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들어 갈게요-.
난감한 표정의 민석이 문을 살짝 밀어 열었다. 세훈이가 자해를 하려고 해서요, 하는 민석의 말에 준면이 빠르게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역시, 최대한 빨리 세훈의 정신상태를 검사해 봐야겠다. 세훈의 독방으로 향하는 준면의 걸음이 급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지만 가까워질수록 세훈의 악은 더욱 커졌다. 소리소리 지르는 세훈의 목소리에 민석또한 인상을 찌푸렸다.
"소장님!"
"놔! 놔! 더러워, 오메가!"
준면이 세훈을 붙들고 있는 직원의 손을 거칠게 떼었다. 세훈아, 불리어 지는 제 이름에 세훈이 움찔, 몸을 떨었다. 잠시 멈칫하나 싶더니 다시 제 배를 때리기 시작한다. 더러워, 오메가, 난 오메가가 아니야! 죽어! 준면이 무릎을 꿇고 세훈의 앞에 앉더니 세훈을 껴안았다. 힘을 실어낸 세훈의 주먹은 그대로 준면의 등으로 서너번 꽃혔다. 세훈이 엉엉거리며 준면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준면은 세훈을 더욱 끌어안았다. 하나도, 하나도 더럽지 않아. 세훈아, 아니야. 세훈이 당황하며 팔에 실었던 힘을 뺐다. 아니야, 아니야, 더러워. 세훈의 울음이 더욱 듣기 힘들어졌다. 민석이 귀를 막고 미간을 찌푸렸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세훈이 울음을 멈추고 준면의 등에 손을 얹었다. 찬찬히 쓸어내려가는 세훈의 마른 손줄기에 민석이 고른 숨을 밭아냈다. 세훈이 준면을 위로하고 있었다.
*
찬열이 하얗게 튼 볼을 쓰담았다. 미친 꽃미남 얼굴에, 건조함이 가득하다니-, 중얼거린 찬열에 백현이 비웃어보였다. 푸.흡. 딱 끊어 읽으며 나 너 비웃어요-, 를 표현하는 백현에 찬열이 꺼내던 고급 미스트를 백현의 얼굴에 냅다 뿌렸다. 에퉤, 하고 제 입에 들어간 미스트를 밭아내려는 백현의 노력에 찬열이 고개를 저었다. 쯧-.
"야, 근데 너네 형이 주워 왔다는 오메가, 예쁘냐?"
"탐내지 마라, 존나 예쁘니까."
"헐, 예쁘다고? 배켠님, 왈왈."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 턱밑에 가져간 찬열이 같잖은 강아지 흉내를 하며 백현의 가슴께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백현이 찬열의 앞머리를 검지와 엄지로 잡아 아래로 죽, 잡아 내렸다. 악! 아악, 씨발! 안놔? 찬열의 고함에 교실 전체가 찬열과 백현에게 집중되었다. 백현이 에휴, 한숨을 쉬고 찬열의 머리를 밀었다. 좀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찬열은 머리를 부여잡고 제 책상을 발로 밀었다. 개새끼야! 아오, 씨발! …탕, 쾅. 밀어낸 책상이 넘어지는 소리에 백현이 씨발놈아, 하고 중얼거렸다. 찬열이 어깨를 으쓱-, 하더니 책상을 금새 일으켰다. 책상 속에 든게 없어서인지, 쉽게 정리되었다. 이번엔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쯧-.
"야, 오메가 구경 한번만."
알파가 오메가를 보면 벌이 꽃에 달려들 듯 꽃히는게 당연한 섭리이건만, 찬열의 아버지는 찬열을 최대한 오메가에게서 격리시켜 놓으려 했다. 아마도 사회 분위기 속에 아버지마저 흡수 되었으리라.
찬열을 낳은 오메가는 대리모였다. 알파인 어머니는 자궁이 없기 때문에 비싼 돈을 주고 오메가를 데려다 찬열을 낳도록 했다. 그러나 이듬 해 태어난 아이는 알파가 아니었기에, 찬열의 가족은 오메가 둘을 버렸다. 물론 찬열이 아주 어릴 때 였기에 찬열은 기억 나는게 없었다. 베타처럼 열 달 내내 복중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는지, 찬열은 쉽게 오메가 모에게서 정을 뗐다. 그 이후로는 한번도 오메가의 '오'도 본 기억이 없는 찬열이 계속해서 백현을 졸랐다. 거, 참. 조금 본다고 닳냐, 닳아? 툴툴대는 찬열에 백현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건들면 안돼. 꼭꼭 약속을 받아낸 백현이 찬열을 제 집으로 데리고 들어섰다.
킁, 기억은 안나지만 맡아본적 있는 듯 한 내향에 찬열이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오메가 냄새-, 죽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TV를 보고 있는 오메가. 무려, 벗고있다. 백현이 찬열의 눈빛을 보자마자 소파로 달려가 제가 입고 있던 가디건을 덮어 입혔다. 너, 건들면 죽는다? 백현이 으름장을 놓자 찬열이 코를 막고 입을 삐죽댔다. 냄새가 나는데, 퉁명스러운 찬열의 대꾸에 백현이 주먹을 들어보였다. 구경만 한댔다, 너. 찬열이 한 손을 들어 안심하라는 듯 까닥거렸다.
그리고 소파로 걸어가서 털석, 앉는데 소파위의 작은 오메가가 계속 움찔, 움찔. 낄낄, 찬열이 웃고는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뭐 저런 걸 보고 있냐-, 재미 없게. 백현이 찬열의 뒷통수를 딱, 때리고 제 옷을 입은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찬열이 계속해서 킁킁거리며 코를 부볐다.
"도경수, 밥은?"
백현이 뒤로 나오는 아이를 보며 물었다. 아아, 경수-, 경수구나. 찬열이 경수에게 눈을 돌리며 코를 부볐다. 오메가, 경수. 흔한 이름이긴 한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단 말이지.안 먹었노라 고개를 젓는 경수에 백현이 그 머리통을 살살 쓰담으며 부엌으로 데려갔다. 배, 많이 고파? 묻는 백현에 도리도리, 찬열이 풉, 웃음을 터트렸다. 너네, 연애하냐? 그에 백현이 다시 눈을 흘긴다. 닥치고, 얼른 가. 찬열이 배를 문지르며 백현에게 아저씨, 여기 1인분 추가여! 를 외쳤다.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 오메가 먹기 전에 나도 밥, 좀-.
기어이 식탁에 끼어 앉은 찬열이 경수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오물거렸다. 식탁 밑으로 다리를 차대는 백현의 발을 요리조리 피하며,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한 손으로는 숟가락을 쥐고. 경수, 오메가…, 혼자야? 혼자냐는 물음에 경수가 젓가락을 떨어트렸다. 백현이 찬열의 다리를 세게 차고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박찬열, 너 가. 경수야, 미안. 찬열 대신 경수에게 미안하다 고하며, 백현이 경수에게 새 젓가락을 가져다 쥐어 주었다. 찬열이 경수의 머리칼을 흐트려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야겠다, 경수, 안녕? 웃으며 말하는 찬열에 경수가 울음을 터트렸다. 어릴 적 부터 느껴 온 경멸보다 더 알싸하게 다가오는 찬열의 말에 엉엉, 울어야만 할 것 같았다. 뭔지 모를 수치감이 온몸을 감았다. 찬열이 그런 경수에 당황하는 사이 백현이 경수의 의자밑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경수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울지마, 착하지? 경수야. 두 손을 모두 얼굴로 올려 연신 눈물을 쓸어내며 소리내는 경수에 백현이 어쩔 줄 몰라했다. 찬열이 뒷 목을 긁으며 백현의 집을 빠져나왔다. 경수가 손 틈새로 그런 찬열을 보다 더욱 엉엉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