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내가 왜 친구야?
Writer. 저편
적신 물수건을 가지고 다시 박우진의 방에 들어갔을 때 결국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하루종일 자기 좀 챙겨달라고 사람 심장 다 때려팰 때는 언제고, 푹 잠이 든 듯한 모습이다. 넌 이 상황에도 잠이 오는 구나. 그래, 아픈 게 구라는 아니다 이거네. 발소리를 죽이고 녀석의 곁으로 다가가 이마에 물수건을 살짝 얹었다. 차가운 게 이마에 닿자 인상을 살짝 찌푸리는 게 강아지 같다. 얘도 잠들었으니까 나도 이제 집 가야지, 조용히 방을 나가려던 순간 날 불러오는 네 목소리에 발이 묶인다. 야. “...뭐야, 자는 거 아니었어?” “좋다.” “...뭐?” “좋다고.” “.......” “니가.”09 너를 내가 많이
박우진이 폭탄발언을 내놓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니, 그... 일단 너무 당황했고 나는. 내가 아는 박우진은 그렇게 훅 들어올 만큼 거침없는 성격이 아닌데. 내가 여태까지 잘못 알았던 건가. 머릿속이 실타래가 엉킨 듯 마구 복잡해졌다. ‘좋다고.’ ‘......’ ‘니가.’ 와, 씨발! 결국엔 덮고 있던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불과 몇 시간 전 일인데 벌써부터 머리가 이렇게 복잡해지면, 내일은 얼마나 더...... 아, 하여튼 난 얘 때문에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다 보니까 짜증나네. 오늘 하루동안 자기 보살펴 달라고 실실 웃으면서 말하던 녀석의 아픈 얼굴이 눈앞에서 둥둥 떠다닌다. ......끼 부리는 거 봐라. 진짜... 내가 말은 안 했지만 아까 정말 충동적으로 뽀뽀라도 할 뻔... 나 지금 뭐라는 거야? 횡설수설, 누가 봐도 지금 내 모습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일 게 뻔하다. 어느덧 시간이 12시가 되었다. 내가 평소 자는 시간에 비하면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왜 이리 시간이 달팽이처럼 느리게 사는 건지. 그나저나 박우진은 지금쯤 괜찮으려나. 아직 아픈가... 슬슬 녀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좋아, 잠도 안 오겠다. 철판 딱 깔고 OOO! 아까 들은 말은 못 들은 것처럼. 태언하게 페메를 보냈다. 야 자냐? 그렇지, 정말 나는 아까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어떤 반응을 보였었는지 전혀 모른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하는 이런 말투...... 후, 내가 진짜 이 야밤에 뭘 하는 건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알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네 씨발...... 혼자 지랄발광을 하고 있으면 녀석에게서 늦지 않게 돌아오는 답장. 안 자 야 근데 니 우리집에 크로스백 놔두고 갔다 안 잔다는 답장을 볼 때까지만 해도 나름 평온한 심정이었는데 두 번째 메시지를 본 순간 사고회로 올 스탑. ......이 말은 내가 가방을 가지러 내일 쟤네 집에 또 가야 한다는 뜻...? 그대로 이마를 짚고 침대에 엎어졌다. 좆됐다... 아직 얼굴 보는 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쩐지 쎄한 느낌이 드는 게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야. 안 만나고 싶어요... 오늘 잘 수 없어요... 아, 뭐 혼자 고뇌할 시간도 없이 또 페메 알림이 울린다. 침착하자, OO아. 안 그래도 할 얘기 있는데 내일 잠깐 만날까 우리 얘기 좀 해야 하지 않나 ㅋㅋㅋㅋ***
[ ......실화입니까? ] “실화입니다... 나도 아직 실감이 잘...” [ 와, 결국 박우진도 너한테 마음이 있었는데 표현을 못 했다! 이거네 이거야. ] “...그게 해석이 그렇게 되나.” [ 누가 들어도 그렇게 됨. ] 박우진을 만나기 한 시간 전 쯤 천유림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렸다. 당연히 내 얘길 듣고 자지러지게 놀라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천유림이 웃겨서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통화했나, 슬슬 박우진이랑 만날 준비를 하려고 전화를 끊을 때즈음 천유림이 한 마디 했다. [ 야, 이번엔 꼭 오래 가라! ] 오래 가긴 개뿔, 사귀지도 않는데. 결국 픽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무슨 일이야 진짜. 지금 이게 다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정리가 안 된다. 너무 갑자기, 너무 많은 일들이...... 물론 나쁜 쪽이 아님에 감사해야겠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좋은 상황이니까. 오늘 만나면 박우진은 내게 무슨 말부터 꺼낼까. 나는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앞으로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잘 되는 건가? 얼마 준 같았으면 생각도 못 할 것들이 성큼 눈 앞에 다가와 있으니, 그 낯익은데 낯선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설령 돌아간다 해도. 미적지근했던 그때와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까? 다시 그렇게 말만 연애인 그런 연애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직 만나기도 전인데 괜한 걱정만 쌓인다. 그렇지, 이건 그냥 내 김칫국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약속시간 5분 전, 미리 박우진의 집 앞에 가서 기다린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나 엄청 어색할 것 같다. 초조한 마음으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누군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올 것이 왔구나. “어, ㅇ, 왔네!” “잘 잤나 밤에.” “다, 당연하지!” “말을 왜 이래 더듬는데.” 그러면서 내 머릴 쓰다듬는 박우진이다. 김칫국이고 뭐고, 오늘 진짜 무슨 날이 될 것 같긴 한데. 심장아... 제발 나대지 말자. 너만 가만 있으면 모든 건 무사히 지나가는 거야. 그렇게 내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 가는데 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얼굴에 웃음만 가득하다. 왜 저러는 거야... 나만 심각한가 보다. “그래서 내 크로스백은?” “나중에 가시 집 올 때 줄게.” “지금 어디 가는데.” “그냥 좀 걷자. 오늘 날씨도 좋고, 어디 들어가 있기는 시간 아깝지 않나.” 그러게, 그러고 보니 오늘 날씨 진짜 좋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구름도 적당히 있고 하늘은 파랗고. 어쩐지 데이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 줘서 설레이는 건 덤. 이 분위기를 타 녀석이 어깨동무한 팔을 풀더니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문득 스치는 바람에 흩날린 머리를 정리하려 손을 무의식적으로 빼려던 순간 박우진은 그런 내 손을 아예 깍지껴 잡아버리더니 자기 반댓손으로 내 머리를 정리해 준다. ...아, 더는 안 되겠다. 지금 이게 뭔데. 난 잡힌 손을 억지로 빼내고 녀석을 올려다봤다. 그 와중에도 실실 쳐 웃고만 있는 넌씨눈 박우진에게 최대한 표정을 굳히고 말을 꺼냈다. “너 뭐냐?” “뭐.” “왜... 왜 막 어깨동무하고, 손 잡고. 뭐하는 거야.” “원래도 자주 그랬었잖아.” “...아, 그건 그랬지...만...” 씨발, 실수다. 얘랑 나랑 너무 친해서 이런 스킨십 정도는 항상 하던 거였는데. 너무 긴장하고 있던 탓인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결국 난 과민반응한 게 되어버렸고. ...어, 이 분위기 어쩌지. 녀석의 표정이 그닥 유쾌해 보이진 않는다. 난 눈치를 본다. 뭐라도 얘기를... “어? OOO!” 하필 이 타이밍에 눈치없게도 배진영이랑 박지현이 등장했다. 날씨가 좋으니까 얘네도 연애질하러 나온 게 틀림없다. 쌍으로 커플 남방까지 맞춰 입고, 웃기지도 않는다. 내가 ‘너넨 뭐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엔 아랑곳하지도 않고, 박지현은 되려 나와 박우진을 보더니 박수를 친다. “미친, 역시 이 둘이 쿵짝쿵짝 맞네맞네!” “야, 뭐라는 거야 미친......” “어차피 간부수련회 이후로 애들 다 너네 사귀는 줄 알어. 너네만 몰라 바보들아.” “오, 잘 될 각이네. 롱런해라! 우린 여기서 눈치껏 빠지자.” 배진영과 박지현이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더니 그 손을 그대로 잡고 저 멀리로 사라진다. 잠깐 등장했는데 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지셨다...... 남은 적막적인 분위기 (?) 를 정리하는 것은 순전히 내 몫으로 돌아왔을 테니, 일단은 뭐든 행동을 하자.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박우진이 내 팔목을 잡아세운다. “...ㅁ,” 쪽. 입술이 짧게 닿았다 떨어진다. ......뭐지? 너무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당황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녀석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또또 쪽, 입술이 짧게 붙었다 떨어진다. 오, 심장 새끼가 터지려고 한다. 위기다. 갑자기 난데없이 이게 뭐람.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내가 여전히 벙찐 표정으로 녀석을 보고만 있자 씩 웃어보이는데, ...아 뭐 저렇게 잘생긴 인간이 다 있냐 씨발. “자, 선택해라.” “......어, 어?” “지금처럼 자주 손잡고 어깨동무 같은 거 자연스럽게 하는 친구로 계속 지낼래, 아님.” “.......” “더 자주 손잡고, 어깨동무도 하고, 뽀뽀도 하고.” “...뭐?” “그런 사이로 지낼래.”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잠시 생각했다.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 말을 하는 네 표정이 모든 걸 설명하고 있었으니까. 나름의 고백이었다. 네가 날 좋아한다는 표현의 결과물. ...이거 지금 고백인 거야? 내가 안 그래도 동그랗게 뜨고 있던 눈을 더 크게 뜨고 그렇게 묻자 박우진이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우고 허리를 살짝 숙여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눈높이가 맞아졌다. 녀석이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니 예전에 우리 사귀었을 때 기억하나.” “응.......” “그때 니 내가 니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했제.” “...맞잖아 그거.” “아니다. 나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섞고 계속, 계속 니 좋아했다.” “......” “사실, 그 전부터도 계속.”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나를 네가, 좋아했다고? 그것도 계속? 거짓말 같은 이야기의 연속이었지만 내게 말하는 네 얼굴에 진심이 가득 담긴 걸 보고도 내가 계속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언제까지나 네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나였으니까. “니보다 좀 더 늦게 시작했지만, 그땐 나도 병신 같이 니 맘도 모르고 니 울리고 그랬지만.” “.......” “이젠 니도, 내도 좋아하는 거. 다 알면서 어째 친구를 하겠는데 우리가.” “...야 박우진......” “진짜 연애하자. 내가 잘 할게.” 펑. 그 말을 들은 순간 웬일인지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런 내 눈물에 당황한 건지 박우진이 놀라 곧장 큰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았다. 뭔데, 니 우나? 아, 왜 우는데! 혼자 소리치다가 결국엔 픽 웃으며 나를 품에 꼭 끌어안는다. 내 뒷머리를 자신의 쪽으로 완전히 끌어당기는 네 손길에, 짙게 닿아오는 네 향기에 더 북받쳐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참 나, 나 박우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큰일이다. 좀 덜 좋아하고 싶은데. 내 두 팔이 자연스럽게 박우진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활짝 웃어버렸다, 울면서. 돌고 돌아 맞닿은 진심이, 다시 서로에게 번지는 순간이었다.더보기 |
와 안녕하세요 여러분... 되게 오랜만이네요... (만날 때마다 오랜만임) 꺼이꺼이 현생과 시험에 치여 살다 보니 어느덧 너왜친을 마지막으로 올린 건 두 달이 훌쩍 넘어버린... 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시험이 정말 폭 망 했기 때문에 멘붕에 빠진 상태로 글을 썼는데... 네... 이건 오늘 글이 (존나) 똥글이라 변명하는 거 맞습니다... 다음 편이 완결이라고 했지만...! 이 글은 여기에서 끝이고...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당 히히 뒷내용은 그냥 우진이랑 여주랑 행복하게 잘 살았다! 네 그거에요 히히 첫 글이라서 추억이 많은 글이네요 사랑해주셔서 넘 감사드리고,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독자님들... 만세만세 (´°̥̥̥̥̥̥̥̥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