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Zero
00. prologue
w. 랑두
20XX년 X월 X일의 기록
내게는 임무가 있다. 김종현 꼬시기. 어감이 좀 이상한데, 정확히는 김종현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들을 영구 삭제하는 일이다. 김종현은 절대 그 보고서를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을 테니까, 난 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나는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지금은 그 사람의 옆집으로 이삿짐을 옮기는 중이다. 뭐 이렇게 바깥 세상 구경하는 것도 처음이니 나온 김에 실컷 놀다 갈 셈이다. 오늘따라 하늘이 새파랗다. 바람이 분다. 딱 좋은 온도다. 온도를 느끼고 이를 통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에 감사한다. 임무는 둘째치고, 오늘은 노는 날인가 보다. 소풍이나 가야지!
20XX년 X월 X일의 기록
김종현은 생각보다 성격이 나빠 보이진 않는다. 오늘 아침에 이사떡을 돌리러 갔었는데 꽤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귀엽게 생긴 편, 키는 170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인다. 내가 상상했던 건 험악한 인상에 키는 180을 훌쩍 넘기고,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였는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연구소장치고 너무 젊다는 거다. 어떻게 그 나이에 소장 자리까지 오른 건지 의문이다. 그건 좀 더 얘기를 나눠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20XX년 X월 X일의 기록
확실한 건 김종현이 좋은 사람이라는 거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사실상 그 사람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날 만든 사람은 김종현이 가지고 있던 연구기록을 훔쳐냈고, 그 문서에 쓰여 있는 대로 내 기계심장을 만들어내고 내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고 내 감정과 내 육체를 만들어냈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날 만든 사람은 범죄자다. 지금 내가 수행하고 있는 임무 역시 범죄의 일종이다. 나는 이미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김종현이 그 사실을 모르기를 바란다. 왜지?
20XX년 X월 X일의 기록
연구소에서 호출이 있었다. 내 프로그램을 좀 조정해야겠다고 했다. 내일이면 그 칙칙한 연구소로 돌아가야 한다. 내 몸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기억은 남아 있을까? 내 메모리 자체를 없애버리면 어떡하지? 없애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많다. 불안하다. 불안해 죽겠다. 내가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울었다. 나는, 김종현을 잊고 싶지 않다.
20XX년 X월 X일의 기록
임무가 바뀌었다. 날이 밝는 대로 김종현을 제거한다. 임무 세 번 실패 시, 자폭한다.
20XX년 X월 X일의 기록
[SYSTEM] 데이터 없음.
***
"0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거야. 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때로."
RETURN TO ZERO
prologue_fin.
아직까지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다만 소심하게 남겨봅니다. 최면술사 이후로 글이 도저히 안 써지더라구요. 3편짜리 하나 완결낸 주제에 이른 슬럼프가 찾아왔었나 봐요. 이번에야말로 완결을 볼 생각입니다. 생각보다 짧을지도 모르고 길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둔 이야기와 결말은 다 풀어볼게요. 그 전에 무책임하게 올려놓고 완결 못 냈던 것들은 삭제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봐주시는 독자 분들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암호닉 분들 다들 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