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잠 못드는 밤 (inst)
영물이란 것은 동물의 모습을 했다 사람의 모습을 했다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반인반수와 비슷하나 반인반수와는 달리 사람의 지혜로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고 신비스러운 생명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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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내 앞에 꼬리를 요살스럽게 살랑거리며 우아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앉아있는 여우가 떠들어댔다.
나는 그저 이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고 있을 뿐이였다.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선 집에 들어오기 한시간 전 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한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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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퇴근 후 요즘 삶의 낙으로 자리잡은 예능보며 맥주마시기를 실행하기 위해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길이였다. 버스에 앉아 언제나처럼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플레이리스트 6번이 지나갈 즈음 버스에서 내린다. 툭툭 정수리를 때리는 물방울의 느낌에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니 조그만 빗방울이 내리고 있다.
"아 우산 없는데"
우산이 없는 빈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다 이럴 시간에 빨리 뛰어가야 겠다 싶어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어서오세요."
문을 열자 언제나처럼 인사를 건내는 알바생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언제나 똑같은 맥주를 한캔 집어든 나는 계산을 마치고 봉다리 하나를 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아니 정정하자면 나서려고 했다.
"망했다."
욕지거리를 참으며 편의점 문 밖을 내다보자 그새 빗방울이 거세져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친 알바생에게 씁쓸하게 웃어보이며 "어쩔수없이 우산을 사야겠네요 하하" 하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제일 싼 투명우산을 집어들고 계산한 나는 집에 엄청나게 많은 투명우산을 떠 올리며 이로써 12번째 투명우산이 생겼구나.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골목길로 들어섰다. 빗소리를 좋아하는 나는 어느새 뺀 이어폰을 가방에 정리하며 걷고 잇었는데 무언가 둔탁한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 무심코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어? 고양인가?"
고양이로 추정되는 털뭉치가 부풀었다 줄었다 하는데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다친건가 싶어 다가갔다.
다가가 본 털뭉치는 얼마나 굶은 건지 깡 말라있었고 다리 하나를 다친건지 제대로 못가누고 있는것 같았다. 아마도 담벼락에서 떨어지면서 다친것 같다.
"어떡하지 지금 동물병원 닫을시간인데"
나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신고해야되나 망설이고 있을때
"..병원은.. 안돼..."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있나 싶어 좌우로 둘러보고 담벼락위도 살펴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괜히 무서워져 쭈그리고 앉아있던 다리를 펴고 뒷걸음질 치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살..려줘"
혹시나 정말 혹시나 이 털뭉치에서 나는 소릴까 해서 주춤주춤 다가갔다.
"고양이야 너가 하는 말이니?"
기껏 용기내서 물었는데 대답이 없다.
"저기..?"
또 대답이 없다. 아휴 그럼 그렇지 너는 어떻게 생각해도 고양이가 말했다고 생각할 수 있냐 멍청해. 속으로 스스로를 꾸짖으며 고양이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폈다. 고양이는 그새 기절했는지 잠에 들었는지 의식이 없는것 같았다. 옆에 꽤 멀쩡해 보이는 상자가 있어 그 안에 조심스래 옮긴 후 병원으로 대려갈까 생각했다가 왠지 그러면 안될것 같아 상자를 든채 집으로 향했다. 조그만게 엄청 무겁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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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와 우산 맥주캔이 든 봉투를 들고 낑낑거리며 집에 도착한 나는 집 문을 열고 신발장 앞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내가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상자안에서 어떤 빛이 나는 것 같더니 고양이가 펄쩍 뛰어나와 신발을 반쯤 벗다 만채로 멍청히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내 앞에 우아하게 앉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꿈뻑거리는 내 눈에 고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생명체에 뾰족한 귀가 달린 것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고양이가 아니라 여우였네"
라고 멍청히 중얼거리는 나를 쳐다보며 눈을 개슴츠레 뜨고 올려다보고 있던 이 여우가 본인이 여우이자 영물이라며 영물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한것-
여기까지가 한 시간전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다친다리와 젖은 몸이였던 것이 어떻게 멀쩡하고 깔끔 뽀송해 질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줄 알았다.
하지만 눈을 비볐다 다시 뜨고 꾹 감았다 다시 떠도 똑같이 눈 앞엔 여우가 앉아 있었다.
하. 미치겠네
"그니까..너가 여우인데 영물이고 그래서 뭐 신비로운 존재라 상처도 순식간에 낫고 막 그렇다는거야?"
"그래. 멍청한줄 알았는데 이해는 하네."
"아니 뭐 그렇다쳐 그럼 왜 밖에서 그러고 있었어?"
"일종의 쇼라고 하지. 내가 보금자리가 필요해서."
이건 뭐 신종 미친소리인가.
"쇼라고?"
"그렇지. 보통 인간들은 특수한 상황에서 연약하고 다친 존재를 본다면 그것도 아름답디 아름다운 존재가 그러고 있다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더군."
"그래서?"
기가막혀서 나도 모르게 콧웃음을 치며 묻자 이 여우 녀석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한바퀴 돈 후 대답한다.
"그러면 나를 자기집으로 대려가 보살피지. 나는 그럼 그집을 보금자리로 정해 한시적이지만 그곳에서 지낸다."
대답이 가관이다.
아 이 말은 즉슨 호구같은 인간들이 비쩍마른 고양이(여우지만)가 다쳐서 누워있으면 알아서 집으로 대려가 씻겨주고 밥주고 잘 곳을 재공해준다는 말이지?
"나가."
그대로 문을 열어 잘 나갈 수 있도록 몸까지 틀어줬다. 그러자 이 여우녀석이 비웃는다. 기분이 더러워지려는 찰나
"내가 한시적이지만 여기 머물러 있게 되면 여러모로 너한테 좋을텐데?"
여우인지라 눈치가 빠른건지 녀석이 선수를 쳤다.
"뭐가 좋은데? 내가 납들할 수 있을만한 장점이 뭐가 있어?"
"일단 내가 머무르는 자체만으로 너에게 행운이 깃든다. 이건 생활하면서 차차 느껴질거고. 영물은 영물마다 특수 능력도 존재하지. 꽤 쓸모있을텐데."
"특수 능력? 너의 특수 능력은 뭔데?"
"......"
저 요상한 여우가 씩 웃는 폼이 영 불안한..
"사람 홀리기"
퍼엉 소리와 함께 사람으로 변한 여우녀석이 한팔로 내 허리를 끌어안고 내 귓가에 속삭임과 동시에
현관문 잠금장치가 잠기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