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불편한 심정 때문에 눈썹이 절로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뚜렷이 느껴지는데도, 가만히 내려다 둘 수 밖에 없었다. * 강승윤x남태현 본투스타 3 * 몇번째 였나. 아.세번째 고백. 그 고백 역시 거절했다 들었다. 마음이 우중충했다. 고백을 거절했다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 이유 조차 설명 되어지고 있지않으니 답답하다. 아직 사귈마음이 없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지만··· 본인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 아닌 이상은 어떤 것도 신뢰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연애하는 중은 아닐런지, 아니거든 따로 좋아하는 상대라거나. 텅빈 마음속을 의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만은 차곡차곡 메꾸어만 가는게 너무 싫었다. 메마른 애꿎은 입술을 몇번이고 짓씹다 그대로 멈췄다. 여느때처럼 하늘을 보며 마음을 달래려해도, 하늘조차 어둡기 그지없었다. 날씨조차도 태현, 제 편이 아니었다. "뭐가 이렇게 신경쓰이는건지··· ··· ." "태현아!! 운동장 조회래!" 힘 빠지는 날이다. 태현은 억센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와르르 나가는 인파에 묻혀 떠밀려진 채로 아무 생각 없이 앞을 걸었다. 운동장 조회. 이렇게 궂은 날씨에. 천막 안에 있는 교직원이라던가 교장 같은 경우에는 상관할 바가 아니겠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내려도 이상치않을 우중충한 먹구름. 여름임에도 짙게 깔린 그늘이 운동장에 드리워졌다. 시원함보다는 싸늘함에 가까운 그것은 어느새 한줄기 바람까지 몰고오더니 냉기로 온통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을 뒤 흔들어 놓고 갔다. 엊그제 비가 내렸었나. 짙은 색깔의 서늘하고 축축한 모래를 밟고 뭉개다보니 어느새 신발이 더러워졌다. 학교에 오는 신발 주제에 비싼 것을 신고 오지는 않지만 꽤 아꼈던건데··· 강승윤이 뭐라고 자신이 이토록 흔들리는건지. 깨달았을 때 끊어버렸어야 했었을 마음이다. 진작에 끊어버려야했던 것을 계속 5,6월달이 되도록까지 질질 끌다보니 일어난 당연한 결과인 것을. 뭐가 그리 미련이 남는다고. 뭘 그렇게까지 좋아해야 되겠다고···나는, 그리고 아무 생각없을- 너는. 복잡한 머릿속 만큼 현기증마저 날 만치 어지러운 몸을 겨우 곧추 세워 운동장 구령대를 바라보았다. 12명이 쭉 서있는 폼이 꽤나 익숙했다. 머릿속에 무언가가 때려박히는 듯 아찔했다. 전교회장 선거 방송때 공략을 내세웠던 이들이다. 강승윤! 두 눈이 빠르게 12명을 스캔하다 가장 중간에 서 있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두 눈이 곱게 휘어진 채로 잔뜩 개구지게 웃는 얼굴. 동글동글한 콧망울. 활짝 벌어진 붉은 입술과 분가루라도 털려져나올 것만 같은 고운 뺨. 우중충한 하늘 아래에서도 비슬비슬 부서지는 까맣고 짧은 머릿칼. 누가보아도 귀여운 강아지상이라 할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자앤데 여자애 같은 귀여움이라거나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뚜렷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조금씩은 보여지는 소년과 남자 사이의. 적당히 둥글고 날카로운 선으로 이루어진. 멍하니 강승윤을 쳐다보다 저도 모르게 비실비실 실없이 웃고야 말았다. 반복되는 상황. 상처받고 우울해진 이유도 강승윤, 다시 밝게 회복되는 이유도 강승윤. 강승윤 강승윤 강승윤. 머릿속에서 결코 떨어져나가지 않는···그런, 기이한 사람. 옆반 학생회장 후보로 나간 긴 생머리의 여자애와 잘도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분명 처음보는 사이일텐데도 비글 같은 친화력이 돋았는지 어느새 낄낄대며 웃는게 강승윤답다 싶어서 흐뭇하게 엄마 미소가 그려지면서도, 사실은. 그렇게 강승윤 옆에 있는. 같은 반에 있는데도 이렇다할만한 접점이라고는 용지 전해준 일 밖에 없는 나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게 스스럼없이 대답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대꾸할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이름도 모르는 저 여자애가 엄청 질투가 나서는, ···교장의 훈화가 어서 끝이 났으면 좋겠다. 올려다 본 하늘은 그림과도 같이 푸른빛 위로 번진 먹빛들. 파랗게 칠한 물감 위로 물을 탄 먹을 뿌린 듯 온통 먹구름으로 잔뜩 번져 뿌얬다. 머릿칼이 차게 얼어서 귓가에 닿는 기분 역시 가히 좋지 못했다. 차게 식은 바람이 싫다. 회색빛으로 번지는 우울한 구름이 싫다. 사실 좋지 않은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원인제공을 놓을 수가 없는 저로써, 좋아해준다는 기약도 없는 상대를 위해 이렇게 계속 무언가에 언제까지 시선을 돌려야 하는가. "···그리하여 제 32대 전교 회장을 발표하겠습니다. 발표는, 전 대 회장인 송민호 군이 발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초조한 마음. 누구보다 제 자신이 떨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 학생회장에 되지 않을 것이다. 전교 1등인 김서영도 있고 유명한 소속사 아이돌이라는 녀석도 후보망에 올랐다. 그까짓 선거 공약 방송으로 인해 올라간 인기라지만 저 자리에 뽑힐만한 인기는 아니다. 그러니 될 리, 없다. 결코 없다. 태현은 저도 모르게 바짝 타는 입술로 차게 언 손을 주먹을 꾹꾹 쥐고 다듬지 못한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꾹 찍어내리며 기원했다. 멀어지지 말자. 더 이상 멀어지지 말아줘. 지금조차도 너와 나의 거리는 이다지도 먼데. "32대 학생회장을 발표하겠습니다."학생회장이 된다고 해서 지금까지 제 자리와 승윤의 자리가 완연히 차이날 정도로 멀어지지않을 것임을 이성으로써는 알고 있음에도, 초조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예언과도 가까운 머릿속을 때려박는 징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제발. 누구한테 비는 소원일지도 모르면서도 계속해서 반복해서 속으로 되뇌이며 ·· "32대 학생회장은··"멀리 보이는 승윤은 주머니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갈색의 뿔테 안경을 꺼내 썼다. 긴장하지 않은 듯 부드러이 웃는 얼굴. 그럼에도 미묘한 떨림이 얼굴에 살짝 드러날때마다 승윤은 눈을 감았다. 멀리서도 그 고운 얼굴이 뚜렷해서 비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32대 학생회장은··· "강승윤 군 입니다! 축하드리고 앞으로의 각오 발표 부탁드립니다." "···" 순간 눈 앞의 모든 것이 페이드 아웃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도 자기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얼굴을 찌푸린 듯한 강승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잘못 본 거겠지. 쓰러질 것 같이 휘청거리며 나부끼려는 몸을 손톱으로 손바닥을 눌러가며 억지로 일으켰다. 감사하고 열심히 하겠다는 둥 뻔한 각오를 하는 모습이 깜박거려 구령대 위에 서있는 사람이 강승윤인지 조차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 눈 앞에서 부숴지는 잔뜩 명멸하는 빛들. "···아." 구령대 위의 너를 올려다 버리는 거리가 유난히도 멀었다. 성적표 위에서 너와 나의 등수의 거리의 길이는 고작 한단위였는데, 교실 안에서 너와 나의 자리 역시도 그렇게까지 멀지 않았는데도. 용지를 건네주었을 때, 학원 여자애들에게 사정하여 얻은 핸드폰 안에 자리잡고 있는 네 사진을 보았을 때 학원이나 길을 걸을 때 떠올랐을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네가, 구령대를 올려다보는 지금. 바라다보는 지금. 너는 세상에서 내게 제일 먼 사람이었다. 누구를 향한걸지 모를 심장이 북소리를 울리듯 온 몸에 퍼지는 것이 영문을 모르는 까닭에 남 일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우렁찬, 마음을 다한 북소리마저도 덮어버리는 소리가 귓가에 스치기 시작했다. 본투스타 강승윤! 멀게는 옆 줄 끝에서, 가까이에서는 바로 옆에서 울리는 강승윤을 향한 환호. 박수갈채. 왜 몰랐을까. 32대 학생회장은,이라고 끊을 때 조차도 울려퍼졌던게 저 소리였는데. 강승윤은 더이상 내 강승윤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강승윤은 처음부터 제 강승윤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단지 그것을 깨닫는데에 시간이 조금 오래걸렸을 뿐이었을 뿐 이었다. - 이제서야 제가 짜놨던 스토리의 시작 부분이 끝났네요. 느려 느려... 부족한 글이지만 찾아주는 분이 계셔서 돌아왔습니다 ㅠㅠ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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