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또라이
글 ; 노랑의자
모든 사건의 시작은 고등학교 1학년, 17살 때였다.
"야야."
"아 왜."
"쟤 누구야? 저기 학교 얼릴 것 같이 생겨서 급식 고상하게 먹고 있는 애."
"뭐. 황민현?"
"이름이 황민현이야?"
"어. 갑자기 왜?"
"나 쟤 좋아."
"뭐?"
급식을 부잣집에서 쉐프님이 차려준 것 마냥 고급스럽게 먹는 황민현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는 뭔 개소리야..라며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멀리서 황민현을 지켜보는 외로운 짝사랑이 시작되었더랬다.
황민현을 좋아하는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당차고 뻔뻔한 성격도 아닌 탓에 고백 한번 못 하고, 말도 한번 못 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어떻게 2년 연속으로 다른 반이냐.."
"그냥 가서 번호를 따 답답아."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여태 이러고 있겠니."
그렇게 2년을 허망하게 보내버리고, 고3이 되자 드디어 같은 반이 되었고 황민현과의 연결고리가 나타났다.
"헤이 짝꿍."
"..나?"
헤이 짝꿍, 이라는 다소 당황스러운 인사를 건넨 김재환은 황민현과 초등학교 때 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순식간에 친해진 김재환에게 나는, 황민현을 좋아한다고 일찍이 말해버렸다. 그러자 돌아오는 반응이,
"꺄학학학학ㅎㅎㅎ핳하!! 걔를? 왜??"
우렁차고도 귀를 찰싹하고 때리는 듯 한 웃음이었다. 웃음소리가 굉장히 특이하구나.. 그럴 수 있지.. 황민현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하며, 김재환은 조금 당황스럽지만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꽤나 열심히 나를 도와주려 했고, 어째 나보다 더 즐거워하는 듯 했다.
"야야. 내가 일단 기본 정보부터 알려준다."
"야 너 목소리 좀 줄여..! 아예 광고를 해라."
"그럴까? 나 한 성량 하는데. 라쓰고?"
"야 이 미친. 착석해라."
황민현의 자리는 정확히 내 자리의 앞자리의 옆자리였다. 즉, 대각선 앞자리라는 것이다. 처음 자리를 정할 때, 생각보다 자리가 너무 가까워 쿵쿵 속으로 난리가 난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좀 썼다.
"일단 누나가 한명 있어."
"오. 그리고?"
"상의사이즈 105."
"윽. 심쿵했어 방금."
"쩔긴 하지."
"..근데 너 그건 어떻게 알고 있냐."
뭔가.. 동갑내기 또래 남자애들이 알고 있기엔 조금 tmi의 삘이 왔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정보였기 때문에 책상에 펼쳐진 공책에 열심히 적었다.
"또 유명한 별명이 하나 있지."
"뭔데뭔데?"
"예쁜, 또라이. 줄여서 예또."
"아 맞아. 나 들어본 적 있어. 근데 왜 또라이야?"
"왜 예쁜이 붙는지는 안 물어보냐?"
"예쁘잖아. 민현이."
"..."
너무나 당연한 듯 나온 내 대답에 김재환의 표정이 응가라도 씹은 것 마냥 떨떠름해졌다. 그런 김재환은 안중에도 없이, 공책에 별명 땡땡 예쁜 또라이 하트 라고 적었다.
"아, 나 속 울렁거려 지금. 거북해서 의욕 잃었다."
"..이따 핫바 쏨."
"다음으로 넘어가볼까 짝꿍?"
핫바 하나로 순식간에 태도가 바뀌어버린 김재환에 드럽고 치사한 놈..이라는 말이 혀끝까지 튀어나왔지만 나의 민현이를 위해 어렵게 참았다.
"그래서 왜 또라이냐구."
"너가 보기엔 쟤 성격 어때."
"그냥, 조용하고, 공부 잘하고, 뭐 특별히 모난 데 없지 않아?"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왜 또라인지 모르지."
"엥? 아니야?"
"쟤 완전 팩폭 장인이야."
팩폭? 팩트폭력 말하는건가? 그렇게 팩트로 때리는 건 2년동안 본 적 없는데. 내가 안 믿긴다는 듯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김재환이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냐며 답답하다고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친다.
"진짜 좀 재수없을 정도야. 근데, 맞는 말인거지. 그래서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또라이야?"
"그리고 재가 친한 애들한테만 보이는 똘끼가 또 있어."
"똘끼?"
"야 재환아."
한창 김재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황민현의 목소리가 들려와 내가 크게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윽. 심장 멎을 것 같..
"어어. 왜?"
"매점 가자고."
"콜."
눈이 마주친 그 찰나의 순간에, 또다시 반해버린 것 같았다. 김재환과 황민현이 교실을 나가고 나서도 한동안 심장 부근에 손을 올려놓고 눈맞춤의 여운을 느끼는데, 건들건들하게 우리 반으로 들어온 친구가 내 앞에 앉아 책상을 똑똑 두드려 나의 여운을 깨버렸다.
"아 뭐야."
"뭐냐? 혼자서 멍해갖고."
"방금..눈 마주쳤다."
"미친. 난 또 뭐라고."
"뭐냐니! 이건 레알 대박 헐 소리 나오는 사건이야. 게다가 내 짝꿍, 황민현이랑 친구래."
"그래?"
"어어! 방금 같이 매점갔어!"
친구는 책을 빌리러 왔는지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교과서 여러권을 뒤적거리며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이런 반응은 1학년 때 부터 익숙하게 느껴왔던 터라, 전혀 개의치 않고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 뒷모습은 왜이렇게 멋있냐 또. 등등의 각종 앓는 소리를 해댔다.
"하. 나 맘잡고 공부하려고 했는데 앞에서 시선 강탈이야 진짜."
"누가?"
"으악!"
"야 너 진짜 잘놀란다."
내 나름의 고민이라, 이마를 손으로 짚고 고개를 저어가며 진지하게 말하는데 또 갑자기 튀어나온 김재환이 나를 놀래킨다. 원래도 빵빵한 볼에 뭘 또 채워넣었는지 더 빵빵해진 볼로 오물오물거린다. 잠깐, 얘가 왔다는 건 황민현도..?
아 망했다.. 나 방금 놀라는 거 완전 아저씨 같았는데.. 예쁜 모습만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괜히 김재환을 퍽 한대 때렸다. 바나나우유를 빨대로 쪽 빨아먹던 김재환이 갑작스레 얻어맏곤 콜록거리며 왜! 한다.
"아, 몰라.. 망했어 진짜."
팔을 비비며 나를 째려보는 김재환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아까 그 공책을 펴놓고 아무 글자나 끄적였다. 곧 샴푸를 좋은 향 나는 걸로 바꿀까? 하는 잡생각에 빠져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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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도 개학 첫 날이 금요일이라, 야자도 없이 주말을 맞게 되었다. 곰돌이 푸를 닮은 담임선생님께서는 고삼이니 주말에도 나와서 자습을 하라고 하셨지만, 프로 수시러인 나는 간단히 스킵하기로 했다. 간만에 꿀잠이나 잘까 하고 알람도 꺼놨더니, 집 밖에서 아침부터 요란한 소리가 가득이다. 밍기적거리다 겨우 일어나 머리를 대충 묶으며 엄마에게 밖에 무슨 일 있냐고 묻자, 앞집이 이사 오는 날이란다.
"아, 너무 시끄러워.."
"기지배야. 얼른 씻고 공부나 하러 가. 다 큰 애가 꼬질꼬질하게 그게 뭐니?"
"공부는 집에서 해야지 엄마."
잔소리 일타강사인 엄마에게 잠깐 대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욕실로 들어왔다. 어휴, 고삼인 게 죄지.. 슬렁슬렁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곤, 최소한의 화장만 하고 집을 나섰다. 복도식 아파트에, 것도 엘리베이터와 제일 먼 집이라 무거운 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누가 플라스틱 상자를 들고 걸어온다.
"어!!"
미친.
본능적으로 반응한 내 성대를 패대기 치고싶은 순간이었다. 내가 내지른 목소리에 옆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나와 마주한 사람은,
황민현이었다.
"..아..그.."
"..."
소리를 내 황민현의 시선을 끌었으니 뭐라고 수습을 해야만 했다. 인생 최대의 위기라고 봐도 무방했다.
"어..안녕..!"
"..."
"그..나 너랑 같은 반인데! 김재환 짝꿍!"
"..."
"아..하하. 그니까.. 어.. 이사온거야?"
황민현과의 첫 대화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이야. 이사온거냐는 내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민현이다. 윽, 저 모습도 잘생겼어.. 외모에 감탄하다, 순간 김재환이 한 말이 떠올랐다.
"웬만하면 먼저 인사는 하지 말고."
"어? 왜?"
"걔 이름 진짜 못 외워. 너 상처받는다."
이 대화가 생각나 아무 말이나 내뱉던 입도 다물어졌다. 짧은 적막이 흘렀고, 이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민현아, 잘가..! 하고 대범하게도 말해버렸다. 겉으로는 애써 표정관리를 했지만, 속으로는 이게 무슨 당황스러운 친한척이야 성이름!! 하는 자책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황민현은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내 옆을 지나가며 작게 대답했다.
"잘가, 성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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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랑의자 입니다!
글을 계속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8ㅅ8..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