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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도 찬열은 세훈을 찾아왔다. 세훈이, 안녕? 예의 그 모습으로 손을 까닥이는 모습에 세훈이 전보다 조금 크게 미소를 걸어냈다. 찬열이 세훈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 옆에 앉았다. 이젠 괜찮아? 묻는 찬열에 세훈이 고개를 끄덕이다 입을 열었다. 네에-. 찬열이 크게 웃었다. 고개만 끄덕이는 경수나 세훈이 답답해 세훈에게 대답은 말로, 하고 말했었는데 세훈은 정말이지 말을 잘 들었다. 백현과 경수를 보러 온다는 명목에 찬열이 자주 병원을 찾았는데, 사실 백현네 병실에 있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지 않았다. 며칠전에 핏방울이 가득했던 복도로 걸으며 설레하는 모습에 찬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세훈의 병실로 들어서면 그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즐거움에 휩싸여갔다. 세훈, 세훈아. 제 입에 달라붙는 그 어감 또한 즐거웠다. 내내 설레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 찬열은 그저 그렇게 웃었다.
형은 왜 병원에 매일 와요? 묻는 세훈에 찬열이 백현네 얘기를 했다. 내 친구가, 아빠 될거래. 걔네 형이, 오메가를 데려왔는데, 얼마전에 임신했어. 근데, 몸이 좀 약하다나? 그래서 입원시켰대, 난 병문안? 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다, 오메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찬열이 웃었다. 너도 오메가잖아. 순간의 세훈의 표정은 화가 난 듯 보였다. 찬열이 당황해 하자 세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베타였어요. 찬열이 아, 탄식과 함께 사과를 했다. 그, 그, 변이? 하고 되묻는 찬열에 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 아프지, 그거. 찬열이 걱정스러운 듯 세훈의 손목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 따뜻한 손길에 세훈이 언젠가의 엄마를 떠올리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세훈에게 엄마는 너무도 그리운 존재였다.
찬열이 세훈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떨리는 머리통과 각진 어깨가 찬열의 가슴께도 떨게 만들었다. 움찔이는 머리통에 손을 얹고 작게 도닥였다. 많이 아팠어, 세훈이? 백현이 봤다면 어느 날의 저처럼 놀라워 할 모습이었다. 찬열이 그저 실없는 생각을 하다 세훈의 목께를 주물렀다. 긴장을 풀라고 주물렀는데, 갑자기 찾아 온 손길에 놀랐는지 딸꾹인다. …풉. 찬열이 참으려던 웃음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세훈이 찬열의 어깨를 밀어냈다. …아팠어요. 많이. 아까의 대답을 하는 세훈이 안타까웠다. 아프겠지, 많이, 아프겠지. 생각하는 찬열의 어깨에 그 머리통이 다시 닿아온다. 엄마가 나를 미워해서, 아팠어요. 찬열이 생각 해 본적없을 고통에 세훈이 아파한다, 작아진 그 몸을 찬열은 다시 한번 감싸 안았다. 그 모습이 예뻤다.
병원에 근 이주간을 누워있던 세훈이 이제 뻐근한 듯 찾아온 찬열에게 투덜거렸다. 아, 나가고 싶어. 나가고 싶어요. 말하는 세훈에 찬열이 눈썹을 일그려트렸다. 너, 또 아프면 어쩌려고. 세훈이 고개를 저었다. 안아파요, 이제. 진짜요. 졸라오는 세훈을 못 본체하며 찬열이 고개를 돌렸다. 아아, 형. 제발. 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찬열에 이제는 병실에 가끔 들락거리기만 하는 준면과 민석도 없겠다. 세훈은 찬열을 계속 졸랐다. 형, 형, 하고 졸라오는 입술이 오물거리는게, 찬열이 그 입술에 잠깐 붙었다 떨어졌다. 세훈이 놀란 눈을 하고있다 이불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찬열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끅끅대며 웃었다. 세훈아, 밖에 가잔 소리 안하네? 그러고서 다시 끅끅, 웃음이 막히듯 터져 나왔다. 형-, 밖에 나가요-. 이불을 살짝 들어 그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세훈에 찬열이 못 말리겠단 듯 웃었다. 아학, 아, 아하하, 찬열의 웃음에 세훈이 고개를 완전히 빼어 들고서 마주 웃었다. 히-.
담당 의사에게 들러 외출 허락을 받고서 신난 세훈이 찬열의 팔을 잡아 끌었다. 얼른, 얼른 나갈래요. 사복이 없어 병원복 위로 찬열의 가디건을 걸친 채, 세훈이 팔랑였다. 와! 신난다! 여느 남자애처럼 신나서 뛰는 모습이 귀여웠다. 찬열이 그 손을 잡고 병원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좋아? 묻는 찬열에 세훈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좋아! 은근한 반말에 찬열이 큭큭 웃었다. 세훈이 벤치에 기대 앉았다. 으응, 하아. 볕에 눈부셔 하면서도 고개를 들고 숨을 들이켰다. 찬열이 그 옆에 가 앉으면서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주자 세훈이 고개를 팩, 돌려 찬열을 올려다 본다. 시원해, 나오니까 좋죠?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니까 너 신난 모습도 보고, 좋네. 찬열이 차양을 만든 손을 그대로 세훈의 얼굴 위로 덮었다. 눈과 코가 다 덮여 세훈이 앙앙거렸다. 아으, 형! 눈! 손! 짧게 끊어 소리치는 세훈에 찬열이 계속 웃었다. 뭘 하든 귀여운 아이다. 손을 떼어주자 찬열을 이겨보겠다고 찬열의 얼굴에 손을 다 엎어 덮는다. 차가운 손이 찬열의 얼굴에 닿아 미묘하게 열이 섞였다. 시원하다, 세훈아. 말하는 찬열에 세훈이 시원해요? 하고 볼과 턱으로 손을 옮겼다. 열만 미묘하게 섞인게 아니라 찬열과 세훈도 미묘하게 엉켜들었다. 찬열이 제 볼에 올려진 손을 꼭 잡고 당겼다. 하얀 얼굴이 제 눈 앞에 닿았다. 세훈이 눈을 찡그려 감았다. 찬열이 그 하얀 얼굴을 감상하며 입을 맞췄다. 다시 그 열이 섞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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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과 경수가 산책을 위해 나왔다. 조금 부른 배를 드러내기 뭐 한지, 경수는 계속 배를 감추려 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백현이 호들갑을 떨며 경수의 옆에서 배는 괜찮냐, 볕이 뜨겁진 않냐, 물어 오는 탓에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 버렸다. 경수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는데도 백현은 아랑곳 않고 경수에게 치근거렸다. 어-, 어느 순간 경수가 멈춰서 한 곳을 응시했다. 백현이 그 시선을 따라가자 그 끝에 찬열이 걸렸다. 찬열의 앞을 가린 아이가 찬열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간 줄로 알았던 찬열이 병원 앞 공원에서 다른 아이와 신이나 장난 치는 모습을 보고 백현이 머뭇댔다. 박찬열 맞아? 정작 경수는 그 찬열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현이 그 옆에 따라 붙으며 경수의 어깨를 감쌌다.
"박찬열!"
"어, 백현이네."
"뭐야?"
"뭐가."
"너, 간거 아니었어?"
간게 아니었냐, 묻는 백현에 찬열이 세훈의 손목을 잡고 제 옆에 앉혔다. 어어, 안 갔어. 대답하는 찬열에 백현이 이번엔 세훈을 쳐다봤다. 누구? 턱짓을 하는 백현에 찬열이 세훈의 이마로 손차양을 만들어주며 대답했다. 내새끼. 풉, 터져나오는 웃음에 세훈이 당황했다. 그리고 백현의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경수가 백현의 등으로 숨으며 손을 들어보였다. 세훈이. 경수의 목소리에 찬열이 놀랐다. 둘이 알아? 찬열의 물음에 세훈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까와 다르게 약간 굳은 표정을 읽지 못하는 찬열이 세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세훈이 경수에게로 손을 들었다. 경수…, 안녕. 끄덕이는 경수의 머리통에 세훈이 미안한 눈길로 다시 올려봤다. 백현이 경수의 팔을 잡아 옆에 바로 세웠다. 너도 오메가? 묻는 백현에 경수가 백현의 팔을 잡았다. 아니야, 세훈이. 경수의 대답과 다르게 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찬열이 그런 세훈을 보다 그 어깨를 단단히 감쌌다. 경수의 눈이 놀라 커졌다. 오메가야? 묻는 작은 입에 세훈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색해진 공기에 백현이 찬열에게 괜히 시비를 걸었다. 너, 쟤랑 연애하세요? 묻는 백현에 세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찬열이 그런 세훈을 한번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요, 내가 존나 사랑하세요. 대답하는 찬열에 백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저런 미친놈, 나더러 욕할땐 언제고.
백현이 잔뜩 구겨진 얼굴로 경수를 잡아 돌렸다. 우리 가자. 콧바람을 내뱉는 백현에 경수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제야 세훈이 편안한 듯 크게 웃었다. 으하하, 소리에 찬열이 마주 웃었다. 커진 웃음 소리에 경수 또한 웃어댔다. 백현 홀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셋을 보다 종국엔 같이 웃어냈다.
세훈은 옆에 앉은 경수와 백현을 계속 바라봤다. 경수는 그런 세훈의 눈길이 아직 어색한지 고개를 폭 숙이고 있는 채였다. 백현은 그런 경수의 머리칼에 손을 넣어 몇번 흐트리다, 그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하고, 손가락을 빼어 그 콧망울을 만지기도 했다. 찬열이 음료를 사 들고 세훈의 눈 앞에 밀었다. 따뜻한 기운에 세훈이 몸을 뒤로 죽-, 뺐다. 찬열이 세훈의 머리를 온통 헤집었다. 안 추워? 병원복, 얇잖아. 묻는 찬열에 세훈이 고개를 저었다. 더 있을거야? 묻는 찬열에도 고개를 저었다. 찬열이 세훈을 일으켜주고 따뜻한 캔을 그 손에 쥐여준다. 가자, 내새끼. 세훈이 두 손으로 캔을 감싸 쥐었다. 따뜻한 기운이 온 몸을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아마 준면과 민석같은 느낌에 괜히 손가락을 들어 캔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찬열이 그런 세훈의 어깨를 제 팔로 감싸 안았다. 세훈이 올려다보고는 씩 웃는다. 예쁜 호선에 찬열이 손을 올려 볼께를 톡톡 두드렸다. 초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둘의 사이를 지나려다 단단한 기운에 막혀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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