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
"..."
"다 끝났어, 이제.
완전히 끝난거야. 넌 이제 자유라고."
"..."
"제발 협조 좀 해줘라, 민석아..."
몇 시간 째 멍하니 벽만 보는 민석에게
사건의 경위를 묻던 형사 한명이
지친 듯, 저 새끼도 같이 쳐넣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경수가 민석을 달래기 위해 취조실로 들어 와
민석을 어르고 달래어 보았지만, 멍하니 있다가 이따금씩
루한을 데려오라고만 말 하는 민석에 지쳐버린 상황이였다.
"루한은..?루한은 어떻게 됬어.."
"...후. 지금 치료받고 있어. 잘 될거야.
너가 얼른 이 일 끝내고 나가야 루한이랑 만날 수 있어.
제발.. 말 좀 해줘 민석아."
"..."
"이제 다 끝났다고. 너 괴롭힐 사람 아무도 없어.
루한도 치료 잘 받고 나올거고.. 이제 너랑 루한 행복 할 일만 남았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
"나도 지금 어깨 아파서 치료받다가 너가 입을 안 연다고 해서
급히 온거야. 얼른 치료 받으러 가야 해, 나 아파.."
"..."
"제발 말 좀 해줘 민석아.."
애원하다싶이 말 하는 경수의 태도에
민석이 경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어냈다.
아무래도 루한이 자신 때문에 다치게 된 거라 생각하여
충격이 너무나 컸나보다.
"..."
"..."
"...말 했다싶이 내가 사람을 죽였었어."
"..."
"근데 자의로 죽인건 절대 아냐. 카이, 김종인이 시켰어."
"응..그래."
조용히 아까 취조실을 나서던 경찰이 쥐어 준 녹음기를
실행시키는 경수.
"김종인이, 내가 혹시라도 도망가서
모든 일을 밝힐까봐. 붙잡아 둘 여건을 만들기 위해
나에게 살인을 시켰어."
"그랬구나.."
"주로 조직내의 배신자나 아무런 죄 없는 민간인을 잡아다가 죽였어.
그들을 내 앞에 두고 나이프로 심장을 찌르게 했어.
내가 못하겠다고 버티면 김종인이 직접 내 손을 감싸잡고
찔러주었어. 싫다고 발버둥 치는 내 몸을 조직원들이 단단히 잡아 둔 상태여서
어쩔 도리가 없었어..
아직도 그때 그 느낌을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이 떨려오는데..내가 어떻게..그런짓을.."
"..."
"김종인은 엄청 잔인한 놈이야.
그 때 김종인이 하는 말 들었지?
나 한명 손에 쥐기위해서
우리 가족을 무너뜨렸어. 그리고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루한과 너도 나와 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죽이려고 했어."
"응.. 이제 알겠어.. 다행이다."
곧 형사님 들어오실거야.
그 분에게 너한테 있었던 일 빠짐없이 말 해줘.
물론 내가 말 할테지만, 네가 네 입으로 말 하는게 더 좋을거야.
녹음기를 종료 한 경수가
민석을 보고 옅게 웃어보였다.
마치 안심 하라는 듯이, 그렇게 웃어보였다.
"...루한은..?"
"루한은 내가 지금 바로 나가서 병원 다녀올게.
그 동안 잘 하고있어야해. 알았지?
안 그럼 안 알려줄거야."
경수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민석을 보고는
다시 한번 웃어보인 경수가 문을 닫고 취조실을 나섰다.
밖을 나서는 경수가 다시 취조실로 들어가려는 형사에게
녹음기를 들려주고는, 민석은 죄가 없으니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달라 부탁하곤
급히 택시를 잡아 타, 루한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루한...루한.."
민석 앞에서 강한 척 했지만
경수 또한 루한이 걱정되어 미칠 것 같았다.
원체 겁이 많고 위험한 일에는 나서지 않는 경수가
루한을 향해 다시금 총을 겨누는 남자의 행동에
머리로 생각 하기도 전에 몸을 날려 루한을 보호했으니.
급히 루한이 있는 수술실 앞으로 뛰어갔지만
아직까지 수술중에 있는 모양이였다.
자리에 앉아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던 경수가
쉴 새 없이 루한을 불렀다.
"경수야."
"..아빠"
"다녀왔어?"
응.
눈물을 떨어트리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 본 경수가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더 설움이 복받쳐 올랐는지
코끝이 시큰해져왔다.
"너도 마저 치료받으러 가야지,
살짝 빗겨 간 거라도 엄청 아팠을텐데..."
경수의 어깨에 대충 둘러매어진 붕대를
손으로 쓰다듬던 아버지가 말을 했다.
루한 대신에 다친 상처라 크게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그 순간 자신이 총을 맞았다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던 경수였다.
그저 친구가 크게 다쳤다는 사실에 울고있는 줄로만 아는 경수의 아버지는
잘 될거라며 경수의 어깨를 다독일 뿐이였다.
생각보다 루한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닳은 경수는
그저 아버지의 손길에 다시금 고개를 떨어트려 눈물을 흘릴 뿐이였다.
아마 이 마음은 경수 혼자 평생을 안고가야 할 것이다.
"응 아빠, 나 엄청아파.. 진짜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
"너무 아픈데.. 이거 아물려면 시간 꽤 걸리겠다. 그치?"
"..."
"으으.."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경수의 손을 잡곤
수술이 한창 진행중인 문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이내, 수술이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릴 것 같다며 경수의 아버지가
경수를 일으켜 마저 치료를 받고 일찍 자라고 다독이자
처음엔 떼를쓰며 자리를 지키던 경수가 이내 육체적으로 지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뜬다.
그 시각, 민석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야만 했다.
끔찍했던,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던 일들이였기에
더욱이 입 밖으로 내뱉기 힘들었지만 자신때문에 크게 다쳐야 했던
루한을 위해서 결국 그 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말하게 된 민석이다.
그리고 일이 어떻게 되었든간에 루한이 살인을 저지른것은
변함없는 사실인지라 더욱 종인의 여태까지의 만행을 폭로해내어
루한을 최대한 보호해야만 했다.
"루한은 죄가 없어요."
"뭐?"
"저희 아버지는 조폭이였어요.
김종인은 조직 내 우리 아버지의 후계자 정도 되는 사람이였구요.
쉽게 말 하자면 아버지 다음으로 조직을 이어 갈 사람이였는데
그런 그의 눈에 학생시절이였던 제가 띄게 된 거예요."
아까까진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질문에
말 한마디 벙긋하지 않던 민석이 갑작스레 묻지도 않은 질문에도
말을 술술 내뱉자 약간 의아해 하던 형사가
경수가 어떻게 잘 구슬렸겠거니, 하고는 말을 했다.
"...계속 말 해봐."
"그 남자, 그러니까 김종인이 저를 차지하려고 갖은 궁리를 하던중에
저희 아버지가 새엄마를 만나서 재혼을 했어요.
제 친엄마는 몸이 연약했던 분이라고 들었어요.
저를 낳다가 돌아가셨거든요.. 쨌든 그 후로 아버지를 다 잡아 준 분은
저희 새엄마 였어요. 굉장히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는데..
아버지가 새엄마를 만난 후로 마음을 다 잡고 조직에서 손을 뗀다고 했어요.
그럼 자연스럽게 김종인이 조직을 물려받게 될 텐데,
김종인이 내부에서 반발을 일으켰나봐요. 한 조직의 보스라는 사람이
여자에 미쳐서 조직을 버리려고 한다고. 조직원들과 합세해서
아버지를 몰아내고 저희 엄마를 불러내어 마약을 먹이곤 강간했는데
엄마가 임신을 했어요. 김종인의 자식을."
"...."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배신감에 매일을 술에 쩔어서 지내셨어요.
그리곤 집에 돌아오면 엄마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가하셨어요.
그래서 견디다 못한 엄마가 자살을 하고, 전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싶지 않아
가출을 했는데 김종인이 저를 거두어줬어요.
아무것도 몰랐던 전 김종인을 따라갔죠. 그리고 그 곳에서 지내다가
그곳이 조직이라는 걸 알곤 도망을 쳐 나왔다가 다시 잡혀
매일 폭행과 강간을 당했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도망 쳐 나간 제가
경찰에 신고를 할까봐 저도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살인을 시켰어요. 제 손에 억지로 칼을 쥐어주고 사람을 찌르게 했어요.
바깥에서 입도 벙긋 할 수 없도록.
그리고 중간에 몇 번 도망을 쳤는데
그 때 만난게 루한이였구요. 루한은 항상 저를 도와줬어요.
도망 쳐 나와 자살시도를 하던 절 살려준것도 루한이고.. 조직원들에게 잡혀
다시 끌려갈 뻔 했을때 도와준 것도 루한이고.. 어쨋든
그러다 다시 잡혀들어갈 땐 전 이미 이 남자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구나..
내게 이 곳을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구나. 하고 체념하고 들어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냈어요. 김종인의 말에 전처럼 반항하지도 않고
그러려니.. 하고 얌전히 지내던 중에 어쩌다 조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 아버지가 조직의 보스였다는 사실과 김종인의 모든 만행을.
그걸듣고 루한의 집으로 도망 쳐 왔는데, 루한의 집이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경수의 집으로 간 거예요. 거기서 김종인이 제 위치를 알아내어
경수의 집에 들이닥친거고. 김종인이 저에게 루한과 경수를 죽이라고 했어요.
김종인의 그 말에 이도저도 못하던 제게 김종인이 모든 사실을 말 해주었어요.
사실 김종인은 저희 아버지가 조직을 관두는것엔 관심이 없었다고.
반발을 일으키는 척 하여 가족 분열이 생기게해서 절 빼 낼 목적이였다고
처음부터 목적은 저를 차지하는 거에 있었다고 말 했어요."
"...그래서 김종인을 죽인건가?"
"제 일을 저에게 들어 잘 알고있던 루한이 같이 김종인의 말을 듣고있다가
화가나서 김종인을 죽인거예요.
어차피 그 자리에서 루한이 김종인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김종인이 루한과 경수를 죽였을거예요. 아니, 저 까지도 죽였을지 몰라요.
루한은 저희를 보호하기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거였어요.
루한은 잘못 없어요..형사님.."
"...."
민석의 말을 듣고는 골똘히 생각하는 듯 머리를 짚곤
살짝 미간을 찌푸리던 형사가 말을 했다.
"어느정도는 경수한테 들어서 알고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좀 많이 꼬였지싶네.."
"...네.."
"그런데, 너가 루한의 집에서 잠시 지내던 중에
집에 안 들어왔던 적이 있다던데.. 그것도 김종인과 관련 된 일인거야?"
"아 그건.."
형사의 질문에 당황하던 민석이
이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 해주라던 경수의 말을 떠올리곤
다시금 입을 열었다.
"루한이 한국은 위험하다고, 중국으로 도망을 가자고 했는데
여권이 집에 있어서.. 어차피 저희 아버지도 한번은 봐야 하니깐.
할 말이 있기도 해서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안 계셨어요.
그래서 여권을 챙기고 꽤나 말끔해진 집을 구경하던중에
아버지가 돌아오셨어요. 저를 보더니 굉장히 놀란 눈치길래
어색하게 인사를 해 보였는데..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몇일전인지 이틀전인가 그때부터 조직원들이 길거리에 많이 보여서
걱정했다고, 아버지도 전직 보스니깐 아무리그래도
들리는게 있었나봐요. 김종인이 저를 찾는다는 소식을.
제가 모든일을 설명 해 주었어요. 김종인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걸.
아버지도 정신을 차리셨는지 그제서야 제게 같이 도망가자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운 시작을 하자고 말씀 하셨는데..
저는 친구네 집에서 지낸다고 하니깐 그건 친구한테도 너무 위험한 짓이라고
그만 나오라고 말씀 하시는 거예요.
듣다보니 설득력도 있고, 제가 루한의 집에서 계속 지내는건
루한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니깐... 잠시 도망가 있다가
나중에 루한을 찾아가려고. 그랬었죠.
얼마 못 가서 루한한테 다시 찾아지긴 했지만.."
"그렇다면 김종인은 왜 너희 아버지를 죽이지 않은거지?"
"그것도 이유가 있는게..
아직까지 조직의 보스로 김종인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상태라
조직원들이 김종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 상태에서 전 보스였던 저희 아버지를 함부러 죽이게 된다면
반발이 있겠죠. 벼르고 있던 조직원들이 이때다 하고 항의 할 수도 있는일이고.
그래서 찝찝하지만 살려둔 것 같아요.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그럼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는거지?"
"집에 계실거예요. 제가 말도 없이 나와버리긴 했지만..
아니, 집에 없을수도 있고..
무슨일을 하고 사시는 지는 아직도 전 잘 몰라요."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며 생각을 정리하던 형사가
민석은 절대적인 피해자라고 판단을 내리곤 대충 질문을 몇가지 더 하더니
그만 가봐도 좋다며 말을 했다.
"루한도 같은 피해자예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는거
알아주셨으면 해요..."
"알겠어,알겠어.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처벌을 피할 수 없을거다. 이해할 수 있지?"
"네.."
어쨌거나 미워했던 아버지 이지만
그래도 종인의 말을 듣고난 후 어느정도 이해는 되는 상황인지라
아버지를 전처럼 무조건적으로 미워할 수 없게 된 민석이
형사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꾸벅 인사를 해 보이며 취조실을 나왔다.
"병원으로 갈 거야?"
"네.."
경수 아버지의 옆에 계시던 다른 경찰분이
취조실에서 나오는 민석을 보고는 말을 걸어왔다.
병원을 갈거라는 민석의 말에 태워다 준다며
민석을 끌고나와 경찰차에 시동을 건다.
"요즘들어 평생 탈 경찰차 다 타는 것 같아요."
"하하하, 그러냐? ...어린놈이 어쩌다 이런 일에 말리게 되어서.."
쯔쯔, 혀를 짧게 차던 남자가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한다.
민석의 복잡한 심정을 알고 있는지,
별다른 질문은 하지않고 묵묵히 운전만 하며
병원으로 가는 남자에게 내심 고마움을 느끼며
피곤한 몸을 살짝 기대어 창문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보는 민석.
..빨리 루한이 보고싶다.
루한에게 별 일이 없기를 작게 기도하며 병원으로 향하는 민석.
//
1달만에 돌아왔습니다
11화를 끝내면서 이번주 내로 끝낸다 했는데
바쁘게 살다보니 연재에 무심했었어요.. 용서 해 주세요 ㅠㅠ
제가 이제 봉인해제 된 몸이라..(뿌듯)
앞으로 다시 폭풍연재 하도록 하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