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이 참지마, 못봐주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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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택의 울어. 라는 말을 신호탄으로 나는 흐르다못해 뿜어져나오는 눈물을 두손으로 가리며 꺽꺽 울어댔다.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이제 출발선에 섰을뿐인데, 이미 결승점은 어디 멀리 가버리고 없다. 억울해.. 짝사랑이 이렇게 괴로운 건지 처음 알았다.
영택은 당장의 눈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주가 너무나도 작고 외로워보임에 꼬옥 품에 넣어버린다. 위로인지 사심채우기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홀로 서서 우는 여주가 위태로워보여 안아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거봐, 계속 참고있었으면 더 못봐줄뻔했어."
"...."
"맘껏 울어, 그리고 다 털어버리자."
울고 있는 너를 품에 더 끌어안는 게 왜 이리 나한테는 아프게 다가오는지.
***
"야, 김여주. 너 영택이랑 싸웠냐?"
"..아니?"
"근데 왜 요즘 영택이 잘 안 보이냐. 맨날 너랑 있을 때면 영택이를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데-"
"야..! 넌 그런 거 때매 나랑 친구 하냐?"
"말이 그렇다 이거지, 말이 하하하.."
안 싸웠다, 뭐.. 그냥 좀 얼굴 보기가 그래서 좀 피해다닌거거든..
불과 며칠 전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김지범에게 고백하려던 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뻥- 차여버리고, 실연이라는 게 이런건가.. 하는 울적함에 손영택 앞에서 펑펑 울어버리고 진정된 마음으로 정신을 차려보니 손영택 품 안에 안겨있었다. 내 두 손은 손영택 가슴팍에 고이 올려져 있고, 내 머리와 허리부근에서 온기가 느껴졌던 걸 보면 손영택의 양 손은 거기에 올려져 있었겠지.. 문제는 그게 아니다. 한참 정신없이 울 때는 몰랐는데 갑자기 정신이 차려지니까 안 들리던 심장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한 게 지금 이 상황의 발단이었다. 심장박동이라는 게 미친듯이 두근두근 거리는데 이게 내 심장소리인지, 손영택 심장소리인지 분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가까워서, 그래서..
네가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미 김지범은 내 머릿속에서 구석으로 몰린지 오래다. 손영택이 한 번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하니까 끝도 없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옆에서 걷고 있는 손영택이 갑자기 신경쓰여서 삐걱대다가
'김여주, 왜 이렇게 삐걱대.. 많이 힘드냐.. 집 가서 좀 쉬어라..'
라고 손영택한테 들키고.. 그 후로는 손영택을 보면 내 얼굴이 나도 모르게 막 달아오르는 것 같아서 요즘 영택이를 피하고 있다.. 나란 애는 참 왜이런지,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걔는 당연히 생물학적인 남자, 나도 당연히 생물학적인 여잔데, 그게 왜 새삼스럽게 느껴지는걸까.. 그래도 남자 여자가 막 안고 그러는 건 친구여도 안 하는 짓이잖아. 아니야, 영택이는 아무 사심없이 그냥 오랜 친구가 힘들어하니까 안아줬겠지.. 내가 다 밝히는 년이라 그래.. 아니 원래 내가 이렇게 막 쉽게 얼굴 빨개지고 그런 사람이 아닌데, 스킨십에 약한 건가. 이러면 내가 완전 생각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다 좋아하는 거 같잖아.. 아이.. 진짜 미치겠네. 지금와서 남자로 느껴져도 뭐 어쩔 건데, 김여주? 그냥 일시적인 거니까 빨리 가라앉히고, 얼른 예전처럼 돌아가자.
"야, 여주야. 영택이가 너 찾아왔는데?"
"어?"
왓 더... 어떡하지, 어떡해야 될까. 내가 계속 피해다녀서 화 났나..? 그 날 너무 내가 민폐였는데 사과를 못 해서 화 났나..?여주야, 당황하지 말고 생각해보자. 그래, 저기 복도에서 날 기다리는 건 손영택이 아니야. 우리 엄마야. 그렇게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면 돼.
"저기.. 영택아.."
"..화, 났지.."
"응."
"미안, 영택아.."
"잘 알고 있으면서 너 왜 자꾸 나 피하는거야. 무슨 일 있어?"
"흐익-"
걱정을 잔뜩 담은 눈으로 몸을 숙이며 얼굴 가까이 다가와 물어보길래 손영택의 뜨거운 숨이 내 눈 언저리에 닿아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내며 영택이를 밀어내버렸다.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마음이 갑자기 흐뜨러지면서 얼굴이 또 달아오르는 느낌에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여 영택이에게 보이지 않게 했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그 날 너 허락없이 안아서 그래..?"
"그게 아니ㄹ,"
"미안, 이제 앞으로 너 안 건드릴게. 그러니까 우리,"
"야! 왜 사람 말을 끊고 그래! 그런 거 아니라고 했지."
"그러니까 우리-? 뭐, 뭐! 서로 모르는 척 하자고?"
"너 화난 건 알겠는데, 이 쪽도 이 쪽 나름의 사정이 있단 말이야!"
"내가 그 날 이후로 미쳤는지, 갑자기 네가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했단 말이야..!!"
"...?"
"그래서 평정을 찾고 얼마나 아무렇지 않은 척 할려고 했는지 넌 모르지?"
"아니, 여주야.."
"맨날 니 얼굴만 보면 막 미친듯이 얼굴이 달아올라서 너한테 들킬까봐 힘들게 피해다녔구만 그걸 못 기다리고 연 끊자는 말이 나와?"
"그게 아니라, 여주ㅇ,"
"그래, 내가 너 모르는 척 한 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근데 넌 우리 사이가 그렇게 쉽게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그런 사이였냐? 그냥 친구도 아니고 말하자면 불알 친구를!"
"김여주, 지금 목소리가 너무 커.."
"뭐래! 됐어, 내 이름도 부르지마. 목소리가 크면 얼만큼 크다고...."
아 큰일났다. 또 사고쳤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옆반이든, 우리반이든 어느새 다 복도로 나와서 수근대며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몇몇은 소리지르고 난리가 났다.. 내 인생 18년만에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아-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 거기 숨고 싶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창피한 기분에 얼굴 근육까지 마비되는 걸 느낄 즈음 손영택이 내 손을 붙잡고 휘적휘적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다른 데로 가자, 조용한 데로."
***
힘겹게 많은 인파를 뚫고 아무도 없는 음악실로 들어갔다. 이제 정말 단 둘만 있다. 무슨 얘길 해야하는 거야, 난 아까 다 했는데. 나를 데리고 온 거 보면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나.. 뭐, 석고대죄라도 시킬려나..
"김여주, 너 아까 뭐라고 했더라."
"..뭐."
"내가 남자로 느껴진다고?"
"..그럼, 니가 남자지, 여자로 느껴지냐?"
"아이, 진짜. 나 생각하면 얼굴이 막 빨개진다며."
"..뭔 소리래, 이해를 잘 못하겠네..?"
"네가 너무 좋아."
"..."
"이 말도 이해 못 하겠어?"
"..."
"네가 여자로 느껴지고, 너만 생각하면 막 심장이 두근거리고,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고, 네가 너무 예쁘게 느껴지고, 네가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좋대도 네가 너무 좋아서 너를 싫어할 수 없고, 네가 울 때는 안아주고 싶은 그런 거야."
"네가 너무 좋다고."
"네가 너무 좋아, 김여주"
"우리 사귀자."
네가 너무 좋아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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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오이입니다!
오늘, 저번에 썼던 '네가 너무 좋아'의 뒷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어떠신지요? 꺄-
처음부터 단편으로 생각했지만 THE END를 막상 쓰니 시원 섭섭하네요!
곧 또 다른 글들로 찾아오겠습니다.
(목 마른자가 우물 파는 법이지요)
사실 뒷 이야기가 머릿속에만 맴돌아서 쓸 엄두를 못 냈었는데
야금야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감동)
그 때부터 갑자기 막 전투의욕이라고 해야하나 무튼 막 불타올라서 써내렸는데, 재밌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 굉장히 감사드립니다!!
그럼 댓글쓰고 구독료 받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