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려나. 백현은 홀로 창가에 서성이며 밖을 내다보았다. 비를 피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속에 그 사람은 없었다. 백현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의 향이 날듯하다가도 나지가 않는다.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내내 삐끄덕거리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부엌으로 들어오자 그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케이크를 만들면서 생크림을 서로의 얼굴에 묻혀가며 즐거워하는 모습, 요리도 못 하는 그가 나만을 위해 엉성한 죽을 끓이던 모습,장미꽃을 들고 내게 함박웃음을 짓던 그의 모습, 단 둘이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팔랑이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폴라로이드를 집어들었다. 사진 속 그와 나는 미치도록 행복해보인다. 그리고 현실속에서 그는 이미 없다. 사라졌다. 폴라로이드를 쥔 손을 꽉 쥐어 아무렇게나 던져버린다. 백현이는 홀로 탁자에 앉아 우유를 마시며 두 눈을 감는다. 아직도 생생하다. 아직도..빌어먹게도.
'백현아,지금 하는 얘기 농담 아니니까 잘 들어. 우리 이제 여기서 그만 접어야할것같아. 자 이건 청첩장.'
잡지도 못할만큼 그는 빠르게 내게 잊혀져갔다. 그는 내누이와 결혼식을 올리기 전 나를 최대한 배려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내게 독을 심어줬을지도 모른다. 결혼식 당일 신랑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날 수 없었다. 제 누나는 내게 달려들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곱게 된 화장이 번져 제 누이를 망가지게 만들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날을 세운 내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이 나를 바라본다. 그래요, 나를 바라봐줘요.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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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오늘은 야채샌드위치 해봤어요.같이 먹을래요?"
대답이 없다.
다시 한번 그를 흔들었다. 그는 눈을 감은 체 대답을 하지 않았다.행여나 샌드위치가 마음에 들지않는가싶어 다른 샌드위치를 만들어왔지만 그는 답이 없었다. 흔들어도 그는 내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며 눈길 하나 주지않았다. 신경질이 나 그대로 그의 입술을 파고 들었다. 혀 또한 따라오지 않는다. 미친 사람처럼 그를 마구 흔들었다. 그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주머니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각 서
「 본 조규현군은 변백희양과의 결혼을 하게되 변백희양의 (남)동생 변백현군과의 일체 만남을 금한다. 결혼 후에 만나지 아니하며 이에 불행할경우 변백현군의
신변은 보장할 수 없다. 조규현군은 변백현과의 만나는 행위, 비밀리에 연락하는 행위를 어길 시 목숨을 담보로 내놓을것을 이에 .. 」
눈물도 나지 않는다. 헛웃음이 터져나왔고 거짓말이라고 그를 흔들어보인다. 그는 내게 결국 눈을 보이지않고 미소도 보이지 않았다. 내 사랑하는 사람아.마지막 입맞춤을 하려 할 때 문이 열렸다. 안되, 아직은 안되.
“변백현씨, 살인 및 시신유기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안되. 형, 나 무서워요.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