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빠알간 거 떠따!
백현이 하얀 손으로 곤히 자고 있던 찬열의 얼굴을 쿡쿡 찔렀다. 원래 아침잠이 없는건지, 지난 밤에 일찍 잠들었던 탓인건지 찬열보다 일찍 일어난 건 꽤 손에 꼽히는 일이였다. 피곤했던 건지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않고 잠을 청하는 찬열의 옆에서 입을 비죽이다, 결국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커다란 티셔츠탓에 어깨를 훤히 드러낸 것도 모르고 백현이 베란다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평소였으면 위험하다며 절대 접근조차 하지 못했을 곳이었다. 새벽 바람에 잔뜩 언 난간에 팔을 기대곤 하얗게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물끄럼 쳐다보았다. 온통 까맣고, 눈 아픈 것들이 번쩍이던 밤은 사라지고 새로운 아침이였다. 소복이 쌓여있던 눈의 잔해들이 거리 곳곳에 남아있는 것을 대충 훑어보다, 이내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나가구 싶어어..
백현이, 앞으로 또 나 몰래 베란다 가면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백현의 밥 위로 계란말이를 얹어주며 찬열이 짐짓 화난 투로 말했다. 그 옆으로 백현은 곧 울기라도 할 양인지 입술을 꾹 감쳐물었다. 차녀리 무서운 거 시러.. 깨작깨작 먹었다간 또 휘몰아치는 잔소리를 들을게 겁나 백현이 한 숟가락 크게 떠 오물오물 밥을 씹었다. 그리곤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채 슬슬 제 눈치를 본다. 금방이라도 웃을 것 같아 모른척 고개를 돌렸다. 귀여워 죽겠다..
지금은 그래도 꽤 괜찮아졌지만 아침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습관적으로 더듬은 옆 자리가 텅 비어있어 허겁지겁 밖으로 나오니 백현은 베란다에 나른하게 몸을 기대고 서있었다. 안그래도 매일 엎어지고 구르고 온 바닥에 몸을 부딪히는데, 한 발자국만 잘못 옮겨도 떨어질 생각을 하니 심장이 그대로 곤두박질을 쳤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있다가 슬쩍 고개를 돌린 백현이 찬열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달려와 품에 안긴걸로 상황은 끝났지만.
다시 아찔했던 기억을 회상하니 제 옆에서 서투르게 젓가락질하는 백현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끙끙거리며 손가락을 놀리는 모습에 정수리에 가볍게 입술을 두어번 내리눌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망울로 저를 올려다보는게 너무나도 귀여워 찬열은 그저 웃었다.
백현아, 우리 오늘 놀러갈까?
놀러? 배켜니랑 차녀리 놀러?
응, 놀러. 어디로 갈까요? 감기 걸리면 아야하니까 옷 따뜻하게 입고.
어어.. 으, 으아..
젓가락을 입에 물고 연신 눈을 굴리는 모습에 찬열은 아예 고개를 괴고선 백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가고싶은 곳은 많은데 쉽사리 정하지를 못하는 듯 싶었다. 놀이동산은 위험하고, 번화가는 시끄럽고, 영화관은 사람이 붐볐다. 이 셋이 아니더라도, 백현에게 세상은 위험한 곳 천지였다. 만약 가고싶다고 떼를 쓰면 어쩌지. 찬열이 고민으로 가득찬 눈 앞의 작은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백현이 이내 말을 꺼낸 것은 찬열에게 다행으로 다가왔다.
옷 따뜻하게 입었죠? 목도리도 제대로 두르고.
응, 나 배켜니 다 입어따! 목도리두 똑바루야.
오랜만에 놀러나가는게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백현은 동네 구경이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침에 내려다본 거리가 맘에 꼭 들어서일까. 꼼꼼하게 신발끈을 매주려는 찬열을 내려다보며 자꾸만 조급하게 발을 구르기도 한다. 씁, 하며 숨 들이키는 소리를 내자 그제서야 조용해졌다. 놓고간 건 없는지, 혹시라도 백현에게 필요로 할 것들이 있는지 다시 한번 집을 둘러보던 찬열이 옆에서 낑낑거리며 안달을 내던 백현의 손을 그러잡았다.
백현아, 절대 나 두고 멀리 가면 안 되고 뛰어다녀도 안 돼요. 알았지? 안 그럼 백현이 데리고 소풍 안 나올거야.
으응.. 안 그래, 나 배켜니 안 그래!
눈을 맞추고 진지하게 말하는 찬열에게 새끼 손가락까지 꼭꼭 걸고 나서야 대문 밖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와락 하고 달려드는 찬 공기가 시릴 법도 하건만 개구쟁이처럼 요리조리를 쏘다니는 백현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찬열은 푹 웃었다. 약속한 거 그새 다 까먹었네. 돌아다니고 싶은거 어떻게 참았나, 여태까지. 매 계절마다 감기에 걸리는 탓에 억지로 옷을 껴입혔더니 뽈뽈거리며 다니는 모습이 마치 퉁퉁한 백구같았다.
백현의 얼굴이 조금 희미해질 쯤 되자, 그제서야 찬열은 걸음을 서둘렀다. 백현은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 마냥 해사하게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짧지 않은 거리를 단숨에 뛰어온 찬열이 차는 숨을 내리누르며 백현의 손을 잡았다. 집 밖을 나서기 전, 건네준 제 장갑이 조금 큰지 한 마디가 남았다. 개의치 않고 깍지까지 껴 백현의 손가락을 동여맨 찬열의 손 끝은 붉었다. 둘다 귀며, 코까지 달아오른 줄 모른다. 찬열이 다른 손으로 목도리를 고쳐매어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나랑 가요, 먼저 가지 말고.
나 차녀리랑 가는 거또 조아.
응, 착하다 백현이. 발간 손가락이 다시금 손을 옭아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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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의 백현이는 저능아입니다ㅜㅜ.. 근데 저능아같지 않게 나왔다는게 함정
앞으로 이 소재 가지고 얼마를 우려먹을지 모르겠지만 찬백 행쇼.......백총도 행쇼......
앞으로 제 글=백총글=꾸준글ㅜㅜ 똥글망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