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훈이 제 팔에 코를 묻고 킁킁댔다. 오메가 냄새-. 독방에서 민석의 방으로 옮겨졌다. 소장님이 맡으시면 되잖아요! 밤중에 내려진 준면의 지시에 민석이 길길거리며 준면에게 따져 물었다. 준면이 그런 민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세훈의 손을 민석에게 건넸다.
민석이 입을 빼죽이다 세훈의 손을 붙잡았다. 너 싫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너, 울면 안 돼. 알겠지? 민석의 당부에 세훈이 고개를 끄덕, 움직였다. 오메가라고, 나 싫어 하는것도. 덧붙히는 말에 세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이 표정을 풀고 세훈에게 제 침대로 안내했다. 세훈아, 잘 자. 꼭 제가 오메가로 변이하기 전 아주 어렸을때,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몸을 뉘이며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는 세훈의 모습에 민석이 종국엔 웃어 보였다. 울보 떼젱이가, 착하긴 하네-.
"세훈아, 기상."
민석이 깨우는 소리에 끙끙 앓는 소리만 내던 세훈이 겨우 눈을 떠냈다. 아무래도 어제의 아픔이 가시질 않는지, 세훈이 식은땀을 흘렸다. 민석이 당황해 세훈을 다시 눕혔지만, 어찌해야 좋을 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베타의 오메가 변이는 베타도, 오메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준면이 민석의 방에 들어섰다. 이불을 걷어내자 세훈이 밤새 쏟아냈을 하혈의 흔적이 가득했다. 준면이 이마를 가리는 머리칼들을 세게 헤집어냈다. 저, 안쓰러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세훈아, 세훈아. 으응, 와중에 정신을 차리고서 준면이 내미는 손을 부여잡는 세훈이 안타까웠다.
굳은 피가 세훈의 다리에 달라붙어 일으켜지는 몸이 움찔거렸다. 구급차로 태워지는 쳐진 몸을 보며 민석이 안전부절 했다. 소장님, 어떡해요, 어떡해. 준면이 함숨을 밭아내며 차에 따라 올라탔다. 민석씨, 괜찮을거에요. 준면의 짧은 위로에 민석이 바들거리는 머리통을 주억거렸다. 착한 세훈이…, 세훈이.
응급실에 도착해 영양제를 맞고 누운 세훈을 준면이 애처롭게 바라봤다. 꼭 저의 예전모습 같았다.
아이를 가지고, 웃음기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입힐 옷을 사러 매장에 들리던 참이었다. 퍽-, 이질적인 마찰음이 퍼지고, 그 다음은 사람들의 비명이었다. 꺄악-! 아, 준면이 차 안을 노려봤다. 힘겨움에 치뜬 눈, 그 눈에 핏기가 올라왔다. 오메가를 위해 신고하지 않는 사람들, 뱃속에서 울고있을 아기, 준면이 액정이 깨진 휴대폰을 들고 키패드를 눌렀다. 임신한 오메가 한명이…, 사고가 났어요, 피가…, 나요. 한 손엔 휴대폰을, 다른 한 손은 부른 배를 꼭 부여잡고, 준면은 울음을 참았다.
"산모는, 살았습니다만, 아이가…. 산모도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알파, 알파, 알파. 알파는 더럽게도 자기네 종족뿐이 모르는 인간들이었다. 준면이 아이를 다시 가질 수 없게 되자, 준면이 사랑한 남자는 그대로 병원을 나갔다. 사랑하던 것들이 모두 저를 떠났다. 비어버린, 비어있을 자궁을 제 간절함으로 채우며 준면은 울었었다.
제 성향을 이해하지 못 할 부모와, 버림. 준면이 세훈의 손을 더 꼭 잡아냈다.
*
"변백현, 괜찮아?"
"하나도."
"어?"
"도경수, 임신했어."
대박. 찬열이 여느 여자애처럼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워했다. 너, 조카 생겨? 묻는 찬열에 백현이 눈썹을 찡그렸다. 내 앤데, 백현이 대꾸함에 찬열이 얼굴에서 손을 떼내었다. 어머나, 정말? 백현이 그런 찬열에 눈길도 주지 않고 제 옆에 누워 잠든 경수의 팔을 주물주물, 안마했다. 하얀 찹쌀떡 같은 경수가 제 애를 가진건, 아무리 생각해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야, 근데 너네 형이 주워 왔다며."
"형이 주워 왔지."
"근데 왜 니 애야?"
형이 주워 왔다고만 했지, 형이 데리고 있다고는 안했잖아? 대꾸하는 백현에 찬열이 모르겠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아, 눈 존나 큰 새끼, 튀어 나오겠다.
"형이 데리고 와서, 나 줬어. 아, 근데 이렇게 말하니까 이상하다. 경수, 사람인데, 무슨 물건 같잖아."
"헐, 존나…. 너 변백현 맞냐?"
"그럼 누구게."
씨발같던 변백현이, 경수, 경수, 하며 그 하얀손을 제 손 안에 담아 보듬는 모습에 찬열이 기겁을 했다. 우리 백현이가 달라졌어요.
나만 사랑해주던 변백현은 어디로 간 고야! 찬열이 상처받은 눈빛으로 백현에게 매달리자 백현이 매몰차게 찬열을 쳐냈다. 우리, 끝내. 보다시피, 경수, 내 아이 가졌어. 말도 안되는 상황극에 백현이 낄낄거리며 받아쳐주자 찬열이 엉엉, 엎드려 우는 척을 했다. 자기, 그렇게 경수씨가 좋아? 어째서! 왜, 나는 안되는거야! 엉엉-. 백현이 이젠 진짜로 징그럽다는듯 소름돋는 팔을 긁어내며 찬열을 발로 밀었다. 소란에 경수가 눈을 떴다. 백현이 진짜로 정색을 하고 찬열을 조용히 시켰다.
"경수, 깼어?"
고개를 주억거리는 경수에 백현이 사랑스러운듯 그 머리칼 사이로 손을 넣어 흐트렸다. 불편한건, 없어? 묻는 백현에 또 고개만 주억이는 경수에 찬열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 못 해? 묻는 찬열에 백현이 눈을 흘겼다. 말 할 수 있어요-. 새어 나온 목소리는 찬열과 백현의 것이 아니었다. 경수의 목소리에 찬열도 찬열이지만, 백현 또한 놀란듯 경수를 바라봤다. 경수가 백현 외에 다른사람이 있는 곳 에서 입을 연 건, 거의 처음이었다. 백현이 이내 놀란 눈을 우그러트리고, 경수에게 웃어 보였다. 다시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을 잡아 내린 경수가 제 손으로 백현의 손을 만졌다. 백현이 쉴 새 없이 놀라며 경수를 바라봤다. 경수, 기분 좋아? 또 고개를 주억이는 경수에 백현이 이번엔 소리내어 웃었다. 착하다, 우리 경수. 백현의 말에 우웩-, 하고 징그러움을 표출한 찬열이 병실을 나왔다. 아니, 입원부터가 웩이다, 웩! 애를 낳은것도 아니고 임신한 것 가지고 입원은! 찬열이 툴툴대며 복도를 걸었다.
아…. 찬열이 문득 멈춰섰다. 시선 끝에는 하얀 아이가 당황한 듯 서있었다. 링겔 스탠드를 잡고 당황한 얼굴을 푹 숙인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고요한 복도 안에, 찬열과 세훈의 시선이 맞닿았다. 어쩌지 못하는 아이에게 찬열이 무턱, 걸어갔다. 저도 모르는 새 하혈이 시작 되었는지, 1미터 정도, 혈흔이 복도에 남아있었다. 오메가야? 묻는 찬열에 세훈이 고개를 젓다가, 종국에는 끄덕였다. 으으-, 으. 오메가들은 말하는게, 싫은가. 찬열이 실없는 생각을 하며 세훈에게 등을 내밀었다. 업혀. 한참을 내민 등에 아무 무게도 실리지 않자 찬열이 다시 일어섰다. 안아줄까? 세훈이 고개를 저었다. 이유를 묻는 찬열에 세훈이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피…, 나요. 찬열이 풉, 웃었다. 괜찮아, 나 옷, 많아. 그래도 고개를 푹 숙이는 세훈에 찬열이 결국 그 하얀 몸을 안아 올렸다. 야, 그거 내가 못 미니까, 니가 잡고 밀어라? 세훈이 놀라서 찬열을 바라봤지만 찬열은 개의치 않고 세훈을 안은 채 발을 뗐다. 바닥에 떨어져야 할 엉긴 핏방울들이 찬열의 소매에, 바지에 그대로 흘렀다.
세훈아! 달려오는 인영에 세훈이 멋쩍게 웃어보였다. 찬열에게 기댄 몸이 부끄러웠다. 잠깐 걷고 싶어서 나갔던 것인데, 이렇게 큰 일이 날 줄 몰랐다. 하얀 병원 복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그 천과 맞닿은 팔뚝까지 모두 흥건히, 적셔져 있었다. 찬열의 팔에서 내려오는 세훈에 민석이 그 옆에 붙어 부축했다. 움직이지 말지, 하고 울먹이는 민석의 모습에 세훈이 뒷 목을 긁적였다. 준면이 일이 있어 병실을 비우게 되자, 민석이 찾아 오던 중이었는데, 병실 앞에서 본 세훈은 정말이지 안쓰러웠다. 민석이 연신 찬열에게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세탁비는 제가, 민석이 말하는 틈을 비집고 찬열이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세훈이? 안녕. 손을 까닥이며 웃는 모습에 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편안한 미소도 지었는데, 찬열이 봤을 지는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