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잔보스 통학러
그렇게 우리는 워터파크로 엠티를 가게 되었다. 일학년 엠티 갔을 때 안 좋았던 일들이 생각나서 여행용 가방 가지고 갈까 했지만 그냥 캐리어를 끌고 갔다. 택시를 타고 갔더니 예상 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해버렸다. 아, 학생회 보다 더 일찍 도착한 건 아니겠지. 진짜 내가 일빠면 너무 슬플 것 같은데.
"어? 여주 빨리 왔네."
"여기 오빠밖에 안 온 거에요?"
"응. 경리랑 재현이는 학생회실에 있어. 비품 가져와야하거든."
"아아, 버스도 아직 안 왔네요?"
"정시에 올 것 같아. 밥은 먹었어?"
"간식 챙겨와서 안 먹고 왔어요. 오빠는요?"
"나도."
으으, 어색해. 수영이한테 언제 오나 전화를 해봤지만 그녀의 전화답게 함흥차사였다. 그래서 수영한테 전화를 했더니 경리한테 붙잡혀 있다고 했다. 아, 박수영 경리 언니 노예였지. 경리언니랑 술 마실 때 실수한 전적이 있어서 그녀는 가끔 학생회 일을 돕는다고 들었다. 임영민도 덤으로.
"일은 다 끝났는데 비상 생리대 사야해서 영민이라도 내려보낼게."
"응응. 빨리 와."
"수영이?"
"네. 지금 학생회 일 끝났다고 영민이 내려보낸대요."
"아쉽네. 그나저나 영민이가 누구야?"
"친구요."
영민이가 오자 어색함이 두 배로 됐다. 친구사이이긴 하지만 이렇게 오래 둘이 있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수영이 친구였던 터라 만나면 수영이랑 같이 만났지, 둘이 만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 분 뒤에 수영이가 와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겨울 날씨를 빨리 느낄 뻔 했다. 뒤이어 사람들이 대부분 도착하자 경리 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버스는 총 두 대로 가기 때문에 제비뽑기로 짝꿍을 정하겠습니다."
"경리 누나 그러면 동성끼리 앉아요?"
"아뇨. 이성끼리 앉습니다. 친목하러 가는데 굳이 동성? 아니죠. 씨씨도 만들어야 대학 생활 잘했다하는 거죠. 그렇죠?"
미쳤다. 사람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함성질렀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안 왔지. 하지만 제비뽑기는 이미 남자들에 의해 실행되고 있었다.
"160328 박수영!"
"네!"
"알지?"
"알죠, 알죠. 잘해보자구요, 선배님."
뭐야, 원래 알고 있었던 사이였어? 뭐지. 같은 조라도 됐던건가. 아, 몰라. 난 남자랑 조별과제는 물론 조별 토론도 해본 적이 없는데. 차라리 영민이라도 걸렸으면 좋겠다. 아니면 민현오빠라도…. 앞을 보니 영민이가 나와있었다. 영민이가 뽑은 종이는 동기인 유예주였다. 그렇게 하나의 동아줄이 날아가버렸다. 그렇다면 민현오빠는...!
"……170548 강주연?"
"네!"
"아, 병신새끼. 내가 누구를 위해 제비뽑기를 해놨는데."
옆에서 민현오빠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경리언니였다. 뭐야, 이게 민현오빠를 위해 만들었던거였어? 아, 역시 민현오빠가 수영이를 좋아하는 게 맞는건가. 그래도 이미 예상한 터라 전보다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내 짝꿍은 이제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되겠구나.
"160330 김여주 선배님!"
"헐, 미쳤다. 대존잘. 김여주 계탔네."
"황민현, 존나 지리겠네."
애잔보스 통학러
진영이는 내게 뭐가 그리도 궁금한건지 버스타는 내내 내게 질문만 했다. 오티, 신환회, 새터 등 학과 행사에서 본 적이 없는데 원래 과행사를 싫어하냐는 둥, 술은 잘 마시냐, 이번 체육대회 때 올거냐는 둥……. 안 그래도 바로 건너편에 민현이 오빠가 있어서 불안해 죽겠구만. 옆 상황을 보니 나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주연이라는 애도 호기심이 많은건지 민현 오빠에게 계속 질문을 쉴 틈 없이 했다. 과씨씨 해봤어요?
"아니."
"그러면 과씨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하는 거지, 뭐."
"우리 과에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진실 게임도 아니고, 나중에 물어봐. 진실게임 하면."
내가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걸 알아챈 건지, 그 말을 하면서 민현이 오빠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진영이가 나를 불러서 진영이에게 고개를 돌려 안 들켰지만 들켰으면 진짜 민망할 뻔…. 그래도 진영이가 말을 걸어준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숙소에서 조별로 생활해야 한다면서 조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나 빼고 다 학생회 사람들인데? 학생회는 조 없는 거 아니었어?
"9조 정재현, 박수영, 박경리, 임영민, 황민현, 강주연, 배진영, 김여주."
우왕, 어떻게 조가 이렇게 짜여지지. 분명히 조는 전 날에 짰다고 했는데 경리언니랑 영민이 빼고는 다 짝꿍이랑 같은 조가 됐다. 버스에서 짐을 내리는데 내 캐리어를 영민이가 꺼내줬다. 내가 꺼낸 김에 내가 끌고 갈게. 어? 내 짐 별로 무겁지 않아서 괜찮아. 아, 괜찮은데……고마워.
"오, 임영민 남자네, 남자. 이 새끼는 멍석을 깔아줘도 못하는데."
"닥쳐, 정재현."
"형한테 닥치라니. 민현아."
"맞아. 솔직히 정재현 까방권 천 개는 줘야돼. 지금 누구 때문에 호화로운 엠티를 가는건데."
경리 언니의 말에 두 귀를 의심했다. 뭐야, 그러면 조교 오빠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민현 오빠가 아니라 경영학과 학생회장이었어? 그런데 굳이 이렇게 세 과를 모여서 가는 이유가 뭐였을까. 그것도 민현 오빠에게 멍석을 깔아주면서. 그래놓고 정재현과 박수영은 뭔가 작당모의를 하는 것 처럼 팀워크가 잘 맞는데. 이미 내정된 엠티였으면 짝꿍부터가 정재현, 박수영이 아닌 황민현과 박수영이었어야 하지 않아? 아, 그래서 경리 언니가 민현 오빠에게 병신이라고 욕한거였네.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고기랑 술 챙겨와라. 여자들은 채소 좀 씻어줘. 레크레이션 끝나고 바로 고기 먹게."
경리 언니 말에 영민이와 진영이는 밖으로 나갔고 민현 오빠는 뭐 챙길 것 있다면서 같이 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주연이는 혼자 일학년이라 어색해할 것 같아서 좀 쉬라고 하고 우리끼리 쌈 채소를 씻었다.
"진영이 어때? 전에 오티 때 애가 참 싹싹하고 귀엽던데."
"그래서 그런가 나한테 궁금한게 많아 보였어."
"너한테 관심있나보네."
"오바야. 오늘 초면인데."
"야, 주연이는 대놓고 민현 오빠한테 들이대더라. 주연이 이미 민현 오빠 찾으러 나갔을걸?"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는데 분명 방금 전 까지 핸드폰 하고 있던 주연이는 밖으로 나갔는 지 사라지고 없었다. 봐라.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 거라고. 수영의 말이 일리가 있지만 어차피 민현 오빠는 확실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뭐. 내가 노력해봤자 달라질 게 있나 싶다. 짐을 두고 레크레이션 시간까지 자유 시간이 있어서 수영이는 예주를 보러 갔고 나는 부모님께 전화하려고 방으로 들어갈 찰나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레크레이션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재현 선배와 경리 언니가 있었다. 방은 하나 밖에 없고 복도는 짐을 들고 오는 남자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어찌할 줄 몰라 결국 대화가 끝나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굳이 내가 껴들 필요가 없겠는데. 영민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진영이도 있었네."
"네가 가자 해놓고 왜 안와. 그럼 더 이상해지지."
"아, 그러네. 안그래도 아버지가 너랑 황민현이랑 같이 인증샷 찍으라고 하시더라."
"생일 선물을 연합엠티 하자는 새끼는 너 밖에 없을거다. 또라이 새끼."
"왜, 재미있잖아. 황민현 삽질 하는거."
그러네. 아무리 학생회비가 많다고 하더라도 워터파크와 리조트 숙박비와 식비가 무료 제공이라니 말이 안되잖아. 하지만 곧 들려오는 재현 선배의 한 마디가 이 상황의 의문점들을 해결시켰다. 황민현의 삽질을 위해서 재현 선배는 부모님께 생일 선물로 연합 엠티를 추진 시켰고 그래서 조교 오빠는 정재현의 행동을 돈지랄로 칭했고 황민현은 정재현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제대로 삽질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대화가 끝난건지 둘은 잠잠해지자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베란다 좀 쓸게요. 어? 우리 여주 후배 담배 펴요? 아, 아니요. 잠시 전화 좀 하려고…. 아, 정재현 미친놈아, 여주 언제 봤다고 네 우리 여주야. 친한 척 하지마, 정재현. 얘가 술 취하니까 못할 말이 없네. 여주야,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전화하고 와. 알았지?
격양된 경리 언니 목소리에 의심을 안할 수 없지만 어차피 건물이 달라서 엠티 이후로 그렇게 많이 볼 사람도 아니고 해서 언니 말에 알았다고 하며 베란다로 나갔다. 5분 정도 있었나 남자애들이 온건지 시끌벅적 했다. 예주와 수영이 목소리도 들려서 나도 얼른 전화를 끊고 애들을 보러 나갔다. 그런데,
"누나, 여기 있었네요. 우리 산책 갈래요?"
"뭐해, 김여주. 게임 안해?"
"여주야. 너 술 못 마신다고 했지. 음료수 사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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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남자들이 늘어나는 건 기분탓입니다.
왜냐하면 진영이가 마지막일 것이거든요.
네, 저 역하렘 좋아합니다. 존중해주시져....ㅎㅎㅎㅎ
그리고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말고도 암호닉 신청해주실 분들은 신청해주세요ㅎㅎ
암호닉은 항상 받을 예정입니다.
♥암호닉 신청해주신 고마운 분들♥
0226 빵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