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아!!"
추운 날씨 탓인지 방학식을 교실에서 방송으로 진행한 후
민석은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나서 운동장으로 향했다.
먼저 끝났던건지 운동장 벤치에 앉아있던 백현과 경수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민석을 보고 이름을 크게 불러제낀다.
그에 입가에 미소를 단 채 경수에게로 뛰어가는 민석.
"경수!"
해맑게 웃으며 달려드는 민석이 귀여워 경수가 마구 웃으며
민석을 끌어안고 머리를 헤집는다.
조그마한 것들 둘이서 그러고 있는게 웃겼던지
뒤따라 걸어오던 찬열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웃자
경수 옆에있던 백현이 찬열에게 부럽냐며 틱틱거리기 시작한다.
"뭐가. 귀엽잖아."
"뭐가귀엽냐. 남자 둘이 징그럽게 붙어가지고.."
괜히 경수와 민석에게로 달려들어 둘 사이를 떼어놓은 백현이
경수에게 어쩜 이럴 수 있냐며
나와 더 오래 알고지내놓고 사랑이 이렇게 식냐는 둥
헛소리를 늘어놓자 경수는 가볍게 무시하며 앞장 서 학교를 나선다.
민석이 그런 경수의 옆에 빠른걸음으로 걸어 같이 걷자,
백현과 찬열은 자연스럽게 둘이 함께 걸어가고
남은 종대와 세훈이 같이 뒤를 이어 학교를 빠져나왔다.
"졸린다."
"넌 어떻게 방학식날 까지 잠을 쳐자냐"
"졸린걸 어쩌라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종대와 찬열이 말을 걸기도 전에
바로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팔베게를 꺼내들더니 잠을 청한 세훈을
한심하게 바라본 종대가 세훈의 뒷통수를 빡 소리가 나게 친다.
"아!!"
"잠 좀 깨냐?"
"미쳤지 너 진짜?"
"집 갈 동안 정신 좀 차리고 집가서 마저자라"
얼얼한 뒷통수를 만지작 거리던 손을 내려
가방을 치켜 올려 메더니 벌써 저만치 도망가기 위해 달리기를 시전하는 종대를
따라 뛰어가는 세훈.
하루도 조용히 넘어갈 날이 없는 이들이였다.
"김종대는 맨날 도망가냐"
"맞을 짓 하잖아"
어.. 나 지금 이거 데자뷰
찬열의 대답에 어디서 들은듯 한 말에 기억을 되짚던 백현이
이어지는 찬열의 말에 고개를 들어올린다.
"야"
"어..어?"
"오늘 바쁘냐"
바쁘냐고 물으며 백현을 돌아보는 바람에
찬열과 눈이 마주친 백현이 아래로 쳐진 눈을 의아하게 치켜뜬다.
"바쁘긴, 나 너네 없으면 친구없는거 알면서"
"그래..?"
"왜"
백현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들어올려 괜히 앞에 서 있는
경수의 동글동글한 뒷통수만 바라보던 찬열이 말을 했다.
"그럼 우리집에 라면 먹으러 갈래?"
"..."
"어?"
"..."
대답없는 백현에 다시금 백현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썩창을 짓고는 자신을 올려다보고있는 백현이 보였다.
왜? 하는 표정을 짓고는 백현을 보자 백현이 말을했다.
"무슨 꿍꿍이야"
"뭐가. 난 그냥 너 할짓 없다니까
라면이나 먹으러 오라고.."
"진짜?"
"뭔 생각 하는거야. 병신"
미안 내가 좀 썩었나봐
괜히 걸음이 경직해진 백현이
아무렇지 않은투로 찬열에게 대답했다.
"그래, 이 백현님이 니가 끓여주는 라면정도는
먹어줘야지. 가자"
"근데 아까 표정 뭔데"
"뭐"
"내가 뭐 너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다는 듯이.."
"아니거든"
괜히 시선을 바닥에 쳐박으며 찬열에게 말로 지기는 싫은지
말대꾸는 꼬박꼬박 하던 백현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곤
어!! 종대 저러다 맞아 뒤지겠다!! 하며
팔베개로 얻어맞고있는 종대에게 뛰어가버린다.
그에 단순한 찬열도 안돼, 김종대 때릴 수 있는놈은 나뿐이야!
하고 백현의 뒤를 따라 뛰어간다.
"뭐야, 여기서 쟤네랑 우리집 방향 갈릴텐데"
"노느라 바쁘네. 그냥 가자"
저들끼리 장난치느라 바쁜 녀석들을 내버려두고
인사도 없이 경수의 집 방향으로 가는 경수와 민석.
"오늘도 집까지 걸어가게?"
"응. 학교 갈 땐 차 타고 가는 편인데
집으로 돌아갈 땐 특별한 일 없으면 걸어가."
"왜?"
여지껏 다니며 궁금했었는지
눈에 궁금증을 가득 단 채 물어보는 민석.
"학교 갈 땐 친구랑 같이 못가도
집으로 돌아갈 땐 친구들과 같이 하교하잖아.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게 좋아서 그냥 걸어가는 편이야.
너희 만나기 전엔 백현이랑 다녔었고..
그러다 루한 전학와서 루한이랑도 같이 다녔고.."
"아.. 그렇구나"
대충 고갤 끄덕거린 민석이
다시 할 말이 없어 경수와 발을 맞춰 걷기만 했다.
조용하지만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에
함께 집으로 도착한 경수와 민석이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근데 루한이랑은 어떻게 친해진거야?"
속으로 이생각 저생각을 하며 집까지 걷다
집 안에 들어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민석이 질문하자
경수가 웃으며 대답 해 주었다.
"루한이 학기 중간쯤에 전학을 왔었어."
"응"
"중국에서 전학 왔다고 담임선생님이 자리를 지정해 주는데
내가 학교생활도 착실히 하고 수업도 잘 들으니까 내 옆에 앉혀주셨어."
"아.."
"그래서 인사 나누다 보니까 뭐.. 중국에서 왔다니까 신기한 것도 있었고..
그래서 친해지고 싶어서 내가 좀 들이대긴 했지"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경수의 이야기를 듣던 민석이
다음으로 이어질 경수의 말을 기다리다 말이 끝났는지
조용한 경수를 힐끔 보다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민석을 보다 핸드폰 진동알림에 휴대폰을 들어보는 경수.
야 너네 뭐냐? 언제갔냐
- 변백
말도없이 가냐 개자식들
- 변백
야 이놈들아
- 변백
사라진 경수와 민석을 애타게 찾았던지 와 있는 부재중 전화와 카톡에
액정을 내려보던 경수가 마지막으로 온 카톡에
휴대폰 액정을 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나 찬열이집에 라면먹으러 간다~ 부럽지
- 변백
그리고는 약간 소란스러운 민석이의 방으로 들어간다.
방 안에 들어서자 조그마한 캐리어에 옷가지들을 개어넣는 민석이 보였다.
"도와줄까?"
"아냐, 챙길것도 별로 없어."
고작 짐이라고 해봐야 당시 도망쳤을 때 입었던 옷과
경수네 부모님이 사준 옷 몇벌, 교복과 민석이 쓰던 세면도구 뿐이니
도와줄 것도 없었다.
"우리집 자주 놀러와. 혼자 있으면 쓸쓸하잖아"
"그럴게"
"아니면 여기 좀 더 있다 가도 돼는데..
루한이 언제 올 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니야. 너희 가족한테 더이상 민폐 끼치는 것도 죄송스럽고,
혼자 있는것도 문제없어. 루한이 집이니까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진 않을 것 같아"
"..."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진짜 사람이 살 곳이 못되는 곳에서도 살아봤는데, 뭐"
되살아나는 민석의 과거에 눈에 안쓰러운 빛을 띄던 경수가
이런 눈빛을 보였다간 민석에게 더 상처가 될 것 같아 다시금 잔잔히 가라앉은 눈으로 민석을 바라봤다.
다 챙겼다며 몸을 일으키려다 휘청하는 민석을 잡아 일으켜 세운 경수와 함께
현관문을 나서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은 후 차에 올라탄다.
"미리 말씀 드려놨어. 루한 집까지 데려다주실거야."
"아.."
"같이가자. 데려다줄게."
"응"
먼저 차에 탄 민석이 안으로 자리를 비켜주자, 옆자리에 앉는 경수.
이내 부드럽게 출발하는 차 내부에서 경수와 민석이 각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늘여놓는다거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다보니 어느새 루한의 집 앞에 도착 해 있었다.
차에서 내린 경수와 민석이 캐리어를 꺼내 들고,
먼저 돌아가라고 손짓을 하는 민석의 행동을 저지하며 경수가
루한의 집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자 사람의 출입이 끊긴지 오래 된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싸늘한 온기가 둘의 온 몸을 감싸왔다.
민석이 신발을 벗고 캐리어를 끌어 거실 한 가운데 내려놓고는
캐리어 앞에 털썩 앉아버린다.
경수 또한 신발을 벗곤 전에 놀러 온 적이 있던 루한의 집을 큰 눈을 굴려 둘러보다
민석의 옆 자리에 앉았다.
"기억력 좋네"
"응?"
"루한 집 비밀번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길래"
루한 집에서 지낸거 몇 일 안됬지 않았어?
경수의 질문에 민석이 괜히 캐리어의 끄트머리 부분을
만지작 거리면서 말을 했다.
"루한이 나 오고나서 집 비밀번호 바꿨거든."
"어..?"
"갑자기 생일이 언제냐고 묻더니, 내 생일로 비밀번호 바꿔줬어.
오히려 루한이 나중에 집에 돌아올 때 비밀번호 까먹을지도 몰라"
"아.."
비밀번호를 혹시라도 못 외울 민석을 배려한 루한의 마음이 느껴져
경수가 혼자 또 작게 웃었다.
"생일이 언젠데?"
"...3월 26일"
"그렇구나.."
"왜?"
"왜긴. 챙겨주려고 그러지"
"아 뭐야. 넌 생일 언젠데"
"나? 1월 12일."
"너가 제일 빠르네."
경수 다음이 나고.. 그 다음이 루한이잖아.
루한이 제일 어리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있는 민석을 경수가 쳐다보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민석의 옆에 같이 쪼그려앉아 대충 짐을 간추려넣은 캐리어 가방의
지퍼를 가지고 손장난을 치던 경수가 입을 열었다.
"민석아"
"응?"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을 달싹이는 경수에
다음말이 빨리 들려오지 않자 민석이 경수를 쳐다보았다.
잔뜩 가라앉아, 본 적 없던 표정을 짓고있는 경수를 의아하게 보는 민석.
"너가 너무 부러웠어"
"무슨 말이야, 갑자기?"
"루한과 친구로써 옆에 있는동안
루한이 널 엄청 좋아해주는게 눈에 보였거든"
"응..?"
"사랑받는 네가 부러웠어."
"..."
"루한한테 사랑받는 네가.. 정말정말 부러웠고, 지금도 부러워."
"..어..?"
갑작스런 경수의 말에 이해가 잘 가지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민석.
이해가 가지 않는건지 이해하기 싫은건지 표정이 애매모호하다.
민석 옆에 함께앉아 캐리어를 향해서 시선을 고정시켜놓던 경수가
그런 민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가 밉기도 했어."
"...너..그럼.."
"사실 너의 존재를 처음 안 날, 니가 너무 미웠어.
진짜 밉고 싫었어"
"..."
"난 루한이 날 경멸할까봐, 내색도 못 했거든.
남자인 내가 루한을 좋아한다는게 알려지게 되면
루한이 날 피할까봐, 혐오하게 될 까봐 표현도 못 했어.
그냥 옆에서 엄청 좋은 친구로.."
"..."
"그랬는데 다짜고짜 루한이 남자가 좋대.
처음엔 한국에 와서 알고지내는 친구가 나랑 백현이밖에 없는데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대서 기대도 해 봤는데, 그게 너라는 걸 알고
진짜 철없게도 그냥 널 미워했었어."
"경수야.."
민석이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쓰게 웃으며 말 하는 경수를 쳐다보았다.
항상 친절하고 다정하게 웃으며 자신을 대해와서 정말 상상도 못 했던 것이였다.
그럼 그 때 루한대신 총을 맞은것도..
생각이 점점 깊어지자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런것도 같다. 자신은 항상 루한에게 피해만 끼쳤는데
경수는 한국에 와서 적응하지 못할 뻔 했던 루한에게 먼저 선뜻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고, 루한을 지키기 위해 자신은 차마 무서워서
나서지 못 해 울기만 했었을 때 루한에게 총을 겨누는 남자를 보고
몸을 던져 어깨쪽에 큰 상처를 입었고 그 흉터는 지금까지 남아있었다.
또, 애초에 루한과 저를 위해 이런 위험한 일에 가담하게 되었으니..
친구로서 베푸는 호의라고만 생각하며 경수의 입장을 방관하고 신경써보지 못한 것 같아
민석은 스스로가 정말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나..난 너가 그냥.."
"말 안해도 알아."
"네 상황은 신경도 안 썼어.. 여태껏 난 나만 생각했어.
미안해 경수야.."
"아니야. 이제와서 너한테 투정부리려고 한 말은 아냐"
"..."
경수의 입장에선 갑자기 나타난 내가 얼마나 눈엣가시 처럼 거슬리는 존재였을까.
그 날 내가 루한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손목을 긋지만 않았더라도.. 빌어먹게도 비만 오는 날이면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 이런 개같은 트라우마를 벗어던질 수만 있었어도.
애초에 내 인생에 김종인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날 친구들과 신이나서 시내에 나갔던 내 잘못일까.
내가 태어난게... 잘못일까.
나라는 존재 자체가 나타나선 안 될 존재였나
"내가 이렇게까지 양보 했으니까.. 꼭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하는 말이야"
"...나.."
"뭐 양보라고 하기도 웃긴다.. 루한은 내가 자기 좋아했는지도 몰라.
내가 내색 안 한 것도 있기도 하고.. 쨌든.."
"..."
"처음에야 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루한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너무너무 좋아하는게 한 눈에 보였으니까.. 내가 루한을 좋아하는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그래서 나도 널 좋아하기로 했었어.
솔직히 다 잊었다는건 뻥이고 아직도 미련이 조금 남아있긴 한데
계속 노력하고 있으니까 난 신경쓰지마."
"...경수야.."
"너한테 막 괜히 푸념하는 거라거나 부담주는 거 아니다?
내가 원체 거짓말을 잘 못해서 벌써 다 잊었다는 말은 못하겠어서 그래.
거짓말 치는건 루한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걸로도 족하니깐"
민석이 계속 울상을 짓고있자 괜히 미안해진 경수가
아무렇지 않게 민석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평소 민석을 귀여워라 하는 경수가 머리를 헝클이면 하지말라고 짐짓 화난 투로
말 하던 민석이였지만 오늘은 경수가 하는대로 얌전히 있기만했다.
"너를 한 때 미워했던게 미안해질 정도로 넌 좋은 친구야. 민석아"
"..."
"방학중에도 연락 자주하고.. 루한 만나면 연락 꼭 하고.
걔가 잘 못해줘도 나한테 말 해야 해. 아주그냥 내가 혼내줄게"
"..고마워 경수야"
"..고맙긴"
"다 고마워. 여태까지 도와줘서 고맙고
나 같은 애 친구로 생각 해 줘서 고마워.
너 없었으면 아마 난 아직까지 지옥같은 그 곳에서 있었을지 몰라"
"..."
"나 꼭 루한이랑 행복하게 지낼게"
그 말에 경수가 다시금 민석의 머리를 헝클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에 경수를 바라보던 민석의 시선이 절로 위로 올라간다.
옷가지를 정리하며 현관문으로 걸어 간 경수가 신발을 신으며 말을했다.
"그래. 나 질투 날 만큼 행복해야 해"
"응.."
"가볼게. 혼자 있다고 무서워서 울지말고"
"뭐야.. 내가 애인 줄 아나.."
"기사아저씨 기다리겠다.. 놀러올게! 잘있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손을 붕붕 흔드는 경수를 따라
같이 손을 흔드는 민석.
그런 민석을 보며 뒷걸음질을 치면서 나가던 경수가
닫히는 현관문에 손을 내린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입꼬리 끝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느낌이였다.
아직 아무렇지 않아지는 건 힘든가봐.
루한의 손길이 몇 번이고 닿았을 도어락을
손끝으로 만지작 거리던 경수가 발걸음을 돌려, 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차 뒷자석에 올라탔다.
"죄송해요. 이야기가 좀 길어져서.. 집으로 가요"
방학동안 공부나 할까..
"파 넣었어?"
"주문사항이 좀 많다?"
"계란은"
"니네 집 이냐?"
나 계란 안들어간 라면 안 먹는데?
백현의 말에 냉장고에서 파를 꺼내던 찬열이
그대로 파를 두 손으로 경건히 들고 때릴기세로 다가오기에 백현이 멍뭉이같은 웃음을 보였다.
"넝담ㅎ"
"주는대로 쳐먹어"
"지가 먼저 불러놓고"
백현의 말에 또다시 손에 든 계란을 들고 다가오는 찬열에
식겁하며 피하는 백현에 찬열이 숨을 고르며 다시 부엌으로 향한다.
백현이 그런 찬열의 뒷 모습에 얼굴에 미소가 만연히 피어오른다.
자연스러운 손길로 라면을 끓이는 뒷 모습에 기분이 좋아
괜히 말이 툭툭 튀어나가는 것 같다.
자리에 누워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바닥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던 백현이 찬열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네. 김첨지 같은 놈"
"그게 내 매력"
"지랄"
"이런 모습에 반했으면서"
"뭘 반해"
"다 됐다. 먹자"
식탁위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라면을 내려놓는 찬열이
젓가락을 백현의 손에 쥐어주었다.
"먹고 반하지나 마.
내 라면 한 번 먹어 본 애들은 다른라면 못 먹더라"
"웃기시네.."
비주얼은 끝장나는 라면의 자태에 속으로만 감탄하며
백현이 젓가락을 들어올려 라면을 집었다.
"어때?"
"..."
"맛있지?"
찬열이 라면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백현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나지.."
"어?"
"이건 진짜 세상에 다시 없을 라면이야.."
"뭔 소리야"
"이건 진심 역대급.."
계속해서 개소리를 늘어놓는 백현의 뒷통수를 찬열이 때려버리자,
백현이 사레가 들린건지 켁켁거리며 물을 찾는 손길이 다급하다.
그에 찬열이 정수기물을 받아 둔 컵을 주자, 급하게 마시던 백현이
곧 어느정도 안정이 되자 찬열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아!!진짜!!"
"니가 먼저 개소리 했잖아"
"맛있다고 해 줘도 지랄이야!!"
"그게 맛있다는 소리였냐? 난 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도 라면을 먹기 시작하는 찬열을
괜시리 눈을 찢어 흘겼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백현도 라면을 먹는데에 집중한다.
"근데 넌 방학동안 뭐 할거냐"
"방학동안?"
"어"
찬열의 말에 백현이 라면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며
곰곰히 생각한다.
"음... 계획없는데..?"
"역시 넌 생각없이 사는 것 같아"
그 말에 백현이 먹던 젓가락을 들어올리려 하자
찬열이 백현의 손을 잡아내려 말을 이었다.
"할 일 없으면 나랑 독서실이나 다닐래?"
"무..무슨 독서실이야"
백현의 손을 잡고 진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 해오는 찬열에
괜히 소름이 돋은 백현이 팔을 비틀어 빼내며 불퉁하게 말했다.
"할 거 없다며"
"내가 아무리 할 게 없어도 독서실은 안 간다"
"왜?"
"나 공부 안 하는거 몰라?"
"자랑이다"
"어 자랑이다"
말대답에 지는 법이 없는 백현을 상대하던 찬열이
포기했다는 듯 고갤돌려 다시 라면먹는데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백현이 갑작스레 폭풍흡입하던 라면을 깨작이며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하다 찬열을 불렀다.
"야 근데"
"어?"
티비도 켜 놓지않아 적막만이 감돌던 와중에
라면을 넘기기가 힘들었던지 백현의 부름에 바로 대답을 하는 찬열.
"갑자기 도서관 다니고싶어졌어"
"뭐야 싫다며"
"그냥.. 어..나도 이제 고3이고 또..
친구랑 같이 다니면 공부도 잘 될 것 같고..그래서.."
"안하던 짓 하면 안돼"
마구 더듬으며 말 하는 백현에 의심의 눈초리를 지으며
자신보다 앉은키가 낮은 백현을 찬열이 내려다보자
백현이 볼이 발갛게 되며 시선을 피하곤 말을 이었다.
"아니 이제 고3이니까 안하던 짓 해야지..
난 절대 너랑 같이 다니기 싫은데 니가 다니자고 해서 다니는거다?
너 말고 다른애가 다니자 했으면 걔랑 다녔을거야"
"뭐래 안물어봤어"
"그렇다고..."
어디 아프냐?
"아..아니"
"그럼 덥냐? 어.. 아무리 우리 집 난방을 빵빵하게 해놓긴 했지만
지금 겨울인데.. 얼굴 왜 이렇게 빨개?"
"더..더워서! 너희 집 존나 쓸데없이 덥고 지랄이야"
"미친놈이 오는길에 내내 춥다고 승질 있는대로 부려놓곤"
찬열의 말에 집에 오는길에 춥다고 징징거리는 백현에게
자기가 쓰던 하얀 목도리를 둘러주던 찬열이 생각 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오르는 백현.
"야 너 진짜 덥나보다. 갈수록 빨개지는데.."
"아 몰라 나 다 먹었다! 니 방 가서 잘래"
찬열이 짐짓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자세를 틀어 백현에게 다가오자
눈을 도록도록 굴리던 백현이 괜시리 목청높여 말을 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찬열의 방으로 도망치듯 가버린다.
그에 표정가득 걱정스러움을 달고있던 찬열이 방문께를 바라보고는
백현 모르게 씨익 웃어보였다.
"귀엽긴"
남은 라면이 점점 퉁퉁 불어오자 찬열이 자리에서 일어나
라면을 싱크대에 모조리 부워버렸다.
반도 채 먹지않을 라면을 먹으라고 백현을 집에 불러들였는데
왠지 목표가 바뀐 것 같은 찬열이 대충 라면냄비를 싱크대에 놓고는
백현을 따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어 세훈아"
먼저 연락오는날은 달력에 기념일로 체크를 해 둬야 할 정도로
연락이 뜸하던 세훈에게서 온 전화에 신이나서 냉큼 전화를 받는 민석.
학교에서도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건지 하루종일 잠만 자는 녀석이라
제대로 된 대화조차 걸기 힘들어서 처음엔 종대와 찬열이
세훈과 진짜 친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자퇴를 했던 민석이 다시 학교를 다니면서 준면이 민석의 반에
친한 동생들 이라며 소개를 해 줬을당시 세훈이 없었기때문에
처음엔 종대와 찬열이랑만 이야기를 하다, 갑작스레 창가자리에서
내리 잠만자고있던 세훈이 말을 걸어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보니 잠만 많을 뿐, 그 둘과 다름없는 비글녀석 이였다는건 얼마안가 알게 된 비극적인 사실이지만.
- 너 집이지?
"응 집이긴 한데.."
- 혹시 방학동안 하는 일 있어?
"아니 없어. 왜?"
몇일 전 찬열과 백현이 함께 고3을 맞이하여
도서관을 다니기로 했다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듣고
자기도 방학동안 할 일도 없는데 같이 다니자고 했다가
백현이 홀수는 기운이 안 좋다면서 공부는 짝수로 하는거라며
자신이 함께 공부하는것을 탐탁치 않아 하기에 그럼 경수를 끼고 같이 하자고 했더니
그럴거면 경수랑 둘이 하라고 하는통에 더러워서 안 한다며
집에서 할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민석이였다.
- 니랑 나랑 같은 처지네. 나올래?
"어..? 뭐하려고"
- 고3 되기 전 마지막 방학인데 실컷 놀아둬야지.
미친놈들이 왜 갑자기 공부한다고 지랄들이야 안 어울리게
"나도 공부 할거야"
- 1시까지 혜화역 4번출구로 나와 김종대도 꼬셔볼게
"알았어"
자신도 공부를 할 거라는 민석의 말을 가볍게 무시 한 세훈이
간단히 약속장소를 말 하고는 전화가 끊겼다.
갑자기 잡혀버린 약속이지만 경수와 함께 루한의 집에 온 날 이후로
집에만 몇일째 박혀있던 민석이였던지라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맡을 생각에
조금은 들뜨기도 한 기분이였다.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약간 남아서 민석은 얼른 대충 씻고
머리를 말린 후 루한의 옷장 서랍 구석에 정갈히 개켜놓은 자신의 옷을 마구 헤집었다.
오랜만에 나가는 길이라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고민하던 민석이
이내 약간 두꺼운재질의 새하얀 니트를 꺼냈다.
소매를 약간 덮는 복실한 니트의 느낌이 좋아 민석이 좋아하는 옷이였다.
그리곤 물이 예쁘게 빠져 적당히 붙는 청스키니를 꺼내어 입고는
책상에 돌돌 말아두었던 빨간 목도리를 하곤 머리를 대충 손질한 후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약간 지체된 것 같아 약속장소로 빠르게 간 민석이
도착했을 땐 1시가 되기까지 약 5분정도 남은 시간이였다.
세훈이 당연히 먼저 도착해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 한 민석이
종대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는 상황인지라 근처 카페에라도 들어갈까 하다가
자신이 안 보이면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 올 세훈이 귀찮은 마음에 춥더라도
밖에 서 있는것을 택했다.
자의적인지 혹은 타의적으로 밖을 잘 나가지 않던 민석이여서
백옥같이 하얀 피부가 하얀니트를 입고있으니 마치 눈사람 같았다.
1시가 되고 시간이 더 지나도 오지않는 세훈에 약간 짜증이 난 민석이
추운날씨에 얼어서 잘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세훈에게 전화를 걸려던 순간
세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 언제와!"
- 아 미안 나 지금 종대만났어
얘도 존나 할일없는 잉여새끼더라고
세훈의 말 뒤로 세훈에게 마구 욕을하는
종대의 목소리가 들려와 민석이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댄 채로 피식 웃었다.
"어딘데 나 추워"
- 여기 그.. 골목길로 들어와서 사거리로 오면
던킨도넛 있는데 거기앞으로 와
"알겠어"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바로 주머니에 넣어버리곤
니트소매를 잡아당겨 추위에 얼어버린 손을 조금이라도 녹이려는 민석.
그리고는 세훈이 말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4번출구 앞으로 나오라 해놓고 거기까지 가는건 무슨 심보야..
짜증이 날 법 했지만 간만에 자신의 방콕생활에서 세훈이 구원해 준 것이니
웃으며 넘기기로 한 민석이다.
골목길 앞에 들어서자 수많은 인파에 정신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뭐가 재밌는지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근처 건물로 들어가기도 하고 각자 손에 간식을 들고 민석을 지나쳐가기도 했다.
넋 놓고 많은사람들을 보며 길을 걷던 민석.
"아.."
그러다 콧 망울 끝에 떨어지는 차가운 느낌에 정신을 차린 민석이
제자리에 서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코 끝에 떨어진 눈을 시작으로
머리, 어깨, 얼굴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눈발에,
목에 둘러 맨 빨간 목도리를 더욱 칭칭 매는 민석.
새하얀 니트 소매 끝으로 살짝 나온 손가락 끝이 붉게 그라데이션을 그리며 물들어 간다.
올 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다, 떨어지는 눈송이에
눈이 시린지 다시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는 민석.
새 햐안 첫 눈이 믿기싫을 정도로 너무 현실적이게 내리고 있었다.
"앗!"
"죄송합니다."
길 한복판에서 계속해서 멍하니 있는 민석을
미처 보지 못 한 사람이 민석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그 반동에 이기지 못 한 민석이 꽤나 날리는 눈발에
금새 축축해진 바닥에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프잖아"
코 끝이 시려오더니 눈물이 차올랐다.
여기저기서 첫 눈에 남녀를 불문하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분위기에
민석 혼자 바닥에 앉아 눈물을 떨구었다.
때 묻지 않은 하얀 니트가 축축한 바닥에 점점 더럽혀져간다.
지저분했던 바닥에 눈이 내리면서 흙탕물이 생겨 민석의 니트를 까맣게 물들여갔다.
차갑게 얼어 끝이 붉어진 손가락으로 바닥을 지탱하여 몸을 일으킨 민석이
옷을 대충 털어내곤 사람들 사이를 헤집어 걸음을 재촉했다.
첫 눈을 좋아하지 못하는 민석이 이방인이 된 기분이였다.
눈이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머리가 느리게 젖어들어 가면서
민석은 아무도 듣지 못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난, 아까 넘어지면서 부딪힌 엉덩이가 아파서 우는 거라고.
이렇게 좋은 날을 세훈이랑 종대와 보내게 되어서 그런거라고
둘에겐 미안하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던 민석이 이미 감각도 없어져버린 손으로
옷에 묻은 얼룩을 털어내려 하지만 점점 더 스며들어버릴 뿐이였다.
갑작스레 바닥을 쳐 가는 기분에 눈가를 소매로 벅벅 문지르던 민석이
많은 인파를 피해 근처 작은 골목길로 걸음을 옮겼다.
자리에 서 세훈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메시지를 보낸 민석이
울어서 빨개진 눈가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렸다.
이 상태로 둘을 만나면 울었다는것을 단박에 알아채곤 추궁하려 들 것 같았다.
이런 것 까지 신경써야 한다는게 서러워서 다시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민석"
익숙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의아한 마음을 품고는
안그래도 붉어진 눈가를 계속 소매로 문질러대어
더 붉어진 눈을 들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갤 돌리는 민석.
"여기있어 왜. 찾기힘들게"
"...너.."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함께 믿을 수 없는 인영이 민석의 눈 앞에 나타났다.
민석과 마찬가지로 밖에 있었던 것일까
눈이 날리는 가운데 눈을 머리에 가득 쌓은 채 자신을 보고 웃고있는
루한. 새하얀 겨울을 닮은 루한이 서 있었다.
민석이 놀라 눈을 크게뜨고 바라보자 오랜만의 만남에 약간 머쓱한 것인지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머리에 쌓인 눈을 괜시리 손으로 털어낸다.
"왜...?"
"응?"
"왜 여깄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서 어떻게 여기있냐고 물어본다는게
왜 있냐고 말을 뱉어버린 민석이 자신의 입을 원망했다.
"이번 해 첫 눈이야"
"..."
"같이 맞기로 했잖아."
"..."
"약속 벌써 까먹은 거야?"
그럴리가 없잖아.
너랑 있던 얼마 안 되는 그 시간동안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지금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다 잊혀지지 않는데
너가 바랬던 것을 이뤄주지 못할 것 같아서
방금까지 내 마음은 저기 지옥끝까지 다녀왔었어. 루한.
"미안.. 서프라이즈 해주고 싶어서 너한테 먼저 연락 안 했어."
"..."
"경수한테 먼저 연락해서 너 위치 알아내가지고 이렇게 깜짝 놀래켜주려 했는데...
...화 난거야?"
말이 없는 민석에 약간 불안했던건지 루한이
살짝 눈치를 보며 말을 했다.
그에 약간 멎었던 눈물이 다시금 차오르는 민석.
"어..어..?"
"이.. 나쁜놈아"
루한의 앞으로 다가와 갑자기 눈물을 터트리는 민석때문에
루한이 당황함이 역력히 드러나는 표정으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다 갑작스레 안겨오는 민석에
무게를 지탱하지 못 해 뒤로 한걸음 살짝 밀려난 루한이
반사작용으로 손을 들어올려 민석을 함께 껴안았다.
"너..."
"...민석"
"그렇게 말 없이 가면 내가 얼마나 걱정할지 생각 안 해봤어..?"
"미안.. 나도 그땐 혼수상태여서.."
"알아 바보야.. 빨리 와 줘서 고맙다구.."
자신을 안은채로 부들부들 떠는 민석이 와중에 참 귀엽다고 느껴져
루한이 맑게 웃으며 민석을 한번 더 쎄게 안고는 떨어져
민석의 눈을 마주보고 말 했다.
"왜 이렇게 말랐어."
"..."
"빠오즈 다 어디갔어. 여기 있었는데"
하고 말 하며 민석의 볼을 손가락을 들어
쿡 찌르는 루한.
그에 민석이 볼에 바람을 넣어 장난을 쳐 보인다.
그런 민석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웃은 루한이 말을 했다.
쿡
하고
"기다려 줘서 고마워. 나 완전 치료 잘 받고 왔어."
"응응.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어"
"우리 이제 진짜 행복하기만 하면 돼. 민석아"
"..."
벌써 이렇게 행복한데 더 행복하면 죽을지도 몰라.
내가 감히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지금 너무 행복해 루한.
내가 김종인과 있던 시간이 너무나도 악몽같고 끔찍했지만
아마 그게 너 만나라고, 루한 너 만나서 이쁘게 사랑하라고
이렇게 살아왔던 건가봐
"집에 갈까?"
"나 세훈이랑 종대 만나러.."
"그건 또 누구야"
"내 친구들"
"질투나"
나 냅두고 다른남자들 만나러 가려고 했어?
아 그냥 친구야!
됐고, 나 왔으니까 이제부터 나랑만 놀아
그, 그럼 연락이라도 넣어놓고..
"연락 할 필요없어"
"안돼 얘네들 나 기다리면 어떡하라구.."
민석의 말에 베실베실 웃으며 루한이 말 했다.
"둘이 지금 잘 놀고 있을걸?"
"뭐?"
"너 부른거. 내가 시킨거거든"
"너가 걔들을 어떻게 알고?"
루한에게 손목을 붙잡혀 골목길을 나오던 민석이
루한의 말에 바닥에 딱 멈춰 서 버렸다.
"말 했잖아. 경수한테 먼저 연락 했다고.
그래서 경수가 니 친구한테 너 부르라고 시켰대
약속장소 나한테 알려줘놓고.
그래서 내가 짜잔- 하고 나타난거지"
"뭐..뭐야.. 그럼 너.."
"내가 너 여깄는걸 어떻게 알고 바로 찾아왔겠어
한국도 나름 넓은 땅인데. 내가 무슨
소설 속 남자주인공도 아니고"
루한의 말에 급히 휴대폰을 꺼내 세훈에게 전화를 거는 민석.
그런 민석을 그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옆에서 부담스럽게 루한이 쳐다보았다.
- 어어, 만났냐?
"야, 너!"
- 뭐, 나한테 욕할거면 그러지마라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어어, 야 김종대! 아씨!
야 나 끊는다 개학날 봐!
피시방에 간 건지 시끄러운 잡음들 사이로 전화를 받고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투로 말을 하는 세훈이 종대를 마구 씹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나저나 개학날 보자니, 얘 나 방학동안 안 볼 심산인가?
"루한, 너어!!"
세훈에게 놀아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민석이 루한을 마구 때리자 루한이 오버스럽게 소릴 지르며
몸을 움츠린다.
"아, 왜! 그래도 좋잖아!"
"그래, 너무좋아 루한! 나 행복해서 뒤질 것 같아!"
"뒤진다니, 그 말은 또 누구한테 배웠어!"
"뭐야, 너 중국에서 왔다면서 욕은 왜 이렇게 귀신같이 알아들어!"
왠지 이 상황이 데자뷰가 일어나는 것 같은 루한이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첫 만남 때 얼굴 가득 한없이 어둠만 달고있던 민석이
이렇게 자신을 보고 하얗게 웃어주고 있으니까 그걸로 된 거다.
아, 춥다. 빨리 집 가자.
다시 민석의 손을 잡곤 앞장 서 걸어가는 루한에
민석이 이끌리듯 걸으며 말 했다.
너, 집 어떻게 가는지는 알고 앞장 서는거야?
둘이 머물렀던 골목길 바닥이 하얀 눈으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었다.
- End
//
드디어 완결을 냈습니다!
사실 곧 명절이라 또 미루게 될 까봐 급하게 써내린 감이 없지않아 있어요..
글 내용은 차차 수정해서 텍파를 만들 예정이구요 (물론 혼자 소장하기위해... 흑흑 창피해요)
저 혼자 써서 만족하려고 쓴 글 읽어주신 모든분께 감사의 말씀과
또 이런 허접한 글 읽느라 고생하셨어요. 박수를 드리고 싶네요..하하
중간에 찬백이들은 여백의 미를 채우기 위해 조금 써봤는데
과연 둘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건 저도 몰라요 하하하하
외전도 없을거예요 제가 그런걸 쓸 정도로 금손은 아니라서 하하하하하
어쨌든.. 단순한 학원물 팬픽을 쓰려던 생각이였는데
12월의 기적을 보고 살짝 조정을 해 봤어요. 눈 내리는 겨울을 배경으로.
결론은 ㄹㅁㅎ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