫑알대며 꺄르르 웃었다. 창가에 앉아 있는 덕분에 예쁜 노을빛을 받으며 미소 짓는 그 둘의 모습을 보니 괜히 내 마음까지도 따스해졌다. 아이도, 엄마도 더없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짜 너무 예쁜 모습이라 눈으로만 담기에 아까울 정도였다. 그들이 주문한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쟁반에 담은 나는 작은 쿠키도 함께 담아 그들에게로 향했다. “주문하신 음료랑 샌드위치 나왔습니다- 쿠키는 서비스에요. 애기가 너무 예뻐서요.” “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담아, 이모 감사합니다- 해.” “이모, 감사합니다아-” “아, 예뻐라. 맛있게 먹어-”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웃어보인 뒤 다시 카운터로 돌아온 나는 간이의자에 다시 앉아 계속해서 아이만 바라봤다. 똘망똘망 예쁜 눈을 가진 아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가 정말 늙긴 했나보다. 이렇게 점점 취향이 바뀌는 걸 보면. 가만히 아이만 바라보고 있으니 몇 년 전, 다니엘과 꽤나 행복했었던 시절에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8년 전, 결혼 2년차** “아, 귀여워. 저 애기 좀 봐.” “…별로. 난 애기 싫어.” “왜? 귀엽기만 한데!” “그것도 잠깐이잖아. 울고 짜증내고 앙탈부리는 거 너무 싫어.” “그래도 너랑 나 닮은 애기 있으면 신기할 것 같지 않아?” “어유, 너로도 벅차. 싫어.” 한가로운 주말 아침,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를 본 다니엘은 귀엽다며 입이 귀에 걸릴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똑같은 외동인데도 난 어려서부터 동생이 없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았고, 다니엘은 고등학생, 심지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며 매일같이 노래를 불렀다. 누가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걸 몰라줄까봐. “왜에- 난 좋은데. 이참에 우리 주니어 한 번 만들어볼까?” “아, 진짜 싫어! 저리 가!!” 능글맞은 이놈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무릎을 베고 있던 내 얼굴 위로 슬금슬금 고개를 숙이며 다가오는 다니엘을 겨우 피해 바닥으로 내려 온 나는 두 팔로 엑스자를 만들어 내 몸을 가리며 그를 밉지 않게 노려보았다. 그런 내 반응에도 능구렁이처럼 내 허리를 감싸오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못한 나는 결국 짧지 않은 입맞춤 후에야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서로 기대어 앉은 우리 둘은 괜히 서로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대뜸 꽤나 진지하게 아이 얘기를 다시 꺼내오는 다니엘에게 나는 미안하지만 정말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는 걸 솔직하게 전했다. 내가 이렇게나 아이를 가지기 싫어하는 이유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가 유산을 겪은 걸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일 때문에 몇날며칠을 우울해 하셨다. 어린 내가 봐도 안쓰러울 정도로. 아이를 잃었다는 그 허망함과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걸 잘 알기에, 나는 아이를 갖기가 두려웠다. 설령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잘 키워낼 자신조차 없었다. 게다가 우린 겨우 스물두 살 대학생이었다. 안정적인 직장 하나 없는, 철없는 대학생. “네가 정 그렇다면 나도 강요는 안 해. 난 항상 네가 우선이니까.” “…혹시라도 나중에, 너도 나도 취업하면, 그때 혹시 마음 바뀌면 너한테 바로 얘기할게. 아무튼 당분간은 아니야. 미안.”
“난 괜찮으니까 절대 미안해하지마. 너 왜 그러는 지 다 아니까. 그냥 우리 둘이 더 행복하게 살면 되지!” 그렇게 날 달래던 다니엘은 한없이 따스했고, 다정했다. 내가 더 미안해질 정도로. *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것도 잠시, 종종걸음으로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손에 작은 막대사탕을 들고서. 나는 카운터 문을 열어주며 아이가 내게 더 가까이 올 수 있게 했고, 조심스레 안아 올려 내 무릎 위에 앉혔다. 가까이서 마주하니 더 예뻤다, 이 아이는. “왜 왔어-?” “이거 이모 줄라구!” “우와, 이모가 이 사탕 먹어도 돼?” “웅! 이모 이거 머거요!” “아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 “이모는 몇 살이야? 우리 엄마는 이십팔인데!” “야, 소담! 그런 거 막 말하는 거 아니야!” “푸흐흐, 이모는 삼십 살이에요.” “우와, 우리 엄마보다 크다!” 그 이후로도 내 무릎 위에 앉아 한참을 떠들던 아이는 이내 자신의 엄마에게로 쪼르르 가 버렸다. 두 모녀가 카페에 들어올 땐 어스름한 노을빛이 물든 저녁이었는데 어느새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두 모녀를 배웅했고, 카페 유리창 너머 그들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봤다. 정말 내가 본 모녀 중에 가장 예뻤던 것 같다. 괜히 아이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그들 덕분인 것 같고. 그들은 내게 엄청 큰 여운을 남기고서 떠났다. - “아, 아무튼 그래서, 걔가 자꾸 허둥지둥 거리는데, 좀 답답하긴 해도 나 처음 회사 들어왔을 때 생각도 나고 그래서 좀 귀엽더라고. 애도 조그맣고 그러니까-” “…그럼 걔랑 만나. 왜 귀엽지도 않고 조그맣지도 않은 나랑 만나?” “……질투하는 거야, 지금?” “몰라. 말 걸지 마.” 내 서툰 표현에 소리를 내며 웃던 다니엘은 슬며시 오른손을 뻗어 내 왼손을 잡아왔다. 굳이 뿌리치지 않은 나는 괜히 창밖만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웃음을 거둔 그는 내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훑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러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그리고 걔 남자야, 바보야.” “……아.” 멍청한 소리를 낸 나는 너무 민망해져 더더욱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분명 다니엘은 애써 소리를 참으며 끅끅 웃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씨, 쪽팔려 죽겠네 진짜. “이제 너도 얘기해 줘. 아까 나 가고 나서 별 일 없었어?” “음…….” 다니엘의 질문을 듣자마자 예쁜 그 모녀가 떠오른 나는 그들에 대한 칭찬을 아낌없이 늘어놓았다. 내가 여태껏 살면서 본 아이 중에 제일 예뻤다, 엄마도 딸이랑 있으니 엄청 행복해 보였다, 뭐 그런 것들. 내가 얘기하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다니엘의 모습에 너무 나만 말했나 싶어 괜히 눈치를 슬쩍 보면 그는 그저 가볍게 웃으며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줄 뿐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 차를 세운 다니엘은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 집 안까지 들어왔다. 여기서 자고 갈 심산인 듯 아무렇지 않게 우리 집에 놔두고 갔던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소파에 거의 드러눕 듯이 앉았다. 그런 그를 본 나는 어이가 없어 그저 헛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너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니야?” “그래서 싫어?” “아니, 뭐….” “이리 와, 얼른.” “아직, 기다려.” 나는 뒤늦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뒤 소파 앞 바닥에 앉아 화장을 지웠다. 그런 나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다니엘의 시선을 느낀 나는 거울 각도를 조정해 그를 비추며 물었다. 왜, 할 말 있어? “그럼 요즘엔 애기 갖는 거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무슨…” “너 옛날엔 애기 싫다고 막 그랬었잖아. 요즘엔 어떠냐고.” “…음.” 솔직히 이젠 옛날처럼 극심하게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 본 아이 뿐만 아니라 TV 육아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며 큰 거부감이 든 적은 없었으니까. 나한테도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긴 있었고. 꽤나 진지하게 아이 얘기를 꺼내오는 다니엘을 보자니 옛날 그 모습과 겹쳐 보여 괜히 웃음이 났다. 그래서 뭐, 애 갖자고? “…아니, 뭐 꼭 그러자는 건 아니고. 그냥 너 아까 애기 얘기하면서 엄청 웃길래.” “내가 그랬어?” 다니엘의 말을 들으며 화장을 다 지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깔끔히 씻은 나는 거울을 바라보다 방금 전 다니엘이 한 말을 곱씹었다. 솔직하게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다니엘은 나와 완전히 재결합을 하는 걸 원하는 눈치였다. 재혼을 해서 다시 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 그걸 원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애써 모르는 척 하며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그었다. 혹시라도 아이를 갖는다면 우린 다시 완전히 하나로 묶일 수 있을까. 이전처럼, 아니 어쩌면 전보다도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괜히 복잡해지는 마음에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나가니 다니엘은 아무렇지 않게 TV를 보고 있었다. 타이밍이 얄궂게도 왜 하필 너는 그 많고 많은 프로그램 중에 육아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건지. 그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슬쩍 내 눈치를 보며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왜 딴 데로 돌려?” “어? 아, 재미없어서.” 거짓말하네.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는 걸 내가 못 봤을까봐? 무의미하게 채널을 돌리던 그는 이내 TV를 끄고는 그만 자자며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나란히 누워서 그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품을 향해 파고들었다. 다니엘의 팔을 베고 누운 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다 작은 심호흡을 한 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 이번엔 내가 먼저 용기내야지. 네가 먼저 나한테 와 줬으니. 나도 이제 겁내지 말고 용기를 내야지. “…다니엘.” “응?” “……우리, 재혼할까?”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독자님들❤️ 저번편도 초록글에 올려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ㅠㅠㅠ 한참 부족한데도 글 잘 쓴다고 칭찬도 막 해주시고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어요ㅠㅠ 달달한 로맨스를 보는 건 잘 해도 막상 쓰려니 참 부끄럽더라구요 허허 그래도 열심히 이전보다 분량도 더 길게 해서 써 봤는데 어떠셨나요?! 대충 굵직하게 생각해뒀던 에피소드는 거의 다 쓴 것 같아요. 한 10편 쯤 되면 완결이 나지 않을까 싶네요! 그 때까지 더더더 열심히 글 쓰도록 할테니 지금처럼 많은 사랑 부탁드려용❤️ 일요일 마무리 잘 하시고! 또 새로운 일주일 잘 보내시고! 저는 또 다음편 열심히 써서 빨리 찾아뵐게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여러뷴❤️x1210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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