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똑똑똑-
"약은 드셨어요?"
"......"
"3시에 약 드시라고 했잖아요. 자꾸 이렇게 말 안들으시면 회복 어려워요. 꼬박꼬박 챙겨 드세요."
내가 이 병원에 입원한지 세 달이 되었다고 했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는데...
차에 치일 뻔 한 나를 누군가 구해주었다고 했고, 날 구해준 사람은 황민현.
내 남자친구라고 했다.
"황민현...황민현..."
"너무 생각하려고 애쓰지않아도 돼, 여주야"
"아...민현아 오늘은 일찍 왔네?"
"응. 학교가 일찍 끝났어. 여기. 일기장 다썼다고 해서 하나 사왔어."
"아 고마워 매번..."
"에이~~또! 또! 고맙기는 친구끼리. 뭐 더 필요한건 없고?"
친구끼리...친구끼리...
"응....ㅎ 미안해 민현아..."
"...뭐가 미안해 또...그런 말 하는거 아니라고 했잖아."
"그냥...남자친구라고 했는데...기억이 안나서...니가 친구라고 하잖아..."
"괜찮아. 여주야. 아 맞다 나 모레 가족들이랑 여행이 잡혀서 몇일 못올꺼야...미안..."
"아 아니야...! 괜찮으니까 재미있게 놀다와!"
"걱정돼네....심심하거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구"
"응 ㅎㅎ"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발령받은 아빠를 따라 강원도로 이사를 왔다.
"안녕 넌 이름이 뭐야?"
"김여주야..."
"반가워 친하게 지내자. 난 김종현이야.ㅎㅎ
여주 너 집이 어디야? 이따 같이 가자 데려다줄게. 아 아직 이건 좀 부담스러운가...?ㅎㅎ
그럼 집은 나중에 가구. 아! 강아지 좋아해? 난 고양이가 젤 좋은데ㅎㅎ"
"여주야 밥 맛없어? 왜 이렇게 못먹어? 우리 학교 급식 맛있는데ㅠㅠ"
"...으응.아니야..."
"어? 여주 너 복숭아 좋아하나보다?? 이건 다 먹었네?? 내꺼두 먹어!!"
"아..괜찮은데..."
"에이~~사양말구. 꼭꼭 씹어먹어!"
"아...고..고마워..."
환하게 웃던 그 아이의 모습.
또 그 꿈이다.
"김종현...."
김종현이 누구냐 민현이에게 물을 때마다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근데 어째서 매번 같은 사람이 나오는거지...
"아 몰라 몰라. 걔 엄청 오지랖이네. 내가 딱 싫어하는 스타일이야."
'여주야 나 제주도 가는 중ㅠㅠ'
"아 맞다. 민현이 가족여행 간댔지...몇일동안 좀 심심하겠네"
'똑똑똑'
"저기...안녕...들어가도 될까...?"
처음보는 사람이다. 교복...명찰...민현이랑 같은 명찰이다.
...최민기...?
"그...잘 지냈어...? 얘기 들었어..."
"아...응..."
"몸은 좀 어때...?괜찮아...?"
"...응.괜찮아..."
"아...그렇구나...다행이다...ㅎㅎ"
"저기....나...너랑 친했었어...?"
"아...으..응!! 그럼 친했지 ㅎㅎ"
"아ㅎㅎ 그렇구나....미안 ㅎㅎ"
"에이 괜찮아 괜찮아~~ 그.... 나 다음에 또 놀러올게. 안녕!!"
갑자기 그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니면 물어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저..저기 민기야..."
"...응? 왜??"
"...너 혹시...김..종현이라고...알아...?"
김종현이라는 이름을 뱉은 순간. 그 아이는 놀란 얼굴로 날 봤다.
"혹시....기억 났어...?"
"응....? 알아??"
"그럼 알지...친했으니까...여주 너랑 제일 친한 친구였잖아"
"나랑...제일 친했다구...? 근데 민현이가...."
"...황민현...? 너 황민현은 기억나??"
"...그거야 민현이가 맨날 오니까...그럼 혹시 민현이도 종현이란 아이...알아?"
"...걔 종현이 모른다고 했니... 설마? 그럼 그렇지...ㅋㅋ
아 맞다 나 오늘은 가봐야할 데가 있어서...
이거 내 번호니까 궁금한 거 있음 연락해. 또 보자"
그리곤 빠르게 병실을 나갔다.
어딘가 의아한 그 아이의 반응...그리고...
김종현...
황민현은 왜 그를 숨겼을까...
또 그 아이 꿈을 꿨다.
그런데 오늘은 내용이 좀 달랐다.
"오빠 왔다~~!!"
"오~~김종현!! 또 복숭아 사왔넹 ㅎㅎ 맛있겠당ㅎㅎ히히"
"그렇게 좋냐?ㅋㅋ넌 나보다 복숭아가 더 반갑지?"
"ㅋㅋㅋ어? 들킨건가...?ㅋㅋㅋ근데 김종현 넌 복숭아가 왜 그렇게 좋아? 맨날 복숭아야."
왜 복숭아가 제일 좋으냐 물으면 너는 내게 매번
"니가 제일 좋아하잖아."
라고 대답했다.
"뭐야 그게 ㅋㅋㅋ 니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ㅋㅋㅋ"
"ㅋㅋㅋㅋ들킨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김종현ㅋㅋㅋ"
나는 그 꿈을 꾼 날 이후로 복숭아를 먹지 못했다.
복숭아만 봐도 니가 떠올랐다.
두 손에 비닐봉지를 든 니가.
복숭아가 가득 들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니가.
비닐봉지를 살짝 들어올리며 '오빠 왔다' 고 웃음 짓던 니가.
몇일을 고민했다.
곧 민현이가 온다. 고민할 시간이 없다.
민기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 민기가 병실로 찾아왔다.
"얘기...해줄 수 있어...? 종현이 얘기..."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종현이 걔...널 누구보다 아꼈어.
어떻게 아냐고?
널 쳐다보는 눈빛엔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거든.
혹시 사고난 날 기억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날 갑자기 비가 많이 왔어.
넌 그 날 황민현이랑 처음 데이트하는 날이라고 엄청 들떠있었고.
니가 걜 엄청 좋아했었거든.
종현이는 우리랑 피씨방에서 게임하다가 내가 비온다는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너한테 우산가져다 주겠다고 막 뛰쳐나갔어.
넌 신나면 아무것도 눈에 안보이는 스타일이라고...
분명 우산 안챙겼을거라고ㅋㅋ
이건 종현이 피셜이야."
"ㅋㅋㅋ그래 맞아."
"근데 황민현이 약속 장소에 안나왔었나봐.
사실 걔...너 엄청 귀찮아...했었어...이런 얘기해서 미안.
종현이가 건너편에 있었는데 니가 엄청 울면서 서있더래.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자마자 종현이는 너한테 뛰어갔고, 너도 길을 건넜어. 그런데...
화물차가 너에게로 달려왔어.
브레이크가 고장났었대.
너희 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졌고.
종현이가 널 안은채로...."
울었다. 그 아이가.
얼굴보다 큰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엉엉 울었다.
나도 울었다.
응급실 앞에 서있던 민기의 한 손에 있던 종현이의 가방과
다른 한 손엔 내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 피씨방 오는 길에 샀었다는
복숭아가 들은 검은 봉지.
그게 그려져서.
민기가 간 후, 황민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여주야 무슨 일 있어??"
"......민현아..."
"응 무슨 일이야?"
"왜 숨겼어...?"
"...응...?"
"종현이...왜 말 안했냐고..."
"여주야...나 지금 갈게. 조금만 기다려.응?"
"아니...오지마."
"여주야...침착해. 누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니 남자친구는 나야."
"거짓말치지마......왜 내 남자친구라고 속였어? 왜 종현이 모른다고 했냐고!!!"
".....그래. 그래서 이제와서 뭐 어쩌게? 걔 죽었고 니가 좋아했던 건 나야. 여주야."
"....하....너...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마. 이젠 니가 죽도록 미워."
민기와 함께 종현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아 민기야 나 종현이 보러 처음가는건데 뭐라도 사가야 되는거 아니야?"
"맘대루!! 뭐 사가게??"
갑자기 떠올랐다.
많고 많은 과일 중 하필 나랑 같은 복숭아를 좋아하던 니가.
"음...복숭아 사갈까?"
"복숭아...? 갑자기 왠 복숭아?"
"그야 종현이가 복숭아 좋아하니까"
"엥...? 종현이 복숭아 알레르기 있는데?"
"야!!! 김여주 얼른와!! 신호바뀐다...!!"
너는 오늘도 날 울리는구나. 종현아.
복숭아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